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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50화 (50/307)

50화. 친구 작전

“상인은 무엇보다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지역에 똑같은 물품을 공급하는데 차등을 주면 이후에 누가 저를 믿고 거래를 하겠습니까. 공급 가격은 똑같습니다. 단 1센트도 더 받지도 덜 받지도 않을 겁니다. 그게 상인으로서의 저의 신념입니다.”

무하마디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역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어려운 자리를 떠 맡았다.

비록 그 내용은 다르지만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려는 진혁의 모습이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 깊은 의미가 있다면 받아들여야지. 좋아. 자네에게 맡기기로 하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보답으로 이 금붙이들은 반드시 제값을 받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대하지. 세부적인 것은 알자위와 상의하면 될 것이네. 그만 가 보게.”

“기회가 되면 또 뵙겠습니다. 강녕하십시오.”

인사를 하고 천막을 나왔다.

알자위가 옆에 세워진 천막으로 데리고 갔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구체적인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자리에 앉자마자 진혁이 사과부터 했다.

알자위가 실무자였다. 그와 불편한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조금 전에는 실례했습니다.”

“아니야. 내 생각이 짧았어. 총사령관님이 허락한 일이니 신경 쓰지 말게.”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말씀드린 이유로 가격 조정은 불가능하지만 서비스 물품은 제 재량입니다. 만족하실 겁니다.”

알자위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피식 웃었다.

진혁이 가격 조정을 못 해 주는 대신 물량을 추가로 더 가져오겠다고 한 것을 그제야 알아차린 것이다.

그 후 상담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상담을 마치고 지프차에 타자 차가 출발했는데, 뒤에는 가방들이 실려 있었다.

* * *

튀니지에 도착해 배를 정박했다.

숙소로 돌아와 쉬기 전에 진혁은 바라캇과 선원들을 불러 모았다.

“다들 며칠간 고생 많았습니다.”

“괜찮습니다. 좀 힘들었지만 이제 푹 쉴 수 있으니까 걱정 마십시오.”

“추가 오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부터는 쉬는 날이 없을 겁니다.”

선원들의 얼굴이 당장 어두워졌다.

계약은 4일 일하고 3일 쉬기로 되어 있었다. 전쟁터를 오가는 일이라 피로도가 상당했다.

그래도 3일 쉬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그마저도 없어진다면 큰일이었다.

바라캇이 그런 선원들을 꾸짖었다.

“표정이 왜 그래. 다들 돈 벌러 왔잖아. 이만큼 벌 수 있는 기회가 흔해?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지.”

“알겠습니다.”

바라캇의 기세에 눌린 선원들이 힘없는 목소리로 답하는 것을 보고 진혁이 다시 나섰다.

“무조건 윽박지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체력이 버티지 못할 겁니다.”

“괜찮습니다. 이보다 더 힘든 항해도 버텨낸 놈들입니다.”

“경우가 다릅니다. 두 달은 더 이어질 겁니다. 정신력으로 이겨 내라고 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선원을 추가로 모았으면 합니다. 2교대로 하루 일하고 하루 쉬게끔.”

“음……. 그 문제는 저희끼리 상의해서 말씀드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십시오.”

진혁이 흔쾌히 받아들였다.

선장은 바라캇이었다.

따로 떨어져 상의하는 사이 진혁은 위성 전화로 잭슨에게 연락을 했다.

-문제가 있나?

“아닙니다. 일은 잘 끝났습니다. 그런데 상의할 일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겁니까?”

-막 떠날 참이었는데 좀 늦춰야겠군. 한 시간 후에 차를 보내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커피 한 잔을 다 마셨을 때 바라캇이 돌아왔다.

“결정은 했습니까?”

“선원 다섯 명만 더 있으면 되겠습니다.”

“음, 그럼 부족하지 않나요? 말씀드린 대로 무리할 일이 아닙니다.”

