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랜덤박스 38 - 내새끼!? 아니! 나새끼!
"다들 수고했어."
"우와!! 수고하셨어요!!"
"드디어 끝났네요."
홍보영상을 끝으로 이번 프로젝트가 마무리됐다. 시청자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3일간 무리한 일정이었는데도, 잘 따라와 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재미있었어요!!"
"개운해진 기분이에요. 재밌었어요."
해맑은 송희와 상쾌해 보이는 미영이.
모두 만족한 것 같았다.
"그, 그래?"
"왜 무서워하고 그래요. 오빠."
며칠 전 보았던 악마는 사라졌지만, 미영이는 여전히 무서웠다.
"오빠! 전 그냥 열심히 한 거예요."
"맞아요! 언니 진짜! 열심히 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열심히를 넘어선 무언가였지만,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생했어! 덕분에 영상도 재밌게 뽑혔고, 나레이션까지 완벽했어."
"아니에요. 마지막 날 일이 별로 없어서, 저희도 푹 쉬었어요."
"맞아요! 춤 연습한다고 근육통 생긴것도 전부 풀렸어요!"
이틀간의 강행군이었다. 그녀들에게 휴식이 절실히 필요했다. 괜히 홍보영상에서 그녀들의 비중을 줄인 게 아니었다.
"오늘 바로 방송해야 할 텐데, 체력 비축해놔야지. 쉬지 말고 꼭 방송해, 괜히 쉴 시간 준 거 아니야."
"알겠어요! 고마워요. 오빠!"
"전 아까 녹음 끝났으니깐! 언니 방송 도와줄래요!"
랜덤박스 프로젝트 때문에 방송을 쉬거나 차질이 생기는 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좋아! 짐 챙겨 나와. 집까지 데려다줄 차량 불렀어."
"어!? 오빠 바로 방송하시게요?"
"진짜요!?"
현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너희들한테 방송 쉬지 말라고 하고, 내가 쉬는 건 웃기잖아. 생각 외로 체력도 남았고."
현규의 말과는 달리 셋 중 가장 강행군을 한 건 현규였다. 그녀들은 괴물을 보듯 쳐다봤다.
"빨리 준비하고 나와!"
"아! 알겠어요!"
"언니! 제가 가져 나올게요!"
송희가 호다닥 방으로 뛰어가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캐리어? 3일 합숙인데 짐이 그렇게 많아?"
심지어 개인당 캐리어 하나씩이었다.
"당연하죠! 3일이에요. 오빠!"
"헤헤. 쇼핑 재미있었어요."
남자인 현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양이었다.
짓궂은 미소를 지은 미영이가 입을 열었다.
"보여드릴 수 없는 물건이 많아요."
기분 탓인지 악마가 언뜻 보인 것 같았다.
"오케이! 다들 조심히 가!"
"보여드릴까요?"
"아, 아냐! 얼른 가!"
"오빠 갈게요!!"
그녀들을 허둥지둥 내보냈다.
미영이가 무서운 건 기분탓이 아니었다.
그녀는 무서웠다.
***
그녀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인공아! 영상의 반응 정리해서, 분석하고, 보고서 만들어!"
- 이미 끝났습니다. 댓글이 새로 올라올 때마다 업데이트 중입니다.
"좋아. 보령시에서 준 의뢰라 트렌드니, 요즘 밈이니. 이런 거 안 먹혀. 자료를 쌓아서 설득해야 해. 모두가 이해할 만한 자료! 그걸로 승부 볼게."
공직사회에서 내려온 의뢰였다.
일반 기업의 의뢰와는 전혀 달랐다.
-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자료를 쌓아 보고서를 보내겠습니다.
"좋아. 영상 다시 찍을 시간이 없어. 무조건 이걸로 가는 거야."
여기다 시간을 더 쏟는 건 멍청한 일이었다.
"그렇게 진행해줘."
- 알겠습니다.
"난 너굴맨이랑 지하실로 내려갈게."
협상은 인공이에게 맡겼으니.
- 우주선에서 방송을 진행하십니까?
