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인 포섭 -1- >
수한이 뽑아낸 이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았다.
잉트리그의 독토르 샤를, 트리모의 퀴그 폰 반, 바츠의 핌 보로스, 칼데츠라한의 베일리프 일르아, 줄랑 드 지페, 콩코드 샤또.
모두 원수 계급이었다.
그 위의 군주 계급이 없다는 것이 좀 아쉬웠다. 하지만 군주 중에는 수한이 포섭해 볼 만한 위인이 없었다. 이들의 이름을 얻어낸 것만으로도 고무적인 성과라 할 만 했다.
수한은 비에라에게 이들의 이름을 전했다.
비에라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그 자들을 포섭하겠다고요? 미친 거 아니에요?]
전술한 6명은 제국에서도 상당히 유명했다. 그것도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독토르와 퀴그, 핌은 소속 파벌의 군주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언제 칼부림이 날지 몰랐다. 그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그 세 파벌을 적으로 돌릴 각오를 해야 했다.
칼데츠라한의 베일리프, 줄랑, 콩코드는 한 술 더 떴다. 앞선 셋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흔히 칼데츠라한 성운의 미치광이 삼인방이라 불리는 그들.
성품이 특별히 포악하거나 잔인해서가 아니다. 제국인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그 셋은 이터누스 종족과 결혼했다.
더구나 결혼한 다음부터는 그들의 피와 살을 섭취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지금은 노화가 진행되어 70대 노인의 용모를 하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자기 영지에서는 이터누스 종족에게 제국인과 동등한 권리를 줬다던가.
민심이 심각하게 이반하자 자기들 영지를 떠나 칼데츠라한 성운으로 아예 이주를 했다. 자기들끼리 뭉쳐 칼데츠라한 성운을 방어하며, 지금은 잘 먹고 잘 사는 모양이었다.
비에라가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이유가 있는 셈.
수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들 말고는 포섭할 자가 없습니다. 잘 아실 텐데요?”
[그야 그렇지만, 그럼 설마 이터누스 종족 해방 선언을 하란 말인가요?]
“필요하다면 그래야지요.”
[말도 안 돼! 당신 미쳤어?]
비에라가 앙칼지게 소리쳤다.
칼데츠라한의 3인방은 이터누스 종족 노예 해방을 추진하는 군주나 황족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선언한 바가 있다.
당연히 그럴 이가 없었다.
수한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 사람들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제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을 고르고, 그들을 설득할 방법을 알려주세요. 황태자와 척을 지면서까지 황녀님을 지지할 사람들은 결코 많지가 않습니다.”
[하아!]
비에라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수한은 잠자코 기다렸다.
어느 순간 비에라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좋아요.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어요. 대안도 없고, 한 번 맡긴 이상 당신을 믿어야겠지요.]
“탁월한 선택입니다.”
수한은 몇 가지를 요구했다.
6명을 포섭하는데 필요한 것들이었다. 무턱대고 찾아가 봐야 만나지도 못할 테니까.
비에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며칠 걸릴 테니까 기다려요.]
“그 동안 제국어를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언제까지 정신 감응으로 얘기할 수는 없으니까요.”
[궁전의 지식 주입 장치를 사용하세요. 일일이 가르치는 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좋습니다.”
비에라가 준비를 하는 동안, 수한은 제국어를 익혔다. 단순히 언어만 익힌 건 아니고 제국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주입 받았다.
하나둘씩 준비가 되었다.
가장 먼저 받은 것은 기계병이었다. 원래는 노획한 기계병을 개조하려고 했는데 비에라가 말렸다. 그런 저급한 기계병들을 짜깁기해서 가져가 봐야 비웃음만 산다는 것이다.
비에라는 황도에 있을 때 자신이 쓰던 기계병을 수한에게 선사했다. 비에라의 실력이 미치지 못해서 그렇지, 황실의 공주가 쓰던 물건답게 최고급품이었다.
