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븐 행성 연수 >
선제 공격.
수확을 기다렸다가 방어해서는 승산이 없다. 용신 클로아의 기억이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 전에 전력을 모아 공격하는 게 나을 터였다.
차원 도약기에서 차원 요새의 대략적인 정보를 뽑아냈다. 역시 제국의 요새답게, 엄청난 화력과 방어력을 가지고 있었다. 호위 함대의 전력도 상당했다.
게다가 우주 공간에 떠 있으니 그냥 차원문만 열고 쳐들어가는 방법은 쓰기 힘들었다.
우주 함대가 필요했다.
그것도 제국의 예측을 뛰어넘는 막대한 규모의.
헤라가 튜니에를 돌아보았다.
[기계용 군단을 어서 완성해야겠습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이미 7할 이상 완성했어요. 조금만 더 시간을 투자하면 됩니다.]
기계용만이 아니다.
전함 임페리얼의 설계도를 미네르바에게 얻은 뒤였다. 지금 세라프 종족의 기술로 임페리얼을 모방하는 게 가능했다. 행성 파괴까지 가능한 임페리얼의 주포라면 모를까, 다른 사양이 얼추 비슷한 우주 전함은 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더구나 기계용처럼 강력한 이능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기계용은 세라프 종족만 제작이 가능한데, 우주 전함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다.
백만 기계용에 우주 전함까지 더해지면 제국의 차원 요새는 함락시킬 것이라고 예측이 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
차원 요새를 함락해 봤자 중앙 컴퓨터를 해킹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었다. 곧 휘몰아칠 제국의 반격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겠지.
이들이 세운 계획은 간단했다.
차원 요새를 공격하여 점령한 후, 그걸 이용해서 제국 본성을 공격하자는 것.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작은 차원 도약기 하나 해킹하는데 거의 보름이 걸렸는데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요. 제국의 운영 체제와 보안 체계에 대해서는 파악했으니, 그걸 전문적으로 해킹하는 장비를 만들겠습니다.]
튜니에가 수한을 보았다.
[그대도 전함 임페리얼을 수리하여 작전을 준비해주시기 바랍니다. 원형 기계용과 결합시킨다면, 기계용 군단의 기함으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언제 작전을 실행하실 겁니까?]
[늦어도 1년 내에 시작하겠습니다. 그때까진 기계용 군단도 준비가 될 테니까요. 우주 전함들도 마찬가지고요.]
[좋습니다. 그 정도면 저도 준비가 끝날 겁니다.]
알려진 왕급 기계 괴수는 최소 10마리가 넘는다. 1년 동안 그것들을 사냥하면서 레벨을 올리고, 초능을 진화시키다 보면 Ex 등급에 도달할 것이다. 또한 9번째와 10번째 초능도 개발할 수 있겠지.
1년 후를 기약했다.
그 와중에, 수한은 미르 공격대의 연수 이야기를 꺼냈다.
여기 모인 세 최고 의원이 다스리는 헤븐 행성의 도시를 미르 공격대가 방문해도 되겠느냐는 거였다.
라이니엘이 해괴하다는 눈으로 수한을 보았다.
[연수라…… 그러도록 해라. 그대와 우리 종족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허락해야겠지.]
셋 다 동의해 주었다.
이것으로 날개 요새만이 아니라 청옥 도시와 백은 도시, 그리고 황금성도 방문하는 게 가능해진 것이다.
연수가 끝나고 나면 당분간 정신없이 원정을 다녀야 한다. 더구나 원정을 몇 차례 한 다음에는 차원 요새 공략 작전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어쩌면 수한은 물론 공격대원들 인생의 마지막 휴식이 될 수도 있는 외계 행성 연수였다. 되도록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곳을 돌아보게 해주고 싶었다.
용이, 미네르바와 함께 지구로 돌아왔다.
지구는 조용했다.
수한이 전함 임페리얼을 발견하고, 미네르바와 함께 헤븐 행성을 다녀온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평소와 같은 분위기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오빠, 왔어?”
“응. 별 일은 없었지?”
“항상 똑같지 뭐.”
수한이 없는 동안 새미는 지구에서 외계 행성 연수를 준비했다.
몇 가지만 조율하면 떠나도 되는 상황.
그런데 어째 새미가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외부에서도 우리 공격대 연수에 참가할 수 없느냐는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는데, 어떻게 하지?”
“그게 무슨 말이야?”
“헤븐 행성에 가기는 엄청 어렵잖아? 여기저기서 청탁이 들어오나 봐. 무슨 나라 대통령, 세계 10대 기업 CEO, 이런 사람들도 나한테 몇 번 연락오고 그랬어.”
