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225화 (226/254)

< 출격 [9권 끝] >

결혼식에는 가까운 지인들만 초대했다.

둘의 결혼식에 참가하고 싶어하는 이는 많았다. 대한민국은 물론, 지구 전체에 이름이 드높은 유명 인사였기 때문이다.

그들을 다 초대했다가는 예식장이 아니라 대형 경기장에서 결혼식을 올려야 할 판이다. 각계각층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몰려올 테니까.

장소는 강원도의 한 별장.

예전에 S급 초능들을 조합하기 위해 구입했던 곳이다. 그곳에 대략 서른 명 정도만 모여서 둘의 앞날을 축복해 주었다.

그들 앞에서 둘은 반지를 교환했다. 뜨겁게 입을 맞추자 열화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언뜻 장모가 손수건을 눈가로 가져가는 게 보였다.

“축하합니다!”

“행복하게 잘 사세요!”

“두 분 행복하세요!”

박수 세례 속에서 행진을 했다.

그 다음 부케를 던졌는데, 유미가 그걸 받았다. 부케를 던지는 새미나, 받는 유미나 모두 활짝 웃고 있었다.

음식은 조촐하게 차렸다.

외부에서 요리사를 데려오면 간단하겠지만, 둘이 직접 요리를 했다. 비록 음식의 종류도 적고 맛도 더 떨어지겠지만 하객들에 대한 감사를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야, 맛있는데요?”

“사장님께서 이렇게 요리를 잘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부사장님께 사랑 받으시겠어요!”

하객들은 즐겁게 떠들며 먹고 마셨다.

소고기 육회, 전복장, 갈치조림, 돼지고기 수육, 닭 백숙, 오리 구이, 각종 나물과 전, 구수한 된장찌개에 육개장, 여러 젓갈류 등등.

둘이 아침부터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음식이었다. 새미는 요리를 잘하지 못해서 수한이 주로 조리를 했다. 오랜만에 한껏 솜씨를 부렸는데, 음식을 맛본 하객들이 하나같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장인과 장모도 음식을 먹어보곤 감탄을 했다.

“자네 정말 대단하군. 어디 전문 한정식 집에 온 것 같아.”

“공격대가 아니라 식당을 차렸어도 성공했겠어!”

“하하, 맛있게 드셔서 감사합니다.”

명한과 기한은 쉬지 않고 음식을 날랐다. 일반인 서른이 왔어도 두 명 가지고는 손이 달릴 판인데, 몇몇 대식가들 때문에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용이가 한쪽에 앉아 꼬리로 바닥을 땅땅 쳤다.

[여기 고기 더 줘!]

“어휴, 바빠 죽겠는데! 네가 좀 갖다 먹으면 안 돼?”

“어어, 형. 그러면 안 돼. 그럼 저 돼지 둘이서 다 먹어치울 걸? 다른 분들 먹을 게 없어져.”

“끙, 알았어.”

명한은 투덜거리면서도 육회를 한 아름 꺼냈다. 언뜻 보기에도 수십 인분이지만, 이걸로도 이 대식가들을 만족시키기란 요원한 일이었다.

꿍!

탁자에 내려놓자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명한은 한 손으로 이마에 난 땀을 훔쳤다.

“좀 천천히 좀 먹어라, 응?”

[생각해 볼게. 어어?]

용이가 우아하게 대꾸를 하다 말고 기겁했다.

옆에 앉아 있던 라오그뉴가 육회 더미에 머리를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용이가 라오그뉴의 머리를 때렸다.

[비겁해, 이 못 생긴 사자!]

[그러게 누가 말하고 있으래?]

둘은 경쟁하듯 육회를 먹어치웠다.

그 앞에 수북히 쌓아뒀던 돼지고기 수육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기한이 눈치 좋게도 그것들을 채워놓자, 라오그뉴가 고맙다고 꼬리를 살랑였다.

대식가는 이 둘만 있는 게 아니었다. 드빌과 뉴팩, 두 드워프도 상당했다. 특히 닭과 오리 요리를 마음에 들어 해서, 맥주와 함께 미친 듯이 먹어치우고 있었다.

