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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38화 (38/307)

38화. 가족과 함께

“예. 그게 깔끔합니다.”

“밀려서 그만두는 거냐?”

“아닙니다. 거기에 제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됐다. 받아라. 어? 비었네. 뭐 해, 얼른 가져오지 않고.”

이번에는 오희준이 두말없이 냉장고로 달려가 소주 두 병을 들고 왔다. 고양이 앞의 쥐가 따로 없었다.

잔을 채우며 한지철이 말했다.

“직장 생활 오래 하다 보면 직원들을 보는 눈이 생겨. 널 처음 본 순간 이놈은 뭐가 돼도 될 놈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놈은 결국 회사를 오래 다니지 못하더라. 그래서 이놈도 조만간 나가겠구나 생각했었다.”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게 뭐 있어. 능력도 안 되는 사람이 위에 있는 게 문제지. 나가서 잘되는 놈도 있지만 못되는 놈이 더 많아. 희준이로부터 네가 잘나간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으면 한다.”

“당당한 모습으로 계속해서 찾아뵙겠습니다.”

“그런 각오라면 됐다. 능력이 많지는 않지만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하고.”

“고맙습니다.”

“골치 아픈 이야기는 그만하고 고기 많이 먹어라.”

대화하는 사이 희준이 구운 삼겹살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진혁의 폭풍 흡입 신공이 발휘됐다. 한 움큼씩 입으로 쏙쏙 들어가니 금방 줄었다.

희준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너…… 이집트에서 굶었냐?”

“거기는 삼겹살이 없다니까.”

“지금 돼지고기만이 아니잖아. 그 많은 게 어디로 다 들어가냐?”

“아직도 더 먹어야 해. 빨리 굽기나 해.”

구워진 고기가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희준이 고기를 더 시켜 다시 굽기 시작했다. 오늘은 진짜 원 없이 굽고 있었다.

고기가 구워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한지철과 대화를 나눴다.

“아웃도어 사업 준비는 잘되고 있어요?”

“외국의 사례를 참조해서 준비는 하고 있는데, 문제는 역시 주 타깃층을 어디로 잡느냐다. 아무래도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하자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어.”

진혁이 한지철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중장년층 대부분이 직장인입니다.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나와 일해야 하는데 몇 번 입지도 못할 새 옷을 사는 게 말이 안 됩니다.”

“우리 내부에서도 그런 우려를 하는 직원이 있었어. 젊은 세대에 어울린다는 의견이었지만, 아웃도어 의류의 특성상 고기능성 섬유를 쓸 수밖에 없어. 그럼 가격대가 만만치 않은데, 그걸 구매할 층은 역시 중장년층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어.”

“그 우려한 직원 포상을 줘야겠네요. 시장을 정확히 읽고 있는 것 같습니다.”

확신에 찬 진혁의 말에 한지철이 눈빛을 반짝였다.

“그럼 네 생각은 어떤데?”

“청소년층을 공략해야 합니다.”

“애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코 묻은 돈으로 살 물건이 아니라잖아?”

“너는 고기나 구워, 인마.”

진혁이 끼어든 희준에게 한 소리 하고 한지철을 바라봤다.

“젊은 세대도 직장인입니다. 직장에 얽매여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자유롭게 입고 다닐 수 있습니다.”

“그건 알아. 하지만 희준이 지적대로 그들이 사 입기 힘든 금액이야.”

“왜 돈을 애들이 낸다고만 생각하세요. 선배는 애들 옷 니 돈으로 사라고 하세요?”

“그건 아니지.”

“핸드폰 매장에 가 보세요. 최신 폰은 누가 고르고 돈은 누가 내는지. 그걸 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그러니까 선택은 애들이 하고 돈은 부모들이 낼 거란 말이지?”

“당연한 것 아닙니까?”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한치철의 눈이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진혁이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원가 아낀다고 허접하게 만들지 마세요. 애들일수록 좋은 것은 금방 압니다. 자기 돈 나가는 것 아니니 고급만 찾습니다. 그러니 최고로만 만드시면 될 겁니다.”

