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229화 (230/254)

< 악전고투 -1- >

셋 다 모양이 조금씩 달랐다.

둘은 날개가 있었다. 꼭 천사와 악마를 연상시켰다. 하나는 날개가 없이 추진 장치만 달렸는데, 다른 기계병에 비해 짜리몽땅한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천사는 길쭉한 검을, 악마는 도끼창을 들었다. 난쟁이 기계병은 짧은 대포 두 문으로 무장했다.

수한은 그들을 보고 바짝 긴장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세 명 모두 10가지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 3개는 유독 강하게 느껴지는 게, 초월 진화를 끝마친 게 분명했다.

수한은 초월 진화한 초능이 둘, 7차 진화한 게 일곱이니 셋 모두에게 한 발씩 뒤처지는 셈.

하나만 나와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전력을 다해야 비등비등하게 싸울 것으로 예측되었다. 그런데 셋이나 되니,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명약관화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여기에 수한 혼자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세라프 종족의 최고 의원들이라면 저들과의 싸움에 충분히 도움이 된다.

문제는 시간.

급한 김에 이들만 왔나본데, 시간이 지나면 분명 후속 부대가 따라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칠 수 없게 된다.

수한은 최고 의원들과 의견을 나눴다.

[시간을 끌어야겠습니다.]

[얼마면 됩니까?]

[5분이면 충분합니다. 그 정도만 시간을 끌어도 임페리얼이 차원 도약을 실행할 겁니다.]

[우리가 나서야겠소.]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시간을 끌다가, 용기사의 머리에 박아놓은 개인용 차원 도약기로 임페리얼에게 합류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종족 연합이 많은 준비를 했지만, 몇 가지는 끝내 재현하지 못한 게 있었다.

제국의 개인용 차원 도약기.

아무리 노력을 해도 차원 도약기를 일정 크기 이하로 줄이기가 힘들었다. 시간만 충분했다면 가능했을 텐데, 1년이란 시간은 짧고도 짧았다.

그 때문에 지금 연합군에서 차원 도약이 가능한 것은 전함 임페리얼과 수한의 용기사, 둘 뿐이었다. 그래서 수한이 최고 의원들과 함께 하기로 한 것이다. 최고 의원들을 도마뱀 꼬리처럼 남겨놓고 도망칠 수는 없으니까.

수한은 몸을 일으켰다.

부함장인 새미에게 당부했다.

“나랑 최고 의원들이 저들을 상대하고 있을 테니까, 임페리얼을 타고 오고스 항성계의 소행성 지대에 피해 있어. 우리도 곧 합류할게.”

“오빠, 조심해야 돼.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빌레 항성계 암흑 성운으로 숨을 테니까, 그쪽으로 와.”

“그래, 알았어.”

수한은 용이에게 손을 뻗었다.

용이가 용갑으로 변신했다. 수십 조각으로 나뉘어 수한에게 날아오더니 전신을 빈틈없이 감쌌다.

함교에 모여 있던 이들의 눈이 집중되었다.

수많은 SSS급 이능력자들.

그 중에서도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새미와 라오그뉴, 마엘른은 물론 아르텔라까지.

그들과 눈을 한 번씩 마주친 후, 가볍게 몸을 날렸다.

함교는 임페리얼 중심에 있었다. 그 바로 밑에 수한의 개인 격납고가 존재했다. 평소에는 함장으로 작전을 지휘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출격해야 했기 때문이다.

용기사의 머리로 잽싸게 날아들었다.

용이가 용갑 형태를 벗어나 용기사와 융합했다. 수한의 절대 의식으로 서로의 정신을 연결한 채, 우주 공간으로 뛰쳐나갔다.

수한의 뒤를 9명의 세라프들이 따라왔다.

갖가지 색깔의 날개를 가진 이들.

세라프 종족의 최고 의원이자, Ex 등급 이능력자들이었다. 비록 두셋이 모여야 제국의 초월 진화자 하나를 간신히 감당하는 수준이지만, 꽤 도움이 될 터였다.

함교에서 논의를 하고 나선 것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 세 기계병이 임페리얼 가까이 다가왔다.

난쟁이 기계병이 손을 하나 들어올렸다.

뭉툭한 대포가 임페리얼을 겨눴다.

번쩍!

빛이 쏟아졌다.

그냥 빛이 아니다. 어떤 강렬한 힘이 어려 있었다.

근원 부여, 혹은 그에 준하는 속성 부여 초능의 초월 진화 형태 초능.

수한은 급히 오른쪽 무릎을 내밀었다. 장착해둔 어둠 침식포가 낮게 진동했다.

