< 지구 최초 -3- >
환자 가족들이 몇 번이나 인사를 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미르 공격대 사원이 라오그뉴의 사진이 든 액자를 내밀었다. 그러자 환자의 아내가 사원을 보고 물었다.
“휴대할 수 있는 크기는 없나요? 항상 가지고 다니고 싶은데요.”
“아, 그건 나가시는 길에 상점에서 팔고 있습니다.”
“그래요?”
반지나 목걸이, 팔찌 같은 것이었다. 열쇠고리나 스마트폰 악세사리도 있었다. 대부분 저렴해서, 거의 1만 원을 넘기지 않았다.
상점을 지키던 사원이 웃으며 말했다.
“여기 이 캐릭터 팔찌가 어떠세요? 가족들끼리 하나씩 차고 다니는 것도 뜻깊을 것 같은데요.”
“좋아요. 이걸로 5개 주세요.”
같은 과정이 반복되었다.
라오그뉴는 손을 대는 것만으로 간단히 모든 병을 치료했다. 지구인 이능력자라면 아무리 S급이어도 한두 명 치료하고 정양을 취해야 하는데, 과연 신이라 부를 만 했다.
첫날에 치료한 환자만 수백 명을 훌쩍 넘었다. 환자는 물론, 환자 가족들까지 감사하며 각종 장신구를 사 갔다.
저녁이 되었다.
집으로 돌아온 라오그뉴가 앓는 소리를 냈다.
[아이구 나 죽겠다. 으으으, 누가 나 마사지 좀 해 줘.]
새미가 라오그뉴의 어깨를 주물렀다.
“수고하셨어요, 라오그뉴님.”
[으으, 좋다. 그래도 보람이 있었어. 오늘 하루 만에 내 신도가 수천 명은 늘어난 것 같아.]
“그렇게나 많이요?”
[응. 환자들도 환자들이지만, 가족들이 보내는 감정이 꽤 충실한데? 그 사람들도 많이 힘들었나 봐.]
“중증 환자가 있으면 가족이 가장 힘든 법이지요.”
수한은 쓰게 웃었다.
“진작부터 치료소를 운영할 걸 그랬습니다. 라오그뉴님한테도 좋고, 환자들한테도 좋은 일이었는데요.”
[그러게. 이대로 가면 금방 내 신격이 높아질 것 같아.]
“그거 좋네요.”
수한은 눈을 빛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른다.
한 달 내에 해결이 된다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다음 원정을 꼭 가브낙 행성으로 갈 필요는 없으니까.
용이가 앞발을 들어 라오그뉴의 등을 툭 쳤다.
[축하해! 하지만 네가 강해져봤자 나한테는 안 될 걸?]
[흥. 어디 내 신격이 높아진 다음에 보자. 신계에 입성하면 나는 새 권능을 얻을 테니까 그때는 까불면 가만히 안 놔둘 거야.]
새로운 권능?
지금도 강한데 뭔가 능력을 더 얻는다고?
그에 대해 묻자, 라오그뉴도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일단 신격이 높아진 다음 쥬페르 행성에 다녀와야 확실해진다던가.
마엘른이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
“라오그뉴님이 어서 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도 이번에 승급을 시도할 생각인데 어떻게 보십니까?”
마엘른은 그 동안 자기 돈으로 S급 힘의 결정을 1개 더 구해 흡수했다. 그러자 최신의 이능 인증에서 신속 계열에 *이 찍혀 나왔다.
신속 계열 이능 승급 가능성이 높다는 뜻.
수한은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세라프 방식으로도 승급 확률이 높다고 나왔고, 숲의 검법에도 영향이 있으니 가능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저는 찬성입니다.”
그 얘기를 들어서일까.
아르텔라도 SS급에 도전하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소환 계열과 외능 계열 전부.
“잘 하면 공격대에 겹경사가 터지겠는데요?”
수한은 바로 찬성하고 나섰다.
질라 행성을 다녀오고 나서, 아르텔라가 한층 성장한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릇도 커졌고, 그릇 안에 내용물도 가득 찼다. 언제든 내용물이 넘쳐 흐를 수 있는 상태였다. 어쩌면 여기 있는 이들 중 두 번째로 SSS급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르텔라일지도 몰랐다.
마엘른이 먼저 수한의 집에 있는 밀실로 들어갔다.
새미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했다.
“잘 될까?”
“걱정 마. 무난할 거야. SS급은 두 분 모두 어렵지 않을 것 같아. 문제는 SSS급이지.”