"응. 지하실 본격적으로 이용해 봐야지. 게다가 멋진 배경까지 있잖아."
어제 그렸던 드로잉이 여전히 벽에 남아 있었다.
-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오케이! 너굴맨이랑 내려갈게! 너굴맨!!"
"너굴!!"
새로운 방송을 할 시간이다.
***
"여러분!! 랜하!!"
"너굴너굴!!"
너굴맨과 현규는 활기차게 인사했다.
rlaalswo-너굴맨님!! 랜하입니다!! 3일간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취호선-랜하!! 오늘 또 방송함? ㅋㅋㅋㅋ 진짜 어떻게 되먹은 체력이야 ㅋㅋㅋㅋ
ㄴ여구독자연합-오빠!! 랜하!! 맞아요!! 몸 상해요!
수호대-랜하!! 크!! CF멋져부러!!
크라나-랜하!! 지구 축제는 봐도봐도 모르겠음ㅋㅋㅋㅋ 머드를 그렇게 쓰는건 상상도 못함.
ㄴ지노스-랜하. 동감이다. 저번 에피소드는 많이 낯설었다.
ㄴ천사연합-랜하!!! 지구 에피소드 끝나니깐 귀신같이 등장하는거 봐라 ㅋㅋㅋㅋㅋ
ㄴ플로나-랜하! 어쩔수 없었습니다 ㅋㅋ 저희가 뭘 알아야죠!
.
.
.
.
시청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접속했다.
"빨리한다고 했는데도, 3일이나 걸렸네요. 모두 잘 계셨습니까?"
"너굴?"
악마2호ㅋㅋㅋ잘 있었지 ㅋㅋㅋ 라이브가 3일만이지. 우리는 재밌게 있었음 ㅋㅋㅋㅋㅋ
ㄴ취호선- ㅋㅋㅋ이말 맞지.
크라나-형!!! 왜 이제 왔어!!!
지구 시청자들은 머드축제 영상제작을 재미있게 봤지만, 외계는 아닌 모양이었다.
"그래서 정리되자마자 호다닥 왔습니다! 크!! 이 정도면 사실상 방송에 미친 거 아니겠습니까."
"너굴너굴!"
천사연합 그냥 미친 거 아닐까요?
ㄴ탐정연합- 이거, 설득력 있는 의견이네요.
시청자들은 자화자찬을 용납하지 않았다.
"아 쫌!! 3일 만에 왔는데. 이러기에요?"
피뢰침- ㅋㅋㅋ됐고, 오늘 뭔데 형!
크라나- 우리도 공감할 수 있는 거로 해줘 형!!! 3일간 넘모 고통이였음!!
현규의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대로 분위기에서 밀릴 순 없었다.
"인공아! 카메라 클로즈업 말고, 풀샷으로 잡아!"
"너굴너굴!"
- 알겠습니다.
클로즈업이 풀리고, 풀샷으로 화면이 전환되자 뒷배경의 모습이 드러났다.
여구독자연합 와… 이건 봐도 봐도 잘 그렸어요. 진짜 오빠 대박…
ㄴ취호선- ㅋㅋㅋ 인정.
ㄴ크라나- 아니. 애초에 ㅋㅋㅋ 머드를 왜 바르냐고!
ㄴ수호대- 미네랄! 각종 좋은 요소! 그게 피부에 쏙쏙!! 외계인들 진짜 뭘 모르네ㅋㅋ
탐정연합- 크!! 멋지다!! 이건 진짝 작품이다.
외계인은 어쩔 수 없었지만, 지구 시청자들의 분 위기는 바꿀 수 있었다.
"이제야 만족스러운 분위기군요!"
"너굴!!"
피뢰침- ㅋㅋㅋ지금 칭찬 한 번 받을려고 ㅋㅋㅋ 풀샷으로 카메라 조정한 거?
ㄴ취호선- ㅋㅋ맞는 듯 ㅋㅋㅋ 저 우쭐한 표정봐 ㅋㅋㅋㅋ
ㄴ여구독자연합 우쭐한 오빠…귀여워…
ㄴ악마2호- ㅋㅋㅋ인정 ㅋㅋㅋ 요즘 왜캐 귀엽누ㅋㅋㅋㅋ
우쭐한 표정으로 현규는 진행을 이어갔다.
