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함 임페리얼 -1- >
일행이 지구로 돌아온 것은 한 밤 중.
원형 문을 막 통과했는데, 이상한 게 보였다.
한 줄기 유성.
새하얗게 타오르며 일직선으로 내리꽂혔다. 반짝했다 싶은 순간, 북한산에 낙하하며 쿵 하고 둔중한 소리를 냈다.
여파는 작았다. 운석이 낙하했는데도 땅이 좀 흔들리고 말았다. 북한산 인근의 주민 중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땅이 흔들렸는지 어쨌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오빠, 뭐 보고 있어?”
새미가 수한에게 물었다.
“방금 유성 보고 있었어. 북한산에 떨어진 것 같아.”
“아, 진짜?”
[나도 봤다. 제법 큰 운석 같다. 그런데 이상하구나. 내 영지에 떨어졌던 아주 작은 운석도 산 하나를 초토화시켰었는데.]
한 번 가보기로 했다.
산책하는 셈 쳤다. 각자 장비에 깃든 날개를 꺼내들고 북한산을 향해 날아갔다.
수한은 추억에 젖은 눈으로 북한산을 내려다보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살아 있을 때는 북한산 인근에서 살았다. 정릉 근처, 국민대학교와 서경대학교가 있는 근처였다. 주말에 가끔 부모님과 함께 북한산에 놀러가던 기억이 났다.
새미가 수한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오빠 옛날에 여기 살았다고 했지?”
“응.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한때는 기계 괴수들이 여기까지 내려왔다. 덕분에 강북은 몽땅 잿더미가 되었다. 지금은 재개발로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서, 수한의 기억 속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유성이 낙하한 지점으로 날아들었다.
인근 아파트 단지에서 멀지 않은 지점이었다. 한쪽에 나무들이 몽땅 꺾여 있고, 커다란 구덩이가 파여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것도 없는 듯했다. 구덩이 중앙에 가봐도 마찬가지였다.
새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 것도 없는데? 다 탔나 봐.”
“으음……”
수한은 얕은 신음을 흘렸다.
투시 계열 이능이 없는 새미는 몰랐지만, SS급 투시 계열 이능력자이기도 한 수한에겐 한 가지 물체가 똑똑히 보였다.
금속 구.
낯이 익었다.
불과 몇 달 전 질라 행성에서 목격했던 제국인들의 금속 구를 쏙 빼닮았다. 다만 표면이 검게 그을려 있고, 크기가 확연히 작아 겨우 직경 2미터 정도라는 게 달랐다.
일종의 투명화 상태. 그 때문에 일반인들은 금속 구를 볼 수가 없었다. 구덩이 중앙으로 걸어 들어가 손으로 더듬어 보기라도 해야 금속 구의 존재를 알아챌 것이다.
수한은 무한 의식으로 자신의 시야를 공유했다.
새미가 놀라 눈을 반짝였다.
“저거 제국 물건 아냐? 저게 왜 여기 있어?”
“제국 것 같긴 한데 좀 이상해. 느낌이 달라.”
수한은 조심스럽게 금속 구로 접근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드라고나를 검 형태로 변형시킨 뒤, 허리띠의 방어막도 작동시킨 채 다가갔다. 운명의 눈으로 위험이 없는지 살핀 뒤 슬쩍 손을 뻗었다.
기이이잉.
손이 닿자, 금속 구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꼭 들어오라는 것 같았다.
수한을 선두로 하여, 4명 모두 금속 구 안을 살폈다.
정말로 작다.
딱딱한 의자 하나가 설치되어 있고, 홀로그램 생성기 몇 개가 보였다. 한 사람이 안에 들어가면 꽉 찰 정도였다.
“내가 들어갈게.”
“위험하진 않아?”
“운명의 눈으로 봤는데 위험한 건 없어. 걱정하지 마.”
수한은 금속 구에 들어가 앉았다.
미르 공격대에서 연구 중인 금속 구와 놀랍도록 닮았다. 덕분에 능숙하게 조작할 수 있었다.
모든 기능이 정지된 상태.
재기동시켰다. 정면의 수정판에 손바닥을 올리자, 금속 구가 수한의 생체 정보를 읽었다. 비상 전력이 발동하며, 금속 구의 컴퓨터가 스르륵 깨어났다.
수한의 눈앞에 빛나는 글자들이 나타났다.
읽을 수 없는 글자들.
제국어.
그냥 눈에 담아두기만 했다. 운명의 눈으로 주의 깊게 금속 구 안을 살피며, 재기동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재기동이 끝났다.
금속 구 안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리고 작은 여자아이 모습을 한 홀로그램이 하나 나타났다.
기껏해야 손가락 한 뼘 크기나 될까.
여자아이가 입을 열었다.
