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1화 (1/307)

1화. 죽음 끝에 찾은 새로운 삶

“저 결혼해요.”

딸 희수의 말에 서진혁은 두 눈만 깜빡인 채 입을 열지 못했다.

“식장은 오빠와 함께 들어가기로 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

“근무지가 급하게 결정되는 바람에 식만 올리고 바로 프랑스로 떠나야 한대요. 그래서 당분간은 오지 못할 것 같아요. 그동안 약 꼭 챙겨 드시고 건강하셔야 해요.”

약과 속옷이 든 쇼핑 봉투를 건네고 돌아선 희수의 눈에서 참았던 눈물이 떨어졌다.

딸이 멀어져 가는 모습에도 서진혁은 장승이라도 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붙잡고 싶었다.

최소한 축하한다며 무슨 말이라도 해 주고 싶지만 입을 떼지 못했다.

자신은 아버지의 자격이 없었다.

‘차라리 회사에서 살아.’

이혼장과 함께 짐 가방을 내던지며 엑스 와이프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

휴일도 없이 직장 일에 매달렸다.

애초에 업무가 많기도 했지만 사무실에 나가 자료를 모으고 점검하며 계획을 세우는 순간이 제일 스릴 있었다.

그때는 회사에서의 성공이 가정의 행복을 보증할 거라 믿었다.

희수는 어려서부터 자신을 무척 따랐다. 세상에서 태어나 처음 한 말이 ‘빠빠’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만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시절, 나중에 크면 아빠랑 결혼하겠다고 떼를 쓰며 울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이혼에 순순히 동의하고 전 재산을 위자료로 넘겨준 것은 오로지 희수를 잘 키워 주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빌어먹을 년은 채 일 년도 되지 않아서 재혼했다.

‘나 여기서 아빠랑 같이 살면 안 돼?’

중학교에 들어간 희수가 어느 날 숙소인 오피스텔 앞에서 기다리다가 한 말이었다.

그때는 어린아이의 치기라 생각해 달래서 돌려보냈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고등학교를 기숙사가 있는 지방의 자사고로 선택해 간 것도 그렇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자취한 것을 보니 말과는 달리 눈칫밥을 먹고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안 돼!”

이대로 또 사랑하는 딸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에 달려 나가려던 서진혁이, 손에 느껴지는 묵직한 감촉에 멈칫했다.

한 손에 기다란 대빗자루가 들려 있었다. 무릎이 튀어나온 낡은 경비복과 해진 운동화도 눈에 들어왔다.

가정까지 포기하고 충성을 다했지만 회사는 냉정했다.

정리 해고.

위로금을 더한 퇴직금은 어설프게 시작한 오퍼상이 망하면서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런저런 직장을 전전하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받아 주는 곳이 없자 현대판 노비로 불리는 아파트 경비원이 된 게 작년이었다.

그제야 희수의 젖은 눈에 비친 안타까움이 이해가 됐다.

“빌어먹을 놈의 인생.”

눈물을 참으려 고개를 들어 본 2040년 서울의 가을 하늘은 한없이 푸르게 보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다.

세상이 알아주지 못한다고 울분을 토하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세상에 유일하게 남은 혈육.

자신의 자식임에도 다른 성씨를 쓰게 한 것도 모자라, 인생에 한 번뿐인 결혼식장에 손잡고 들어가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으아아아아악!”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도 후회스러웠다.

사랑한다면서 해 준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실망만 안겨 주고 못난 모습만 보여 줬다.

그런데도 아빠 걱정부터 하는 착한 딸이었다.

이렇게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절대로!

* * *

베트남 다낭의 바니산.

이곳이 관광지로 유명해진 것은 5킬로가 넘는 긴 케이블카와 정상의 바나힐 테마파크 때문이었다.

동남아시아의 열대 밀림을 지나 정상부근 운무 구간을 통과하면 별천지가 나타난다.

식민지 시절 프랑스 관리들이 더운 날씨를 피하려고 산 위에 세운 유럽풍 별장들이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런 이색적인 경험을 하고자 많은 관광객들이 바나힐을 찾았다.

한국 단체 관광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그중에 이질적인 모습의 노인이 있었다.

