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이드 커맨더-249화 (250/254)

< 반신 진화 >

초월 진화자 100명을 죽이는 것은 진작 끝냈다.

그러자 수한의 왼쪽 손목이 한 차례 밝은 빛을 뿜었다.

숫자는 사라지고, 딱 두 글자만 나타났다.

[합일.]

이제 본인이 알아서 해야 했다.

손으로 누르거나,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자신이 직접 레벨 업 도우미와 합일되어야 했다.

수한은 눈을 감았다.

황태자군의 초월 진화자들이 죽건 말건 신경 쓰지 않았다. 황녀군의 초월 진화자들이 뭐라고 정신 감응을 보내지만 그것도 다 무시했다.

오로지 스스로의 영혼에 집중했다.

칼라트라에 붙잡혀 차원 격리에 당했을 때 익히 해봤던 작업이었다. 크게 어렵지 않았다.

자신의 영혼이 보였다.

어느덧 크게 성장한, 차가우면서도 따스한 기운을 품은 묘한 느낌의 영혼이었다.

동시에 레벨 업 도우미를 주시했다.

레벨 업 도우미는 수한의 육체에 자리를 잡았다.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 되어, 두뇌는 물론 육체의 세포 모두를 강하게 만들었다.

영혼까지는 각인되지 않았다. 레벨 업 도우미로 생긴 초능은 공유할망정, 레벨 업 도우미로 영혼을 성장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생각을 했다.

레벨 업 도우미를 본인의 영혼에 부여하면 어떨까, 하고.

모험이다.

위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게다가 지금 합일에 실패하여 초월 진화자에 머문다면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정을 내렸다.

세계 투시로 레벨 업 도우미를 해석했다.

그 구조, 특질, 속성을 낱낱이 파헤쳤다. 그렇게 알아낸 것을 완벽하게 똑같이 스스로의 영혼에 부여했다.

수한은 자신의 영혼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오감이 흐릿해졌다. 우주에서 번뜩이는 섬광이 멀어지고, 삐걱대던 용기사의 소음도 사라졌다. 그런 가운데 수한의 의식만이 오롯이 드높게 고양되었다.

정신이 명료했다.

살면서 일찍이, 머리가 이렇게 맑은 적이 있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레벨 업 도우미와 결합한 영혼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팽창했다.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 우주 전체로 뻗어나갔다. 용기사에게 막 공격을 퍼붓는 초월 진화자들은 물론, 인근의 우주 함대들, 그리고 멀리 차원 요새와 행성들까지 단번에 도달했다.

희한한 느낌이었다.

무엇이든 알 수 있었다.

눈길만 주면 된다. 행성 하나를 바라보면 어떤 생명이 얼마나 있는지, 대기 조성은 어떻고 대지의 성분은 어떤지, 행성이 생기고 얼마나 지났는지, 수명은 또 얼마나 남았는지 모조리 수한의 정신에 콕콕 들어왔다.

동시에,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손만 휘두르면 행성이 소멸할 것이다. 눈짓 한 번이면 항성의 빛을 모조리 꺼뜨릴 터였다. 마음만 먹으면 블랙홀이든 화이트홀이든 뜻대로 우주 전체에 퍼뜨리는 것도 가능했다.

말 그대로 전지전능.

이렇게 확장된 영혼이 미치는 지점 안에서, 수한은 거대한 해방감과 우월감, 그리고 고양감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 느낌은 금방 사라져버렸다.

우주의 신이 되었다고 느낀 순간, 수한의 영혼이 푸시시 쪼그라들었다. 방금 전만 해도 전지전능한 존재였는데, 이젠 만지만능한 존재로 떨어져 버렸다.

그것만으로도 반신에 가깝지만 방금 전과는 급이 다르다.

강렬한 상실감과 허탈함이 수한의 가슴을 쳤다.

‘여기까지구나……’

레벨 업 도우미의 한계.

우주의 신으로 가는 길이 단 한 걸음, 아니 반의 반 걸음 남았건만 그걸 넘을 수가 없다.

무슨 수를 써도 불가능하다.

레벨 업 도우미는 일종의 편법이니까.

수한은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수한의 눈동자에서 흘러내렸다.

그러나 곧 마음을 다잡았다.

신이 안 되면 어떠냐.

가족들을, 누구보다도 소중한 새미와 뱃속의 아기를 지킬 방법을 얻었는데.

지구를, 사랑하는 이들을 지킬 수만 있다면 불지옥에 떨어져도 좋았다.

수한은 눈을 떴다.

형형색색의 광선들이 서로의 존재감을 뽐내며 날아오고 있었다.

궁극기다.

단 몇 초 전의 수한이라면 저것을 막을 수 없었다. 차원 위상을 변이시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어째서 제국인들이 황제와 4명의 대군주를 그토록 경외하고, 벌벌 떨며 어떤 반항도 못했는지 똑똑히 알고 있었다.

