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비 아이 사냥 -1- >
루비 아이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대형 기계 괴수 정도.
미르 공격대가 최근 들어 곧잘 사냥했던 거대 기계 괴수와 비교하면 확연히 작았다.
그러나 그 무력은 차원이 다르다.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눈 모양 구조물이 쏘는 파괴 광선.
이건 세라프들도 못 막았다. 의원급도 정면으로 막았다간 즉사할 정도라고 알려져 있었다.
수한은 기계용을 죽음의 대지 외곽에 착륙시켰다.
이전처럼 공중에서 먼저 선공을 날리는 것은 어려웠다. 루비 아이의 탐지 장치는 다른 기계 괴수들보다 훨씬 더 탐지 거리가 길었기 때문이다.
수한은 원정대를 내려준 후 기계용을 용기사로 변형시켰다.
[제가 먼저 시선을 끌겠습니다.]
사전에 약속한 대로, 용기사가 선두에 서서 전진했다.
원정대가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졌다.
수한은 무한 의식으로 원정대의 정신을 하나로 묶었다. 그리고 무한의 눈으로 루비 아이를 주시했다.
죽음의 대지에 발을 딛고 얼마나 지났을까.
가까이 가지도 못했는데 루비 아이의 눈에 붉은 빛이 떠올랐다. 다리 수십 개가 일제히 펴지며, 왕관형의 몸체가 쭉 일어났다.
“제길.”
수한은 짧게 욕설을 뱉었다.
생각보다 빨랐다.
루비 아이의 눈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충전이 끝나는 순간 종말의 빛이 원정대를 향해 날아올 터였다.
수한은 극초음속과 고리 은하를 발동했다.
SS급 신속, 의지 계열 초능.
원정대 전체의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동시에 은은한 별빛이 그들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극초음속이 고리 은하의 영향을 받아 전진 속도가 더 올라갔다.
그 중에서도 용기사가 가장 빠르게 움직였다. 아예 날개까지 펼치고 추진 장치를 기동했다. 지면 위에 살짝 뜬 채 미끄러지듯 루비 아이를 향해 돌진했다.
루비 아이가 용기사를 완전히 포착했다.
충전이 완료되었다.
붉은 광선이 뿜어졌다.
수한은 운명의 눈으로 붉은 광선의 궤적을 선명하게 목격했다. 그 광선이 그리는 흔적이 정확히 용기사의 조종석을 지나고 있었다.
당장 몸을 솟구쳤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운명의 눈으로 보는 미래 속에서, 용기사의 조종석이 여전히 적색 광선에 휩싸이고 있었다. 루비 아이가 붉은 광선의 방향을 계속해서 조정하는 것이다.
결국 뇌룡 질주를 사용했다. 몸 전체가 번개로 변한 다음에야 광선 공격을 피하는데 성공했다.
첫 번째 공격은 회피 성공.
하지만 루비 아이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빠르게 광선을 충전한 후, 몇 초 지나지도 않아 두 번째 공격을 날렸다.
이번에도 용기사가 목표.
또다시 뇌룡 질주를 발현하여 피했다. 좌측 하늘로 몸을 날렸는데, 파괴 광선이 아슬아슬하게 용기사가 있던 공간을 소멸시키며 지나갔다.
그리고 세 번째 공격.
수한은 침을 꿀꺽 삼켰다.
거리가 가까워져 제대로 피하기가 힘들었다. 어느 방향으로 피하든 결국에는 용기사의 심장이 관통 당하게 생겼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용기사가 굉음을 터뜨렸다. 급격히 정지하며 땅바닥에 쳐박혔다. 죽음의 광선이 아슬아슬하게 용기사의 날개 끝을 스쳤다.
수한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착지한 이상, 루비 아이의 공격을 더 피하기는 불가능하다.
루비 아이가 용기사를 정조준했다.
눈에 적색 광채가 찰랑찰랑 차올랐다. 그 빛이 완전히 눈을 뒤덮는 순간, 강렬한 빛이 세상을 무너뜨릴 듯 뛰쳐나왔다.
[크앙!]
라오그뉴가 개입했다.
용기사의 아래쪽에서 달려오다가 용기사를 앞발로 세게 걷어찬 것이다.