하루가 지났다.
수한이 출근하고 퇴근할 때까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러다가 밤늦게, 자정이 다 되어서야 초췌해진 마엘른이 문을 열고 나왔다.
하루 사이에 살이 쪽 빠졌지만 두 눈은 형형하게 살아 있었다. 더구나 은은한 기파가 수한의 감각을 자극했다.
단순히 SS급 이능을 갖춘 것만이 아니라, 마엘른이 익히고 있는 숲의 검도 경지가 올라간 것이다.
“축하드립니다. 검법도 강해지신 것 같습니다.”
“고맙소. 아쉬운 것은, 한 몇 년 세계수 옆에서 수련을 하면 더 강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수가 없다는 점이오.”
“조만간 세계수 옆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수한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마엘른을 이어 아르텔라가 밀실로 들어갔다.
두 계열의 이능을 승급시켰는데도, 마엘른 보다 훨씬 더 빨리 끝이 났다. 수한이 다음날 퇴근했을 때 태연한 얼굴을 하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벌써 흡수를 끝내신 겁니까?”
“네, 어렵진 않더라고요. S급으로 올라갈 때보다 오히려 훨씬 더 쉬웠어요.”
그럴 거라 생각했다.
SSS급 힘의 결정이 있으면 승급을 권해볼 텐데, 안타깝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미르 공격대가 얻은 SSS급 힘의 결정은 수한이 흡수한 것 하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미르 공격대는 SSS급 1명, SS급 4명을 보유한 공격대가 되었다.
핵폭탄이 터진 것과 같은 충격이 지구를 강타했다.
아무리 최근에 수가 늘었다고 하지만, 지구 전체를 통틀어도 SS급 이능력자가 10명을 조금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그런데 공격대 하나에 이렇게 많은 SS급과 SSS급 이능력자가 있다고?
더구나 수한이 케르베스 행성 직후 밝혔던 포부가 새삼 화제가 되었다.
가브낙 행성의 루비 아이 사냥.
지금도 대한민국 육군이 가브낙 행성에 파병되어 있었다. 소강상태라서 큰 위험은 없지만, 파병 간 병사의 가족들에겐 하루하루가 피를 말렸다.
외계 행성 파병에서 오는 막대한 유지비는 덤. 병사들을 주기적으로 지구로 불러들이며 놓는 예방 접종만 해도 엄청났다.
미르 공격대가 루비 아이 사냥에 성공하고, 다른 행성에서 그랬던 것처럼 행성 전체를 수복한다면?
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다. 가브낙 행성으로 파병을 보낸 것은 대한민국 하나만이 아니니까.
미르 공격대 사옥 앞에 현수막이 겹겹이 걸렸다.
[미르 공격대를 응원합니다!]
[우리의 아들들을 집으로 보내주세요!]
[루비 아이를 죽여라!]
가끔은 가브낙 행성 원정을 촉구하는 집회도 열렸다.
수한은 사장실에서 그것을 보며 뺨을 긁적였다.
TV를 틀어보니 미르 공격대가 가브낙 행성 원정을 결정할 것처럼 부산을 떨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공중파 방송에서는 루비 아이와 미르 공격대의 전력을 상세하게 비교하며 승산이 있니 없니 갑론을박했다.
새미가 기가 막히다는 듯 말했다.
“저 사람들은 우리 공격대가 가브낙 행성 원정을 확정지은 것처럼 말하네?”
“그만큼 절박하다는 얘기겠지. 벌써 5월이 다 돼 가잖아. 올해가 2019년이니까 파병한지 3년이 넘었어. 언제 파병이 끝날지 모르니까 저럴 만도 해.”
수한은 담담한 기색으로 말했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루비 아이를 사냥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냉정하게 따지면 5% 이하였다. 그 정도면 절대 사냥을 시도해서는 안 될 터였다.
수한은 몸을 일으켰다.
“그럼 다녀올게.”
“응, 오빠. 조심해서 다녀와.”
수한은 잠깐 노르헤임 행성에 다녀오기로 했다.
SSS급 총 때문이었다. 어차피 용기사를 이용해 전투를 치를 테지만, 개인 무력은 언제든 중요했다.
노르헤임 행성으로 건너갔다.
하크라를 거쳐 티오르로 가자, 미리 연락을 받은 드워프들이 정문까지 마중을 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맥주에 목욕을 한 다음에야 장인 바자크와 만났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바자크가 하도 자랑을 한 탓에 드워프들도 새로운 총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났던 것이다.