새미가 그쪽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저분들은 오늘도 많이 드시네.”

“그러게. 육류를 많이 준비해 둔 보람이 있어.”

“부족하지는 않겠지?”

“응. 조금 남겠는데?”

수한은 인사를 다니면서도 계속 요리를 하고 있었다.

만들어둔 음식을 덥혀서 내놓는 것은 한계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자칫 성의 없다고 보일 수도 있는 문제였고.

그나마 모두 저들처럼 많이 먹는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대표적으로 마엘른과 아르텔라가 그랬다. 마엘른은 비빔밥 한 그릇에 나물 몇 종류로 만족했다. 아르텔라도 오리 구이 하나를 먹어 치우더니 식후 기도를 올렸다.

이윽고 준비했던 음식이 모두 바닥났다.

수한과 새미는 요리를 하며 틈틈이 음식을 집어먹었다. 명한과 기한도 눈치껏 끼니를 해결한 모양이었다.

하나둘 몸을 일으켰다.

“두 분 축하드립니다.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조심히 가세요. 서울까지는 꽤 먼데, 운전 조심하세요.”

“하하, 걱정하지 마세요.”

“신혼 여행은 어디로 가세요?”

“가까운 일본을 다녀올 겁니다. 다음 주부터는 정상 출근할 예정이고요.”

“저런……”

어느덧 SS급 이능력자가 된 한시영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늘이 1월 15일 수요일.

주말까지라고 해봐야 4일에 불과하다. 신혼 여행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짧은 시간.

어쩌겠나.

사실 4일의 여유를 내는 것도 꽤 무리하는 거였다. 몇 번이나 언급했듯이, 차원 요새 공략 작전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장인이 다가와 수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리도 이만 가보겠네. 비행기 시간이 아슬아슬하거든.”

“예, 장인어른. 살펴 가십시오.”

“이 서방. 그럼 다음에 보세.”

“예, 장모님.”

이윽고 수한의 가족들과 일행을 제외한 모든 하객들이 별장을 떠났다.

북적북적하던 별장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용이가 수한에게 다가와 몸을 비볐다.

[이제 뭐 할 거야?]

[부산 가야지. 저녁에 배 타고 일본 갈 거야.]

[나도 데려갈 거지?]

[안 데려갈 건데?]

[거짓말!]

일본 여행은 수한과 새미, 둘만 오붓하게 가기로 계획을 했다. 가족 여행이 아니라 엄연히 신혼 여행이니까.

용이가 같이 가겠다고 떼를 썼다. 별장에 비장해 둔 아이스크림 한 통을 연 다음에야 달랠 수가 있었다. 또 나중에 세상이 평화로워지면 길게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라오그뉴가 자기 앞발을 핥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어리다니까. 어디 신혼 여행을 따라가려고 그래? 넌 집이나 지키고 있어.]

[흥!]

용이가 콧방귀를 뀌었다.

너무 늦지 않게 별장에서 출발했다.

중앙 고속 도로를 타고 쭉 내려갔다. 대구를 지나 경부 고속 도로로 접어들었다. 남쪽으로 계속 달리자, 어느새 부산에 도착했다.

꼬박 4시간이 걸렸다.

평일 오후라 차는 막히지 않았지만, 거리가 워낙 멀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좀 쉬기도 했고.

시간은 충분했다. 차를 인근 주차장에 대놓고 여유롭게 배에 올랐다. 일본의 큐슈 지역을 4박 5일 일정으로 여행하는 크루즈 유람선이었다.

여행은 즐거웠다. 어딜 가기만 하면 용이는 물론 온갖 사람들이 달라붙었는데 그런 게 없어서 좋았다.

다만 좀 귀찮을 때가 있었다.

같은 크루즈 유람선에 탄 관광객들이 둘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어머, 혹시 미르 공격대의 공격대장님이랑 부공격대장님 아니세요?”

“맞습니다.”