수한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공간이 제멋대로 뒤틀렸다. 날아든 궁극기들이 수한이 위치한 곳을 허무하게 지나쳤다. 되레 180도 반전하며 궁극기를 사용한 초월 진화자에게 날아갔다.

[아니?]

초월 진화자들이 깜짝 놀랐다.

놀란 새떼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수한의 반격을 피했다. 그러느라 소란이 일어났지만, 수한은 느긋하게 그것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100 황녀의 정신 감응이 날아들었다.

[과연 믿는 구석이 있었군. 하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가 있을까?]

방금 전의 반격을 조합 기술의 일종으로 생각했나 보다.

수한은 100 황녀의 기계병을 향해 가볍게 손짓을 했다.

기계병이 몸을 떨었다. 압도적인 수한의 정신에 짓눌려 순식간에 통제권을 내주었다. 기계병이 날개를 펼치고 용기사를 향해 날아가자, 100 황녀가 급히 기계병에서 탈출했다.

[황녀 저하!]

[저하!]

초월 진화자들이 놀라 달려들었다.

수한은 그들을 보다가 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용기사가 그걸 따라 했다. 다섯 개의 손가락 끝에서 불꽃처럼 작은 번개가 태어났다.

혼원뢰.

손을 활짝 폈다.

다섯 벼락이 전면을 향해 뛰쳐나갔다.

거대한 번개 다발 다섯 줄기가 우주를 할퀴었다. 흡사 큰 짐승이 있어 번개 발톱으로 공격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초월 진화자들이 거기 휩쓸렸다.

방어해보지만 소용없었다. 단번에 두 조각이 났다. 이 단 한 번의 공격에, 최소한 열 명 이상의 초월 진화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수한을 포위하고 있던 초월 진화자들이 술렁였다.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이미 늦었다.

용기사가 그들에게 돌진했다. 벌써 거신 강림과 암흑 용신을 동시에 발현하고 있는데, 그 크기가 아까 전과 비교를 할 수 없었다. 거의 제국의 우주 전함 정도로 커졌다.

초월 진화자들이 부랴부랴 힘을 모아 대항했다.

간단히 뚫렸다. 가볍게 쳐내는 뇌룡 일격과 천지 돌파를 도저히 막는 게 불가능했다. 공격 1번이 날아올 때마다 많으면 10명, 적어도 5명이 죽어나갔다.

[반신 진화자다!]

누군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경악과 공포의 감정이 섬광처럼 전장을 꿰뚫었다.

기계병들의 움직임이 잠깐 경직되었다. 그러더니 누가 시킨 것처럼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수한은 그들이 도망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전장에 거대한 그물을 쳤다. 그것으로 차원 도약을 막았다. 그 후 분신을 만들어 초월 진화자들을 하나하나 일일이 쳐 죽였다.

[항복! 항복하겠습니다!]

[살려주십시오!]

초월 진화자들이 목숨을 구걸했다.

몽땅 무시했다.

제국의 전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결국 남아 있는 초월 진화자를 몽땅 죽였다.

살려둔 것은 딱 둘.

19 황자와 100 황녀.

수한이 등장하기 전만 해도 폐태자와 더불어 권력 다툼을 하던 유력자들이었다.

둘은 벌벌 떨며 수한을 보았다.

황족이건 군주 계급이건 반신 진화자 앞에선 다 헛것이었다. 이들은 아예 인외의 존재이니까. 오죽하면 반신이라고 하겠나.

수한은 봉인의 빛으로 그들을 제압했다.

2백 명이나 되는 초월 진화자를 이긴 직후이지만 피로감 같은 것은 없었다. 오히려 너무 쉽게 이겨서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용아, 돌아가자.]

[응. 이제 반신 진화자 된 거지?]

[맞아.]

[우와! 그럼 황제도 이길 수 있겠네?]

[글쎄. 붙어봐야 알 것 같아.]

자신할 수가 없었다.

현재 수한의 상태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만지만능이다. 그건 황제나 4명의 대군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만 년이 넘게 살며 많은 경험을 했을 테니, 수한이 밀릴 가능성이 높았다.

수한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기존의 다섯 반신 진화자는 새로운 반신 진화자가 나타나면 힘을 합쳐 배제하곤 했다. 수한이 반신 진화자가 된 사실은 금방 알려질 테니, 이제 최종 난관만 남은 것이다.

용기사를 조종하여 임페리얼로 돌아왔다.

“오빠!”

새미가 희색이 만연한 얼굴로 수한에게 뛰어들었다.

다소 지친 듯했다. 숨소리가 거칠었다. 수한이 초월 진화자가들과 싸우는 동안, 임페리얼도 격렬한 전투를 치렀으니까.

수한은 새미를 가볍게 껴안았다.

