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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친, 내 몸 맞아?”
현규는 욕조에 앉아 중얼거렸다.
물 아래 보이는 선명한 복근과 가슴근육.
그야말로 이상적인 몸이었다.
“몸도 몸이지만, 피부는 정말이지.”
얼굴에 있던 모공과 여드름 흉터 자국이 사라지고, 전체적으로 매끈하고 부드럽게 변했다.
“아기 피부?”
과장이나 허풍이 아니었다.
말 그대로 아기 같은 피부였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하면 완벽했다.
“그나저나 이건 도대체 뭐야?”
온몸에서 묘한 악취를 풍기고, 피부에 무언가 말라붙어 쉽게 씻기지도 않았다.
“쉽게 씻어지지도 않고.”
샤워가 아닌 목욕을 하는 이유였다.
“이런 호사를 누릴 줄이야.”
덕분에 시간 없는 지금 뜨듯한 욕조에서 몸을 담그고 쉬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끼익.
욕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고.
“너굴.”
너굴맨이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너굴맨?”
혹시나 문제가 생긴 건가 싶어 너굴맨에 물었는데,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졌다.
“너굴.”
너굴맨은 욕조 안으로 들어왔다.
“어?”
“너굴너굴.”
너굴맨에겐 조금 깊었지만, 현규의 허벅지와 가슴팍을 의자 삼아 기댔다.
“너굴너굴.”
쓰다듬을 때 내던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기대있는 너굴맨의 몸에서 묘한 악취가 풍겼다.
“그러고 보니···”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간호하던 너굴맨의 몸에도 똑같이 묻어있었다.
“너굴. 너굴너굴.”
너굴맨은 현규의 손을 두드렸다.
“그래. 어제 고생했는데. 같이 씻자.”
너굴맨의 배를 쓰다듬어주었다.
“너굴너굴..너굴..”
너굴맨과 현규는 천천히 목욕을 즐겼다.
2.
“축하합니다. 휴먼.”
“아이고 이게 다 인공님 덕분이죠.”
당연히 칭찬에 우쭐할 줄 알았는데.
“인내와 나태, 넥타르의 조합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휴먼도 느꼈겠지만 예상 이상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
오히려 겸손한 자세에 현규가 놀랐다.
“물론. 제 프로그램의 설계가 완벽했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역시 겸손은 인공님께 어울리지 않죠.”
“육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십니까?”
설명충의 향기가 풀풀 났다.
“짧고 간단하게 부탁할게.”
“피부 7세, 육체 18세입니다.”
“좋은 거야?”
“개선이나 변화의 영역이 아니라. 탈태라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인공이의 설명은 직관적이었다.
그런데 멍청한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잠깐. 육체 나이가 18세면 키가 크나?”
멍청한 의문이자 강렬한 바램.
“당연합니다. 원래 나이인 29살에서 11년 젊어졌다고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쩐···쩐다.”
육체가 어려진 것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키가 큰다고!?”
“왜 그 부분에서 가장 놀라는지 모르겠습니다. 휴먼. 고작 키입니다.”
인공이는 망언을 던졌다.
“역시 신의 음료! 키가 큰다니!! 180 가즈아!! 180! 꿈이 아니다!!”
그런 망언조차 기꺼웠다.
“큰다! 키가 커요!! 인공 님!!”
이건 행복이었다.
“휴먼은 173cm 동일 연령대 평균에 가까운 키입니다. 어째서 집착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남자란! 얻을 수 없는 것을 갈구하기 마련! 7cm! 간드앗!! 내가 간다!!”
현규의 폭주에 인공이는 더는 반응하지 않았다. 한참을 뛰어다니며 소리지르던 현규는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인공이에게 말했다.
“인공 님. 부탁이 있나이다!”
“부탁을 검토합니다. 휴먼.”
“성장기 청소년이 키가 클 수 있는 최적의 스케쥴표와 영양소 섭취가 필요합니다! 과학의 정수! 인공님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현규는 지금 진지했다.
“휴먼. 제정신입니까?”
“지금보다 정신이 선명한 적이 없는 거 같습니다. 인공 님이시여! 가능하겠습니까!?”
