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231화 (232/254)

< 탈출 -1- >

세 제국인은 정신 공격을 퍼부었다.

수한이 절대 의식을 초월 진화시켰다면 방어는 물론 반격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한은 근원 부여와 세계 투시를 선택했고, 정신 공격에 취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으으으.”

수한은 안간힘을 다해 견뎠다.

지옥 왕관을 쓰고 있는 탓에 어찌어찌 스스로의 정신을 방어하는데 성공했다. 악마 기계병에 타고 있는 제국인이 초월 진화한 정신 계열 초능으로 공격했어도 그러했다.

제국인들이 혀를 찼다.

[아깝군.]

[세뇌할 수 있었으면 유용하게 써먹었을 텐데……]

[어차피 초월 진화자니 언젠가는 세뇌가 풀렸을 겁니다. 이 녀석 덕분에 특급 수확물들을 모두 사로잡았으니 그것으로 만족하시지요.]

천사는 손을 뻗어 수한을 움켜쥐었다.

다시 정신 공격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세뇌가 아니라 그냥 압도하려는 거였다. 겨우 버티던 수한도 그 공격에는 견디지 못하고 끼무룩 기절하고 말았다.

악마가 어디론가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푸른 차원문이 열리며 큼지막한 함선 한 척이 튀어나왔다.

제국의 감옥함.

특히 수한처럼 강력한 초월 진화자들을 감금하는데 특화되어 있었다.

천사 기계병에 탄 드미트리가 못 미덥다는 투로 말했다.

[또 놓치는 것은 아니겠지? 저번에도 잉트리그의 군주를 잡았다가 몸 성히 돌려보낸 적이 있지 않느냐.]

감옥함의 함장이 손 사레를 쳤다.

[걱정 마십시오. 예전의 감옥함이 아닙니다. 아무리 초월 진화자라도 차원 격리로 영육을 분리시키면 감당하지 못합니다. 저번에는 잉트리그의 군주가 저희 함 전용의 차원 위상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뒤라 해제하고 도망친 건데, 이젠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실시간 대응 차원 격리 설비를 도입했으니, 만약 차원

격리를 해제한다면 새로운 차원 격리를 실행하면 그만입니다.]

[흠, 좋다. 믿겠다.]

초월 진화자쯤 되면 아차원 정도는 간섭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초당 수십 번씩 차원 위상을 달리해버리면 어쩔 것인가. 초월 진화자건 뭐건 짓눌린 채 죽음을 기다려야만 한다.

그 설비가 감옥함에 새로 도입되었다고 하니, 믿고 맡겨도 좋을 것이다.

드미트리는 수한을 감옥함에 넘겼다.

수한은 용갑째 감옥함의 가장 깊은 곳에 봉인되었다. 간수들은 진귀한 물건이라며 용갑을 탐냈지만 감히 손을 대지는 못했다. 그랬다가 결박이 풀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차원 격리 장치가 작동했다.

대상의 영혼을 포착하고, 육체에서 격리시키는 최첨단 봉인 장치.

푸른빛이 기절한 수한에게 쏟아졌다.

수한이 몸을 꿈틀거렸다.

“으으으……”

차가운 기운이 전신을 엄습했다.

수한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아니, 강제로 의식이 깨어났다. 영혼이 육체로부터 괴리되며, 그 섬뜩한 상황을 흠뻑 느끼게 되었다.

오감이 차례차례 사라졌다.

어둠이 내려앉고, 침묵이 세상을 뒤덮었다. 촉감도 느낄 수 없게 되고, 후각과 미각이 소실되었다.

나중에는 몸에 입은 용갑의 존재감도 사라졌다.

오직 섬뜩한 공허만 느낄 수 있었다.

그마저도 사라졌다.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도 감각할 수가 없다.

우주의 미아가 된 것처럼, 차원의 틈새에 갇힌 채 둥둥 떠다니기만 했다.

대체 이게 뭐냐?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방금 전 허무의 검을 맞고 용기사가 소멸한 후, 정신 공격을 방어하던 것까진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뒤로 뭐가 어떻게 돌아간 거지?

모르겠다.

혹시 죽은 걸까?