그 탄력을 이용하여 용기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덕분에 적색 광선은 이번에도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허공만 갈랐다.
[감사합니다!]
[천만에!]
라오그뉴는 크기를 줄여 용기사가 파놓은 구덩이에 몸을 숨겼다. 광선 공격이 지나간 뒤에야 다시 몸을 날려 루비 아이를 향해 돌진했다.
상당히 거리가 가까워진 시점.
용기사가 입을 쩍 벌렸다.
용머리 형태의 조형물이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그 뒤에서 주포가 회전하며 한껏 벌어졌다.
공격을 피하면서 주포의 충전을 마친 상태.
주포의 힘이 팽창할 듯 커졌다. 초능과 초능이 발현되고 서로 꼬였다. 번갯불이 피어오르더니, 조형물이 그 힘들을 몽땅 혼돈 속성으로 변환시켰다.
혼돈의 번개가 날아갔다.
충전 시간이 필요하지만, 지금 수한이 할 수 있는 최강의 공격.
루비 아이가 멈칫했다.
방어막만으로는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쿠웅!
왕관형의 몸체를 땅에 깊이 박았다.
그러더니 다리를 몽땅 거꾸로 들어올렸다. 다리 끝에서 붉은 빛이 번뜩이더니, 기존 방어막 위에 홍옥 같은 반투명한 막을 둘러쳤다. 하나둘도 아니고 수십 겹이 동시에 생성되었다.
혼돈의 번개가 그 위를 두드렸다.
위력이 막강했다.
용처럼 꿈틀거리는 번개가 한 번 때릴 때마다, 거대 기계 괴수의 것과 비슷한 정도의 방어막이 퍽퍽 깨져나갔다. 순식간에 수십 겹이 무너지고 루비 아이 본연의 방어막만 남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힘을 소모한 뇌룡 숨결로는 마지막 방어막을 뚫을 수가 없었다. 힘없이 사그라지며 노크하듯 몇 번 두드리고 말았다.
그 순간, 수한은 눈을 빛냈다.
궁극 속성 부여를 사용했다.
피처럼 섬뜩한 적색 빛이 용기사를 통해 주포의 조형물에 스며들었다. 조형물에 어려 있던 회색 광채가 이내 선홍색으로 변했다.
그대로 쏘았다.
루비 아이의 광선과 비슷한 색의 빛줄기가 쭉 뻗어나갔다.
방어막을 관통했다.
조합한 천공 속성에 조형물에서 비롯된 혼돈 속성이 더해져서 가능한 일.
핏빛 광선이 루비 아이의 금속 장갑을 때렸다.
그 순간, 9가지 속성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화염, 빙결, 폭풍, 뇌전, 광명, 암흑, 극독, 산성, 중압.
9가지 속성이 서로에게 격렬히 반응했다. 비슷한 속성과 어우러지고, 반대되는 속성과 대립했다. 그러면서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루비 아이의 방어막이 흔들렸다.
게다가 수한은 단 한 번의 공격으로 끝내지 않았다. 순식간에 십여 발을 꽂아 넣었다. 그때마다 방어막이 출렁이며 안쪽에서 9가지 속성이 휘몰아쳤다.
궁극 속성 중 지옥.
어지간한 기계 괴수라면 이것만으로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루비 아이는 달랐다.
공격을 무시하고, 충전된 눈동자를 용기사에게 향했다.
적색 광선이 하늘을 꿰뚫었다.
미리 대비하고 있던 참이라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쪽으로 몸을 날리며 등에 차고 있던 광선검을 꺼내들었다.
주포를 원래 상태로 되돌리고 입을 닫았다. 대신 어깨에 설치된 소형 광선포를 잽 날리듯 발사했다. 천공 속성만 중첩시켜 방어막을 뚫으며, 확실히 시선을 끌었다.
하늘을 나는 용기사를 따라, 루비 아이가 시선을 돌렸다.
라오그뉴가 날 듯이 루비 아이의 뒤로 뛰어들었다. 이대로 배후에서 공격할 심산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할 루비 아이가 아니었다.
용기사를 공격하는 척 하다가, 홱 하고 몸을 돌렸다.