잠시간의 침묵 끝에 대답이 돌아왔다.
“스케쥴과 식단을 조정합니다.”
“황공합니다!! 인공 님이시여!!”
현규는 엎드려 소리쳤고, 인공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너굴맨이 없는 게 다행이었다.
“굴.. 굴..”
너굴맨은 한쪽 구석에서 자고 있었다.
3.
rlaalswo- 너굴맨은 인간의 머리 위에 존재하신다!!
ㄴ미로롱- 심장 터진다 진짜! 넘 귀욤!
하쿠하쿠- 오빠 오늘도 너무 섹시해요!
프리져그- ㅋㅋㅋㅋㅋ휴방공지를 만들기 위해 영상을 만드는거 실화냐?ㅋㅋㅋㅋ
ㄴ기묘한- ㅋㅋㅋㅋㅋ센스 있음. 이러면 휴방도 기대되지 ㅋㅋ 무슨 핑계를 댈지.
ㄴ오리너구리- 딱 보면 휴방때마다 꽝이라고 설정잡고 찍을거 같음ㅋ 그때마다 원맨쇼나 콩트 할텐데 ㅋㅋㅋ 난 존잼이었음.
ㄴ기묘한- 개똑똑하네. 꽝=휴방인거?
ㄴ오리너구리- 그런 흐름인 듯. 괜히 꽝이랑 휴방 계속 말하는게 아닌거 같음.
김호찬- 특수효과팀이랑 편집팀이 있는건 알았는데, 설정팀이랑 대본팀도 따로 있음?
ㄴ기무식- ㅇㅇ 그런 듯. 랜덤박스에도 나름 세계관 있나봄 ㅋㅋㅋㅋ존나 웃기네.
ㄴ김호찬- 세계관? ㅋㅋㅋ아니 유튜브 채널에서 이게 뭔 짓이?ㅋㅋ
ㄴ최창수- 그러니?ㅋㅋ 클라이언트가 누구길래 여기서 돈지랄하냐 ㅋㅋ
미유미유- 번역 14개 실화?ㅋㅋ 저거 농담아니었음 ㅋㅋ
ㄴ소유- 자막 확인했다. 심지어 퀄리티도 좋음ㅋ진짜 허공에 돈 뿌리고 있네 ㅋㅋ
ㄴ미유미유- 아니 근데 생각해 보면 구독자 1000만 넘으면 투자금 전부 회수 할 수 있지 않아?
ㄴ소유- 응. 우리나라에 딱 채널 2개있어 ㅋ 거기다 둘 다 음악임. 댄스랑 노래 ㅋㅋ
ㄴ김호찬- 그건 일반인이지 회사쪽 1000만은 좀 있지 않아?
ㄴ소유- ㅋㅋㅋ 총 12개. 11개 음악 1개 장난감. ㅋㅋ음악 불패네 ㅋㅋㅋ 음악을 해라 차라리 ㅋㅋㅋㅋ
“반응이 나쁘지 않은데?”
넥타르의 등장에 의도치 않게 만든 영상이라, 반응을 보기 전까지도 걱정이었다.
그런데 반응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은 편이었다.
“생각해 보면 기회 인 거 같기도 하고.”
신기한 물건과 영상으로 인기를 끄는 것도 좋았지만,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특별한 건 ‘상황’이 아니라 ‘나’여야지.”
채널의 브랜드가 올라가는 건 좋은 일이지만, 사람들은 우리가 팀으로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문제였다.
신기한 상황은 팀의 작품이다.
상황에 집중할수록 현규는 작아진다.
“상황의 들러리가 되면 안 되지.”
그런 의미에서 랜덤박스가 꽝이 나올 때가 기회였다.
“그때는 상황이 아닌 내가 메인이니깐.”
자연스럽게 자신을 알려줄 기회.
꽝에 대한 대비.
어느 쪽으로 생각해도 나쁘지 않았다.
“구독자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고.”
37,121명. 4만 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완벽해.”
반응, 성장, 기회.
모든 게 완벽했다.
“우쭐하는 거 아닙니다. 휴먼.”