이미 죽어서 저승에 와 있는 걸까?

그럴 가능성도 충분했다.

수한은 필사적으로 자신을 유지했다.

아무런 자극도 없는 이 거대한 공허가, 수한의 영혼을 짓눌렀다.

이대로 가다간 존재가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떻게 하지?

세계 투시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잘 되었다고 무한한 공허가 밀물처럼 몰려들었다.

더구나 생각 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영혼이 육체와 격리된 탓에, 뇌를 써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한이 초월 진화자가 아니었다면, 이 거대한 공허에 짓눌려 생각하기는커녕 신음도 내뱉지 못했을 것이다.

수한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의식이 단절되는 것을 감내하며 궁리하고 또 궁리했다. 그 끝에 한 가지 결론을 도출했다.

믿을 거라고는 역시 근원 부여와 세계 투시뿐.

지금까지 두 초능에 대해 많은 것을 연구했지만, 여전히 수한은 두 초능에 대해 아는 바가 적었다. 근원 부여는 확장된 속성 부여처럼 사용했고, 세계 투시도 다른 투시 계열 능력과 똑같이 쓰고 있었다.

여기에 뭔가 탈출구가 있을 거라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해 보자.’

시작은 세계 투시부터.

그냥 사용하면 아무 것도 보이는 게 없다.

생각을 전환했다.

주변을 보려고 하는 게 아니라, 수한 스스로를 투시했다.

육체나 미래, 기억 따위가 아닌 그 너머, 영혼 자체를 들여다보았다.

공포에 질린 한 존재가 보였다.

강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그렇다고 약하냐고 하면 그렇지 않은 실로 평범한 영혼.

그 영혼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참 생경한 경험이었다.

수한은 자신도 모르게 그 영혼에게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괜찮아괜찮아……]

메아리가 아득하게 울렸다.

수한은 두려움으로 점철되어 있던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더욱 자세히 스스로를 관찰했다.

영혼 주변에 뭔가 이상한 것이 보였다.

옅은 괴리감.

육체와의 접속을 저해하는 어떤 것이 존재했다. 마치 둥근 막처럼 영혼을 싸고 있었다. 저것 때문에 모든 감각이 차단된 것 같았다.

그것에 정신을 집중했다.

처음에는 정체를 파악하지 못했다. 뭔가 뒤틀려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이게 뭐라고 딱 짚어내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그러다 퍼뜩 깨달았다.

‘차원 위상이 변형되어 있구나!’

차원 요새에서 보았고, 수한이 활용하곤 하는 차원 위상 변형과 비슷했다.

물론 조금 다르기는 하다. 그래도 큰 맥락은 같았다.

수한은 세계 주시로 더욱 주의 깊게 그 막을 살폈다.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는데, 육체와 영혼을 분리시키고 둘의 차원을 다르게 만들어 놓았다.

이걸 해제할 방법이 없을까?

수한은 차원 괴리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처음에는 일종의 막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영혼과 그 밖의 차원이 달라서 그런 식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영혼이 위치한 지점의 차원만 근방과 합치시키면 된다는 이야기인데……

뭐야, 그럼 간단하잖아?

차원 위상을 부여하는 것은 수한에겐 익숙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했던 일이니까.

물론 수한이 잘못 파악한 것일 수도 있다. 뭔가 더 악독한 술수가 숨어있을 가능성도 존재했다. 영혼과 육체가 같은 차원 위상에 놓인다고 해도, 영혼이 성공적으로 육체에 안착한다는 보장도 없고.

위험하긴 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해보자.’

당연한 결론이었다.

이대로 붙잡혀 갔다가 무슨 꼴을 당할 줄 아나. 모험을 해서라도 지금 상황을 벗어나야 했다.

신중하게 시도했다.

스스로의 영혼에게 근원 부여를 걸었다.

외부와 동일한 차원 위상.

목이 옥죄이는 기분이 들었다.

전신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팠다. 이마에서부터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수한은 회심의 웃음을 지었다.

성공이었다.

영혼과 육체가 합치되면서, 잃었던 감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눈을 떴다.

하지만 시각 정보를 두 눈이 받아들이기도 전, 뜻밖이라는 듯한 목소리가 수한의 뇌리로 파고들었다.

