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219화 (220/254)

< 함장 >

미네르바는 많은 것을 요구했다.

가장 먼저 임페리얼을 수리할 자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임페리얼의 크기가 크기이다 보니 지구를 통째로 털든지 해야 수리가 가능할 정도였다.

어렵지는 않았다.

기계 괴수 부품으로 대체할 수가 있었으니까. 굳이 다른 행성에 손을 벌릴 것도 없이, 미르 공격대 혼자서도 감당할 수 있었다.

더불어 제국과 세라프 종족, 그리고 종족 연합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달라고 했다.

어려울 것 없었다. 지구로 돌아가는 대로 미르 공격대의 전산망에 접속시켜 주기로 했다. 그러면 미네르바가 알아서 정보를 수집할 터였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세 번째 요구.

미네르바는 수한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함장님께서 임시 함장인 것으로는 부족해요. 제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가 없으니까요. 언뜻 듣기에도 제국의 기술력이 제가 가진 기술을 아득히 초월하는데, 유지 보수만 가능한 임시 함장으로는 대적이 불가능해요.]

“우주 연맹 행성 의회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그건 이미 존재하지 않는데, 그걸 받을 수가 있겠어?”

[편법을 써야지요. 다행히 외부와의 연결이 고립된 상황에서 함장의 존재가 절실히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그게 뭔데?”

[연락 가능한 행성 내 의회의 추인을 받으면 되요. 지구에도 의회 정도는 있지요?]

“지구는 나라가 300개 정도는 돼. 그 의회 전부에 추인 받는 건 불가능한데…… 아, UN에서 받으면 될까?”

[UN? 그게 뭐지요?]

수한은 UN과 수호자 연맹 등 지구의 주요 단체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미네르바는 탐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법적 구속력은 없는 단체네요? 차라리 수호자 연맹이 그런 역할을 수행하면 좋을 텐데…… 그래도 납득할 정도니까 그렇게 진행해 주세요. UN 총회에서 추인을 받으면, 최소한의 자격요건은 충족할 것 같아요.]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시간.

언제 UN 총회를 소집하고 각국을 설득한단 말인가. 더구나 알릴 수 없는 비밀도 많은데.

수한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그 방법은 쓰기 힘들어. 한시가 급한 상황이야. 다른 방법은 없어?”

[음…… 그럼 함내 회의를 통해 결정해야 합니다.]

“함내 회의?”

[네. 전함 승무원들의 투표로 함장을 뽑는 거지요. 정말 비상 상황일 때나 가능해요. 만장일치가 아니면 안 되고요.]

“지금이 비상 상황이 아니면 언제가 비상 상황이야? 우주 연방은 멸망했고, 지구도 멸망하기 직전이잖아. 그렇게 해야겠다.”

[하지만 승무원들이 없습니다.]

“승무원들이 없으면 뽑으면 돼. 자격 요건 있어?”

[비상시에 한해서, 긴급 승무원을 뽑는 건 가능합니다. 대신 강력한 초능력자여야 합니다. 최소 절대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다른 요건을 무시하고 지명할 수가 있습니다.]

“절대 능력?”

[초능력 진화기에 의해 6번 진화를 하면 절대 능력이라고 부릅니다.]

“그럼 5번 진화는 영웅, 7번 진화는 신화겠네?”

[정확하십니다.]

이능 장비 등급 기준은 우주 연방의 등급 구분에서 유래되었나 보다.

하여간 SS급 이상 이능력자면 승무원 지명이 가능하다 이거지?

수한은 머리를 굴렸다.

현재 미르 공격대의 SS급 이상 이능력자는 13명.

수한, 라오그뉴, 아르텔라, 새미, 마엘른, 김주철, 우셩, 가토 히데오, 그리고 다섯 변이체.

“최소 정족수가 몇 명인데?”

[절대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일 때 10명입니다.]

“다른 조건은 없어? 출신 행성이나 소속 같은 거.”

[네, 없습니다. 이터누스 종족만 아니면 됩니다. 다만 정식 승무원이 아니니 전함으로의 접근 권한에 한계가 있어요. 전투 부서에는 배치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 간단하네.”

수한 일행에 다섯 변이체만 더해도 10명 아닌가.

종족 제한이 없다는 사실이 컸다. 만약 지구인으로만 구성해야 했다면 골치 아팠을 것이다. 미르 공격대만으로는 해결을 못하고, 외부 인사를 영입해야 했겠지.

미네르바가 입술을 오물거렸다.

사실 함내 투표는 훨씬 더 복잡했다. 여러 제한이 걸려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미네르바가 그 조건들을 슬쩍 완화시킨 거였다.

