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213화 (214/254)

< 루비 아이 사냥 -2- >

수한이 급히 소리쳤다.

[후퇴! 후퇴하세요!]

루비 아이를 공격하던 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빛이 휘몰아쳤다.

휩쓸린 것은 모조리 가루가 되었다. 피하는 게 조금만 늦었어도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수한은 긴장하여 루비 아이를 노려보았다.

빛 무리가 연속해서 몰아닥치고 있었다. 덕분에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드라고나를 발사해보았지만 루비 아이가 뿜어내는 힘을 뚫지는 못했다.

수한은 눈을 가늘게 떴다.

빛의 폭풍 속에서 루비 아이가 천천히 변형되고 있었다.

거대한 눈동자가 왕관형 몸체 중앙으로 내려왔다. 왕관이 꽃잎처럼 벌어지며 눈동자를 받아들였다.

눈동자 외곽이 쪼개졌다. 중심부만 남고 몸을 뒤덮었다. 벌어졌던 몸이 오므려지면서, 삐죽삐죽 팔과 다리가 생겼다.

빛의 폭풍이 걷혔다.

루비 아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인간형.

금속과 수정이 어우러졌다. 정밀하게 세공한 조각 작품을 보는 것 같았다.

수한은 바짝 긴장했다.

세라프 종족에게도 듣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루비 아이가 이렇게 변형하는 것도 가능했나?

기이이이잉.

묘한 소리가 울렸다.

루비 아이가 집게처럼 생긴 두 손을 들어올렸다. 집게 가운데에 박힌 적색 보석이 불길한 빛을 뿜었다.

원정대가 술렁이는 게 느껴졌다.

[뭐야, 저거?]

[어떻게 해야 되지?]

수한은 루비 아이의 전신을 샅샅이 훑었다.

무기는 딱 두 가지.

손에 박힌 보석뿐이었다. 그곳에서 광선을 쏘아 공격하는 것 같았다.

파멸의 광선을 쏘던 보석은 부서졌지만, 새로운 무기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할까.

그것을 깨닫자 더 긴장이 되었다.

보석이 어느 정도 위력을 가지고 있을지 가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뭣들 하는 거야? 지금 몰아붙여야지!]

라오그뉴가 뛰어들었다.

루비 아이가 왼손을 내밀었다.

집게를 크게 벌리자 라오그뉴가 콧방귀를 뀌었다. 공중을 박차고 뛰어오르려는데, 적색 빛이 번뜩였다.

광선 줄기가 수십 다발이 튀어나왔다. 서로 얽히고설키며 커다란 그물을 만들었다. 빛의 그물이 라오그뉴를 완벽하게 뒤덮었다.

[헉! 뭐야?]

라오그뉴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

수한은 그제야 보석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그냥 단발성으로 광선을 쏘는 게 아니었다. 빛을 뿌려 여러 형태로 만들 수가 있었다. 비단 그물만이 아니라, 검이나 창, 심지어 투창이나 투척 도끼도 가능했다.

[도망쳐요, 얼른!]

라오그뉴를 닦달하지만 이미 늦었다.

루비 아이가 오른손을 높이 들었다. 오른손에 달린 보석에서 붉은 빛줄기가 긴 창처럼 쭈욱 뻗어나왔다.

그걸 그대로 라오그뉴에게 푹 찔렀다.

라오그뉴의 심장이 단번에 관통 당했다. 일순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가 추욱 늘어졌다.

더구나 루비 아이가 그물을 이용해 라오그뉴를 수천 조각을 내놓았다. 저 정도면 부활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터였다.

용기사는 부서졌고, 라오그뉴는 당분간 전투 불가.

수한의 눈에 암담함이 깃들었다.

루비 아이가 라오그뉴의 잔해를 땅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하늘에 떠 있던 수한에게 두 손을 겨눴다.

폭죽처럼 광선탄이 쏟아졌다. 게다가 수한의 근처에서 폭발하며 그물처럼 변했다. 라오그뉴에게 그러했듯, 수한도 덮치려고 아가리를 벌렸다.

뇌룡 질주로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

루비 아이의 등에 폭격하듯 공격을 퍼부었다.

천멸 속성 중첩에 중화 속성 조합.

핏빛의 광선이 방어막을 가볍게 돌파했다. 루비 아이의 등을 무차별적으로 두드렸다. 그러자 광선이 직격한 부위에서 은은한 묵광이 번뜩이더니 일정 반경 전체가 완전히 소멸해 버렸다.

루비 아이의 등에, 마치 삽으로 떠낸 듯한 빈 공간이 수십 개가 생겼다.

힘을 많이 소모하긴 했지만 결과는 훌륭했다.

쐐기를 박으려고 드라고나를 조준하는데, 괴상한 장면이 보였다.

구멍이 뚫린 부위에 붉은 빛이 솟구치더니, 저절로 구멍난 부위가 메워졌다. 흡사 급속 재생 이능이 작용하는 것과 비슷한 장면이었다.

원정대가 그것을 보고 기함했다.