[사용자 언어 체계 분석 완료하였습니다. 대상의 유전자 분석 결과 연방인과 일치합니다. 우주 연방 교전 수칙 91조와 비상 시 행동 수칙 32조에 의거, 대상 연방인을 전함 임페리얼의 임시 함장으로 추대합니다. 임페리얼에 새로운 함장이 부임할 때까지, 임시 함장의 지휘를 받습니다.]
전함 임페리얼?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세라프 종족의 시공 회귀에 휘말렸다는 제국 소속 전함들.
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시공 회귀 전의 옛 제국은 엄연히 지구인과 동일한 종족. 여자아이가 수한을 연방인이니 어쩌니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전함 임페리얼이라고?”
[우주 연방 소속의 대 이터누스 종족 결전 병기입니다. 제원은 길이……]
“아아, 구구절절 말로 설명할 것 없어. 그냥 내 머리에 주입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함장님께서는 강력한 초능력자이시니 명령에 따르겠습니다. 정보를 조금 많이 주입한다고 해서 뇌가 녹지는 않으실 테니까요.]
온갖 정보가 물 밀 듯이 밀려들었다.
수한이 원한 것은 여자아이가 말한 연방의 역사나 사회, 그리고 세라프 종족과의 관계 등등.
굉장히 방대한 정보였다. 일반인이라면 1달 내내 정보 주입을 받아도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수한은 SSS급 이능력자이고, 이런 종류의 정보를 받아들이는데 이골이 나 있었다. 눈을 감은 채 밀려드는 정보를 차곡차곡 받아들였다.
수한의 추측이 맞았다.
전함 임페리얼은 세라프 종족이 말하던 시공 회귀 전의 옛 제국 소속 전함이었다.
정확한 명칭은 우주 연방.
지금의 제국 정도는 아니어도 강력한 무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함 임페리얼만 가지고도 행성 한두 개 정도는 날려 버릴 터였다.
수한은 정보를 분류하다 눈을 빛냈다.
여자아이가 언급했던 이터누스 종족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세라프 종족의 옛 이름. 시공 회귀 부작용으로 잊어버렸다고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 이름을 접한 것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크게 차이는 없었다.
기껏해야 남녀가 구분되어 있고, 날개 색깔이 모두 하얗다는 점 정도.
임페리얼은 현재 달 뒷면에 정박하고 있었다.
승무원들은 모두 죽은 상태.
고장 난 부위가 많아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한데 그걸 하려면 함장의 명령이 필요했다. 긴급 수리 정도야 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비상 탈출용 소형 우주선을 지구로 보냈다. 차원 좌표가 엉크러져 정확히 어떤 행성인지는 몰랐지만, 우주 연방 소속 행성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간의 사정을 파악한 수한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여기가 어디인지는 알겠어?”
[우주 구석의 알려지지 않은 행성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고향 행성과 흡사한 곳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으니까요. 다만 함장님과 밖의 연방인, 외계인처럼 강력한 초능력자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주 발전한 곳으로 사료됩니다.]
“하긴 네가 가진 정보로는 그렇게 판단하는 게 한계겠지.”
수한은 금속 구 밖으로 나왔다.
새미가 금속 구를 곁눈질했다.
“오빠, 저거 혹시……”
무한 의식을 통해, 새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느껴졌다.
수한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생각이 맞아.”
세라프 종족에게 듣기로는, 시공 회귀에 휘말려 미래로 간 전함들이 제국의 초석이 되었다고 했다. 그게 몇 척이나 되는지, 어느 시점 어느 공간으로 갔는지는 그들도 모른댔지.
아마도 지금 수한의 앞에 있는 전함 임페리얼이 그 중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한 모양이다.
운명의 눈을 통해, 금속 구의 운명을 엿보았다.
어떤 영상이 펼쳐졌다.
2019년 9월 15일. 어떤 20대 후반 추리닝 바람의 한 사내가 북한산 등산로를 오르는 모습.
사내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오는 참이었다. 그러다 유성이 북한산에 떨어진 것을 보았다. 가져다 팔면 용돈이라도 벌지 않을까 싶어 등산로를 올랐다가 금속 구와 접촉했다.
세계에 기록된 단편적인 기억.
아니, 기억의 파편이라고 할까.
영상은 금방 사라져버렸다. 자세히 보려고 운명의 눈을 더 끌어올렸지만 더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비록 수한과 금속 구에 얽힌 운명이지만, 엄연히 다른 차원에서 벌어진 일.
세계가 수한에게 속삭이듯 영상을 보긴 했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것이다.
수한의 눈이 깊이 침잠해 들어갔다.
사내의 얼굴이 익숙했다.
매일 아침 거울에서 보는 얼굴이었다.
비록 지금 얼굴보다는 주름살이 깊게 패이고 피부가 거칠어 더 겉늙어 보이지만, 동일 인물이라는 점만은 확실했다.
수한.
시공 분열로 인해 차원이 갈라지기 전에도, 수한은 전함 임페리얼과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그런 거였나……”
한 가지 사실을 알 것 같았다.