수한은 혹시나 자신이 뭔가 놓쳤을까 싶어 미네르바가 건네준 정보를 샅샅이 훑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지구로 돌아가면 될 듯했다.

긴급 수리를 명령해 놓고 지구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임페리얼에 탑재된 금속 구를 이용했다.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지구의 대기권으로 돌입했다.

굳이 지면까지 낙하하지 않았다. 공중에서 최대한 속도를 늦춘 뒤 그대로 정지했다. 용갑을 입은 채 뛰어내리자, 미네르바의 홀로그램이 수한을 따라붙었다.

[너도 앞으로 우리랑 사는 거야?]

용이가 미네르바에게 물었다.

미네르바는 용이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지? 그런데 또 누구 같이 사는 사람 있어?]

[우웅, 못 생긴 사자 한 마리랑 외계인 한 명, 그리고 덩치 큰 친구들 다섯이랑 짜리몽땅한 털보 둘, 그리고 우리 주인님 동생 두 명이 같이 살아. 아! 여자 주인님도 가끔 자고 가셔.]

[그래?]

미네르바는 수한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수한은 초음속 초능까지 사용하여 빠르게 비행했다. 강남에 있는 집에 도착했다.

변이체들이 들어오면서 새롭게 이사를 했다. 원래 집도 컸지만 이 집은 더 컸다. 거의 저택 수준이었다. 변이체들이 뛰놀 정도로 공간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집 옥상에서 햇볕을 쬐던 새 변이체가 가장 먼저 수한의 접근을 알아차렸다.

[오, 친구! 이제 오나?]

[다른 애들은?]

[다 나갔어. 한강에서 놀고 있겠지. 작은 것들은 여의도 갔을 걸? 그나저나 그 녀석은 또 뭐야?]

새 변이체의 눈이 미네르바의 홀로그램을 정확히 포착했다.

뭔가 이상했던지 머리를 모로 꼬았다.

[그냥 홀로그램인가? 아닌데…… 뭔가 힘이 느껴지는데……]

[하하, 네가 본 게 맞아. 좀 있다 소개시켜 줄게.]

새미는 여의도의 미르 공격대 사옥에 있었다.

마침 잘 됐다.

수한은 하늘을 날아 여의도로 갔다. 사옥 앞에 모여 있던 시민들이 수한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라오그뉴의 치료를 받기 위해 모인 이들.

지금도 치료소를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치료소에서 나온 환자와 가족들이 안쪽을 향해 허리를 꾸벅꾸벅 숙이는 게 보였다.

사옥으로 들어가자 새미가 얼른 달려 나왔다.

“오빠!”

“새미야, 잘 있었지?”

수한은 새미와 격한 포옹을 나눴다.

불과 몇 시간 떨어져 있었는데도 어찌나 반갑고 사랑스러운지 몰랐다. 용이가 눈치를 보더니 멀찍이 떨어져서 꼬리로 바닥을 땅땅 쳤다.

[부럽다. 나도 연애하고 싶어.]

미네르바가 쿡 하고 웃었다.

한 동안 안겨 있다가, 새미가 수한의 품을 벗어났다.

“그런데 얘는 누구야?”

새미의 눈이 미네르바를 보고 있었다.

수한은 빙긋 웃었다.

“인사해. 미네르바라고 해. 전함 임페리얼의 인공지능이야. 자세한 건 들어가서 얘기하자. 할 말이 많아.”

“응, 알았어.”

이미 모든 것을 공유하는 사이.

수한은 사장실에서 새미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지구가 미래에 제국이 된다는 추측에 새미는 눈을 치켜 떴다. 그러는 한편, 원래 시간대의 수한이 전함 임페리얼의 임시 함장이 되었다는 소리에 자기 볼을 긁었다.

“그게 정말이야? 신기하다. 원래 지구의 오빠는 외계 전함의 함장이 되고, 오빠는 제국 레벨 업 도우미 덕에 초능력자가 되는 거잖아. 지구에서 가장 큰 기업의 오너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고…… 이걸 보면 운명이라는 게 있나 봐.”

“그럴까?”

수한은 그저 웃어 넘겼다.

그냥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으니까.

승무원으로 지명할 이들과는 개별적으로 접촉했다. 수한 자신까지 포함해 10명이니 금방 끝났다. 다만 마엘른은 미드가르드 행성에 있어서 시간이 좀 필요했다.

승낙은 쉽게 받았다.

사정을 듣자 모두들 수락했던 것이다. 편지를 받은 마엘른도 쉬다 말고 지구로 달려왔다.

그 사이, 수한은 대형 기계 괴수를 이용해 일회용 기계용을 하나 만들었다. 우주 여행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는데, 루비 아이로 만들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승무원이 될 9명을 태우고 날아올랐다.