해외여행의 설렘으로 잘 차려입은 다른 일행과 달리 오래된 낡은 등산복 차림에 잠을 자지 못한 듯 까칠한 안색, 깎지 않은 수염도 듬성듬성 자라있었다.

두 눈도 여행으로 들뜬 느낌이 없고 오히려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서진혁이다.

사랑하는 딸 희수의 결혼식이 열리는 날에 식장이 아닌 이곳 바나힐을 찾은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딸에게 아버지로서 마지막으로 해 줄 게 있어서였다.

생명 보험뿐만 아니라 출국할 때 인천 공항에서 여행자 보험도 추가로 들었다.

사망 보험금이 모두 합하면 5억 원이 넘었다.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자 대기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빨리 타고 싶은 욕심에 얼른 줄을 서는 다른 일행들과 달리 서진혁은 선물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모든 여행지에 흔히 볼 수 있는 각종 캐릭터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곳저곳 둘러보다가 구석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신상품을 진열한 다른 곳과 달리 유리로 된 진열장 안에는 낡은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바나힐의 프랑스인들 별장에서 나온 물건들이지요.”

주름 가득한 늙은 노인이 다가와 말했다.

억지로 짓는 미소 때문에 니코틴으로 녹아내린 검은 이가 다 드러나 보였다.

미군이 참전해 유일하게 패한 것이 바로 베트남 전쟁이었다.

미국만 믿고 있다가 급하게 탈출한 프랑스 관리들이 수도에서 먼 이곳 별장의 물건까지 챙겨 갈 여력은 없었다.

후에 베트남 원주민들이 약탈해 시장으로 흘러나온 것들이었다.

“귀한 것들이라 가격이 좀 나가지만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선생님.”

노인의 접대성 멘트는 귀에 들리지도 않았다.

온 정신이 한곳에 쏠려 있었다.

초록빛 둥근 보석으로 장식된 목걸이였다.

전문가라면 중간에 미세한 금이 간 하품임을 바로 알아차리겠지만 아쉽게도 진혁은 그렇지 못했다. 희수의 하얀 목과 참 어울리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귀신같이 낌새를 눈치챈 노인이 말을 이었다.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십니다. 초대 베트남 통감인 사르네 제독 가문에서 대대로 며느리에게 전해지는 가보로, 진짜 보물 중에 보물입니다.”

진혁은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상사원이었을 때 베트남어를 조금 배우긴 했으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반도 안 되었다. 그래도 뜻은 대충 알 수 있었다.

“얼맙니까?”

“귀한 물건이니만치 많이 비쌉니다.”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그게…… 천만 동입니다.”

천만 동이면 한화로 50만 원이나 되는 턱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흥정해 올 것을 감안하고 세게 부른 노인의 성의를 무시하고, 진혁은 두말없이 지갑에서 100달러 지폐 네 장을 건네줬다.

가진 돈의 거의 전부였다.

그러나 어차피 자신한테는 더 이상 쓸모없는 돈이었다.

노인의 입이 함박만 해진 건 당연했다.

연신 고개를 숙이며 포장해 주려는 것을 마다한 진혁은 목걸이를 주머니에 넣고 일행에 합류했다.

한 시간 가까이 줄 서서 탄 바나힐의 케이블카 여행은 전혀 그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함께 탄 관광객들은 발밑에 펼쳐진 계곡과 밀림의 모습에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런 흥분은 정상에 선 유럽풍 별장들이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하자 절정에 달했다.

“대단하네. 이런 높은 곳에 저런 멋진 건축물이 있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아.”

“그러게 말이야. 마치 유럽 여행을 온 기분이네.”

진혁도 20여 년 전 이곳에 여행을 와서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길도 없는 가파른 산꼭대기에 별장을 짓기 위해 채찍과 곤봉 아래 죽음으로 내몰렸을 베트남 원주민들의 애환이 느껴졌다.

프랑스인들에 대한 분노마저 일었다.

그런 감정도 이제는 다 부질없는 것이지만.

진혁은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어 목걸이를 만졌다.

자신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목걸이는 사랑하는 딸 희수에게 주는 결혼 선물이 될 것이고.

‘행복해라, 희수야.’

