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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34화 (34/307)

34화. 카이로 암시장

“어서 오게. 자네가 그렇게 물량을 쏟아 붓듯이 가져오는데 시나이 반도만으로는 소화할 수 없지. 그래서 여기에 자주 오고 있네. 게다가 나도 이제 좀 더 넓은 곳을 바라봐야 하지 않겠나.”

“음……. 기존 세력들의 반발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물건을 공급해 주는 자가 최고야. 이곳 상인들의 반응이 아주 좋아.”

“하지만…….”

“험한 시나이 반도에서 평생을 살아온 나네. 그러니 걱정 말게.”

알트라드가 주변을 둘러보며 호언장담을 했다.

뒤에 서 있는 푸다는 물론 주변의 손님들 대부분이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이었다.

알트라드의 경호원들인 것이다.

그 모습이 진혁의 마음을 오히려 더 무겁게 했다.

그러건 말건 알트라드는 자신의 용건을 꺼냈다.

“그나저나 갑자기 전화해서 물건 공급을 줄이겠다니, 너무한 것 아닌가?”

진혁은 물건 수급에 어려움이 있다며 당분간 사흘에 한 번만 공급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통보했었다.

사파가의 일을 곧이곧대로 알려 줄 수는 없었다.

“전화로 말씀드렸듯이 공급처에 문제가 생겨 어쩔 수 없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일은 때가 제일 중요하고, 미리 약속한 상인들이 있는데…….”

알트라드는 말끝을 흐리며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이집트는 8천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일인당 연간 185킬로의 밀가루를 소비하고 있었다. 진혁이 하루에 최대 100톤을 가져다 나르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암시장의 밀가루 가격이 더 오르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알트라드는 그야말로 돈을 쓸어 담고 있는데, 갑자기 진혁이 물건 공급을 줄인다니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라 급히 만나자고 한 것이었다.

이미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라 진혁은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조만간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니 걱정 마십시오. 곧 예전처럼 공급해 드리겠습니다.”

“정말인가?”

“제가 언제 약속을 어긴 적이 있습니까?”

“자네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해 주고 있네.”

“이번 일은 죄송하게 됐지만, 약속은 지킬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알겠네. 자네를 믿지.”

진혁의 거듭된 약속에 알트라드의 얼굴이 풀어졌다.

물량이 줄어든 것도 걱정이었지만 혹시라도 진혁이 다른 곳으로 물건을 돌렸을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그것은 아닌 것 같았다.

둘은 얼마간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어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진혁이 운전하는 카심의 뒤통수를 보고 말했다.

“암시장에 대해 알아봐 주십시오.”

“알트라드 씨가 카이로에 진출하는 것이 걱정됩니까?”

“큰 이권이 걸린 사업입니다. 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고 하지만, 기존 조직들이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겁니다.”

이런 불법 사업 같은 경우 한번 밀리면 끝이라 기존 조직도 사활이 걸려있기에 무언가 조치를 취할 게 틀림없었다.

알트라드의 안위가 걱정되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도 그 여파가 미치기 때문이었다.

진혁이 이 일에 나선 것은 희수를 좀 더 빨리 보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돈은 되겠지만 언제 어디서 죽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계속해서 칼날 위의 인생을 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적당히 챙기고 나서는 그만둘 작정이라, 그때까지 알트라드가 무사해야 했다.

* * *

다음 날, 진혁은 카심과 함께 이집트 남부 사파가에 도착했다.

사파가는 홍해의 상업 중심지이자 관광과 휴양의 명소였다.

유명한 호텔과 리조트들도 즐비했는데 지금은 적막할 정도로 한산했다. 민주화 시위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겼기 때문이었다.

카심은 진혁을 데리고 사파가 항구의 외곽 도로 끝에 위치한 아부소마 리조트로 안내했다.

기다리고 있던 지배인이 정중한 태도로 안내해 줬다.

보름간 5만 달러를 주고 이곳 전체를 빌렸다.

예전 같으면 꿈도 꿀 수 없는 헐값이었지만, 중심가에서 떨어져 있고 건물도 오래돼 파리만 날리고 있던 터라 임대가 가능했다.