4.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너굴너굴!!”
열 번째 랜덤박스 녹화방송.
“오늘은 조금 늦었습니다!”
“너굴!”
저녁이 돼서야 너굴맨이 일어나 평소보다는 많이 늦은 편이었다.
“어제 한 망발을 정정하고 가겠습니다!”
“너굴?”
너굴맨이 갸웃거렸다.
“사람이 잠을 못 자면 죽습니다. 역시 꿀잠이 중요합니다!”
“너굴!”
“무슨 소리냐고요? 이제 일어났습니다! 죄송합니드아!!”
늦은 이유를 설명했다.
“너굴너굴.”
너굴맨은 미안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너굴맨도 오랜만에 낮잠을 잤습니다! 자기 때문에 늦은 줄 알고 미안해하는 거 같네요.”
“너굴.”
“다들 오랜만에 휴식에 늦은 거니 너굴맨 탓은 아닙니다! 너굴맨! 괜찮아!”
“너굴!?”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그럼, 상자깡! 출발하겠습니다!”
“너굴너굴!”
“망설일 필요 없죠? 바로 열겠습니다!”
현규는 상자 위에 손을 올렸다.
-랜덤박스를 오픈하시겠습니까?
“예! 오픈합니다!”
-랜덤박스를 오픈합니다.
언제나처럼 멜로디가 들려왔다.
“어제가 꽝이었으니. 오늘은 뭔가 다르겠죠? 기대해 보겠습니다.”
2연속 꽝은 아닐 것이다.
나름대로 기대하며 알림음을 기다렸다.
-A00401-21 조미료를 획득하였습니다.
“어?”
정신 차릴 새도 없이 새로운 알림이 떴다.
-문명의 수준에 맞춰 이름을 변경합니다.
-환상의 조미료를 획득하였습니다.
이름이 변해도 얼떨떨한 건 마찬가지였다.
“환상의 조미료가 나왔네요.”
사실상 꽝이나 다름없었다.
녹화를 끊고 갈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
고민은 생각을 낳고, 생각은 [사고]를 발동시켰다. 그리고 새로운 ‘방법’이 떠올랐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녹화까지 해서 하루를 쉬었습니다. 그리고 준비된 걸 꺼냈는데?”
엄격, 근엄, 진지를 담아 이야기했다.
“조미료가 나왔네?”
“너굴?”
찾아낸 방법은 간단하다면 간단하다.
“뭔가 이유가 있겠죠? 사실은 대단한 거겠죠? 근데 전 잘 모르겠네요. 뭘 까요?”
“너굴너굴?”
구독자들에게 질문했다.
5만 가까운 구독자 중에 신박한 생각을 하는 사람 하나는 있을 것이다.
꼭 스스로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의견 중 하나를 고르는 것도 방법이다.
써먹을 방법은 구독자가 찾아줄 테니.
이제 녹화를 진행하기만 하면 된다.
‘구독자들한테 짬 때리니깐 마음이 이렇게 편한걸.’
쓸데없는 생각을 이어가며 홀가분하게 녹화를 이어갔다.
“인공님! 설명 좀 부탁드립니다!”
“휴먼. 이건 좀 독특한 물품입니다.”
다행히 인공이가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독특?”
“그렇습니다.”
“이젠 말하지 않아도 알지?”
설명이 이어지기 전에 끼어들었다.
“예. 짧고 간단하고 미개한 휴먼이 이해할 수 있게.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너굴!?”
“응?”
인공이는 못 들은 척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하겠습니다. A00401-21 조미료는 맛의 조화를 강제로 유발합니다.”
“조화를 유발하다니?”
맛 조화를 강제한다.
조화와 강제는 전혀 다른 개념이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 어떤 것도 맛있게 변합니다.”
“뭐든? 무조건 맛있게?”
“그렇습니다. 심지어 흙에 조미료를 첨가해도 맛있어집니다.”
기가 막힌 물건이었다.
“넣으면 무조건 맛있어지는 조미료. 다시다 상위 버전이네요.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드릴게요.”
상자를 열어 이 마법의 물건을 꺼냈다.
