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56화 (56/307)

56화. 건물 경매

“무슨 일이 있습니까?”

“모스크 내부 일이니 미스터 서는 신경 안 써도 돼요.”

“또 그러신다. 제가 비록 무슬림은 아니지만 서로 위하자고 해 놓고는 이렇게 먼저 이방인 취급하면 됩니까?”

진혁의 써늘한 목소리에 카심이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울라마께서 머무시는 숙소의 건물이 경매로 넘겨졌답니다.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날 판이라 모스크 차원에서 대책을 논의하려 모양입니다.”

“어떻게 된 사연인데요?”

모스크의 성직자는 예배를 인도하는 이맘뿐만 아니라 까디와 울라마도 있었다.

까디는 이슬람의 지식을 기초로 판결을 내리는 재판관이고, 울라마는 무슬림 학자로 코란을 공부하고 그 율법을 실천하며 모범을 구하는 사람이다.

그런 중요한 사람이 기도처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으니 큰일이었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건물 주인이 은행에 빚을 많이 졌나 봅디다. 게다가 사시는 곳이 옥상에 지어진 불법 건물이라 보상도 받을 수 없다고 했어요. 한국의 변호사에게도 자문을 구했는데 어렵다고 했다나 봐요.”

“음.”

진혁은 상황이 충분히 짐작됐다.

부유한 무슬림도 있겠지만 모스크에서 생활하는 울라마에게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싼 곳을 찾다 보니 은행 빚이 많은 불법 옥탑방을 얻은 모양이었다.

변호사가 답이 없다니, 이건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대책은 있답니까?”

“나흐얀은 신도들에게 알리고 모인 자가트를 쓰자고 하는데 울라마가 반대하나 봅디다. 자신의 무지로 벌어진 일로 형제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다며. 그리고 까디도 다른 신도들과의 형평성 문제로 나서기 곤란하다고 하고.”

“다른 신도라니요?”

“그 건물이 열 가구가 사는 다세대인데 그중에 무슬림이 여섯 명이라고 했어요. 새로운 주인이 오면 한국의 법에 따라 턱없이 적은 금액만 받고 나와야 하나 봐요. 그래서 일부는 못 나가겠다며,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들었습니다.”

주택임대차 보호법에 따라 2,500만 원까지 변제받을 수 있지만 보증금의 반밖에 안 되고, 그 돈으로는 다른 거처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힘들게 외국에 나와 번 돈을 일순간에 날려 버렸으니 상실감이 컸다.

“미스터 서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요.”

“말씀하십시오.”

“10만 달러만 빌려줘요. 돌아가면 바로 갚아 드릴 테니까.”

“어디에 쓰시게요?”

“울라마를 길에서 주무시게 할 수는 없잖습니까.”

맞는 이야기였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카심이라는 게 놀라웠다. 돈에 관해서는 절대 양보가 없는 사람이었다.

“돈은 빌려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매가 진행된다고 바로 건물에서 나와야 하는 것은 아니니, 조금 더 알아본 다음에 행동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곧 돌아가야 하잖습니까?”

“그 전에 방법을 찾아야지요. 일단 오늘은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나흐얀 이맘께 인사를 못 드리고 가서 죄송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내가 잘 말할 테니 그건 걱정 말아요.”

밖으로 나온 진혁은 카심을 통해 울라마의 숙소 주소를 알아보고 문자로 보내달라고 한 뒤에 모스크를 떠났다.

카심이 상담실로 돌아오고 얼마 후 나흐얀이 들어왔다.

“미스터 서는 어디 가셨습니까?”

“일이 있어서 갔어. 그런데 갔던 일은 어떻게 됐냐?”

“아무래도 모스크 차원에서 일을 진행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울라마도 그렇고 까디도 부정적입니다.”

“참 답답한 사람들. 그러다 정말 길에 나앉으면 어떻게 하려고.”

“저도 같은 말씀을 드렸는데 ‘인샬라’라고 하시니 더 말씀도 못 드렸습니다.”

무슬림이 가장 많이 쓰는 용어 중에 하나인 ‘인샬라’는 ‘만약 신이 원하신다면’이라는 뜻으로, 지금의 시련도 신의 뜻이라고 받아들이겠다는 의미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모스크에서 코란의 율법대로 행한다는데 잘못됐다고 반대할 수도 없었다.