[맙소사! 자가 수복을 하잖아?]

[저런 걸 어떻게 죽여?]

기이이잉.

루비 아이가 원정대를 비웃듯 괴이한 소리를 냈다.

수한은 차갑게 루비 아이를 노려보았다.

결국은 동력핵이었다.

사지를 결박하든 어쩌든 하고, 동력핵을 도려내야 루비 아이를 쓰러뜨릴 수가 있었다.

대치 상태가 이어졌다.

수한도 루비 아이도 함부로 먼저 공격하질 못했다. 서로의 빈틈을 노리며 빙빙 돌고 있었다. 덩달아 원정대의 다른 이들도 슬금슬금 접근만 했다.

시간을 재고 있었다.

수한은 루비 아이를 노려보지만, 실은 무한 의식으로 공유한 다른 이의 시선을 통해 다른 곳을 보는 중이었다.

바로 라오그뉴의 시체.

옅은 무지갯빛에 휩싸여 있었다. 시체 조각들이 꾸물거리며 서로 이어졌다. 언젠가부터 심장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루비 아이가 이 사실을 알아서는 안 된다.

수한이 앞장서서 뛰어들었다.

힘이 소모되는 것을 감수했다. 드라고나를 마구 쏘았다. 또다시 루비 아이의 몸에 커다란 구멍이 뻥뻥 뚫렸다.

SS급 이능력자들도 가세했다. 변이체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덤벼들었다. 형제신이 번갈아가며 루비 아이를 들이받고, 민종이 루비 아이의 팔을 붙들었다. 마엘른과 태수과 루비 아이의 다리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다.

역시 루비 아이는 무시무시했다.

두 팔을 휘저었다.

채찍처럼 길게 튀어나온 빛줄기가 빛의 거인을 양단했다. 거신 강림이 풀리며, 민종이 기절한 채 쓰러졌다. 태수가 급히 민종을 낚아채고 도망치는 게 보였다.

다른 이들도 피해가 컸다.

곰 변이체가 앞발이 잘린 채 주춤주춤 물러났다. 미루스도 뒷발이 잘려서, 이어지는 루비 아이의 공격을 간신히 피했다.

왕관 형태일 때도 강했던 루비 아이지만, 인간형으로 변하자 더 강력해진 것이다.

대신 천금 같은 시간을 벌었다.

라오그뉴가 완전히 부활했다.

[크앙! 이 씹어 먹을 놈!]

고통스럽게 죽은 탓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

당장 크기를 키우며 루비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루비 아이는 냉정하게 대처했다.

손 하나를 라오그뉴에게 내밀었다. 채찍처럼 길어져 있던 빛줄기가 줄어들자, 라오그뉴는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훌쩍 몸을 날려 피했다.

이대로는 힘들다.

수한이 원거리 공격으로 가슴을 직접 공격하려 하자, 루비 아이가 한쪽 손을 들어 막았다. 손에서 광선이 엉켜 방패처럼 변하여 수한의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아주 기가 막혔다.

공격력으로도 최고, 방어력으로도 최고 아닌가. 최소한 지금 원정대가 보유한 전력으로는 저 방패를 부술 방법이 없었다.

수한의 눈동자가 도르륵 굴러갔다.

손에서 나오는 광선 무기를 어쩔 수가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팔을 자르는 것.

일단 동력핵과의 연결이 끊어지면 뭘 어쩔 것인가.

수한의 머릿속에 어떤 계획이 차곡차곡 수립되었다. 그 계획이 무한 의식을 타고 원정대 전체에 퍼졌다.

원정대 전체가 강하게 반응했다.

[좋아! 해보자!]

[다들 힘냅시다!]

[고지가 눈앞에 있어요!]

시작은 수한부터.

루비 아이의 등을 타고 넘으며 유도 속성을 꽂았다. 두 어깨에 하얀 빛이 어렸다.

새미가 손을 들었다. 아르텔라도 두 손을 모으며 기도 자세를 취했다. 뱀이 입을 쩍 벌려 주포를 조준했다.

하지만 루비 아이가 더 빨랐다.

공격을 개시하기 직전, 자기 손을 살짝 위로 올렸다. 꾸물꾸물 흘러나온 빛이 어깨를 감싸자, 유도 속성이 단박에 깨져 버렸다.

시작부터 계획이 어긋난 것이다.

상관없었다.

수한의 공격이 두 다리에 박혔다. 다리가 하얗게 물들고, 원거리 공격이 두 다리를 단번에 날려버렸다.

루비 아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동시에 루비 아이의 몸에 또 적색 빛이 어렸다.

놔두면 또 재생할 터.

수한은 승부수를 던졌다.

목이 잘린 용기사의 앞에 내려앉았다.

“후우.”

가볍게 숨을 내쉬며 거신 강림을 발동했다.

빛이 터져 나오며 황금 거인이 나타났다.

거인의 손에서 회색 거대한 검이 솟구치고 있었다. 어느새 드라고나를 검 형태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그 상태 그대로 땅을 박찼다.