음료수 캔만 한 크기의 유리병.
안에는 하얀 가루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특별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냥 조미료 같아 보이는데요? 인공아 이거 양이 얼마야?”
“180g입니다.”
제일 작은 다시다가 300g이다.
“180g이면 다시다 봉지 제일 작은 거에 반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180g이 많은 것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1인분에 얼마나 사용해?”
“1인분에 5g 정도 들어갑니다.”
“더 직관적으로.”
“차 숟갈 1개가 5g 정도 됩니다. 총 36인분을 만들 수 있는 양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이었다.
‘좀 사용해도 되겠는데?’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사용해서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다.
“무조건 맛있어지는 조미료 이해가 안 가시죠? 보여드리겠습니다.”
주방에서 물, 소금, 설탕을 챙겨왔다.
“맹물에 소금 설탕 때려 부으면 엄청나게 짜고 달겠죠? 맛있을 수가 없는 조합입니다.”
거침없이 소금과 설탕을 때려 부었다.
차가운 물에 설탕과 소금은 녹지 않았다.
“주작이나 편집이라고 할까 봐 일부러 차가운 물로 준비했습니다. 알갱이들 때문에 편집 불가능 한 거 아시죠?”
조작했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게 하려는 대비였다.
“우선 조미료 없이 먹어보겠습니다.”
물 한 모금을 머금었을 뿐인데 소금과 설탕이 알갱이째 흘러 들어왔다.
“읍!읍!!”
“너굴!!”
그대로 주방으로 뛰어가 뱉어냈다. 너굴맨은 졸졸 따라와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안 돼요. 너무 짜고 달아요. 맛이고 나발이고 생길 수가 없다니깐요?”
맹물에 탄 소금과 설탕.
사람이 먹을 물건이 아니었다.
“이제 조미료를 넣어 먹어볼게요!”
“너굴!?”
조미료를 아주 조금 넣었다.
차가운 물이었는데도 조미료를 물에 바로 녹아내렸다.
“물에 잘 녹네요?”
맨트를 하는 사이 변화가 생겼다.
녹지 않았던 소금과 설탕이 녹아내렸다.
“소금이랑 설탕도 다 녹았네요.”
“너굴.”
너굴맨도 신기한지 컵을 빤히 바라봤다.
“그럼. 마셔보겠습니다.”
짙은 짠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뤘다.
너무나 짜고 너무나 달았지만 기묘하게도 어우러지고, 서로의 맛을 보완했다.
“맛있?!!”
“너굴-!?!!”
현규는 직감적으로 느낌이 왔다.
‘아 이번 영상 조졌구나.’
5.
어제 영상의 댓글들을 확인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인공이가 갑자기 말했다.
“휴먼. 사과하겠습니다.”
“응? 갑자기 무슨 사과?”
뜬금없는 사과에 현규는 놀라 되물었다.
“어제 구독자에게 활용법을 떠미는 모습을 보고, 무능하고 미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갑자기?’
이건 욕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잠깐 생각까지는 말 안 해줘도 되는데? 야! 너 욕하고 싶으면 그냥 욕을 해!!”
“사과해야만 합니다. 휴먼.”
사람이 너무 당황하면 화도 내지 못한다.
“어? 괜찮은데? 아니 도대체가···”
횡설수설하는 현규의 말을 끊고 말했다.
“집중하고, 모니터를 봐주시길 바랍니다.”
얼떨떨하게 모니터를 본 순간.
“어!?”
인공이가 사과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요리못하는여자- 제 음식도 맛있어질까요?ㅠㅠ도와줘요. 너굴맨!!ㅠㅠ
단순한 리플이 아니었다.
ㄴ병신TV- 언니가 여기서 왜 나와?
ㄴ호순- 저거 찐임?ㅋㅋ
ㄴ김료화- 찐 맞음. 사칭 아님.
구독자 30만 유튜버가 댓글을 남겼다.
“휴먼의 선견지명에 감탄했습니다.”
“예상대로야.”
물론.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조졌다고 생각한 영상에서 잭팟이 터졌다.
“너굴너굴!!!”
“다시는 휴먼을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랜덤박스-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