“엄마야! 어떻게 해!”

이능 장비는 거의 다 벗어둔 상태였다. 하지만 워낙 유명하다 보니 금방 알아본 것이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굳이 안 될 것은 없다 싶어서 그러라고 했다. 대신 SNS나 인터넷에 알리는 것은 여행이 끝난 다음으로 미뤄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도움도 좀 받았다. 새미와 온갖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은 것이다.

관광객들이 희희낙락했다.

“나중에 친구들한테 자랑할 거예요! 두 분이랑 사진을 찍다니, 친구들이 엄청 부러워하겠어요.”

“내 동생도 데리고 올 걸. 엄청 오고 싶어했는데……”

“그러게 말이야.”

크루즈 여행이다 보니 아침에 상륙한 뒤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고, 저녁에 들어와 식사를 하고 잠드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황홀한 시간은 빨리도 흘러갔다.

중앙 고속 도로를 달려 부산으로 내려온 게 바로 어제 같은데, 벌써 여행의 마지막 날이 다가온 것이다.

크루즈 여객선도 일본을 떠났다. 대한 해협을 건너 부산을 목전에 두었다. 해가 진 뒤여서 바다 위에 꼭 밤하늘의 별들이 내려와 있는 듯했다.

“예쁘다!”

새미가 그걸 보고 감탄했다.

수한도 옆에서 그걸 보았다. 어둠 저 편에 무수히 많은 조명이 빛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그럴 듯한 볼거리였다.

부드럽게 새미의 어깨를 감쌌다.

새미가 수한의 품에 안겨 들었다.

여행의 끝.

이제는 부부가 된 둘이다.

옅은 조명 아래서, 둘의 입술이 서서히 겹쳐졌다.

월요일에 바로 공격대 사옥으로 복귀했다.

미네르바가 수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은 즐거우셨습니까?]

오랜만에 보는 미네르바였다.

줄곧 달에 머물러 있었다. 전함 임페리얼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수한이 용이와 함께 가끔 방문하여 돕긴 했는데, 사실 그럴 필요까지도 없었다. 기술만 전수해줘도 미네르바가 알아서 처리했다.

그래도 수한이 방문하는 것은 필요했다. 전함 임페리얼을 초거대 기계용으로 개조하기 위해서였다.

기계 괴수를 변형시킨 것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이지는 못해도, 수한의 초능을 발현시키기만 해도 좋지 않겠나. 행성 파멸급 주포에 뇌룡 숨결이나 근원 부여를 중첩해서 쏘면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 벌써부터 오금이 저려 온다.

하지만 전함 임페리얼은 용기사로 변형시키지 않았다. 인간형으로 변형시켜 봤자 전투 효율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별도의 용기사를 운용하는 게 낫다.

수한은 현재 미르 공격대에서 운용하는 용기사를 떠올렸다.

지난 1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역작.

300레벨로 올린 기계용 제작 기술을 총동원한 작품이었다. 왕급 기계 괴수의 무기 8가지를 장착하고 있고, 가슴에는 4개의 동력핵이 박혀 있었다.

정사면체 형상으로 연결된 동력핵들.

자연히 용기사의 출력도 높아졌다. 8가지 무기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고, 힘이나 민첩, 방어막 모두가 강해진 것이다.

크기는 대형 기계 괴수보다 조금 더 큰 정도.

더구나 머리는 제국의 차원 도약기로 만들었다. 방어력이 상당하고 비상 탈출할 때 차원 도약도 가능하니, 앞으로 유용하게 쓰일 터였다.

이 정도면 됐다.

차원 도약기에서 뽑은 정보와 대조해 보면, 전함 임페리얼 정도면 제국 측에서도 무척 강력한 전함이었다. 본성의 방어군이라면 몰라도 차원 요새 정도는 충분히 당해낼 수 있었다. 세라프 종족의 기계용 군단이 더해지면 더더욱 그렇다.

그건 그렇고 차원 요새 공격에는 몇 명이나 가야 할까.

당연히 지구의 유력 이능력자는 모두 참가해야 할 터.