혹시나 싶어 제국인에게서 얻은 금속 구를 품에 안은 상태.

일행과 변이체들은 여행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기계용의 내부에 모인 채 창문으로 우주와 지구를 쳐다보았다.

[이야, 진짜 땅이 동그랗게 생겼네?]

[그래서 지구라고 부르나 봐!]

[무식이들. 땅은 원래 둥글게 생겼어. 우리가 살던 땅도 둥글었다구.]

변이체들이 자기들끼리 조잘조잘 떠들었다.

신이 난 건 새미도 마찬가지였다. 곰 변이체의 등에 올라타 같이 창문 밖을 쳐다보았다. 마엘른과 아르텔라도 신기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라오그뉴의 반응만 심드렁했다.

[우리 행성 신계에서는 이런 거 항상 보는데, 신기할 것도 없다 뭐.]

달까지는 꼬박 여섯 시간이 걸렸다.

수한이 칠채 성좌와 초음속을 동시에 썼는데도 그랬다. 우주 여행 기술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함장이 되고 기술을 전수 받으면 그걸 기계용에도 적용을 시켜봐야겠다. 그럼 속도가 더 빨라지겠지.

이윽고 달 뒷면으로 돌아갔다.

임페리얼의 옆면 격납고가 열렸다.

긴급 수리를 지시해서일까. 격납고는 원상 복구되어 있었다. 허공을 둥둥 떠다니던 잔해들도 제 자리를 찾았고, 생명 유지 장치도 작동 중이었다.

모두들 기계용에서 내렸다.

미네르바가 손짓을 하자, 공기 거품 같은 물체 여러 개가 가까이 다가왔다.

[저기 타세요. 함교로 가야 합니다.]

전함이 하도 크다 보니 이런 걸 이용하나 보다.

거품에 모두 몸을 실었다. 수한도 그러했다. 용이도 한쪽에 올라타고는 신기하다며 꼬리로 거품을 펑펑 쳤다.

도합 열한 개의 거품이 나란히 질주하기 시작했다. 용갑을 찬 수한 만큼은 아니어도, 어지간한 지구의 교통 수단보다는 훨씬 빨랐다. 더구나 거품이 방어막 역할을 해줘서, 빠르게 움직여도 어지럽거나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함교에 차례대로 들어섰다.

시체를 모두 치우고 의자도 원래 자리에 놓은 뒤였다. 깔끔하기 그지없는 게, SF 영화 속 우주 전함의 함교를 연상시켰다.

새미가 함교를 둘러보고는 감탄사를 토했다.

“이야, 신기하다! 영화 세트장 같아!”

오히려 다른 이들은 심드렁했다.

다들 외계인이거나 변이체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수한은 자기 자리로 가서 앉았다.

함교 중앙 부위. 높기도 가장 높았다. 은빛 의자가 놓여 있는데, 거기 앉자 함교 내부가 한눈에 들어왔다.

의자 앞에는 은빛으로 꿈틀거리는 빛의 구가 하나 있었다. 수한은 미네르바가 시키는 대로 빛의 구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빛의 구가 황홀한 빛을 뿜기 시작했다.

[바로 승무원을 뽑으시겠습니까?]

“그래, 그렇게 할게.”

[머릿속으로 승무원 지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함교 안에 있는 사람 대상으로 보직을 정해주시면 대상의 동의 후 임명 절차가 완료됩니다.]

수한은 빠르게 임명을 해나갔다.

어차피 중요한 직책을 주기는 불가능했다. 보조 수리 담당, 청소 담당, 음식 조리 담당 등 자질구레한 일이 전부였다.

지금은 투표권만 있으면 된다.

수한이 한 명씩 임명을 할 때마다 각자의 머리 옆에 홀로그램이 퐁퐁 떠올랐다. 다들 동의를 하자 하나둘 홀로그램이 사라졌다. 대신 수한의 눈앞에 1, 2, 3 하는 숫자들이 생겼다.

숫자가 9를 가리켰다. 여기 있는 이들 모두가 승무원에 임명된 것이다.

여기에 수한까지 더하면 최소 정족수는 맞춘다.

그 다음은 쾌속으로 처리했다.

바로 투표를 실시했다. 사전에 약속한 대로 수한을 만장일치로 뽑자, 미네르바가 수한에게 정중히 절을 했다.

[함장님의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수한은 어색하게 웃었다.

편법으로 함장이 된 터라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좀 쑥스러웠던 것이다.

어쨌든 좋다.

원하던 대로 함장이 되었으니, 달로 올 때 가져왔던 제국인의 금속 구를 조사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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