“네 이야기를 들으니 머릿속이 환해진다. 가만,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한지철이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지민 씨, 지금 어디야? 뭐? 벌써? 미안한데 다시 회사로 와. 나도 금방 들어갈게.”

핸드폰을 끊자마자 한지철이 일어났다.

“회사에 들어가 봐야 할 것 같다.”

“저희 걱정은 마십시오. 근데…….”

손가락을 비벼대는 희준의 행동에 한지철이 얼른 지갑을 꺼내 카드를 건네줬다.

“이걸로 처리해. 내 대신 진혁이 끝까지 책임져. 오늘 집에 들여보내면 나한테 죽는다.”

“걱정 마십시오. 확실히 보내 버리겠습니다.”

한지철이 이번에는 진혁을 바라보았다.

“잘할 놈이니까 걱정은 안 하마. 건강하게 다시 보자.”

“항상 감사합니다.”

진혁의 인사를 받자마자 한지철이 뛰어 나갔다.

“어떻게 된 게 선배는 너만 만나면 중간에 뛰어가냐?”

“그만큼 자기 일에 열심이라는 거지. 너도 좀 배워, 인마.”

“난 저렇게까지 살기는 싫다. 놀 땐 놀아야지. 근데 이 많은 고기를 어떻게 하냐?”

“걱정 마.”

진짜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진혁이 추가로 시킨 2인분을 없애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위대한 놈!”

삼겹살집을 나서며 희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카드도 받았겠다. 이후 두 사람은 날이 환해질 때까지 그 밤을 찢었다.

“아이구, 이놈아. 아침 댓바람부터 술에 취해 뭔 짓이야.”

“사랑해요, 어머니.”

“아, 떨어져. 술 냄새 나.”

그녀는 말과는 달리 잔뜩 취해 아침에 들어온 아들을 밀어내지는 않았다.

“아버지는요?”

“출근하셨지.”

“그럼 좀 쉴래요.”

“꿀물 타 줄까?”

“잠부터 자고요.”

진혁은 침대에 쓰러지듯 업어졌다. 그리고 바로 코를 골았다.

그 시각, 지각한 희준은 부장에게 불려가 신나게 깨지고 있었다.

* * *

정말 정신없이 잤다. 창문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어머니가 물었다.

“밥 먹어야지.”

“아버지 오시면 같이 먹을게요.”

간단히 씻고 집 밖으로 나왔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진 곳이었다.

그렇게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오자 퇴근한 아버지가 소파에서 신문을 읽고 계셨다.

“오셨어요?”

“오랜만에 왔구나. 사우디에서 오는 길이냐?”

“아닙니다. 이집트로 돌아갔습니다.”

“대통령이 물러났다는 뉴스는 봤다.”

주방에서 어머니가 나오셨다.

“준비 다 됐다. 상 가져가자.”

함께 상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보통 다른 집은 편하게 식탁에서 먹지만, 할아버지를 모실 때 상을 차린 게 습관이 되어 어머니는 여전히 이렇게 준비하셨다.

노릇노릇하게 익은 삼겹살에 쌈이 한 바구니 쌓여 있었다.

아버지가 숟가락을 들자 진혁은 제일 먼저 콩나물국부터 한 숟가락 떠먹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에 시원한 국물 맛은 언제 먹어도 끝내줬다.

진혁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말했다.

“우리 엄마 콩나물국은 최고!”

“너 온다고 해서 많이 끓여 놨으니 실컷 먹고 가라.”

“어째 갈수록 아부만 는다.”

“흥. 그럼 당신은 먹지 말고 이리 내요.”

“누가 안 먹는다고 했나?”

괜히 한 소리 했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공격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니 진짜로 집에 돌아온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먹어 보는 집밥의 맛에 진혁은 두 공기나 비운 뒤 숟가락을 놓고 물러나 앉았다.

“더 먹지 않고…….”

“많이 먹었어요.”

“술 좀 내와.”

“어제 진혁이 술 많이 마셨어요.”

“그러니까 해장해야지. 얼른 가져와.”

다른 때 같으면 잔소리를 했을 어머니도 진혁이 온 것이 기뻐서인지 바로 소주와 잔을 내놓았다.