이런 상황이 관광객들에게는 최악의 조건이겠지만 진혁에게는 오히려 유리했다.

이번 일은 보완이 생명인 은밀한 거래다 보니 남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안정적인 거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과감히 결행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곳은 전용 비치가 조성되어 있어 지니호가 바로 접안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다르위쉬 부장이 1톤 탑차 세 대와 함께 도착했다.

카심이 탑차 운전수들을 숙소로 안내하러 가자 다르위쉬가 말했다.

“청장님이 직접 움직이시면 아무래도 시선을 끌 것 같아 내가 대신 왔네. 나머지 일곱 대는 내일 밤까지 도착할 것이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두바에 도착하면 사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물건을 넘겨주면 대금은 그 즉시 계좌로 입금될 것이라 하셨네.”

“청장님께서 직접 챙기시는 일이니 실수가 없겠지요. 더 하실 말씀이 없으시면 같이 식사를 하시지요.”

진혁은 다르위쉬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넓은 테이블에 출장 요리사들이 장만해 놓은 음식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술까지 곁들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이 깊어지자 다르위쉬를 스위트룸에 묵게 했다.

아무리 라빕이 결정한 일이지만 실무자는 다르위쉬였다. 그가 중간에서 훼방을 놓으면 골치 아파지니 최대한 비위를 맞춰야 했다.

다음 날, 약속한 탑차가 도착하고 날이 어두워지자 바라캇이 배를 몰고 호텔의 해변에 도착했다.

샤름 엘 셰이크에서 알트라드에게 물건을 넘겨주고 두바로 향하는 척하다가 크게 우회해서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온 것이다.

대기하고 있던 탑차가 후진으로 차례로 배에 오르기 시작하자 바라캇이 다가와 말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사장님.”

“오는데 힘들지 않았습니까?”

“뱃사람이 항해를 힘들어하면 자격이 없지요. 우리에게는 바다 위가 육지보다 편하니 걱정 마십시오.”

“이번 일이 끝나면 고생한 선원들에게 특별 위로금을 지급할 테니 조금만 더 수고합시다.”

“지금도 다른 곳에 비해 많이 받고 있습니다.”

“난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 생각은 없습니다. 같이 번 돈이니 같이 나눠야죠.”

“하지만…….”

“그 이야기는 그만합시다. 그것도 이 일이 잘 마무리되어야 가능한 것이니 우선 일에 집중합시다.”

바라캇의 말을 막은 진혁은 한쪽에 서서 지켜보고 있는 다르위쉬에게 다가갔다.

“전 그만 이제 올라가 봐야겠습니다.”

“알겠네. 조심해서 가게.”

“네. 그럼 사흘 후에 뵙겠습니다.”

지금 떠나면 다르위쉬가 남아 도착하는 물품을 받아 놓고 기다리게 되어 있었다.

탑차를 다 선적한 바라캇이 해치를 올리고 배를 출발시켰다.

두바에 도착하자 이야기한 대로 물건을 인수할 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된 암호를 확인하고 가방을 넘겨줬다.

그사이 배에서 내린 탑차는 미리 지시받은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진혁과 카심은 레자의 안내로 새로 장만한 숙소로 가서 쉬었지만 바라캇과 선원은 그러지 못했다. 알트라드에게 보낼 물품을 실어야 했다.

해가 지기 시작하자 항구에 도착한 진혁을 엘네리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쩐 일이냐?”

“물건을 싣고 왔습니다.”

“고생이 많다.”

진혁이 엘네리의 어깨를 두드리며 치하해 줬다.

젯다에서 모은 물품을 화물선에 싣고 두바로 가져와 창고를 챙기는 것도 엘네리의 역할이었는데 훌륭히 해내고 있었다.

* * *

진혁은 카이로로 가서 라빕 청장을 만나 인사를 하고 다음 일정을 잡았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카심이 콧수염을 기른 날카로운 인상의 젊은 사내와 함께 있었다.

“제 집사람의 먼 친척인데, 지난번에 지시하셨던 암시장에 대해 잘 안다고 하니 직접 듣는 게 좋을 것 같아 같이 왔소.”

“세나위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서진혁입니다.”