“그래?”
하긴 헤븐 행성은 모든 관광지 중에서도 최고로 꼽혔다. 세라프 종족이 떼로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는 유일한 행성에, 이국적인 정경이 인상 깊기 때문이다. 모든 세상의 모든 물건이 모인다고 선전하는 차원 경매장도 한몫을 하고.
얼핏, 꽤 괜찮은 관광 상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잠깐. 수한은 고개를 저어 버렸다.
“나중이라면 모를까 이번은 우리 공격대만의 축제야. 외부인은 끼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아무래도 그렇겠지?”
“응. 그리고 연수 가더라도 내가 직접 동행하거나 세라프들에게 얼굴을 비춰야 돼. 원정 다니기도 바쁜데 길잡이 역할을 할 수는 없잖아?”
차곡차곡 준비를 해나갔다.
수한이 제일 바빴다. 헤븐 행성이 아닌 다른 곳은 백기수 이사나 다른 이사들에게 맡기면 되지만, 헤븐 행성만은 그럴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매일 같이 편지를 썼다. 숙박 시설을 예약하고, 도시 간을 이동하는데 쓸 거대 비행 접시도 섭외했다.
헤븐 행성으로 갈 미르 공격대 인원은 무려 2천 5백 명.
미르 공격대 인원 중 대부분이 헤븐 행성 연수를 희망한 것이다.
나머지 5백 명은 이미 헤븐 행성에 갔다 온 적이 있거나, 아니면 평소에 가보기를 소원하던 곳이 있는 경우였다.
마침내 2019년 10월 1일, 미르 공격대가 지구를 비우고 뿔뿔이 흩어졌다.
미드가르드 행성, 아틀란티스 행성, 쥬페르 행성, 노르헤임 행성, 케르베스 행성 등등.
라오그뉴는 쥬페르 행성에 갔다. 부모신은 물론, 자기 형제들도 보고 오겠다는 것이다.
수한과 새미, 아르텔라는 헤븐 행성으로 향했다. 다섯 변이체도 따라왔다.
날개 요새는 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차원 경매장을 이용하면서 몇 번이나 와봤기 때문이었다.
일단 호텔로 사원들을 데려갔다.
가장 큰 호텔을 통째로 빌린 참이었다. 1인 1실을 주기 위해 좀 무리를 했지만, 그 동안 번 돈이 워낙 많아 이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수한은 사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사흘 동안 여기서 머무를 겁니다. 볼거리는 꽤 있으니 마음껏 돌아다니세요. 아, 환전이 필요하신 분은 호텔 데스크에 우리 직원이 상주하고 있을 테니 문의하시고요. 헤븐 행성 환전소는 원화는 받지 않으니까, 공격대 차원에서 수수료 없이 환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드빌과 뉴팩이 수한을 잡아끌었다.
뭔가 싶어 보자 심각한 얼굴로 수한의 장갑을 가리켰다.
“자네 장갑, 지금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그렇지요. 이번에 루비 아이 잡을 때도 장갑 덕을 많이 봤습니다.”
수한은 빙긋 웃었다.
장갑이 없었으면 루비 아이와의 전투에서 여러 조합 초능을 그렇게 마음껏 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비단 이번만이 아닌 다음 왕급 기계 괴수 사냥에서도 유용하게 쓰이겠지.
그런데 두 드워프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는 듯했다.
뉴팩이 수한을 툭 쳤다.
“자네 지금은 속성 부여만 SSS급이지? 그런데 나중에 다른 이능들도 SSS급 되면, 지금 장갑으로는 버틸 수가 없어.”
“자네가 힘을 주입하기만 해도 장갑이 다 깨져버릴 걸?”
“우리가 가진 재료로는 장갑 하나에 보석 하나나 두 개 정도를 박는 게 고작이야. 뭐, 다른 장비를 더 만들면 8개든 10개든 만들 수가 있지만 기왕이면 장갑 하나로 끝장을 보는 게 좋지 않겠나?”
둘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경매장 가서 재료로 쓸 물건을 사자는 거였다.
수한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상당한 돈을 써야 할 듯했다. 그렇게 해서 SSS급 초능 8개를 감당할 장갑을 만든다면, 결코 손해는 아니었다.
아니, 8개가 아니다.
10개다.
힘의 결정만 충분히 공급 받으면 10개의 초능 모두 SSS급으로 올리는 것은 여반장이었다. 당연히 미리 준비를 해두어야 했다.