옛 제국, 즉 우주 연방의 고향 행성이 지구인 것처럼, 현재의 제국도 지구에서 기원한다.
그 핵심에 21세기 지구의 수한이 있었다.
전함 임페리얼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고, 복구하려면 막대한 자원이 필요했다. 수한은 인공지능의 협력을 받아 그 자원을 마련했다. 그러면서 지구 전체를 지배할 정도의 거대 기업을 수중에 넣게 되었다.
제국은 그 거대 기업에서 비롯되었다.
수한이 수명을 다하여 죽고, 그 손자의 손자도 죽은 까마득한 미래.
거대 기업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끝에 우주 전체로 뻗어나갔다. 치열한 우주 전쟁을 벌이고, 수많은 행성을 정복한 후, 세라프 종족도 노예로 거느리면서 비로소 제국을 자처했다.
정확히 이 모든 상황까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의 존재가 제국의 성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알아냈다.
아니다, 그렇지는 않다.
수한이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동생인 명한이나 기한, 아니 다른 누가 금속 구를 발견했어도 마찬가지였다.
전함 임페리얼은 누가 됐든 꼭두각시를 이용하여 지구를 정복했을 것이다. 나중에는 그게 발전하여 현재의 제국을 만들었겠지.
수한은 새미와 라오그뉴, 아르텔라를 돌아보았다.
“저는 임페리얼에 다녀오겠습니다.”
“혼자서 가게?”
“응. 용이만 데리고 가려고. 어차피 이건 한 명밖에 못 타.”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 안 해도 돼. 난 임시 함장이고, 임페리얼은 나에게 해를 끼칠 수가 없어.”
[다른 사람들에겐 알릴 필요는 없겠어?]
“알려야지요. 달에 다녀오자마자 수호자 연맹을 방문하도록 하겠습니다. 세라프 종족에게도 전갈을 하고요.”
“오빠, 내가 해야 할 일 있어?”
“아니. 자기는 그냥 쉬고 있어도 될 것 같아. 지금 당장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니니까.”
“알았어.”
수한은 금속 구에 올랐다. 용이는 아예 용갑 상태로 착용을 했다. 그러자 좀 비좁기는 했지만 어쨌든 들어갈 수는 있었다.
몇 군데 고장이 났지만, 임페리얼까지 돌아가는 것은 가능한 상태.
금속 구가 둥실 떠올랐다.
처음에는 천천히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조금씩 속도가 붙었다. 나중에는 총알처럼 빠르게 공간을 돌파했다.
우주 공간으로 접어드는데 몇 분 걸리지도 않았다.
금속 구 안은 쾌적했다. 어마어마한 가속이 걸리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느릿하게 달리는 차에 탄 것처럼, 멀뚱멀뚱 눈만 뜨고 있었다.
여자아이가 입술을 달싹였다.
[앞으로 20분 후 전함 임페리얼에 도착합니다.]
“20분? 정말 빠르네.”
기계용을 타고 가도 몇 시간은 걸릴 터. 수한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정확히 20분 뒤 달에 도착했다.
달 뒷면에 거대한 전함이 불시착해 있었다.
긴 직육면체 형태.
가장 긴 부분은 10 킬로미터 이상, 좁은 단면도 가로세로 3 킬로미터 이상이나 되는 거대한 물체였다.
달 표면과 융합되어 괴상하게 보였다. 운명의 눈으로 살피니, 반은 파묻히고 반은 우주로 삐죽 나와 있었다. 더구나 주변의 땅이 금속질로 변했다. 그 부분만 놓고 보면 SF 영화 속 금속으로 개조된 행성을 보는 것 같았다.
그나마 투명화와 은신 기능이 잘 작동하는 중이었다. 수한도 여기까지 왔으니까 꿰뚫어 본 거지, 지구에 있었다면 미처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전함 임페리얼에 진입하겠습니다.]
임페리얼의 옆면 한쪽이 열렸다.
금속 구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격납고로, 금속 구는 물론 다양한 형태의 병기들이 사방을 굴러다녔다.
[전함 임페리얼의 생명 유지 장치는 함교에만 작동하고 있습니다. 우주복 착용을 권합니다.]
“그럴 것 없어. 용이로 충분하니까.”
[그럼 이 팔찌를 차시기 바랍니다. 임시 함장을 상징하는 팔찌입니다. 나중에 임페리얼을 벗어난 뒤 저와 교신하는 기능도 있습니다.]
“좋아.”
수한은 여자아이가 내민 팔찌를 찼다.
금으로 만들었고, 아주 가느다란 형태였다.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아주 아름다웠다.
금속 구 밖으로 나갔다.
격납고 안은 아주 가관이었다. 온갖 쓰레기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나마 달의 중력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마저도 없이 무중력 상태로 쓰레기가 허공을 떠다녔으면 운신하기도 힘들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