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214화 (215/254)

< 낙베일 대륙 >

고요가 내려앉았다.

원정대 모두, 믿어지지 않는다는 눈으로 루비 아이를 바라보았다.

가슴에 뻥 뚫린 구멍에서, 타닥타닥 전기가 튀었다.

재생되지 않는다.

전혀 움직임이 없다.

아까 그토록 원정대를 몰아붙였던 게 거짓말인 것처럼, 활개를 펴고 누운 채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새미의 상념이 무한 의식을 타고 흘러들어왔다.

[끝……났나?]

잠시 침묵.

그리고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어!”

“으하하하!”

라오그뉴가 싱글거리며 원정대 진영 쪽으로 다가왔다.

고양이 공놀이 하듯 동력핵을 자기 앞발로 굴려대자, 원정대가 왁자지껄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수한도 천천히 하늘을 날아 지상으로 내려왔다.

가장 먼저 원정대의 상황부터 살폈다.

다친 사람은 꽤 많았다. 민종이 특히 그랬다. 내장이 거의 곤죽이 된 상황이었다.

그나마 형제신들이 칠채 옥좌를 개방해줘서 한참 치료 중이었다. 목숨만 붙어 있으면 완전히 회복시키는 물건이니 큰일은 없을 것이다.

죽은 사람은 전무.

전투 중에 몇 명이 다쳤는데 라오그뉴가 틈틈이 상처를 회복시켜 준 게 컸다. 새로 얻은 자신의 권능을 잘 활용한 것이다.

완벽한 성공이었다.

한동안 기쁨을 나누었다. 서로의 등을 두드리고, 칭찬의 말을 건네고, 환호하며 만세를 불렀다.

새미가 웃으며 수한에게 다가왔다.

“오빠! 결국 성공했네?”

“그러게. 자기가 고생 많았어.”

“나야 뭘, 오빠가 고생했지.”

마엘른과 아르텔라, 라오그뉴도 근처로 다가왔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형제신과 변이체들, 다른 이능력자들도 모여서 커다란 원이 완성되었다.

라오그뉴가 수한을 툭툭 쳤다.

[잘 했어. 정말 짜릿하더라. 널 따라온 보람이 있는 걸?]

“하하,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더 멋진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좋아! 기대할게!]

“벌써 3년 정도 되었지요? 사장님을 따를 때만 해도 정말 루비 아이를 잡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그냥 하는 말인 줄로 알았습니다.”

“약속은 지킵니다. 마엘른님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고향이라…… 누님과 뮤리아를 다시 볼 수 있다니, 마치 꿈만 같습니다.”

마엘른이 감회 어린 눈빛을 보냈다.

아르텔라가 경건한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감히 용신님께 대적하고자 하였으니, 예정된 결과였어요.”

뒤처리를 했다.

용이를 이용하여 루비 아이와 용기사를 융합시켰다.

덩치는 루비 아이가 훨씬 작은데, 융합 난이도는 훨씬 더 높았다. 수한이 탑승한 채 고리 은하를 사용한 뒤에야 겨우 용이가 통제할 수 있었다.

한편, 동력핵 옆에서 시체를 하나 발견했다.

제국인의 시체.

평소처럼 글자들이 수한의 손목으로 날아들었다. 그런데 레벨 업 도우미가 예전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10익급 이종의 레벨 업 도우미 흡수 완료.]

[500 레벨 성장 한계 확인.]

[원수 계급으로 진급.]

[레벨 업 도우미 업그레이드 시작.]

[모든 능력치 1 상승.]

[초능 여유 점수 10 확보.]

글귀를 확인한 수한의 눈이 깊어졌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왕급 기계 괴수에는 10익급 제국인이 타고 있었다. 아울러 그 제국인의 레벨 업 도우미를 흡수하자 레벨 업 도우미가 업그레이드되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지금으로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수한은 원정대에게 말했다.

“일단 죽음의 대지에서 물러나겠습니다. 근처에 폐허가 몇 개 있던데, 그곳에 진지를 펴고 재정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부상은 모두 치료했지만 피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휴식을 취하는 게 필요했다.

루비 아이와 용기사를 융합시킨 기계용을 타고 이동했다.

진지를 만들었다.

다들 막사를 차지하고 널브러졌다. 하지만 수한은 마음 편히 쉬지 못했다. 낙베일 대륙 전도를 보며 어느 곳으로 진격할지 계획을 짜고 있었다.

새미가 수한의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오빠, 좀 쉬지 지금도 일하고 있어?”

“원정 동안은 어쩔 수 없어. 그래도 가장 큰 산을 넘었으니까 마음이 좀 놓인다.”