경매장으로 들어갔다.
드워프들은 아주 신이 났다. 온갖 진귀한 금속이며 보석, 마법 재료를 마구 구입했다. 어째 장갑 재료만 구입하는 게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만, 굳이 제지하지는 않았다.
도우미들이 수레에 구입한 물건을 산더미처럼 쌓아 가지고 들어왔다.
드워프들이 눈을 빛냈다.
“오오, 저거 봐! 이름만 들어본 금속들이 다 있어!”
“이건 심해진은, 저건 지저혈금, 여기는 남극한철…… 허, 영원금강도 있잖아!”
“창작욕이 불끈불끈 솟구치는구먼!”
드워프들이 난리를 부리는 사이, 수한은 경매장의 물건들을 살폈다.
뭔가 수한이 살 만한 물건은 없었다.
SSS급 물건은 딱 세 개가 있었다. 전부 수한과는 상성이 좋지 않았다. 따라온 새미와 아르텔라만 SS급 물건을 몇 가지 산 게 전부였다.
드워프들이 신바람을 내며 짐을 싣고 경매장을 빠져나왔다.
“기대하라고! 근사한 물건을 만들어 줄 테니까!”
“자네 힘을 모두 주입하면 SSS급 물건이 될 걸? 지금부터 작업 들어가야 되겠어!”
헤븐 행성 연수는 아무래도 좋다는 투였다. 다른 사원들은 모두 날개 요새 곳곳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드워프들은 영감이 떠올랐다며 호텔에 콕 처박혔다.
수한은 꽤 바빴다.
예전에 타이탄 공격대의 미드가르드 행성 연수에 참가했을 때와는 처지가 꽤 달랐기 때문이다.
그때는 일개 사원이었지만 지금은 공격대장 신분.
하나부터 열까지 수한의 손이 필요했다. 세라프들이 자신들과 동등한 위치로 인정하는 것은 수한밖에 없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거의 눈코 뜰 새 없이 여기저기를 뛰어다녀야 했다.
날개 요새에서의 체류를 끝내고 백은 도시로 이동했다. 백은 도시에서 적당하게 시간을 보낸 뒤에는 황금성으로 갔다. 학술원이 있는 청옥 도시는 그 다음 목적지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연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이제 하룻밤만 지나면 지구로 돌아가게 된다.
모두 날개 요새의 한 호텔로 모였다. 처음 헤븐 행성 연수를 시작했던 그곳이었다.
마지막 날이니만큼 수한은 통 크게 파티를 열었다. 종족 연합에서 유명한 음식과 술을 몽땅 구입했다. 상당한 돈이 들었지만, 이 정도야 미르 공격대가 올리는 수익에 비교하면 그저 푼돈이었다.
흥겹게 먹고 마셨다.
엘프 연주자가 현악기를 켰다. 드워프 악사가 신나게 북을 두드렸다. 인어들이 욕조에 몸을 담군 채 노래를 불렀다. 요정들이 허공에서 춤을 추며 흥을 돋웠다.
다섯 변이체도 그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거의 넋을 잃다시피 하며 그들을 쳐다보았다. 가브낙 행성의 조악한 노래만 듣다가 이런 합동 공연을 보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사장님, 한 잔 하시죠.”
백기수 이사가 불콰한 얼굴로 다가왔다.
수한은 한 잔을 받아 마셨다. 기수의 잔을 돌려준 뒤, 자기 잔도 기수에게 내밀었다.
“이사님께서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제 잔도 받으세요.”
“어이쿠, 감사합니다.”
“처음에 겨우 몇 명이서 시작했던 때가 눈앞에 선한데 벌써 이렇게 됐네요.”
정보부장 유미가 감회가 어린 눈빛을 했다.
알바트로스 신입사원 연수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이십대 중반이었던 유미. 이제는 서른이 넘어갔다. 영업부장인 동휴와 미래를 약속하기도 했다.
권준이 거친 손으로 거푸 술을 마셨다.
“햐, 이거 진짜 맛있네요. 좀 싸 가면 안 될까요?”
“하하, 가져갈 수 있는 만큼 마음대로 가져가세요. 제가 다 부담하겠습니다.”
“역시 우리 사장님!”
연구차장인 지훈은 벌써 취해서 곤히 자고 있었다. 매일 연구실에 박혀 있다 보니 술이 많이 약해진 모양이었다.
수한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마엘른과 라오그뉴만 빼고 미르 공격대 핵심 인원은 모두 모인 자리.
그들 앞에서, 수한은 한 가지 폭탄선언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