진혁이 급히 일어나 반갑게 맞고 함께 소파에 가서 앉았다.

카심이 가져온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세나위가 입을 열었다.

“카이로 암시장은 아브라함 살라와 왈레드 헤자지가 나누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세력 판도는 어떻습니까?”

“살라가 중부와 남부 차지하고 있고 헤자지는 북부에 머물고 있습니다.”

“살라의 세력이 더 크군요.”

“원래는 헤자지가 터줏대감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전, 경찰청이 일제 단속을 하는 바람에 조직원들 대부분이 검거되어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그때 중간 간부였던 살라가 일부 조직원과 함께 독립해 나와 세력을 빠르게 확장하면서 지금의 구도가 된 겁니다.”

“살라의 뒤에 경찰청이 있는 겁니까?”

진혁의 직설적인 질문에 세나위의 날카로운 눈매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단번에 핵심을 집어내는 게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시선을 내려 기색을 감춘 세나위가 답했다.

“신임 내무장관인 마흐무드 칸샴이 뒤를 밀어주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칸샴이 경찰 간부 출신입니다.”

“역시 그렇군요. 칸샴이 암시장을 장악하려고 일제 단속을 벌인 후 살라를 내세워 관리하게 한 거군요.”

“그렇습니다.”

답을 하는 세나위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진혁이 미리 말해 버리는 바람에 자신의 가치를 높일 기회를 놓쳤다.

진혁의 질문을 이었다.

“헤자지가 반발하지는 않았습니까?”

“경찰들이 대놓고 살라를 감싸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지요. 그랬다가는 조직 자체가 사라졌을 겁니다. 북부에 만족하며 지금은 아들에게 맡기고 잘 나오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알트라드가 개입하는 것에 대한 반응은 어떻습니까?”

“지금까지는 묵인해 줬습니다. 아시겠지만 물품 공급 자체가 끊겨 시장이 고사 위기라 그것을 살리는 게 우선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 기간이 길어지자 살라 쪽 분위기가 변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세나위가 말을 끊었다.

이후는 자신만이 아는 정보라 진혁을 안달 나게 해서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진혁은 그런 세나위의 의도와 달리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렸다.

결국 무거운 분위기를 이겨내지 못한 세나위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살라의 조직원들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알트라드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경고를 할 거라 생각합니다.”

“헤자지 쪽은 어떻습니까?”

“그쪽은 시장 규모도 적고 고정 거래선이 있어 영향이 미미합니다. 특별한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잠시 생각하던 진혁이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감시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만, 기간이 길어지면 돈이…….”

“한 달로 예상하고 얼마면 되겠소?”

“기간도 길고, 감시하려면 정보원도 더 써야 하고……. 천 달러는 있어야 합니다.”

세나위는 이번 일을 조사하면서 카심에게 백 달러를 받았다.

물론 천 달러를 다 받으려는 건 아니었다. 일단 최대한 부르고 가격을 조정해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그런 예상과 달랐다.

일어나 책상 서랍에서 돈다발을 꺼내 와 내려놓고 진혁이 말했다.

“선금으로 한 달에 2천 달러를 드리지요.”

“예?”

“중요한 정보는 내부자들이 제일 잘 알 겁니다. 그쪽을 뚫어 보세요. 더 필요하면 카심에게 이야기해서 받아 가십시오. 움직임을 하나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세나위의 마지막 말은 진심이었다.

자신이 만난 많은 사람들은 정보를 보조 수단 정도로 인식해 투자에 인색했다.

하지만 진혁은 오히려 더 돈을 주면서 정보를 더 모으라고 하고 있었다.

* * *

라빕의 연락을 받고 다시 사파가로 가야 했다.

이후 일정이 계속 나와 세 군데를 오가며 지내다 보니 눈 깜짝할 사이에 보름이 훌쩍 지나갔다.

그동안 진혁은 사파가에서 60대가 넘는 탑차를 실어 날랐고, 물품 가방은 40개를 넘게 날랐다.

비록 알트라드와의 교역량은 줄었지만 천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얻었다.

그러던 중, 두바의 한 호텔에서 쉬고 있을 때 카심이 다급한 표정으로 전화를 건네줬다.

“세나위가 급히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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