별안간 공간 저 편에서 시꺼먼 어둠이 출현했다. 공허한 우주 공간을 침식하며 천멸 속성이 터지자, 힘차게 뿜어지던 빛이 거기 휘말렸다.

기계병들이 용기사를 주목했다.

천사가 앞으로 조금 나섰다.

[네가 그 야만인이냐? 놀랍군, 야만인 주제에 초월 진화에 성공하다니……]

[그게 그렇게 놀라운 일이냐?]

[순혈 제국인 중에서도 초월 진화까지 이른 초능력자는 드물다. 하물며 수확 행성에서 초월 진화자가 출현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세라프 종족의 최고 의원들이 용기사 주변으로 날아왔다. 저마다 기세를 돋우며 세 기계병을 노려보았다.

그 장면을 보자, 무슨 생각을 한 것인지 천사 기계병에 탄 제국인이 수한에게만 정신 감응을 날렸다.

[너에게 제안할 것이 있다.]

[제안?]

[그렇다. 아무리 너희들이 발버둥을 친다 해도 우리를 당할 수는 없다. 제국의 세력은 무한하고, 초능력자의 수는 별보다 많으니까. 부질없는 저항을 멈추고 항복하라. 너와 네 친지들의 신변을 보장하고, 너를 우리 칼라트라에서 중용하겠다. 장담하건대, 섭섭하지 않게 대우해주마.]

정신 감응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저장소를 박살낸 것은 아무래도 좋다는 투였다.

수한은 잠깐 침묵했다.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은근한 목소리로 다시 정신 감응이 날아들었다.

[원한다면 네 고향 행성까지 보존해주겠다. 다른 행성을 수확하고 나면 네 고향 행성이 위치한 시간대 차원은 무주공산이 될 터. 네 고향 행성은 무한히 번성할 것이다. 어떠냐?]

[지구를 보존해준다고?]

[그렇다. 그 정도는 내 직권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아니, 네가 항복하기만 하면 너에게도 그 정도 권한은 생기겠지. 너에게도 나쁜 소리는 아닐 터. 어떠냐?]

수한은 짐짓 고민하는 척을 했다.

무슨 일이냐고 세라프 종족 최고 의원들이 묻지만 대답하지는 않았다. 제국인들이 자신을 주시하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세 제국인은 많은 것을 약속했다.

군단장 직위, 최신형 기계병, 개인용 거대 전함, 파트라에 위치한 거대 저택, 미개척 행성 소유권까지.

수한은 관심이 있는 척 그들의 말을 들었다. 그러다 임페리얼이 차원을 도약해 도망친 다음에야 진심을 드러냈다.

[그럴 수는 없다.]

[어째서냐? 설마 저 비천한 노예들을 믿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저따위 노예들 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다.]

수한은 코웃음을 쳤다.

[너흰 내 원수다. 그런데 나보고 항복하라고? 택도 없는 소리!]

수한은 지금도 똑똑히 기억했다.

대피소를 덮친 기계 괴수. 그 기계 괴수가 뿜어낸 파괴 광선이 수한의 부모님을 덮치던 장면을.

기계 괴수가 막 거대한 발을 들어 수한과 동생들을 덮치려고 할 때, 붉은 날개의 세라프가 날아들어 수한 형제들을 구했더란다.

그런데 수한이 세라프 종족을 배신하고 제국에 항복할 수가 있을까?

불가능하다.

수한의 의지가 세 제국인들에게 쏘아졌다.

천사 기계병에 탄 제국인이 입맛을 다셨다.

[아깝게 됐군. 어쩔 수 없지. 좋다. 네 소원대로 해 주지. 영혼을 쥐어짜 힘의 근원을 만들고, 육체는 기계 괴수에 처넣어 네 고향 행성을 공격하게 만들겠다.]

[흥, 과연 그게 쉽게 될까?]

수한은 용기사의 손을 펼쳤다.

광선 병기가 뛰쳐나왔다. 흡사 쌍검을 다루는 듯 길게 늘어졌다. 특히 오른손에는 드라고나가 부착되어 회색의 음울한 빛을 빛냈다.

제국인이 어이없다는 감정을 내비쳤다.

[사병급 무기를 몸에 덕지덕지 발랐다고 우릴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 거냐? 어처구니가 없군. 좋다, 상대해주지. 네가 아는 세계가 얼마나 작고 보잘 곳 없는 곳인지 네 영혼과 육신에 똑똑히 새겨주마.]

세 기계병들이 한꺼번에 나섰다.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수한은 스스로의 정신에 방벽을 세웠다. 제국인들이 정신 공격을 하지 못하도록 방어하면서, 절대 의식으로 세라프 종족과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저것들을 당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기회를 봐서 용기사 안으로 들어오세요. 바로 차원 도약을 하겠습니다.]