[깨어난 건가? 생각보다 빠르군. 좀 더 주무셔야 되겠어.]

얼음장처럼 차가운 기운이 수한을 뒤덮었다.

또다시 영혼과 육체가 괴리되었다.

이번에는 더 복잡했다.

영혼 따로, 육체 따로 다른 차원 위상에 집어넣은 것이다. 아까처럼 영혼에만 차원 위상을 부여한다고 해서 복구되지는 않을 터였다.

하지만 이걸로 수한을 격리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이미 요령을 깨친 뒤가 아닌가.

수한은 코웃음을 치며 세계 투시로 두 차원 위상을 파악했다. 그리고 동일한 차원 위상을 부여했다. 최종적으로 외부와 같은 차원 위상을 부여하여 결박에서 벗어났다.

제국인들은 그것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동력을 너무 많이 소모해서 아껴 두었던 실시간 대응 차원 격리 장치를 가동했다.

다양한 차원 위상이 날아들었다.

1초에 수십 번씩 바뀐다거나, 뇌의 아주 작은 지점만 차원 위상이 갈려 대강 부여했다간 백치가 되게 한다거나, 육체를 수십 구역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차원 위상을 부여하는 식이었다.

다시 거대한 공허가 수한을 덮쳤다.

어려웠다.

세계 투시로 차원 위상을 해석할 때쯤에는 이미 차원 위상이 바뀌어 있었다. 차원 위상을 부여하려고 해도 워낙 까다로워서 쉽게 손을 대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따라가지 못했다. 이대로 공허에 파묻힐 것만 같았다.

수한은 안간힘을 썼다.

조금만 뒤떨어져도 존재 자체가 지워질 상황이다. 덕분에 수한의 집중력이 초월적으로 발휘되었다. 차원 위상이 날아드는 대로 실시간으로 해석하고, 해석이 끝난 차원 위상을 바로바로 부여하기 시작했다.

치열한 수 싸움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수한이 밀렸다.

금방이라도 영혼이 스러질 정도로 불안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공방이 지속되면서 차원 격리가 밀리기 시작했다. 날아드는 차원 위상의 종류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계가 있다고는 해도 수만 개는 족히 되는데, 이미 눈에 익은 차원 위상은 수한은 보자마자 대응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수한은 차츰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끝이다!]

한 마디 고함을 지르며 근원 부여를 사용했다.

차원 격리가 완전히 깨졌다.

더 이상 수한의 영혼과 육체가 괴리되지 않았다. 수한의 영혼이 육체에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두 눈을 통해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1초에 수십 번씩 수한을 향해 차원 격리가 날아들고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닿는 것은 없었다. 모조리 허공에서 수한이 날린 근원 부여와 상쇄되어 사라졌다.

수한은 우선 용갑에 걸린 차원 격리도 해제했다.

용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세라프 종족에 의해 탄생한 마법 생명체건만, 용이에게도 영혼이 있어 차원 격리를 경험했던 것이다.

[으…… 죽는 줄 알았어.]

수한은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자신을 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한 무리의 제국인.

모두 다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설마 수한이 빠져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 자기들끼리 소란을 피우며 이곳저곳으로 비상 신호를 보냈다.

수한은 세계 투시로 그들의 통신을 도청했다.

[드미트리님께서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곧 도착하신 답니다!]

[시간을 끌어 봐! 초능력 억제 장치를 최대한으로 가동해!]

[격벽 차단 실시합니다!]

[시간이 부족해! 비상 탈출하도록 한다!]

수한은 비로소 천사 기계병에 타고 있던 게 드미트리라는 것을 알았다.

빨리 처리해야 한다.

이미 맞붙어서 알지만, 드미트리와 1대 1 대결을 벌이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용기사가 있을 때도 그렇게 처참하게 당했는데, 용갑만 입고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나.

제국인들은 저마다 금속 구에 들어가더니 어딘가를 향해 쌩하고 내달렸다. 다양한 방어 장치들이 수한에게서 그들을 보호하고 있지만, 그 정도로 수한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 생각할 것은 없었다.

[용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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