유폐당할 때 기계병을 빼앗길 뻔 했지만 황제의 한 마디에 저지되었다. 황태자가 참석한 회의에서 황족은 어떤 경우에도 그 존엄에 대한 존중을 받아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다.
황태자는 지레 겁을 먹었고, 몇 가지 물건은 비에라가 수습하는 것을 용인했다. 그렇게 해서 비에라는 자신의 기계병을 쿠마 행성까지 가지고 왔다.
수한은 그걸 용기사로 변형시켰다.
용기사는 커다란 검 한 자루와 투창 세 자루, 그리고 작은 방패와 광선총 하나로 무장하고 있었다.
모두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어, 그 힘을 개방하면 소행성 하나쯤은 가뿐히 부술 정도였다. 등에 가느다란 날개가 있어, 유사시 그걸 펼치고 빠르게 비행할 수 있었다. 스스로 차원을 도약하는 것도 가능했다.
한 가지 더.
수한은 용기사의 갑옷 안쪽에 별도의 최상급 동력핵을 박았다. 용이를 이용해 변형시키고, 근원 부여를 통해 힘을 잔뜩 부었다.
근원 부여와 세계 투시.
드워프들의 만든 열 가지 힘의 장갑과 같았다.
초월 진화한 초능은 장갑에 담기에는 워낙 거대한 힘이라, 용기사에 담는 것이다.
근원 부여와 세계 투시의 조합을 위해서.
SSS급까지는 둘이 제대로 조합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둘 다 무한한 가능성을 담고 있었다.
그리하여 수한이 이룩한 기술은 소멸의 빛.
실시간으로 상대의 특질을 해석하고, 그와 반대되는 힘을 뿌려 모조리 소멸시키는 기술이었다. 요 며칠 제국과 싸우면서 체득한 경험이 담긴 것이다.
공격력으로 따지면 드리트리가 사용한 허무의 검을 능가했다. 그런가 하면 사용하는데 드는 힘이 훨씬 더 적고, 연사도 가능했다.
허무의 검은 제국에서도 강력하기로 이름 높은 기술이다. 그런데 두 개의 초월 진화 초능을 조합하니 훨씬 더 막강한 기술이 튀어나온 것이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조합 기술은 종족적인 성장 한계에 도달했던 지구인들이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기 위해 만들어낸 기술.
그 정밀함과 간절함이 제국과는 차원이 달랐다.
제국은 적수가 없어진지 오래였다. 기껏해야 내전을 벌이는 게 고작이고, 그나마 사회가 계급화되고 정체되면서 치열함을 잃었다. 원수들과 군주들이 이름 높다고 하지만 정작 세찬 풍랑을 이겨내며 살아온 사람은 얼마 없었다.
수한이나 종족 연합의 다른 이능력자들과 비교하면 온실 속의 화초라고 할까.
기본적인 힘은 차이가 날지 몰라도, 그 힘이 동등해진다면 전투 기술은 수한이 오히려 더 나았다.
게다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근원 부여가 다재다능한 만큼, 앞으로 수한이 만들 기술도 널려 있었다. 그러기엔 시간이 부족하니 일단은 전투에 적합한 기술을 만든 것으로 만족했다.
임페리얼의 수리도 거의 끝났다. 궁전에서 찾아낸 여러 기술을 적용시켜 한층 강해졌다. 제국의 상급 전함과 맞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인용 무장도 갖췄다. 제국 특유의 금속 장식을 옷 곳곳에 달고, 사선무늬 가면을 썼다.
성능은 확실히 제국 것이 좋은데, 효과가 다채롭기로 따지면 종족 연합의 것도 쓸 만 했다. 제국의 전투 장비는 개인용 무장보다 기갑 장비 위주로 발전했던 것이다. 그래서 종족 연합의 장비도 제국 복장 위에 껴입었다.
이것으로 대강의 준비는 끝.
새미가 수한의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었다.
“오빠, 조심해서 다녀 와.”