[힘들 것 같다. 저들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차원 전체가 고정되어 있다.]

[예?]

[천사의 날개를 살펴보시게. 이상한 파장이 뿌려지고 있네.]

제국인들도 멍청하지는 않았다.

수한이 대화를 하며 시간을 끄는 사이, 자신들의 초능을 이용해 더 이상의 차원 도약은 방지한 것이다.

셋 중 최소한 천사 기계병은 박살내야 차원 도약이 가능해질 터.

일전을 치르는 게 불가피했다.

수한은 세라프들에게 속삭였다.

[제가 천사 기계병을 맡겠습니다. 정면 대결로 이기기는 힘들 것 같으니, 어떻게든 날개를 부수겠습니다. 여러분은 최대한 시간을 끄시기 바랍니다.]

[1대 1로는 어려울 거요. 내가 돕겠소.]

신속 계열 Ex급 이능을 가진 혜성의 부름, 이쏘니아가 말했다.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 기습하겠다나.

수한은 살짝 심호흡을 했다.

시선을 천사 기계병에게 고정했다. 이쏘니아는 스르륵 제 모습을 감추고, 다른 세라프들은 두 패로 나뉘었다.

3대 10의 결전.

수한 자신은 천사 기계병만 신경 쓰면 된다.

천사가 검을 들어올렸다.

파멸적인 어떤 힘이 검에 어렸다.

수한은 그것을 보고 나직이 신음을 흘렸다.

작은 별 정도는 단번에 쪼개버릴 힘이 용솟음치고 있었다. 저기에 직격당한다면 무슨 수를 써도 소용없었다. 단번에 용기사가 두 조각 날 터였다.

천사가 용기사에게 검을 겨눴다.

주위의 공간이 용기사를 꽁꽁 얽어맸다. 팔다리는 물론,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다. 강하게 뻗어 나오던 광선 병기도 주춤주춤 흩어졌다.

천사가 날개를 펼쳤다.

추진 장치가 발동하며,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용기사에게 도달했다.

검이 용기사의 심장을 찔렀다.

실로 위험하고 위급한 상황이지만 다 믿는 게 있었다.

수한의 눈이 번쩍 빛을 뿜었다.

용기사의 차원 위상을 달리했다. 몸을 세차게 흔들며, 오히려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꼭 유령 같았다.

용기사는 천사의 공격을 가뿐히 돌파했다. 몸을 얽어매던 어떤 힘도 뿌리쳤다. 천사의 뒤를 점한 다음, 몸을 돌리며 원래 차원 위상으로 돌아왔다.

절호의 기회.

수한은 용기사에 장착한 무기를 몽땅 가동했다. 한편, 새롭게 얻은 용신 강림 초능을 발현했다.

구우우우웅.

용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그림자가 용기사 위에 내려앉았다. 용기사의 모든 능력이 증폭되며, 장착된 무기에도 용의 힘이 깃들었다.

동력핵이 힘껏 울부짖었다.

강력한 공격이 휘몰아쳤다. 두 손바닥에서 적색 광선이 뛰쳐나가고, 공간 절단검과 천공 소멸창이 날아들었다. 두 무릎에서는 어둠 침식포와 무한 진동포가 포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냥 무기로만 공격했으면 막혔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공격 하나하나에 여러 속성이 깃들어 있었다. 혼돈이나 천멸, 지옥은 물론 광명 속성과 암흑 속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여기에 용의 힘이 더해졌으니, 그 위력은 어마어마하기 짝이 없었다.

천사가 경호성을 질렀다.

[놈!]

천사의 몸이 찬란한 광채를 뿜었다.

기세 좋게 날아가던 공격이 몽땅 사그라졌다. 흡사 햇살에 녹아내리는 봄눈을 보는 듯했다.

제국인이 자신을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주변 공간이 다시 용기사를 억죄었다.

두 번 당할 줄 알고?

수한이 그 힘의 정체를 역으로 해석한 뒤였다. 그 힘과 반대되는 힘을 용기사에게 부여했다. 그러자 힘이 중화되며 용기사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졌다.

천사에게서 차가운 감정이 전해졌다.

[제법이다만……]

별안간, 천사의 등에서 빛의 날개가 솟구쳤다.

한 쌍, 두 쌍, 세 쌍……

기존의 날개까지 더하여 총 다섯 쌍.

10개.

날개를 모두 펼친 채, 맹수가 포효하듯 거세게 소리쳤다.

[그래봐야 햇병아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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