완전히 충전된 눈동자가 라오그뉴를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흥!]
위험한 순간이지만, 라오그뉴가 코웃음을 쳤다.
몸을 날렸다.
라오그뉴 스스로도 SSS급인데다 고리 은하와 극초음속의 영향까지 받고 있었다. 거의 수한의 뇌룡 질주와 비슷한 속도를 냈다.
적색 광선이 라오그뉴의 꼬리에서 한참 떨어진 곳을 훑고 지나갔다.
라오그뉴가 번개치듯 달려들었다.
[죽어!]
루비 아이의 등에 대고 묵직한 일격을 날렸다.
무지갯빛 섬광이 폭발하며 방어막을 일거에 관통했다. 거대한 힘이 루비 아이를 후려치자, 그 육중한 몸이 일순 균형을 잃고 흔들렸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라오그뉴의 공격을 발판 삼아, 앞쪽으로 몸을 던진 거였다.
동시에 다리를 세웠다. 수십 개의 다리가 라오그뉴를 향해 독사처럼 덤벼들었다.
라오그뉴가 크기를 줄였다. 작은 고양이 형태로 변한 뒤, 다리를 사뿐사뿐 밟았다. 작은 몸이 다리 사이로 파고들며 순식간에 루비 아이의 지척까지 접근했다.
수한이 경고 섞인 고함을 질렀다.
[피해요!]
루비 아이의 전신이 붉게 번쩍이고 있었다.
다음 순간, 빛의 돌풍이 세상을 강타했다.
달려들던 라오그뉴가 거기 휩싸였다. 소용돌이에 휩싸인 낙엽처럼,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용기사는 지면에 몸을 박고 겨우 버텼다.
상당한 충격이었다. 산사태에 휩싸인 것처럼 용기사의 전신이 삐그덕댔다.
용기사가 광선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충격이 지나간 즉시 땅을 박찼다.
거리가 단축되었다. 순식간에 용기사가 루비 아이의 지척까지 접근했다. 루비 아이가 충전된 눈동자를 겨냥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용기사가 먼저 공격을 가했다.
광선검이 눈동자에 박혔다.
파괴 광선이 쏘아지는 바로 그 부위.
하지만 루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광선검에 꿰뚫린 채, 용기사를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붉은 빛이 세상을 뒤덮었다.
쉬익, 피피핑!
그때, 원통형 물체가 용기사의 뒷목에서 솟구쳤다.
용기사의 조종석.
때를 같이 하여 거대한 빛줄기가 용기사의 목을 관통했다. 단번에 목이 잘리며 용기사의 머리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라오그뉴님!]
[알고 있어!]
광선이 그치자마자 라오그뉴가 달려들었다.
전력으로 돌진하여 몸을 던졌다. 반쯤 뭉그러져 막대처럼 보이는 광선검을 들이받자, 광선검이 더욱 안으로 틀어박혔다.
“그으으으으!”
루비 아이가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적색 연기 같은 것이 눈동자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광선 생성기가 파괴당한 것이다.
수한은 비상 탈출 장치에서 밖으로 나왔다. 동시에 용이가 용갑 형태로 수한을 감쌌다. 용기사의 머리 부분에 설치되었던 SSS급 무기, 드라고나도 수한의 오른쪽 팔에 자리를 잡았다.
아바돈은 꼬리에, 공허 포식자와 별빛 폭격은 왼쪽 손목에 부착했다. 그 후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비록 용기사는 잃었지만 루비 아이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봉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좋았어!]
[이제 우리 차례지?]
SS급 이능력자들이 달려들었다.
미루스와 르익이 선두에 섰다. 그 뒤를 다섯 변이체들이 바짝 따라갔다. 새 변이체가 수한을 언뜻 스쳐 지나가는데, 그 위에 마엘른과 민종, 태수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루비 아이가 몸을 땅에 박았다. 그리고 다리를 아까처럼 높이 곧추세웠다.
다리 끝에서 붉은 빛이 쏟아졌다. 마치 채찍처럼 길어져 허공을 휘저어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 왕관형 몸에서 광선포가 수십 개가 드러나더니 사방을 향해 무차별 난사를 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가 대형 기계 괴수의 주무기에 해당하는 위력을 가진 공격들.