“3교대로 해서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식으로 하면 됩니다. 그 정도면 절대 무리가 아닙니다. 돌아가면 얼마나 더 쉬어야 일이 나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진혁은 선원들이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 수 있었다.

중간에 휴식을 넣어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근무 일수를 늘려 돈을 더 받겠다는 생각들이었다.

“알겠습니다. 선원 충원은 이번에도 선장님이 맡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믿을 수 있는 놈으로 부르겠습니다.”

바라캇이 나가고 얼마 후 진혁이 카심과 함께 밖으로 나가자 검은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중해가 바라다 보이는 노천카페로 가자 잭슨이 느긋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세월 좋으십니다, 누구는 목숨 걸고 일하는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무슨 일이야?”

“무하마디 총사령관님을 만났는데 물품을 더 가져다 달랍니다.”

“우리 예산은 더 이상 여유가 없어.”

“돈은 그쪽에서 내겠다고 했습니다.”

“그놈들에게 돈이 있어?”

놀라 묻는 잭슨에게 사정을 들려주었다.

“그러니까 강탈한 금붙이를 팔아 물건 값을 대겠다는 거군.”

“강탈한 것은 아니지요. 당연히 돌려받을 것들을 찾아온 거죠.”

“어떻든. 우리에게 돈 내라는 게 아니니까 상관없어. 거기에 병사들을 묶어 두고 사기를 진작시키는 일이니 좋은 일이네. 우리도 찬성이야.”

“알겠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뭔데?”

“물건을 처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잭슨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나에게 밀수를 방조한 것도 모자라 장물까지 팔아 달라는 거야?”

“이제는 매일 물품을 날라야 합니다. 그거 맞추기도 바쁩니다. 괜히 물건 팔러 다니다가 문제가 생기면 CIA도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

“미국을 대신해서 목숨 걸고 일하는데 그 정도는 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주 뽕을 뽑아 먹는군.”

“저를 끌어들이신 분이 그리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

“……알았어. 우리가 처리해 주지. 돌아가는 차에 실어서 보내.”

“감사합니다. 나중에 따로 인사드리지요.”

“일이나 잘해. 내참, 이제 별짓을 다하네.”

투덜거리는 잭슨과 함께 나와 다시 차를 타고 숙소로 가서 가방을 실어 보냈다.

잭슨에게 부탁한 것은 처리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값을 제대로 받으려는 의도였다.

장물은 그 이름처럼 떳떳하지 않은 물건이라 처분할 때 반값도 쳐 주지 않는다. 하지만 CIA라면 정상 물건으로 바꿔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일을 준 무하마디 총사령관에 대한 보답이었다.

* * *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자 진혁은 매일 리비아로 건너갔다.

일정을 조율해 이틀에 한 번은 시민군의 물건을 실어 나르고, 그 중간에 암시장 상인들의 물건을 날랐다.

선원들도 충원되어 교대로 휴식을 취했다.

그사이 경비를 서는 군인들의 시선도 호의적으로 변해 있었다. 자신들을 위해 물건을 가져오는 것이니 고마운 게 당연했다.

잭슨도 일주일 만에 장물을 팔아 입금시켜 줬다. 물론 국제 시세에 따른 정상 가격으로 판 금액이었다.

그 덕분인지 시민군은 얼마 후 자위야를 재탈환하고 그 여세를 모아 트리폴리 외곽의 잔주르를 공략하고 있었다.

그 영향으로 항해 거리가 조금 늘었지만 상황은 더 안전해졌다.

일이 안정되자 진혁도 카심과 돌아가면서 쉬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혁이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날아갔다.

젯다 공항에 도착한 진혁은 현지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피부가 타 있었다. 바닷물에 반사된 햇빛의 자외선은 강했다.

택시를 타고 호텔 레스토랑에 가자 JK모건의 스미스 지점장과 함께 베이커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스미스와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베이커에게 시선을 옮겼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베이커는 고개를 숙였다.

