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3화 (3/307)

3화. 이집트 카이로

“다녀오셨어요, 아버지.”

“그래. 밥 먹자.”

어머니가 상을 내왔는데 당시 구경하기 힘들었던 갈비에 잡채까지 있었다.

“많이 먹어라.”

“두 분도 많이 드세요.”

목이 멘 진혁은 재빨리 콩나물국을 먹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전보다는 훨씬 나으시네.’

진혁은 외아들이었다.

할아버지는 실향민으로, 속초에 터를 잡았다.

그 시절 다들 그렇듯 지지리도 가난했지만, 장남은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본인은 물배를 채우면서도 서명수를 대학까지 보냈다.

그렇기에 아버지도 자신에게 분에 넘치는 지원을 해 주셨다.

아버지 서명수는 중소기업의 관리부장이었는데, 요즘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지 얼굴이 까칠했다.

그런데도 과묵한 강원도 출신답게 집에서는 한마디 내색도 하지 않았다.

진혁이 밥을 뜨면 어머니가 반찬을 올려 주었다.

이런 분들의 고마움도 모르고 여러 가지로 너무 큰 상처를 드렸다.

계속해서 감정을 추스르기 힘들어 진혁은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피곤하다며 먼저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에 앉은 진혁은 머리를 싸맸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몇 시간째 고민하던 진혁이 머리를 번쩍 들고 중얼거렸다.

“돌아왔잖아. 그럼 된 거잖아!”

고민은 천천히 해도 상관없었다.

이 기쁜 순간에 고민이 웬 말.

“아자자자. 내가 다시 돌아왔다.”

의자에서 일어난 진혁은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고민을 떨친 진혁은 침대에 벌러덩 누워 회귀의 기쁨을 만끽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가만. 돌아온 것은 돌아온 거고. 다시 후회하는 삶을 살지 않으려면 준비해야지.”

지나온 과거를 떠올리던 진혁이 이내 낭패한 얼굴을 했다.

지난 자신의 삶의 기억은 후회밖에 없었다.

이혼, 정리 해고, 사업 실패.

실패의 연속이었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밖에 없었다.

“참 불쌍한 인생이었네.”

뭐라도 하나 성공했었다면 거기에 집중 투자할 텐데, 그럴 게 하나도 없었다.

물론 몇 번의 성공을 목격하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그 기억은 희미했다. 억지로 기억을 끄집어내려고 해 봤지만 안개처럼 뿌옇고 머리만 아팠다.

“에라, 모르겠다. 그래도 뭐를 하면 안 되는 줄은 알잖아.”

진혁이 다시 벌러덩 누웠다.

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오랜 인생 경험으로 얻은 삶의 지혜였다.

* * *

다음 날, 회사에 들러 카이로 지사로 가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출국을 위한 준비를 했다.

일찍 귀가해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식사가 끝난 후 간단한 술상을 앞에 두고 부자가 마주 앉았다.

“너도 한잔해라.”

“예.”

고개를 돌려 잔을 비우고 내려놓자 아버지가 옆에 놓아두었던 봉투를 내밀었다.

“너 결혼하면 주려고 모아 둔 것이다. 사무실 얻을 정도는 될 거야. 정 회사 생활이 힘들면 나와서 사업을 해도 된다. 운영 자금이 필요하면 퇴직금 중간 정산을 하면 되니, 넌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해라.”

진혁은 고개를 숙였다.

떨어지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노후를 고향에서 보내기 위해 모은 돈은 물론, 퇴직금까지 내놓으시려는 거다.

과거에 자신은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 한순간에 날려 버렸었다.

다시 그럴 수는 없었다.

진혁이 혀를 물어 터지려는 눈물샘을 막고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 저 카이로 지사로 갈 겁니다.”

“무슨 소리야. 내 아들을 몰라주는 그런 회사는 더 이상 다닐 필요 없다. 부족하면 엄마가 어떻게든 더 구해 볼게.”

“돈 때문이 아니에요, 어머니.”

“그럼 대체 왜 그 망할 놈의 회사를 계속 다니겠다고 하는 건데!”

어머니는 벌게진 얼굴로 화를 내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도 보통의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들이 제일 잘난 줄 알았다.

그런 아들을 승진에서 탈락시킨 것도 모자라 한지로 몰아내는 회사의 처사에, 당사자인 진혁보다 더 분노하고 있었다.