모두들 바짝 긴장했다. 몸을 이리 틀고 저리 틀며 공격을 피하기 바빴다.
반면 미루스와 르익은 자기 몸으로 그 공격을 받아냈다.
[커헉!]
[컥!]
당장 뱃가죽이 찢기며 내장이 훤히 드러났다. 그나마 사지 중 어디 하나가 잘려나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둘은 몸을 일반적인 늑대 크기까지 줄였다. 용기사가 아까 전진하면서 만든 구덩이에 몸을 숨겼다.
르익이 짊어지고 있던 칠채 옥좌를 내려놓더니, 그걸 펼치고 둘이 한꺼번에 안에 들어갔다. 칠채 옥좌가 영롱한 빛을 뿜자 둘의 상처가 순식간에 회복되었다.
둘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본때를 보여주자!]
[죽여 버리자고!]
두 신이 회복하는 사이, 새 변이체가 순조롭게 루비 아이의 머리 위까지 접근했다.
시선이 분산된 틈을 제대로 노린 것이다.
새의 가슴 부위에서 푸른 광구가 너울너울 떨어졌다.
파멸 광구.
루비 아이가 급히 방어막을 보강했다. 다리 중 일부를 위로 올려 추가 방어막을 몇 겹 쳤다. 그에 따라 파멸 광구를 막아낼 수 있었지만, 애초에 새가 노린 건 따로 있었다.
셋이 낙하했다.
마엘른, 한민종, 갈태수.
원정대에서 근접전을 담당하는 SS급 이능력자들.
루비 아이의 배후에 착지하면서, 민종이 거신 강림을 발동했다. 황금빛이 휘몰아치며 거의 소형 기계 괴수와 비슷한 크기의 거인이 세상에 출현했다.
거인은 루비 아이를 단단히 붙들었다. 루비 아이의 다리가 찌르건 후려치건 신경 쓰지 않았다. 결박이 자신의 지상 과제라는 듯 붙잡고만 있었다.
마엘른과 태수는 모두 신속 계열 이능력자.
SS급 신속 계열 이능이 극도로 발현되었다. 수한의 보조까지 받으니 거의 SSS급 이능력자에 준하는 속도로 루비 아이를 공략했다.
다리를 부쉈다.
마엘른의 세계검이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가볍게 긋고 지나가는 것 같은데, 검에 담긴 힘이 다리를 완전히 박살내 버렸다. 순식간에 대여섯 개를 동강내 버렸다.
태수도 만만치 않았다. SSS급 무기는 없지만, 자신이 가진 장비를 절묘하게 잘 사용했다. 힘의 장갑으로 광선포의 공격 방향을 왜곡시켜 광선포끼리 공격하게 만든 것이다.
셋이 안쪽에서 루비 아이를 휘젓는 사이, 변이체들과 형제신이 들이닥쳤다.
곰이 가장 앞에서 공격을 받아냈다. 그 대가로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살쾡이와 원숭이 변이체는 물론 미루스와 르익까지 루비 아이의 코앞에 도달했다.
본격적인 공격이 쏟아졌다.
살쾡이가 광선 발톱으로 루비 아이의 몸통을 마구 긁었다. 원숭이가 철퇴를 땅땅 내리쳤다. 그와 함께 형제신이 몸을 날려 자신이 입었던 피해를 전이시켰다.
뒤에서도 지원 공격이 시작되었다. 새미가 번개를 이용하여 루비 아이를 후려쳤다. 아르텔라가 소환수를 부르고, 갖가지 저주를 루비 아이에게 걸었다. 뱀 변이체도 입을 벌리고 주포를 쏘아대고 있었다.
S급 이능력자들도 참전했다. 벌떼처럼 달려들어 루비 아이를 난도질했다. 삽시간에 다리가 몽땅 부러지고, 광선포가 박살나 대항할 수단이 없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순조로웠다.
하지만 수한은 오히려 더 긴장했다.
루비 아이가 이렇게 쉽게 당해줄 거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신이 선홍빛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라오그뉴를 날려 보내기도 했던 폭풍 공격이었다. 더구나 색의 짙은 정도가 아까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불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