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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35화 (35/307)

35화. CIA의 개입

“서진혁입니다.”

-살라가 조직원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무기까지 지급한 것을 보니 조만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습니다.

“정확한 계획을 알아야 합니다.”

-워낙 의심이 많은 놈이라 측근들에게도 정확한 것은 알려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최대한 알아봐 주십시오. 무엇보다 몸조심하십시오.”

-고맙습니다.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진혁이 바라캇을 바로 불러 무기를 구입하게 하고 선원들에게도 주의를 주라 했다.

이어 젯다의 엘네리에게 전화를 걸어, 당분간은 귀찮더라도 여유분이 남지 않게 구입 물량을 세밀하게 조절하라고 지시했다.

* * *

그 시각, 다른 곳에서도 살라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지부장님, 카이로 암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 자식들까지 웬 지랄이야.”

CIA 중동지부장 제임스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그는 요즘 여기저기서 터지는 시위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었다.

튀니지에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을 때만 해도 일상적인 일이라 곧 잠잠해질 것이라고 상부에 보고했었다.

그런데 벤 알리 튀니지 대통령이 축출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게다가 그 여파가 이집트, 리비아, 시리아, 예멘을 넘어 걸프 왕정 국가들은 물론 북아프리카의 독재 국가들로 시위가 확산되고 있었다.

국장이 오바마에게 불려가 한 소리 듣고 돌아온 후의 일은 기억하기도 싫었다.

이집트는 무바라크의 시한부 삶도 곧 끝날 것이라 안심하고 있었다.

“알트라드라는 상인 하나가 세력을 키우고 있는데, 그 때문인 것 같습니다.”

“승냥이 같은 놈들. 서로 물어뜯고 난리구나. 설마 카이로에서 한판 벌이려는 것은 아니겠지?”

“군인들이 쫙 깔려 있는데 그럴 수는 없지요. 시나이 반도에서 일을 벌이려고 한답니다.”

“거긴 또 왜?”

“알트라드라는 자의 본거지인 데다 물건을 거기서 대량으로 받고 있습니다.”

“거긴 변변한 무역항도 없잖아?”

“그게 참, 아주 재미있는 놈이 나타났습니다. 이자입니다.”

잭슨이 출력된 사진 한 장을 내놓았는데 서진혁이었다.

“이쪽 얼굴이 아닌데?”

“한국의 상사원입니다.”

“자세히 말해 봐.”

제임스가 관심을 보이자 잭슨이 자신이 그간 조사한 내용을 들려주었다.

혼자 마지막까지 카이로에 남아 있다가 갑자기 우크라이나로 건너가더니 퇴역 상륙 주정을 가져와 물건을 나르기 시작했다고 했다.

“LCU를?”

“그렇습니다. 그래서 굳이 부두가 필요 없었던 겁니다.”

“아무리 퇴역했다고 해도 군함을 밀수에 이용했다면 더 커지기 전에 제거했어야지!”

제임스의 호통에 잭슨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일반적이라면 당연히 그랬어야 하는데, 좀 묘한 놈입니다.”

“어차피 밀수업자잖아.”

“그렇기는 한데, 거래하는 품목이 밀가루, 콩, 설탕뿐입니다. 아시겠지만 이집트 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느끼는 물품입니다. 놈이 대량 공급해 주는 바람에 암시장 가격이 더 이상 오르지 않은 겁니다.”

“음.”

제임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미국 입장에서는 누가 권력을 잡는지는 상관없었다. 시위가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는 게 최선이었다.

오랜 경험으로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은 결국 먹고사는 문제를 개선하라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암시장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계점을 넘으면 폭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할 일을 대신해 주고 있어서 지켜본 겁니다.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무바라크의 결심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때까지는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아.”

“그럼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겁니까?”

“그러다 일이 잘못되면 우리가 위험해져. 그놈에게 당분간은 중지하라고 경고나 해 줘.”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잭슨이 밖으로 나왔다.

* * *

진혁이 전화를 받은 것은 막 두바항을 출발할 때였다.

-오늘 항해는 취소하게, 친구.

