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209화 (210/254)

< 목표 >

[용총으로 하겠습니다.]

[농담이겠지?]

바자크는 씩 웃었다. 그러다 수한의 눈을 보고는 그게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인생 역작에 그 따위 이름을 붙이다니 말도 안 돼! 용납할 수 없어! 후세에 나를 용총 제작자라고 불리게 할 생각은 아니겠지? 다시 생각해 봐! 괜찮은 이름을 붙이지 않으면 이 녀석을 넘기지 않겠어!]

수한은 다시 머리를 싸맸다.

몇 번이나 퇴짜를 맞았다. 작명을 거의 10번은 한 끝에 바자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혼돈의 용, 드라고나.

앞으로 수한과 동고동락할 새로운 총의 이름이었다.

총을 받은 뒤에는 지구로 돌아왔다.

휴대하기 편하게 팔목 부착형으로 변화시킨 뒤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짧은 쇠막대가 달린 두툼한 팔 보호대를 차고 있는 듯했다.

전당에서 나오자마자 기자들이 달려들었다.

“사장님! SSS급 무기를 구하셨다면서요? 루비 아이를 처치하기 위해 구하신 겁니까?”

“가브낙 행성 원정은 언제 시작하십니까?”

“승산은 있습니까?”

수한이 노르헤임 행성에서 체류한 것은 고작 하루.

그 사이에 분위기가 많이 과열된 듯했다.

수한은 말없이 자동차를 몰아 사옥으로 향했다.

새미가 수한을 맞이했다.

“오빠, 갔던 일은 잘 됐어?”

“응. 물건 좋더라. 기계용이나 용기사에도 사용할 수 있겠던데?”

“진짜?”

생각도 못했던 소리에 새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원정이 기대 된다. 내 궁극 속성 부여랑 용이가 합쳐지면 정말 멋진 결과가 나올 거야.”

“정말 가브낙 행성 갈 거야?”

“고민 중이야. SSS급 둘만 더 확보되면 해볼 만 할 것 같은데.”

“SS급은?”

“지금 우리 공격대에만 4명이 있잖아? 저번처럼 타이탄이랑 알바트로스에 도와달라고 하면 2명을 더 확보할 수 있어. 그리고 2명 정도는 더 확보할 구석이 있으니까, 최소한 8명은 확보하는 셈이지.”

“2명? 어디서?”

“쥬페르 행성 말이야. 미루스와 르익에게 적당한 조건을 걸고 참전 요청을 하면 거부하지 않을 걸?”

“맞아! 둘이 그랬잖아. 도울 일 있으면 돕겠다고.”

형제신도 SS급에 해당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더구나 칠채 옥좌를 가져오면 일반적인 SS급 이능력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는 부족했다.

수한은 고민 끝에 혼잣말을 흘렸다.

“세라프 종족과 연수해야 하나……”

의원급 세라프 1명에 일반, 혹은 단장급 세라프 예닐곱 명만 더해져도 원정을 성공할 가능성이 확 올라간다.

제일 좋은 것은 미르 공격대의 전력 자체를 강화시키는 거지만, 세라프 종족과의 연수도 나쁠 것은 없었다.

대신 루비 아이의 동력핵을 헌납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추출하면 어떤 등급 힘의 결정이 나올 줄 모르는데, 세라프 종족에게 내주기는 좀 아까웠다.

새미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굳이 서둘 필요 있어? 외부에 휘둘리지 말고 차근차근 강해지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는 잘 하고 있잖아?”

“그래, 자기 말이 맞아.”

제국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되어서일까.

수한 자신도 모르게 조바심을 가졌나 보다.

시규를 불렀다. 다음 원정으로는 어느 곳이 좋겠냐고 자문을 구했다.

“우리 공격대의 첫 목표는 루비 아이를 잡는 거라고 하셨지요?”

“예. 가능하면 우리 공격대의 힘만으로, 그게 불가능하다면 여러 공격대 및 외계 종족들과 연수하여 잡는 게 목표입니다. 동력핵이 가치가 가장 크니, 되도록 우리 공격대에서 동력핵을 가져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몇 번 더 원정을 다녀오면서 공격대의 전력을 향상시킨 후 도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공격대가 갈 만한 행성도 많으니까요.”

“하긴 그렇지요.”

수한은 질라 행성 원정 전 조사했던 내용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라프 종족과 기계 괴수들이 치열하게 맞서 싸우는 행성, 그러면서도 거대 기계 괴수가 있어야 했다. 기왕이면 원주민들이 적당히 살아 있는 곳이 좋겠고.

그 조건에 들어맞는 행성만 예닐곱이 넘는다.

주리아, 프토, 갸라쟈드, 하메오, 두크, 센네느, 참.

수한은 눈을 감고 신중하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처럼, 루비 아이 사냥은 아직 시기상조였다.

시간이 필요했다.