“그래. 자기도 조심해. 금방 다녀올게.”
포섭을 하러 가는 것은 수한 혼자였다.
임페리얼은 궁전에 그냥 놔두기로 했다. 임페리얼을 타고 가면 편하기는 하겠지만, 방어 기지의 이목을 피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기계용만 있어도 우주 여행은 충분히 가능했다. 수한은 머리에 있는 조종석에 앉아 기계용을 부상시켰다.
기계용이 궁전 중앙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기계 동물들이 그것을 보고 광선포를 쏴대지만, 강화된 방어막에 모두 막혔다.
어느 정도 상승한 다음에는 변형된 차원 위상을 부여했다. 그러자 기계용이 거짓말처럼 시야에서 사라졌다.
수한은 조심스럽게 기계용을 상승시켰다.
위성의 방어 기지에 변형 차원 감지 장치가 있었다. 무턱대고 전진했다간 거기 걸려 공격 받을 터였다. 그나마 위성 간의 거리가 멀어 사각지대가 있으니, 거길 통과하면 될 터였다.
비행 끝에 쿠마 행성을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던 푸른 별이 이젠 작은 점처럼 보였다.
수한은 기계용을 정지시켰다.
용이가 정신 감응을 보냈다.
[지금 차원 도약할까?]
“그래. 바로 차원 도약하자. 목적지는 잉트리그 파벌의 라이즈 행성이야.”
그곳에는 잉트리그의 원수인 독토르 샤를이 있다.
수한의 첫 번째 포섭 목표.
원래는 제국의 하층민 출신이라고 했다. 칼라트라와 벌어진 전쟁에 입대하여, 1익급 무기를 받았다나. 그것을 칼라트라와의 전쟁 와중에 계속 강화시켜, 나중에는 10익급까지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지만, 독토르에게는 한 가지 염원이 있었다.
강해지고 싶다.
더 강해져서 군주의 좌(座)에 오르고 싶다.
무력에 대한 갈망과 권력에 대한 욕구가 독토르의 행동을 결정짓는 근원이었다.
하지만 독토르는 더 강해지기가 힘들었다. 현재 3개의 초능을 초월 진화시켰는데, 그게 원수 계급의 한계였기 때문이다.
방법이라고 한다면 군주 계급이 되는 것뿐인데 매우 어려웠다. 10익급 레벨 업 도우미를 수십 개 흡수하거나 기존 군주로부터 물려받아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쉽겠나. 더구나 잉트리그의 군주가 그를 경계하고 있는데.
수한이라고 독토르를 군주의 좌에 올려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더 강한 무력을 갖추게 하는 것은 가능했다.
조합 기술.
너무 큰 걸 거는 거 아니냐고?
이 정도는 되어야 움직일 마음이 날 것이다. 독토르는 엄연히 초월 진화자니까.
그렇다고 그냥 쉽게 넘겨줄 생각은 아니었다. 한동안 끌고 다니면서 부려먹을 예정이었다. 또 비에라가 대가를 주는 게 아닌, 수한이 대가를 주는 것이니 나중에 결정적인 순간 비장의 패가 될 수도 있고.
기계용이 차원문을 열고 사라졌다.
물리적인 거리는 엄청나지만, 차원문을 통하면 딱 한 걸음 거리에 불과하다.
라이즈 행성이 눈앞에 나타났다.
거대한 가스 행성.
행성 표면에서는 거주하는 게 불가능했다. 대신 우주 정거장을 궤도에 무수히 많이 띄워놓았다. 그 정거장들이 독토르의 영지이며, 라이즈 행성에서 추출하는 기체가 독토르의 주요 수입원이었다.
방어 기지가 감시의 눈길을 번뜩이는 게 보였다. 차원 위상을 기계용에게 부여해 놓아서 여간해서는 들키지 않지만,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았다.
수한은 세계 투시로 정거장들을 살펴보았다.