“……!”

-충분히 벌었잖아? 코리언.

“누구냐?”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살고 싶으면 당분간은 대가리 처박고 숨어서 지네. 그럼.

전화가 끊겼다.

불안한 눈으로 옆에서 지켜보던 카심이 물었다.

“무슨 전화요?”

대답하려던 진혁의 뒤쪽에서 이쪽으로 힐끔거리며 바라보고 있는 선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다들 주변 상황이 불안해지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장난 전화입니다.”

“휴……. 나는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았네. 간 떨어질 뻔 했소.”

“이상 없으면 출발합시다.”

배가 출발하자 잠시 선미에서 바다를 바라보던 진혁이 조타실로 들어갔다.

오늘도 바라캇은 직접 조타륜을 잡고 있었다.

“아직 도착하려면 멀었으니 좀 쉬십시오.”

“이번 항해는 신경을 많이 써 주셔야겠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여러 가지로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그럼 아까 받은 전화가?”

역시 바라캇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신분도 밝히지 않은 장난 전화입니다. 그래도 모르니 조심하자는 겁니다. 뱃사람도 뱃사람끼리의 의리가 있듯이 상사원들도 그렇습니다. 선금까지 받았는데 확인되지 않은 일로 도망부터 갈 수는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대비하겠습니다.”

“우선은 선장만 알고 계십시오. 선원들이 동요하면 일이 더 커집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도 레자에게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은밀히 무기들을 준비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바라캇이 자동 항해 장치를 가동시키고 조타실을 나갔는데도 진혁은 그곳을 지켰다.

긴장 속에 지니호가 사나피르 섬을 막 지났을 때는 이제 막 해가 지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거친 엔진음이 들려왔다.

섬 뒤로부터 쾌속정 여러 척이 빠르게 다가왔다.

바라캇이 재빨리 비상벨을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자가 허겁지겁 뛰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선장님?”

“놈들이다.”

쾌속정을 보는 순간 레자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앞에 네 척이 일렬로 서 있고, 뒤에 한 척이 뒤따르고 있었는데,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바로 무기를 지급하고 사격을 지시하겠습니다.”

“빨리 해라. 절대 접근시키면 안 된다.”

“잠깐.”

진혁이 두 사람의 행동을 막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저들을 따돌릴 수 있겠습니까?”

“우리 배의 속도로는 불가능합니다. 선제공격으로 최대한 타격을 입혀야 합니다.”

“다섯 척입니다. 저들을 모두 잡을 수 있습니까?”

“최대한 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할 시간도 없습니다. 빨리 결정하셔야 합니다.”

“일단 무기를 지급하세요. 대신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고 하십시오.”

“사장님!”

“어서요.”

레자가 이를 악물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때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지니호, 당장 엔진을 멈춰라. 그렇지 않으면 뜨거운 맛을 보게 될 거다.

맨 뒤에서 확성기를 든 사내 옆의 부하가 뭔가를 어깨에 걸쳤다.

바라캇이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

“헉. 저건 RPG!”

중동의 테러 집단이 애용하는 대전차 로켓포였다. 한 방만 맞아도 이 배는 불바다가 될 게 뻔했다.

크게 당황한 바리캇의 눈빛이 흔들렸다.

진혁이 소리쳤다.

“정신 차리시오, 선장!”

“……!”

“기회는 한 번뿐이오. 놈들을 최대한 접근시켰다가 단번에 끝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확성기로 대화하면서 시간을 버시다가 멈추세요. 단, 저 지휘선과 최대한 가까이 가셔야 합니다.”

“저들이 그때까지 기다려줄까요?”

“무조건, 반드시 해내셔야 합니다. 이 배와 선원들의 목숨이 걸려 있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아니, 하겠습니다.”

“믿습니다.”

어깨를 두드려 준 진혁이 빠르게 갑판으로 내려왔다.

레자가 선원들에게 무기를 지급하고 있었다. 카심도 뒤에 서있었다.

진혁이 얼른 그쪽으로 가 소리쳤다.