“낙베일 대륙에 기계 괴수가 얼마나 있다고 했지?”

“정확히 50마리야. 거대 기계 괴수도 몇 마리 있고, 대형 기계 괴수가 꽤 많더라. 세라프 종족이 계속 공격을 해서 소형이랑 중형은 적은 편이야.”

“그것들도 다 잡을 거지?”

“당연하지.”

수한은 낙베일 대륙의 중심을 목표로 삼았다.

한때 번영하던 제국의 수도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 세라프의 원형 문을 설치하고 거점으로 삼을 계획이었다.

원형 문은 전당보다 더 많은 자원이 들지만, 기존 용기사를 활용하면 충분했다.

다음날 바로 출발했다.

일단은 거점을 건설하는 게 급선무. 주변에 기계 괴수들이 꽤 많았지만 모두 지나쳐 낙베일 대륙의 중심으로 날아갔다.

지원 요원들이 진지를 건설하는 동안, 원형 문을 설치했다.

원형 문을 설치하는 것은 수한으로서도 처음이었다. 용이도 좀 어설프게 움직여서, 수한은 용이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신중하게 원형 문을 만들었다.

거대 기계 괴수로 만든 용기사가 몽땅 소모되었다.

그래도 완성된 원형 문을 보니 마음이 놓였다.

대한민국 여의도에 설치된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원정대를 불러다 놓고 말했다.

“이제 사냥을 재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꼭 참가해야 하나? 어차피 목적은 달성한 것 같은데. 나머지 것들이야 너희끼리도 충분히 잡을 거 아니냐.]

미루스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미르 공격대만으로도 충분히 상대가 가능했다. 굳이 동맹 세력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수한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야 그렇습니다. 돌아가시고 싶은 분은 돌아가셔도 됩니다. 추후, 소정의 선물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더 함께 하고 싶으신 분이 계시면 남아 주세요. 저희를 위해 애써주시는 만큼, 그에 따른 보상은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수한의 말에 루비 아이를 사냥하기 위해 초빙한 이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민종이 담담한 기색으로 말했다.

“소형이나 중형은 몰라도, 거대 기계 괴수 사냥에는 함께하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나중에 타이탄 공격대로 거대 기계 괴수를 잡는 게 목표여서요.”

“한 사장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면 저야 감사한 일이지요. 기꺼이 환영하겠습니다.”

“그럼 저도……”

[보상을 하겠다고? 그럼 우리도 남도록 하지. 루비 아이를 잡은 거야 예전 일에 대해 갚을 게 있어서 한 거지만, 지금부터는 대가를 톡톡히 받을 거야.]

“하하, 좋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처음 집결했던 원정대 그대로, 낙베일 대륙을 평정하기로 했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대륙의 기계 괴수를 절반이 훌쩍 넘게 잡았는데, 겨우 1달밖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이라곤 소형과 중형 기계 괴수뿐.

앞으로 보름 이내에 모두 사냥할 듯했다.

기계용의 기동력과, 우월한 공격대의 무력을 사용하니 가볍게 대륙을 평정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 와중에 이주민들을 계속해서 받아들였다.

낙베일 출신의 피난민은 멩가 시와 그 인근에 넓게 퍼져 있었다. 당장 다섯 변이체가 머물고 있던 마을만 해도 낙베일 대륙의 피난민들이 만든 마을이었다.

다섯 변이체가 새로운 도시를 수호한다는 소리를 듣자, 그들이 새까맣게 모여들었다.

도시의 인구가 순식간에 수만을 넘어갔다. 이능력자도 제법 되어서, 하급 변이체는 이들끼리만 힘을 합쳐도 충분히 사냥이 가능했다.

[우린 이만 가보겠네. 남은 건 잔챙이뿐이군.]

형제신이 먼저 작별 인사를 했다.

수한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살펴 가십시오.”

[그래. 언제 한 번 우리 세계에 놀러오게나. 제대로 대접해 주지.]

[신들의 연회에 참석하면 도끼 자루 썩는 줄을 모른다네. 그대의 방문을 기대하겠네.]

그러자 두 공격대 사장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1달 넘게 자리를 비웠으니, 제가 할 일이 많을 겁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저도 지구로 돌아가겠습니다. 늦게 가면 배 이사가 히스테리를 부리거든요. 미르 공격대의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두 분 사장님 모두 감사했습니다. 조만간 지구에서 뵙겠습니다.”

이것으로 객원 이능력자들은 모두 떠났다.

변이체들만 멀뚱거리며 미르 공격대 진지에 남아 있었다.