다시 어머니가 입을 열려는 것을 서명수가 막았다.

“당신은 조용히 해.”

“지금 조용하게……!”

“그만하라고 했어.”

평소와 달리 잔뜩 굳은 남편의 목소리에 김영숙은 입을 닫았다.

서명수가 굳어진 얼굴로 진혁을 바라봤다.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것이냐?”

“제가 성급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유가 그것뿐이냐?”

“이렇게 상사원의 꿈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일단 최선을 다해 볼 생각입니다.”

“네 생각이 그렇다면 그렇게 해라.”

“그럼 이건 다시 받으십시오.”

“오냐. 내가 더 보관하고 있으마.”

봉투를 다시 건네받은 서명수에게 이번에는 진혁이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것도 받으십시오.”

“이건 뭐냐?”

“백두산 관광 티켓입니다. 할아버지 모시고 다녀오십시오.”

“이걸 네가 왜?”

“중국이 북한 땅을 임대해 백두산 관광길을 새로 열었답니다. 아쉽지만 그렇게라도 할아버지 소원을 풀어 드리세요.”

“허, 허허!”

서명수의 눈이 벌게졌다.

모든 실향민이 그렇듯 진혁의 할아버지도 언젠가는 통일이 되어 북한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속초에 터를 잡고 기다렸는데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행히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더니 금강산 관광길이 열렸다.

하지만 그때는 진혁의 학비가 가장 많이 들어가던 시기라 조금 더 있다가 모시고 가야겠다고 미룬 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

관광객 사망 사건이 발생하고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더니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지금도 관광길이 열리길 기대하시지만, 진혁은 결국 할아버지가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채 한을 안고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 드리고 싶었다.

“꼭 모시고 다녀오셔야 해요. 안 그럼 저 이집트 안 갑니다.”

“이놈이 어디서 애비를 협박해.”

“그러니까 약속하세요.”

“알았다. 그렇게 하마. 한잔 더 따라 봐라.”

얼굴이 핀 서명수가 잔을 내미는 모습에 김영숙이 한 소리 했다.

“별일이네. 둘이 있을 때는 딱 세 마디밖에 안 하시는 분이 그걸 한꺼번에 다 하네.”

“아들이 있잖아.”

“치.”

어머니가 토라진 모습에 진혁이 나섰다.

“어머니도 한잔하세요.”

“난 됐다. 네 아버지에게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당신도 한잔해.”

“어머? 진짜 오늘 별일이네.”

“곧 또 멀리 간다잖아.”

평소와 다른 서명수의 모습에 김영숙이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져서 얼른 진혁이 따라 주는 술을 받았다.

오랜만에 찾아온 행복에 술자리가 늦게까지 이어졌다.

진혁은 그래서 더 아쉽고 미안했다.

가족의 소중함을 너무 늦게 알았다.

이제는 이런 행복을 놓치기 싫었다. 반드시 가족들을 지킬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경우라 해도!

* * *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의 지하철 2호선 도끼(Dokki) 역에서 내린 후 킹 호텔 근처로 가면 현대식 빌딩들이 나타난다.

임대료가 비싸지만 주변에 각국 대사관이 밀집해 있는 요지라 태후물산도 그곳에 입주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 도착한 서진혁이 카이로 지사에 들어선 시간은 정확히 일요일 아침 8시 정각이었다.

회교도 국가는 근무 시간이 08시~16시고, 근무일도 일요일부터 목요일이며 금요일과 토요일이 휴일이었다.

진혁은 어젯밤 카이로에 도착해 호텔에서 묵은 후 나온 터였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앞쪽 안내 데스크에 앉아 있던 히잡을 쓴 아랍 여인이 어눌한 한국말로 물었다.

진혁이 아랍어로 말했다.

“서진혁입니다. 발령받아 왔습니다.”

“아! 말씀 들었어요. 소마야라고 합니다.”

진혁의 능숙한 아랍어에 놀랐는지 눈이 동그래진 소마야가 얼른 일어나 회의실로 안내했다.

회의실로 들어선 진혁의 눈에 세 사람이 보였다.

상석에 앉은 사람이 지사장인 손민한 부장. 우측은 김동식 과장, 좌측은 최영재 대리일 것이다.