“모두 주목하세요! 우리에게 무기가 있다는 걸 적이 알아서는 안 됩니다.”

작전을 알리는 사이 바라캇이 확성기로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끌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타타타탕!

기관총 소리와 함께 배의 갑판에 불꽃이 튀었다.

-다음은 미사일이다. 당장 멈춰라.

“알겠소. 바로 멈추겠소. 쏘지만 마시오.”

바라캇이 다급하게 말하고 엔진을 정지시켰다.

다행히 진혁의 당부를 잊지 않고 조타륜을 틀어 배가 옆으로 움직이면서 섰다.

-선원들은 양손을 들고 난간에 서라.

진혁은 선원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모습에 고개를 끄덕여 따르게 했다.

양옆으로 두 대씩 다가오고 있어 선원들도 그에 맞춰 나눴다.

-사다리를 내려라.

적들의 지시에 따라 밧줄 사다리를 늘어뜨렸다. 그러자 소총을 등 뒤로 멘 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첫 번째 적의 손이 난간을 잡아 오는 순간 진혁이 벌떡 일어났다.

“공격!”

선원들이 옆에 세워 둔 총을 집어 들고 일제히 사격을 개시했다.

따다다당. 탕. 탕!

“으아아악!”

“크으윽.”

사다리를 오르던 적은 물론 남아 있던 적들도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두두두두두둑. 탕탕탕!

벌컨포가 시뻘건 불을 품었다.

분당 750발이 발사되는 총구 6열이 동시에 20밀리 탄환을 쏟아냈다.

방향은 당연히 지휘정이었다.

슈우우욱.

지휘정에 탄알이 박히는 순간 RPG도 동시에 발사가 됐다.

“어어어엇.”

진혁과 레자가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

쉬이이익!

간발의 차이로 머리 위를 지나 반대편 바다에 떨어지며 큰 물기둥을 만들었다.

“미스터 서!”

“사장님!”

카심과 선원들이 동시에 달려왔다.

“놈들은요?”

“다 고기밥이 되었습니다.”

쿠우우우. 쾅. 쾅!

갑자기 들려오는 굉음에 다들 목을 움츠렸다.

“지휘정이 파괴됐다. 우리가 이겼다.”

조타실 문을 열고 바라캇이 소리쳤다.

“우와! 만세!”

선원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소리를 질렀다.

진혁과 카심도 마찬가지였다.

* * *

해변에 도착해 해치가 내려가자 알트라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 많았네.”

“오면서 일이 좀 있었습니다.”

“……?”

“저쪽으로 가셔서 말씀 나누시지요.”

잔뜩 굳은 얼굴을 보고 푸다에게 하역을 지시한 알트라드는 진혁과 함께 떨어진 곳으로 갔다.

“무슨 일이 있었나?”

“오는 중에 쾌속정을 탄 자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습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나?”

“다행히 괜찮습니다.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없으나, 최근 살라의 조직원들이 움직인다는 정보는 들었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설마 여기를 노릴 줄은 몰랐네.”

역시 알트라드도 그들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다.

“다행히 저희는 대비하고 있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나도 부하들을 끌고 왔네. 그러니 걱정 말게.”

“RPG까지 쐈습니다.”

“뭐?”

“철저히 준비하고 온 모양입니다. 단단히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좋은 정보 고맙네.”

알트라드가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그도 RPG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아무리 총이 많아도 미사일보다는 못했다.

“당분간은 거래를 중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상황을 봐서 서로 연락하자고. 조심하게.”

“알트라드 씨도 조심하십시오.”

다시 배가 있는 곳으로 가자 절반 정도 하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생각할 게 많아서 더 이상 대화는 없었다.

마침내 하역이 끝나자 진혁은 알트라드에게 다시 주의를 당부하고 배에 올라 그곳을 떠났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공격해 올지 몰라 걱정했는데 다행히 아무 일 없이 두바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들 놀란 터라 간단히 식사만 하고 쉬기로 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지만 누구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미스터 서! 큰일 났습니다, 큰일!”

이런저런 생각으로 선잠을 자던 진혁이 갑작스런 외침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무슨 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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