사전에 얘기가 다 되어 있었다. 전 세계의 SS급 이상 이능력자는 죄다 참가하기로 했다.

상당히 많았다.

총 70명.

SS급 이상 이능력자가 이렇게 많나 싶었다. 5년 전만 해도 겨우 열 명 정도에 불과했는데, 이능 각성 보조 장치가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한 것이다.

지구의 이능력자들만이 아니었다.

다른 행성의 이능력자들도 대거 탑승했다.

종족 연합에서도 준비를 한다고 했지만, 우주 전함을 만든 곳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있다고 해도 기술력이 뒤떨어져 도저히 전투를 치르지 못할 정도였다.

어차피 자리는 많았다. 수한은 흔쾌히 외계인 이능력자들을 받아들였다.

개중 아는 얼굴도 꽤 있었다.

[대장님, 오랜만입니다.]

[할리온님! 이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네요! 아이는 잘 크고 있습니까?]

[하하, 이제 많이 컸습니다. 검술을 가르치기 시작했지요. 이능 적성도 상당한 게, 나중에는 강력한 이능력자가 될 것 같습니다.]

[미리 축하드립니다.]

케르베스 행성의 고양이 인간들이 도착한 것이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하품을 하며 땅에 엎드려 있던 라오그뉴가 귀를 쫑긋했다.

[엄마! 아빠!]

[라오그뉴!]

라오그뉴의 부모신도 임페리얼에 탑승했다.

백금 사자 갈레옹과 밤표범 아조떼.

아름다운 몸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라오그뉴도 본신으로 화신하여 둘에게 몸을 비볐다.

그 둘만이 아니었다.

쥬페르 행성의 동물신이 몽땅 출동했다. 미드가르드 행성과 노르헤임 행성에서도 이능력자들이 도착했다.

그렇게 전함 임페리얼에 탑승한 이능력자의 수는 무려 5천.

다른 우주 전함이나 세라프 종족의 기계용에 탄 이들까지 합치면 1백만을 넘어갔다. 각 행성을 지킬 최소한의 전력만 남겨두고 모두 합류한 것이다.

가공할 만한 전력.

수한은 자신감을 가졌다.

이 정도면 행성 몇 개쯤은 간단히 박살내 버릴 테니까.

집결지는 다름 아닌 헤븐 행성.

세라프 종족도 총출동한 참이었다. 헤븐 행성을 방어할 최소한의 병력만 남기고, 모두 원정 준비를 끝마쳤다.

세계수호자 실르엔이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출발하지요.]

수한은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무수히 많은 시선이 집중되는 게 느껴졌다.

지금 이 막대한 군세의 총사령관은 다름 아닌 수한.

그럴 만도 했다.

겨우 10명밖에 안 되는 Ex급 이능력자 중의 한 명이며, 전함 임페리얼의 함장이고, 최근 무수한 무명(武名)을 날린 장본인이니까.

더구나 정신 계열 초능을 이용해 거대한 군세를 한몸처럼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수한의 특기 아닌가.

1천만이면 수한 혼자서는 불가능하지만 의식 군주 라이니엘의 도움을 받으면 될 일.

수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출발합시다.]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았다.

이곳은 헤븐 행성의 위성 중 하나.

거기 설치된 원형 문이 최대 크기로 벌어져 있었다. 워낙 직경이 커서 전함 임페리얼도 충분히 통과하는 게 가능했다.

원형 문이 빛을 뿜었다.

평상시의 붉은 빛이 아니다.

청색 빛.

제국의 것과 흡사했다.

그 빛이 물결처럼 출렁이며 원형 문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제국의 차원 요새와 연결되는 차원문.

수한은 임페리얼을 조작했다.

육중한 전함이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내 가속도가 붙으며, 푸른색 원형 문을 향해 달려들었다.

수많은 우주 전함과 1백만 기계용들이 그 뒤를 따랐다.

항상 제국에게 당하기만 했던 종족 연합.

드디어 반격을 시작하는 것이다.

[9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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