바자크가 수한과 뒤따르는 드워프들을 보더니 혀를 찼다.
[혹들이 많이 왔구먼? 내 작업실에는 다 못 들어오겠는데?]
드워프 중 하나가 눈치를 살피다 입을 열었다.
[차라리 광장에서 개봉식을 하시지요? 우리 가문만 아니라 티오르 시의 드워프들 전체가 예의주시하고 있는데요.]
[뭐? 개봉식? 흥! 일 없다. 나이 많은 순으로 다섯만 들어와. 그 다음에는 총 주인한테 부탁을 하든지 말든지.]
그러고는 작업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드워프들이 역시 괴팍한 영감이라고 궁시렁거렸다. 그러면서도 나이 많은 순으로 다섯을 뽑았다. 그 과정에서 내가 먼저 태어났니 기껏해야 사흘 차이인데 무슨 소리니 하며 다툼이 벌어졌다.
수한은 그들을 무시하고 작업실에 들어갔다.
바자크가 짧은 총을 한 자루 만지작거렸다.
아니, 총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예술품 같았다.
생기기는 지구의 기관단총과 비슷하게 생겼다. 수한이 지금까지 쓴 아바돈에 비하면 길이가 고작해야 2/3 정도에 불과했다.
표면에 동양의 용과 비슷한 괴수를 양각해 놓았다. 총구에는 투명한 수정이 박혀 있고, 손잡이와 개머리판에는 작은 보석들이 자리를 잡았다.
총은 용광로에서 나오는 빛을 반사하며 아름답게 반짝였다. 수한은 그 빛에 당장 매혹당하고 말았다.
바자크가 씩 웃으며 총을 들어 보였다.
[어떤가?]
[아름답습니다.]
수한은 총을 받아들었다.
깃털처럼 가벼웠다. 손에 들었는지 어떤지도 느끼기 힘들 정도였다.
바자크가 손짓을 했다.
[총에 자네 힘을 주입해 보게.]
힘을 주입하자, 총 전체가 진동을 일으켰다.
그러더니 몇 가지 그림이 수한의 뇌로 직접 입력되었다.
정확히 다섯 가지.
총, 칼의 손잡이, 팔 부착형 총과 칼 솔잡이, 그리고 용 모양의 기이한 조형물.
바자크가 차분히 설명을 했다.
[자네는 참 특이하더군. 용이라고 했지? 그 녀석을 갑옷처럼 입고 하늘을 날기도 하고, 기계 괴수와 결합시켜 기계용을 만들어서 싸우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문제는, 내가 제 아무리 좋은 총을 만들어서 줘도 쓸 일이 얼마 없다는 거지.]
[확실히 그런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만들었다네. 자네가 어떤 상황에서든 써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대신 위력이 좀 줄긴 했지만, 어차피 이 총의 진가는 기계용과 함께 할 때 나타나니까.]
총 형태는 사거리와 정확도에 초점을 맞췄다. 이론상으로는 수천 킬로미터 이상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칼 손잡이로 변환시키면 총구 부분에서 두터운 광선 칼날이 솟구쳤다.
원거리와 근거리 모두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이다.
조형물은 광선포나 주포에 부착할 수 있었다. 그러면 위력을 증폭시키는 한편, 광선 공격이 혼돈 속성으로 바뀐다.
수한은 혀를 내둘렀다.
아바돈의 경우 그냥 쏘기만 해도 대형 기계 괴수의 방어막을 뚫었다.
이건 기계 괴수의 주포에 부착해서 쏘는 것도 가능했다. 그렇다면 거대 기계 괴수는 물론이고, 왕급 기계 괴수의 방어막을 뚫는 게 가능할지도 몰랐다.
새미가 가진 진리의 보석이나, 마엘른이 구한 세계검보다 더 유용하게 쓸 수 있겠다.
수한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랬으면 좋겠네. 나도 소식은 듣고 있는데, 조만간 왕급 기계 괴수를 잡을 거라면서? 그때 내가 만든 물건이 도움이 되길 빌겠네.]
[그런데 이 녀석 이름이 뭡니까? 아직 못 들은 것 같은데요.]
레벨 업 도우미 정보창에도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무명(신화)라고만 나왔다.
바자크가 어깨를 으쓱였다.
[자네가 정하게.]
[제가요?]
[그래. 이 녀석도 주인이 직접 이름을 지어주길 바랄 걸세.]
용을 닮은 외형, 5가지 형태로 변화하는 특징이 수한의 머릿속을 감돌았다.
한동안 고민을 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총의 이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