"좋습니다! 오늘 뭐 하는지 궁금하셨죠?"
"너굴너굴!"
뻔하디 뻔한 콘텐츠였다.
"뭘 하긴 뭘 해요! 랜덤박스 채널인데! 랜덤박스 까야죠!"
"너굴!!"
크라나캬!! 기다렸습니다!!!!
ㄴ지노스-우리도 기다렸다.
ㄴ플로나 이번엔 우리 외계가 흐뭇할 차례군요!!!
ㄴ휴라타 상자. 오픈. 꿀잼.
ㄴ악마2호- ㅋㅋㅋ신났네 진짜 ㅋㅋㅋㅋ
시청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상자를 꺼냈다.
랜덤박스의 본분으로 돌아갈 차례였다.
***
현규는 상자 위로 거침없이 손을 올렸다.
- 랜덤박스 4개를 오픈하시겠습니까? 동시 개봉 알림이 나타났다.
"나라에서 부른 채널!! 랜덤박스가 간드아아앗!!! 가즈아아아!!!"
"너굴!!"
- 정말 동시에 오픈하시겠습니까?
"오픈합니다!!"
"너굴너굴!!"
현규와 너굴맨이 동시에 소리쳤다.
- 빠밤! 빠밤!
동시개방 전용 BGM과 함께.
눈부신 빛이 터져 나왔다.
- 동시개방을 선택하셨습니다.
- 랜덤박스 하나가 합성용으로 소모됩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외계에서 CF 들어올 물건 나와라!! 이제는 외계 CF스타로 진출한닷!!"
"너굴너굴!!"
사심 가득한 외침이었다.
- 입체 홀로그램 거울
- 마인드 맵
- 기록보존 책장
거울, 맵, 책장.
역시나 전혀 상관없는 물건들이었다.
"그래. 이래야 랜박이지. 감이 안 잡혀야 랜박이다! 대박 예상해 봅니다!"
"너굴?"
- 입체 홀로그램 거울에 합성합니다.
- 마인드 맵이 합성됩니다.
- 홀로그램에 마인드 맵을 삽입합니다.
- 기록보존 책장이 합성됩니다.
- 마인드 맵 저장량을 극대화합니다.
- 여러 홀로그램과 마인드 맵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 ####의 ####용 거울을 획득합니다.
- 지구의 언어로 대체합니다.
- 소크라테스의 거울을 획득하셨습니다.
"소크라테스?"
"너굴?"
거울과 지도, 책장이 합쳐지고 소크라테스가 튀 어나왔다.
"여러분. 알림창 보셨어요?"
"너굴너굴!"
피뢰침-소크라테스의 거울. 이거 뭐임? ㅋㅋㅋㅋ 아니 애초에 비치는 부분이 전혀 없구만 ㅋㅋㅋㅋ
ㄴ수호대ㅋㅋㅋ맞네?
시청자들의 말대로였다.
거울이란 말과는 다르게, 작은 큐브였다.
"아니. 외계는 뭐 큐브에 미쳐있는 거예요? 뭐만 하면 큐브가 나와요?"
"너굴너굴."
너굴맨도 고개를 끄덕였다.
크라나- 크흠. 큐브가 규격 비슷한 거라 그럼. 우리 외계 막 개성 없고 그런 거 아닙니다!!
ㄴ취호선- ㅋㅋㅋㅋㅋㅋ 앞에 크흠이 이미 개성 없는거 인정했쥬? ㅋㅋㅋㅋㅋㅋ
ㄴ플로나- 이게 다 생산단가 때문 아니겠습니까!?
ㄴ수호대- 외계나 지구나 똑같구만 ㅋㅋㅋ
ㄴ탐정연합- 랜박 회사에서 만들어 놓은 큐브 재탕하는거 아님? 킹리적 갓심 인정?