한 달 반 동안 상담한 건수는 겨우 10건 정도라고 했다. 그나마 상담하고 돌아간 후 다시 찾아오지도 않았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자 진혁이 한 모금 마시고 입을 뗐다.

“계약 기간이 남았는데 철수하시라고 해서 불편하셨습니까?”

“아닙니다.”

말과는 달리 베이커의 얼굴은 편치 않았다.

전화로 보고를 받은 진혁이 사무실을 철수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내렸다.

처음 약속과 다른 결정이지만, 소송 건이 하나도 없으니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었다.

후배 변호사들은 바로 미국으로 보내고 자신만 젯다로 온 것이었다.

“더 계셨으면 성과가 있었겠습니까?”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일본 정부나 국민이 그 정도로 비이성적으로 폐쇄적일 줄은 몰랐습니다.”

베이커는 어두운 얼굴을 했다.

그가 지금까지 진행한 소송은 일본을 상대로 한 것이긴 하지만 모두 미국 법원에서 진행했었다.

당연히 미국 소비자들에게 유리한 여론이 형성된 상태였기에 상대적으로 쉬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반대라 당혹스러웠다.

“성과가 없을 것을 알면서 허송세월을 보낼 수는 없지요.”

“이해합니다. 사장님도 하실 만큼 하신 겁니다.”

베이커는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진혁의 생각은 달랐다.

“설마 제가 철수하라고 했다고 이 일을 포기한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게 아니시라면…….”

“소송은 계속 진행할 겁니다.”

“일본에서도 안 되는 것을 미국에서 어떻게 하신다는 말이십니까?”

“혹시 ‘친구 작전’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친구 작전이요?”

베이커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동일본 대지진 사태 초기 일본 정부는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미국은 일본 정부에 빚을 지울 수 있다는 생각에 바로 미군 2만 4천 명을 약 50일간 일본 도호쿠 지방과 간토 지방에 투입했습니다.”

“설마……?”

“방사능 유출은 없다는 일본 정부와 일본전력의 말만 믿고 쉽게 결정한 거죠. 지금 그 지역이 어떻게 지옥으로 변했고 거기 있던 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시는지 직접 보셨을 겁니다. 거기 있던 미군들이 지금 어떤 상황일 것 같습니까?”

베이커의 얼굴은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생각해 보지 못한 엄청난 일이었다.

하지만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눈동자를 굴리는 베이커의 모습에 진혁이 입을 뗐다.

“괜찮은 정보입니까?”

“괜찮다마다요. 아주 중요한 정보를 주신 겁니다. 이번에는 좀 더 치밀하게 전략을 세워서 접근해야겠습니다.”

“복안이 있습니까?”

“일본의 예에서 봤듯이, 정공법으로 부딪히면 백악관은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비협조적으로 나올 겁니다. 그럼 또 힘든 싸움이 되겠지요.”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이번에 여론의 힘을 다시 한번 느끼셨을 겁니다. 우리도 같은 방법으로 그들에게 돌려줄까 합니다. 일단 언론에 ‘친구 작전’에 대해 흘려서 미군 병사들도 방사능에 피폭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폭로 기사를 싣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이라면 자신 있습니다.”

의지를 다지는 베이커의 모습에 진혁이 스미스를 슬쩍 보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NS통신의 조나단 기자라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와 일본전력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처음 내보낸 기자 아닙니까? 올해의 퓰리처상 수상이 유력하다고 하던데요.”

“그 일과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설마 사장님이 기사 제보자이십니까?”

“그건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스미스 씨가 한 번 더 도와주십시오.”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조나단은 미스터 서의 일이라고 하면 아마 무조건 달려올 겁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야 서광이 비칩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소송을 이끌어 내서 기대에 보답하겠습니다.”

베이커의 얼굴은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진혁이 이번에는 스미스에게 시선을 줬다.

“우리는 따로 할 일이 있습니다.”

진혁의 얼굴이 차갑게 변해 있는 모습에 스미스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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