먼저 잔을 받은 아버지가 진혁의 잔을 채웠다.

“아파트 여기저기에 재건축을 한다는 현수막이 걸렸던데요?”

“하게 되면 하겠지. 이제 안 믿는다.”

“이번에는 진짜래요.”

어머니가 거들었지만 아버지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재건축 이야기는 10년 전부터 있었다. 그때마다 아파트 가격만 올리고 흐지부지됐었다.

아쉬운지 어머니가 다시 말했다.

“통장 아줌마가 그러는데, 이번에는 대형 건설사가 참여한다고 진짜라고 했어요.”

“그 여편네는 지난번에도 진짜 된다고 했잖아.”

“아니면 차액만 챙기고 팔면 되니 우리도 하나 잡아요.”

“1가구 2주택은 세금이 크게 나와.”

“그건 부동산에서 알아서 차명으로…….”

어머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버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디서 도둑질을 하자고 해!”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한다는데…….”

“그런 놈들이 문제야. 쓸데없는 소리하려거든 어여 일어나 설거지나 해.”

“아이고, 아주 대단하십니다. 나중에 진혁이 장가가면 집 한 채라도 마련해 줘야 할 것 아니에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세요.”

진혁이 무심코 한 소리 했다가 금방 후회했다. 아니라 다를까 어머니의 화살이 바로 자신에게 넘어왔다.

“네가 외국에 오래 가 있어서 모르나 본데, 지금 여기 아파트 값이 5억이 넘어. 그걸 네가 어찌 장만한다고 그래?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는 가만히 있어.”

“하긴 뭘 해. 그랬다가는 당장 집에서 쫓아낼 줄 알아.”

“흥. 그럼 나야 좋죠. 나나 되니까 당신 같은 꽁생원이랑 살지…….”

“아니, 이놈의 여편네가.”

“봐야 할 자료가 있어서.”

두 사람의 확전에 진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렇다고 걱정하지는 않았다. 늘 있는 일이었다.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똑같이 행동했다.

아니라 다를까, 다음 날 화장실에 가려고 나오자 두 분은 나란히 앉아 TV 드라마를 보고 계셨다.

그렇게 오래오래 두 분이서 행복하게 사실 수 있도록 하는 게 자신이 할 일이었다.

* * *

주말 저녁.

진혁은 도산대로 인근의 한우 전문점 입구에 서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을 접대할 때 딱 한 번 와 본 곳이었다.

얼마 후 택시가 멈춰 서더니 부모님이 차례로 내렸다.

“못 찾아오시는지 걱정했습니다.”

“밥 한 끼 먹는데 뭐 하러 시내까지 나오라고 해. 택시비만 많이 나왔네.”

“제가 대접하고 싶어서 그래요. 얼른 들어가시지요.”

아버지를 모시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옥과 잘 꾸며진 정원에 어머니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극 드라마에서 봤던 대갓집 같다야.”

“음식도 궁중 요리입니다. 기대하셔도 됩니다.”

예약된 방으로 두 사람을 안내하고 앉자 음식들이 줄줄이 이어 나왔다. 맛도 맛이겠지만 모양까지도 예뻐 구경하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니?”

꽃 색깔로 다져진 고기를 보고 어머니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자식들 학비 대느라 소고기는 꿈도 꾸지 못했다. 그나마 삼겹살도 진혁이 올 때만 사 왔다.

마음이 아팠다.

감정을 감춘 진혁이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어머니 앞에 가져다 놓았다.

“다 드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많이 드세요.”

“우리 아들 때문에 오늘 눈도 입도 호강하네.”

“아버지도 드세요.”

“오냐. 너도 먹어라.”

서명수와 김명숙은 입에 살살 녹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처음으로 느꼈다.

나온 음식을 싹싹 다 비우자 후식이 나왔다.

시큼한 솔잎차가 입 안에 남은 느끼함을 싹 날려 버렸다.

“어머, 여기는 차도 맛이 다르네.”

“더 달라고 할까요?”

“그러고 싶지만 더 들어갈 곳이 없어. 너무 많이 먹었다. 아들, 고마워.”

환하게 웃는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정곡을 찔러 왔다.

“이야기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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