처음 개조하면서 조건으로 달았던 것은 모두 달성한 상황. 게다가 몸 전체를 기계로 개조해서인지 예전처럼 탐식을 하지도 않았다. 수리가 필요할 때만 기계 괴수 부품을 먹곤 했다.

수한은 그들을 보며 말했다.

[너흰 어떻게 할래? 보름만 지나면 원정이 끝날 텐데, 여기 계속 남아 있을 거야?]

[글쎄, 어떻게 하지?]

[기계 괴수들이 없으면 우리도 여기 있을 필요가 없는데.]

변이체들은 지난 세월 동안 멩가 시의 수호신 노릇을 했다. 다른 것보다도, 피난민들이 자신을 섬기는 게 기뻐서 그런 거였다.

하지만 하급 변이체들만 도시를 위협한다면 필요가 없다. 지난 3년 동안 가브낙 행성인들도 많이 성장했으니까.

수한이 미끼를 던졌다.

[나랑 같이 가지 않을래? 세계는 많고, 잡아야 할 기계 괴수도 많아. 루비 아이와 비슷한 정도의 기계 괴수만 적어도 열은 넘어. 그것들을 다 잡고 난 다음에는 더 강한 놈들이 쏟아지겠지. 너희도 여기서 하품만 하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겠어?]

변이체들이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몸을 개조하여 SS급이 된 것은 좋은데, 각종 취미를 잃어버린 뒤였다. 생물체로서 대부분의 욕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몇 가지 남은 감정이 있는데, 무리 안의 관계에서 오는 유대감과 강적을 쓰러뜨리며 느끼는 투쟁심 같은 것들이었다.

자기들끼리 의논을 하더니, 곧 결론을 내렸다.

[좋아, 널 따라갈래.]

[기계 괴수들과 원 없이 싸울 수 있는 거지?]

[너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가브낙 행성에서 처음 변이체들과 만났을 때부터 예견되었던 일이라고 할까.

미르 공격대의 전력이 급상승한 것이다.

귀환 준비를 서둘렀다.

전리품은 계속해서 지구로 보냈다. 한편 기계용을 데리고 기계 괴수들을 쫓아 다녔다. 그리하여 약 보름이 지났을 때, 낙베일 대륙에 있는 기계 괴수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사냥하는데 성공했다.

가브낙 행성 원정 성공.

부상자는 많았지만, 사망자는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완벽하게 성공했다.

덕분에 한동안 500레벨에서 멈춰 있던 수한의 레벨도 상당히 올랐다. 기계 괴수 50마리를 잡는 동안 정확히 30레벨이 상승한 것이다.

게다가 전투 지휘와 작전 계획, 기갑 격투와 탑승이 1레벨씩 오르고, 체력과 위엄도 1씩 올라갔다.

실로 오랜만의 성장.

그렇게 지구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상황을 듣고 있던 국군이 수한을 초청했다. 지구로 돌아가기 전 잠깐 들러달라는 얘기였다.

주요 이능력자들과 함께 멩가 시를 방문하자, 파병 부대 수뇌부가 원형 문이 설치된 곳까지 나와 수한을 환영했다.

파병 부대 사령관인 소장이 연신 수한을 추켜세웠다.

“정말 굉장합니다. 그렇게 깔끔하게 루비 아이를 해치울 줄은 몰랐습니다. 덕분에 저희도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5만 장병과 그들의 가족들을 대표하여, 미르 공격대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하하, 과찬이십니다.”

군부대에 초대를 받아 잠깐 머물렀다.

어느새 철수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중장비는 거의 사라졌다. 최소한의 장비만 남아 있고, 분위기도 긴장이 풀려 노곤노곤했다.

소장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대통령님께서 이미 철군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앞으로 1주일 이내에 모두 지구로 돌아갈 겁니다.”

“벌써요?”

“루비 아이가 잡힌 시점에서 모든 게 다 끝난 거지요. 그때부터 철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소장이 편안한 얼굴로 말했다.

집에 돌아갈 생각밖에 없는 것 같았다. 수한은 적당히 응대하다가 빠져나왔다.

멩가 시에 머물던 세라프들이 수한을 찾아왔다.

그들도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가브낙 행성에 묶여 있었던 것은 그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1명만 남아 미르 공격대가 만든 원형 문을 지키고, 그마저도 안정화되면 헤븐 행성으로 복귀한다던가.

[여러분의 도움을 기억하겠습니다.]

[뭘요. 저도 많이 도움을 받고 있는 걸요.]

수한은 빙긋 웃었다.

이것으로 볼 일은 끝.

수한은 기계용을 타고 날아올랐다.

원형 문을 통과하여 지구로 도약했다.

적색 빛이 기계용을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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