발령지의 상황을 파악하고 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오늘자로 카이로 지사로 발령받은 서진혁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진혁을 바라보는 눈빛들이 각각 묘하게 변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당황한 표정이 담겨 있었다.

진혁이 승진 탈락에 불만을 갖고 귀국해 버렸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 당연히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관록이 있어서인지 손민한 지사장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오느라 수고 많았다. 인사는 회의 끝나고 하기로 하고, 나가서 커피 한잔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서진혁이 나가자 손민한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 자식 안 올 거라고 했잖아?”

“진급에 누락됐다고 난리를 피운 것도 모자라, 국내영업부로 옮기겠다고 이리저리 알아보고 다녔다고 해서…….”

“젊은 혈기에 발끈했다가 상황을 보고 만만치 않으니 다시 눌러앉으려나 보지.”

“회사가 지 맘대로 왔다 갔다 하는 곳도 아니고.”

“이렇게 되면 개인별 목표를 다시 정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은근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김동식의 말에 손민한이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미 본사에 보고까지 된 일이야. 정해진 대로 해.”

“하지만 사람이 왔는데 목표는 정해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진짜 가 버리면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하고.”

“맞습니다. 이미 전적이 있는 놈이니 그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최영재까지 나서서 반대했다.

태후물산은 목표 대비 실적 달성에 따라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었다.

지사의 실적은 물론 개인의 실적도 평가하기에 목표를 조금이라도 낮추는 게 유리했다.

은근슬쩍 자신의 목표를 떠넘기려던 김동식이 투덜거린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고 사람이 왔는데 일을 안 주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사무 보조원 채용하기로 한 것을 미루고 우선 그 일을 맡으라고 해.”

“그래도 정식 직원인데…….”

“일단 그렇게 하고 지켜보자고. 그런 다음에 어떻게 할지 정해도 늦지 않아.”

지사장인 손민한의 결정이었다.

김동식은 불만스런 얼굴이었지만 더 이상 따질 수는 없었다.

그 시각, 밖으로 나와 빈 책상에 앉은 진혁은 한국에서 파악하고 온 카이로 지사원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고 있었다.

손민한은 부장급 지사장이었다.

본사 출신으로 실력이 특출 나지는 않았지만, 합리적인 성격으로 평도 나쁘지 않았다. 부장으로 진급해서 카이로 지사장으로 온 지 올해로 3년째라고 했다.

김동식은 과장 5년차로 성격은 좋다고 들었다. 하지만 차장 진급에 2년째 물먹은 것을 보니 실적은 별로인 것 같았다. 이곳에서 근무한 지는 1년이었다.

최영재 대리는 카이로 지사에서만 5년째 근무하며 이곳에서 진급까지 한 터줏대감이었다. 실적은 뛰어난데 차갑다는 평이 있었다.

이 모든 정보는 오희준이 파악해서 알려 줬다.

‘쉽진 않겠군.’

그때 소마야가 커피를 들고 와 앞에 내려놓았다.

“커피 드세요.”

이번에는 아랍어로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하셨다고요?”

“젯다 지사에서 3년을 보냈습니다.”

“우리말이 상당히 능숙하시네요.”

“이라크에서 2년 간 군 생활까지 해서 더 그럴 겁니다.”

“그보다 더 오래 있었어도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닫혀 있는 회의실 문을 바라보며 소마야가 소리 죽여 물었다.

“다들 놀라죠?”

“뭐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서 안 올 거라고들 했거든요.”

서진혁의 얼굴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방금 전 반응들이 이해가 됐다.

자신이 지사원에 대해 파악했듯이 이곳에서도 자신에 대해 알아볼 거라는 예상을 했어야 했다.

이곳 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담담하게 변했다.

자신이 벌인 일이니 누굴 탓할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었다.

예전 같으면 전전긍긍했겠지만, 살아온 세월만큼 정신적인 연륜도 있었다.

지금부터 잘하면 된다.

그때 문이 열리며 모두 나왔다.

“들어가 봐.”

진혁은 김동식 과장의 말에 안으로 들어갔다.

손민한이 무슨 말을 할지 걱정되었지만, 까짓 거, 어차피 각오하고 오지 않았던가.

마음을 굳게 먹은 진혁은 손민한의 맞은편에 앉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