케이블카가 마침내 운무 구간에 도착했다. 열려진 창문으로 짙은 구름이 밀려들어와 시야를 가렸다.

진혁은 이를 악물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곧 케이블카 안이 뿌옇게 변했다.

눈을 질끈 감은 그는 왼손에 쥐고 있던 손톱만 한 덩어리를 입에 털어 넣었다.

케이블카가 도착해도 의료진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오려면 한 시간은 걸린다.

죽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그가 복용한 검은 덩어리에는, 한 시간 후면 흔적도 남지 않는 베트남의 전통적인 독이 섞여 있었다.

‘아마 여행 중에 전통 약을 잘못 복용해서 사망한 것으로 나오겠지.’

그거면 되었다.

꾸르르르.

배 속에서 서서히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무거운 쇳덩어리가 들어찬 듯 거북한 느낌.

이를 악다문 진혁의 몸이 잘게 떨렸다.

바로 그때,

‘응?’

목걸이를 만지던 손가락에 갑작스런 열기가 느껴졌다.

본능적으로 손을 떼려 했지만 목걸이의 보석이 손에 달라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순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덮쳤다.

‘으헉!’

화악!

세상이 하얗게 변하면서 정신을 잃었다.

* * *

“야, 서진혁. 그만 일어나.”

누군가 어깨를 흔드는 바람에 억지로 눈을 떴다.

둥그런 얼굴에 후덕한 인상.

친구 오희준의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예전에 죽어 화장까지 했던 친구인데…….

거기에 얼굴도 이상하고.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네가 어떻게……?”

“너 기억 안 나?”

“그러니까 바나힐에서……. 으윽, 머리야.”

기억을 더듬던 서진혁은 극심한 두통에 머리를 감싸 안았다.

“술을 그렇게 퍼마셨으니 몸이 배겨 날 리가 없지. 진상도 그런 진상이 없었다. 너 앞으로 다시는 술 먹자고 하지 마라.”

“어떻게 된 거냐니까!”

“이 자식이, 똥 뀐 놈이 성질낸다고, 뭘 잘했다고 소리를 질러. 네가 부서 옮기겠다며 갑자기 불러내서 ‘바니 클럽’에 갔잖아. 양주를 글라스에 부어 마시더니 웬 여자 이름을 부르면서 울고불고 난리 쳤고.”

“…….”

“정말 필름 끊겼나 보네. 그런데 희수가 누구야? 너, 나 모르게 사귀는 여자 있냐?”

희준의 투덜거리는 소리를 뒤로하고 진혁이 다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자신은 분명 바나힐의 케이블카를 타고 희수를 위한 마지막 여행 중이었는데…….

기억을 더듬던 진혁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희준아!”

“부르지 말라니까. 내가 다시 너랑 술 마시면…….”

희준은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덥석.

진혁이 별안간 일어나 그를 힘껏 안았다.

“희준아아아아!”

“컥컥. 떨어져, 인마.”

“고맙다. 살아 있어 줘서 정말 고맙다.”

“이 자식이 아직도 술이 덜 깼나?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래. 아, 좀 떨어지라니까!”

희준이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지만 진혁의 힘이 더 강했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때 만난 베프였다.

비록 대학은 달랐지만 같은 회사에 입사하면서 더욱 끈끈한 정을 이어오고 있었다.

진혁이 이혼과 사업 실패로 힘들어할 때면 언제나 곁을 지켜 주며 용기를 준 이였다.

그러던 희준은 부장 진급을 앞두고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한 심장 마비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진혁의 삶이 본격적으로 망가진 게 그의 죽음 이후였는데, 든든한 조언자가 사라진 탓이 컸다.

한참 동안 더 진혁의 품에 갇혀 있던 희준이 겨우 가슴을 밀치고 말했다.

“아이씨, 그만 떨어지라니까.”

“알았어. 고맙다. 진짜 고마워.”

“됐고, 얼른 씻고 나와. 해장부터 하자.”

희준은 진혁을 억지로 모텔 방에 붙어 있는 욕실로 밀어 넣었다.

세면대 앞에선 진혁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전면의 거울에 무척 낯익은 얼굴이 비쳤다.

굵은 눈썹이 인상적인 청년.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예전의 자신 얼굴이었다.

‘도대체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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