독토르는 자기 자리에 있었다. 혹시 다른 곳에 가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일이 쉽게 풀린 것이다.
정신 감응을 날렸다.
[독토르!]
[누구냐?]
[초월 진화자 이수한이라고 합니다. 당신과 아무도 모르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잠시 괜찮겠습니까?]
살짝 놀란 감정이 수한의 정신으로 전달되었다.
초월 진화자라고 해서 그런지, 어투도 정중하게 변했다.
[처음 듣는 이름인데…… 뭐, 좋습니다. 대신 장소는 제가 지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독토르가 지정한 곳은 라이즈 행성의 위성 중 하나, 클루의 상공이었다. 클루의 지면에는 방어 기지가 즐비해 있어 설사 함정이라도 극복할 자신이 있었다.
수한은 기계용을 끌고 그 위로 다가갔다.
곧 기계병 하나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표범 머리를 하고, 투창과 방패로 무장한 기계병이었다. 기동성에 초점을 맞췄는지 꽤 날렵해 보였다.
표범 기계병은 약속 지점에 도착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수한은 부여한 차원 위상을 거두고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독토르의 정신 감응이 날아들었다.
[사족보행이라니, 구세대적인 기계병을 좋아하시는 겁니까? 초능을 써먹기에는 인간 형태가 가장 편합니다. 사족보행 기계병의 시대는 1만 년 전에 진작 지나갔어요.]
[저도 압니다.]
수한은 기계용을 변형시켰다.
겨우 몇 초.
이젠 기계용이 아니라 용기사가 표범 기계병을 당당히 쳐다보았다.
[허, 신기하네요. 강적을 상대할 때는 인간형을 취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야수형을 취하는 겁니까?]
[그런 셈입니다.]
[그건 그렇고, 할 말씀이라는 게 뭡니까? 피차 바쁜 몸이니 빨리 끝냈으면 합니다.]
[간단합니다. 유폐된 황녀, 비에라를 알고 있습니까?]
[비에라? 익숙한 이름인데…… 아, 설마 거적때기 황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거적때기 황녀.
비에라가 시에라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돌아다닐 때, 그 횡색이 기괴하여 붙은 별명이었다.
특히 황태자가 비에라를 유폐시킬 때 거적때기 한 장만 입히고 황도에서 쫓아내어 제국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름은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는지?]
[황도로 복귀할 수 있도록, 그대가 황녀 비에라를 지지해 주었으면 합니다.]
[뭐라고요?]
독토르가 어이없다는 듯 반응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겁니까? 농담이 지나칩니다. 비에라를 지지하라고요? 그리 하면 황태자의 미움을 삽니다. 저보고 죽으라는 소립니까?]
[엄살 피우지 마세요. 아무리 황태자라 해도 원수씩이나 되는 자를 멋대로 죽일 수는 없잖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황태자는 음험하고 잔인한 잡니다. 잉트리그의 군주가 저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으니, 둘이 손을 잡으면 저 하나쯤 함정에 빠뜨리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독토르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거절했다.
수한의 예측대로였다. 수한이 독토르의 입장이었다고 해도 그랬을 테니까.
굳이 말로 이러쿵저러쿵 설득하지 않았다.
대신 소멸의 빛을 발휘하여 우주 공간에 대고 쏘았다. 공허한 공간 자체가 뒤틀리며 소멸했다. 그 일그러짐이 일직선으로 흔적처럼 남았다.
독토르가 그것을 보고 신기해했다.
[호오, 상당한데요? 그게 당신의 궁극기입니까?]
아무리 초월 진화자라도 공간 자체를 소멸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드미트리가 사용하는 허무의 검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 끝이 아니다.
수한은 소멸의 빛을 연속으로 발사했다. 공간이 소멸된 흔적이 중첩되어 남자, 독토르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맙소사, 어떻게 궁극기를 연발로 쏠 수 있지요? 그 정도면 칼라트라의 드미트리라고 해도 당해내지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