라오그뉴는 치료소를 운영한 뒤 빠르게 힘을 모으고 있었다. 가끔 운명의 눈으로 보면, 라오그뉴 안의 힘이 들불처럼 강렬해지는 게 보였다.

아르텔라도 그러했다. 승급의 여지가 있었다. SS급 힘의 결정을 한 두 개 더 흡수하고, 용이 옆에서 계속 지내다보면 언젠가는 SSS급에 도달할 것이다.

마엘른도 마찬가지. 숲의 검을 수련하다 보면 SSS급이 될 가능성을 손에 넣는다. 문제는 세계수 옆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으니, 지금 당장은 힘들 테고……

새미는 모르겠다. 세라프 종족이 이능 각성 보조 장치를 사용하면 가능성이 올라가긴 할 텐데, 확신은 할 수가 없었다.

수한은 눈을 떴다.

“좋습니다. 다음 원정은 가브낙 행성이 아니라, 미리 목록을 뽑아뒀던 행성 중 한 곳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시규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사장님. 굳이 서두르실 필요 없습니다.”

“포기한 건 아닙니다. 공격대의 전력이 갖춰진다면, 언제든 가브낙 행성으로 떠나겠습니다. 기준은 SSS급 3명, SS급 10명이 갖춰질 때입니다.”

“하아,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이미 첫 번째 목표는 이뤘다.

수한이 처음 케르베스 행성 원정을 성공하고 뭐라고 했더라?

SS급 5명, S급 20명으로 이뤄진 공격대를 만들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도 다들 믿지 않았지만 수한은 결국 자신의 말을 현실로 만들었다. 시규는 이번에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지원부가 바쁘게 돌아갔다.

기존의 목록 중 어느 행성이 제일 짧은 시간에 평정 가능하고, 또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분석했다.

두크 행성이 유력한 대상으로 꼽혔다.

거대 기계 괴수들이 질라 행성처럼 한쪽에 몰려 있었다. 그들만 처리하고 나면 나머지는 세라프 종족이 알아서 할 터였다. 짧으면 2주, 길면 1달 안에 대박을 터뜨리는 게 가능했다.

수한은 두크 행성을 최종적으로 낙점했다.

미르 공격대가 가브낙 행성이 아닌 두크 행성 원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금방 퍼져나갔다.

당장 각계각층에서 성토하는 말이 쏟아졌다.

[가브낙 행성은 놔두고 두크 행성 원정이 웬 말이냐!]

[대한의 아들들을 부모의 품으로 돌려 달라!]

[미르 공격대는 당장 가브낙 행성 원정을 시행하라!]

누가 보면 미르 공격대가 대한민국 정부인 줄 알겠다.

수한은 그러려니 했다.

타이탄 공격대가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대일 때도 이런 상황은 가끔 발생했다. 걸핏하면 빨리 대형 기계 괴수를 잡고 그랜드 공격대와 천룡 공격대를 따라잡으라고 성화였다.

그만큼 미르 공격대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굳이 외부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원정 준비를 뚜벅뚜벅 해나갔다.

공격대에 상여금과 선물을 뿌렸다. 한편 이능력자 모집을 계속 했는데, S급 이능력자들이 문을 두드려 정말로 20명을 채우고 말았다.

두크 행성 원정을 떠났다.

1달도 되지 않아 기계 괴수 30마리를 잡았다. 거대 기계 괴수와 대형 기계 괴수가 제법 섞인, 이번에도 대박 원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한은 자신의 전력을 확인했다.

어마어마했다.

용기사에 탑승한 상태라면, 거대 기계 괴수도 혼자서 상대할 수가 있었다. 용갑을 입은 때라고 해도 시간을 끄는 정도는 얼마든지 해내고.

수한은 자신감을 얻었다.

두크 행성 다음에는 하메오 행성, 다시 참 행성……

시간이 잘도 갔다.

질라 행성 원정으로 옛 이야기를 듣고 나서, 벌써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

오늘도 치료소에 출근한 라오그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가슴이 뿌듯했다.

강렬한 충족감이 전신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신격이 올라간 것이다.

이제 라오그뉴는 일개 지역 수호신이 아니다.

당당한 상급신이자 자연신이었다.

구체적인 것은 쥬페르 행성의 신계에 다녀와 봐야 알겠지만, 앞으로의 라오그뉴는 오늘까지의 라오그뉴와는 또 다를 것이다.

그날 저녁, 수한은 라오그뉴의 변화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라오그뉴님, 뭔가 달라 보입니다만…… 혹시?”

라오그뉴가 씩 웃었다.

[맞아. 승격했어.]

“역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정말요? 축하드려요!”

[그런데 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쥬페르 행성에 다녀와야 해. 1달 정도는 걸릴 것 같은데 괜찮겠어?]

“괜찮습니다. 얼마든지 기다리겠습니다.”

수한은 흔쾌히 말했다.

1달 정도야 충분히 기다릴 수 있지 않겠나. 기존 능력이 강해지는 것은 물론, 새로운 권능까지 더해진다고 하는데.