거대한 몸이 포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공간이 갈라지며 굉음이 터졌다. 대기가 울부짖은 순간, 거인이 루비 아이의 코앞에 있었다.

루비 아이가 손목을 까딱였다.

광선 채찍이 날아들었다.

수한은 회색 검을 휘둘렀다. 채찍이 날아드는 앞에 끼워 넣어 방어해냈다.

쾅! 쾅!

맹렬한 폭발이 일어났다.

회색 검으로는 채찍에 대응할 수 없었다. 채 몇 번 부딪치지 않았는데도 동강 나 빛이 사그라졌다.

상관 없었다. 힘을 주입하면 다시 자라날 테니까.

더구나 루비 아이가 이미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었다.

천지돌파를 사용했다. 누가 잡아당기기라도 한 것처럼, 거인의 몸이 쭈욱 늘어나며 루비 아이에게 돌진했다.

루비 아이가 두 손을 모두 내밀었다.

거대한 그물이 형성되는 한편, 거대한 칼이 거인의 몸을 양단했다.

그럴 줄 알았다.

수한의 눈이 번쩍 빛났다.

성긴 그물코가 눈에 들어왔다.

거신 강림을 해제했다.

빛의 거인이 스러지고, 거대한 칼은 덧없이 허공만 갈랐다.

흩어지는 빛 무리 속에서, 수한이 몸을 날렸다.

천지 돌파를 극도로 발현했다.

세상을 꿰뚫었다.

공간을 찢었다.

성긴 그물코 안을 통과하여, 루비 아이의 가슴에 냅다 드라고나를 찔러넣었다.

꽈앙!

회색 번개가 루비 아이를 강타했다.

굉음이 일었다.

무시무시한 진동이 세상을 떨쳐 울렸다.

공격한 반작용으로 회색 검이 거의 으스러졌다.

무시했다.

드라고나를 변형시켜, 4자루의 총을 일제히 겨눴다.

천멸 속성을 중첩시키고, 분화 속성을 조합해서 퍼부었다.

총구에서 쏘아진 광선이 금속 장갑을 파고들어 안쪽에서 폭발했다. 단박에 금속 장갑을 소멸시키며, 영롱한 빛을 발하는 동력핵이 그 자태를 드러냈다.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는 순간이었다.

다리를 재생시킨 루비 아이가 발길질을 했다.

“컥!”

수한은 거기 맞고 피를 토했다.

허리띠가 작용하여 방어막을 펼쳤지만 소용없었다. 루비 아이의 다리는 가볍게 방어막을 으스러뜨렸다.

루비 아이의 공격이 날아들었다.

이번에야말로 끝장을 내겠다는 듯, 모든 방향을 물 샐 틈 없이 틀어막고 있었다.

다차원 조작 신발을 작동시켰다.

수한의 몸이 사라졌다가 하늘 높은 곳에서 다시 나타났다.

예측했다는 듯 루비 아이가 두 손을 들었다. 빛이 무더기로 쏟아지며 수한을 뒤쫓았다. 수한이 주변을 인지했을 때는 어느새 빛이 사방을 감싸고 있었다.

방금 전 상황의 재탕.

빛이 엉켜 수한의 주위를 칭칭 감쌌다. 그대로 압축되며 수한을 짓눌러 버리려고 했다.

수한은 속으로 숫자를 셌다.

막 빛에 의해 소멸하려는 순간, 신발을 사용하여 자신의 몸을 이차원으로 옮겼다.

그대로 빛의 감옥을 벗어났다.

뇌룡 질주를 사용하여 멀리 달아나자, 루비 아이가 집요하게 손을 겨눠 수한을 공격했다.

루비 아이에게 있어 수한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존재.

그러다 보니 가장 집중을 한 것인데, 그게 화근이 되었다.

[크앙!]

라오그뉴가 달려든 것이다.

그 거대한 앞발이 루비 아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상처를 반쯤 재생시키는데 성공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SSS급 거력 계열 능력이 후려치는데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단박에 모든 금속 장갑이 벗겨지고 동력핵이 속살을 드러냈다.

루비 아이가 급히 움직였다.

두 손을 라오그뉴에게 가져가는데, 다른 이들이 사납게 덤벼들었다.

[어딜?]

[막아요! 막아!]

[라오그뉴님! 바로 뜯어 버리세요!]

온갖 공격이 집중되자, 두 팔이 제대로 역할을 못했다. 직접적인 공격보다도 마비시키는 공격을 위주로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아르텔라가 큰 역할을 했다. 아르텔라는 거대한 회색용을 불러 왼팔을 묶고, 강력한 저주로 오른팔을 묶었다. 그 바람에 천금 같은 시간을 벌었다.

라오그뉴가 오른쪽 앞발을 내밀었다.

동력핵을 쥐었다.

루비 아이가 몸을 뒤틀었다.

라오그뉴가 힘을 주었다.

동력핵이 그대로 뽑혔다. 각종 선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는데, 라오그뉴가 동력핵을 흔들자 모조리 끊어져 버렸다.

그것으로 끝.

루비 아이가 침묵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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