“고생 많이 했어. 이제 거의 다 끝났어. 조금만 가면 돼.”

“얼른 집에 가고 싶어.”

“나도 그래.”

지구를 떠난지 벌써 몇 달 째인가.

집이 그리웠다. 지구에 있는 두 동생과 미르 공격대의 사원들도 보고 싶었다.

새미의 등을 한 번 쓸어내리고 놓아주었다.

비에라와 세 가신이 앞쪽에서 쭈뼛거리며 수한의 눈치를 살피는 게 보였다.

수한은 19 황자와 100 황녀의 봉인을 해제했다.

“쿨럭!”

“커헉!”

둘이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렸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수한을 보고는 부들부들 떨었다. 안 그래도 수한을 두려워하던 참인데, 봉인의 빛으로 영육이 분리되는 경험을 하고 나니 훨씬 더 심해졌다.

수한은 어깨를 으쓱이며 비에라에게 말했다.

“황녀군을 진압했습니다.”

“진압이라…… 고생하셨어요.”

비에라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초리였다.

그러나 반신 진화자에게 뭐라고 말을 하기는 힘들었다. 그저 입술만 달싹이다가 침묵하고 말았다.

이것으로 수한의 계획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도달했다.

원래 제국의 초월 진화자는 1천 명 정도였다. 그런데 내전의 결과 채 쉰 명도 남지 않았다. 그 외의 인적

이 정도면 제국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냥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전력을 회복할 테니, 그 전에 쐐기를 박아야 했다.

비에라가 헛기침을 하더니 수한을 치하했다.

“역시 군주님, 아니 대군주님답습니다. 이제 제국에는 감히 제게 반대할 자가 남아 있지 않아요.”

대신 제국 자체가 껍데기만 남았지.

비에라는 수한의 답변을 듣지도 않고 몸을 돌렸다. 걸으면서도 몸을 휘청거리는 게 심적인 타격이 큰 것 같았다.

수한은 우선 임페리얼을 수리했다. 종족 연합군의 이능력자들도 모두 치료했다.

수가 정말 많이 줄었다.

이제 와선 수백 명에 불과했다. 다들 지치고 힘든 기색이었다. 그래도 거의 끝에 다다랐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두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충 마무리를 짓고, 임페리얼의 기수를 돌리게 했다.

목적지는 블랙 프린스.

황태자의 개선을 핑계 삼았다. 그런 것치고는 초월 진화자는 모두 죽었고, 뒤따르는 함선의 수도 적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블랙 프린스는 문을 활짝 열고 황태자와 수한을 환영했다.

이제 제국에 얼마 남지 않은 초월 진화자들이 모여들었다. 그래도 10명 정도는 되어 얼추 구색은 맞았다. 그들이 황태자 전하 만세를 부르자, 시종일관 굳어 있던 비에라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수한과 친분을 다지려고 접근을 할 법도 한데 그러는 제국인은 없었다. 멀리서 눈치만 살피며 자기들끼리만 어울렸다. 꼭 투명 인간을 세워놓은 것 같았다.

성대하게 열린 파티를 뒤로 하고, 수한은 임페리얼로 돌아갔다.

임페리얼이 조용히 블랙 프린스를 빠져나왔다.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중앙 컴퓨터를 해킹한 것도 아닌데,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문이 저절로 열렸다.

흡사 당신들이 뭘 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우주 공간을 미끄러졌다.

오래 걸리진 않았다.

수한이 목표로 설정한 곳이 임페리얼의 시야에 잡혔다.

화성과 목성 사이에 위치한 커다란 직육면체의 금속 행성. 바로 시공 요새 임페리얼이었다.

시공간을 분열시켜 새로운 차원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임페리얼로만 가능하다. 또한 제국이 위치한 차원의 시공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했다.

임페리얼을 부수지 않는 한, 아무리 내전을 일으켜 초월 진화자를 죽여도 단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그리고 임페리얼을 부순다 해도 수리가 가능하다면 별무소용이었다.

그래서 수한은 블랙 프린스 중앙 컴퓨터의 극비 문서에서 한 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시공 요새의 가장 중심에 위치한 시공핵을 폭주시키는 것.

그것으로 제국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었다.

대신 그 동안 제국이 만들어낸 차원도 함께 피해를 입는다는 게 문제였다. 대부분이 소멸할 테고, 우주의 법칙이 헝클어지면서 생명들이 떼죽음을 당하겠지.

보완이 필요했다.

무턱대고 폭주시켰다간 지구도 멸망할 테니까.

“음!”

수한은 시공 요새 임페리얼을 보며 침음성을 흘렸다.

어느덧 두 임페리얼이 가까워졌는데, 정면에 보이는 임페리얼에서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정확히 다섯 개.

황제와 네 명의 대군주.

그들이 시공 요새에서 수한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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