아울러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기왕 쥬페르 행성에 가시는 김에, 미루스님과 르익님을 만나보시지 않겠습니까?]

[그 아저씨들은 왜?]

[루비 아이를 잡을 때 도움을 받으려고 합니다. 두 분이 각각 힘의 결정과 이능 장비를 좋아하니, 그것들을 선물로 드릴 생각이고요.]

[그래? 알았어. 물어볼게. 승산만 있으면 아저씨들도 거부하지는 않을 거야.]

더구나 낭보가 또 전해졌다.

그간 사냥했던 거대 기계 괴수들의 동력핵에서는 SS급 힘의 결정만 나왔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다녀왔던 참 행성에서 잡은 거대 기계 괴수들에게서 SSS급 힘의 결정을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딱 2개.

구현 계열과 소환 계열이었다.

수한은 아르텔라와 새미에게 힘의 결정을 흡수할 것을 권했다. 이미 둘 다 SS급 힘의 결정을 몇 개씩 더 흡수했고, 세라프 종족도 이능 각성 보조 장치를 완성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둘은 고민 끝에 수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헤븐 행성까지 건너 가 각성 보조 장치를 사용하며 힘의 결정을 흡수했다.

성공하고, 실패했다.

아르텔라는 성공. 새미는 실패.

새미가 거의 죽을 뻔 했다. 수한은 경매장에서 구매한 세계수의 열매를 먹여 겨우 살려냈다.

“자기야, 괜찮아?”

“응. 괜찮아.”

하지만 얼굴이 무척 창백했다.

아무리 세계수의 열매를 먹었어도, 몸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가지는 않은 것 같았다.

수한은 새미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이능 각성 보조 장치도 있으니까 충분히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빠 탓이 아냐. 내가 중간에 정신을 잃어서 이렇게 됐는 걸. 거의 다 된 것 같았는데……”

새미가 못내 아쉬워했다. 조금만 견디면 성공할 거라는 느낌이 왔는데, 간발의 차이로 놓쳤다는 것이다.

어쩌면 다음에는 성공할지도 모르겠다.

지구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라오그뉴가 쥬페르 행성에서의 볼 일을 마치고 귀환했다.

외모가 조금 달라졌다.

본체의 크기가 커지고, 갈기가 더욱 풍성하게 자랐다. 이제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영롱한 무지갯빛 광채가 라오그뉴의 주변에 어려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강렬한 기세가 뭉클거리며 솟구치고 있었다.

수한은 라오그뉴를 환영하며 질문을 던졌다.

“정말 승격에 성공하셨네요. 많이 달라지신 것 같습니다.”

[그래 보여?]

“더 예뻐지신 것 같아요!”

[정말? 고마워!]

예뻐졌다는 말에 라오그뉴가 헤헤거리며 웃었다.

조촐하게 축하 파티를 하며 라오그뉴의 이야기를 들었다.

라오그뉴는 으스대며 말했다.

[난 이제 무지개의 신이야.]

“무지개요? 벼락이나 폭풍, 지진 같은 게 아니고요?”

[그런 것들은 주인이 있어. 뭐, 내가 싸워서 이길 수는 있을 것 같았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라오그뉴의 얘기는 간단했다.

자신도 처음에는 그런 격렬한 자연물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찾다보니 무지개가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무지개는 여러 가지를 상징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희망이다.

최근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라오그뉴는 희망과 감사가 어린 감정을 전달받았다. 이제는 그 감정에서 비롯된 힘이 지금 라오그뉴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래서 무지개를 고른 것이다.

수한은 입맛을 다셨다.

조금 아쉬웠다.

벼락의 신이 되어 돌아왔다면 좋았을 텐데. 그럼 수한과 새미의 능력과 어우러져 상승효과를 일으키지 않겠나.

들어보니 라오그뉴의 새로운 권능은 나쁘지 않았다.

단체 회복.

상처 전이.

목숨만 붙어 있으면 수백 수천 명도 회복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치명적이다 싶으면 라오그뉴 본인에게 상처를 전이해도 좋고, 그걸 적에게도 전이하는 것도 가능했다.

게다가 미르 공격대에 6개월 동안 SS급 이능력자가 세 명이 늘어났다. 초기에 합류했던 김주철과 우셩, 가토 히데오였다.

자기 공격대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미르 공격대에 꼭 붙어 있었다. 하긴 그게 그들에게도 이익이었다. 그렇게 셋까지 해서 지금 미르 공격대의 SS급 이능력자는 총 5명이었다. 한민종 사장과 갈태수 사장의 손을 빌리고 쥬페르 행성의 형제신까지 더하면 9명이다.

또 있다.

가브낙 행성에서 인연을 맺었던 다섯 변이체들.

그들을 끌어들인다면?

끌어들이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SS급으로 진화시키기라도 한다면?

더 이상의 도움 없이, 미르 공격대만으로도 루비 아이 사냥이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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