ㄴ수호대- ㅋㅋㅋ아니 뭔 이런 생각을 ㅋㅋㅋ 합리적 의심 인정이지!!!
집중할 건 물건의 외형이 아니었다.
"일단 큐브 모양인 건 넘어가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너굴."
지금 중요한 건 이 물건의 용도였다.
"소크라테스의 거울이라고 이름 붙은 이유가 있을 거예요."
이유를 찾으면 용도를 유추할 수 있다.
철학조무사 소크라테스는 이게 제일 유명하지 않음? 악법도 법이다?
ㄴ취호선 음. ㅋㅋㅋ 괜히 조무사가 아니네 ㅋㅋㅋ 거울이랑 그게 맞니? ㅋㅋㅋㅋ
ㄴ철학조무사 그럼. 너 자신을 알라?
ㄴ탐정연합-오! 거울과 자신. 왠지 아다리 맞지 않아?
ㄴ악마2호 그렇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격언으로 유명한 말이었다.
크라나이거 맞는 거같은데?
ㄴ수호대 역시! 이게 제일 맞는 거 같음?
ㄴ크라나-00… 딱임.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
무슨 컨셉의 물건인지 감이 잡혔다.
"좋아요. 그럼, 조합된 물건들 뭔지 확인해 볼게요. 이건 외계 분들이 도와주세요."
크라나 입체 홀로그램 거울은 어렵게 생각할 거 없이. 그냥 거울의 입체 홀로그램 버전이라고 생각하면 됨.
ㄴ수호대 거울은 거울인데. 입체 홀로그램이다??
ㄴ크라나 정답.
거울이 맞긴 맞는 거 같았다.
"베이스는 거울이네요."
지노스- 마인드 맵. 이 물건이 나올 줄은 몰랐다.
ㄴ래박의원-지구에서 쓰이는 의미랑은 다른거 같네? 우린 아이디어 떠올릴 때 쓰긴 하거든.
ㄴ지노스- 그렇군. 그래서 헷갈린 모양이군. 이건 심리치료에 사용되는 물건이다.
ㄴ수호대- 심리치료?
ㄴ지노스-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물건이다.
ㄴ랜박의원- ㅋ미친ㅋㅋㅋㅋ진짜 마인드 맵이야? ㅋㅋㅋ 심리치료용? ㅋㅋㅋㅋㅋ
ㄴ지노스- 그렇다.
마음의 지도.
심리치료용인 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용도였다.
"좋아요. 이건 감이 안 오니깐 넘어갈게요. 다음 책장은요?"
플로나-이건 저희가 전문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데이터를 저장하는 도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ㄴ취호선 그게 다야?
ㄴ플로나 네! 알림을 봐도 단순히 저장용량만 늘어났죠? 딱 그 정도 물건이에요.
저장용량을 늘리는 물건.
"잠깐만요."
소크라테스, 마음의 지도, 저장용량 확장.
3가지가 맞물렸다.
"거울 속에 있는 저는 단순히 제가 비춰진 것뿐이 죠? 그런데 여기에 마음의 지도가 추가되면 어떻게 될까요?"
탐정연합 그저 비춰진 모습에, 내 마음이 담긴다?
ㄴ취호선 잠깐만, 이거 거울속의 내가 의식이 생기나?
ㄴ악마2호 거울 속의 내가 움직인다? 나랑똑같은 외모, 생각을 가지고?
이건 소름 끼치는 상상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처럼, 너 자신을 알려주는 거울이라면? 어때요, 외계분들. 가능성 있어 보여 요?"
크라나 맞는 것 같은데?
ㄴ플로나 책장은 여러사람을 저장할 수 있다는 거 아닐까요?
ㄴ지노스 과연. 그런 식이라면… 맞는 거 같군.
ㄴ휴라타 인정. 정답. 찾음. 확실.
정답을 찾은 것 같았다.
"좋습니다. 어떤 컨셉인지 알았으니. 사용해 볼까요?"
- 큐브에 연결하겠습니다.
"저 자신을 알아보겠습니다."
- 연결 완료, 기동합니다.
큐브에서 빛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