한숨을 내쉬는 나흐얀에게 카심이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미스터 서에게 돈을 준비해 달라고 했다.”

“너무 감사합니다. 형님이 이렇게 오신 것도 그분들의 말씀대로 신의 뜻인 듯합니다.”

“그 인사는 천천히 하기로 하자. 미스터 서라면 아마 다른 방법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이미 저희도 다 알아봤습니다. 모두가 힘들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미스터 서는 달라. 그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성공시키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이번에도 왠지 느낌이 좋다. 그러니 너도 마음 편하게 먹고 기다려 봐라.”

나흐얀은 수긍은 가지 않았지만, 최악의 경우 카심이 도와주기로 했으니 그의 말대로 기다려 보기로 했다.

* * *

그 시각, 진혁은 교대역 인근의 법무법인 대영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사무실은 생각보다 넓었다.

한쪽은 여직원들이 줄줄이 책상에 앉아 전화기를 붙들고 경매 투자를 권하고 있었다.

다른 벽은 여러 개의 상담실로 꾸며져 있었는데, 안에서는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진혁이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할 때 한쪽 문이 열리면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한 사내가 나왔다.

“최 사장 이놈을 내가 가만두나 보자. 이런 쓰레기 물건을 나하고 같이 투자하자고 소개해?”

“그분도 경매 브로커의 말에 속으셨을 수도 있으니 너무 화부터는 내지 마십시오.”

“속을 거면 제 놈 돈만 날리면 됐지, 왜 나까지 끌어들여서 거덜을 내려고 해? 아무튼 선생님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소. 고맙소.”

사내가 인사를 하고 부리나케 떠나는 모습에 박이동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배어났다.

고맙다는 인사는 들었지만 자신은 두 시간의 상담을 해 주고도 땡전 한 푼 받지 못했다.

한국은 상담료의 개념이 없었다.

거래가 최종적으로 성사돼야 그나마 얼마간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친 것을 눈치챈 부장의 날카로운 소리가 사무실에 울렸다.

“박이동 씨! 당장 이리와.”

박이동이 앞에 서자마자 부장이 사정없이 쏘아붙였다.

“그렇게 오는 손님마다 족족 내쫓으면 어쩌자는 말이야?”

“그렇다고 뻔히 나중에 문제가 될 물건에 입찰한다는데 아무 말도 안 할 수는 없잖습니까?”

“누가 아무 말도 하지 말래? 적당히 하라는 말이야, 적당히. 결정은 투자자의 몫이란 말도 몰라?”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도 제대로 조언을 해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허참, 열사 났네, 열사 났어. 아무튼 이번 달도 한 건도 못 했다가는 다른 일을 알아봐야 할 거야. 그만 가 봐.”

돌아서는 박이동의 발걸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게, 자신을 비웃는 말일 테다.

그때 한 젊은이가 다가왔다.

“상담을 받고 싶어서 왔습니다.”

“아, 예. 이쪽으로 오십시오.”

박이동은 당황했지만 이내 표정을 고치고 비어 있는 상담실로 진혁을 안내했다.

박이동이 명함을 건네고 물었다.

“관심이 있는 물건이 있습니까?”

“주소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XX-1번지입니다.”

“거기는 육군 중앙 경리단 위쪽인데.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박이동이 옆에 있는 컴퓨터로 빠르게 검색했다.

“이틀 후에 있을 서울서부지방법원의 경매 물건이군요. 최초 감정가가 20억인데 세 차례 유찰되어 10억 2천4백만 원까지 떨어졌네요.”

“맞습니다. 이 물건에 입찰하려고 합니다.”

“대로변의 5층 건물 2개동에 열 가구면 물건은 괜찮은데 세 차례 유찰된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립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박이동이 몇 군데 전화를 해 보더니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알아보기를 잘했습니다. 이건 아무리 싸도 안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말리시는 이유가 뭡니까?”

“무슬림이 살고 있답니다. 게다가 불법 옥탑방에서는 그들의 대장이 버티고 있답니다.”

“그게 문제가 됩니까?”

“아니, 선생님은 TV도 안 보십니까? 탈레반이라고 복면 쓰고 막 총 쏘고 폭탄 터트리는 자들 아닙니까. 그런 놈들이 그 돈 받고는 못 나가겠다고 버틴다는데 어떻게 하시려고요. 이건 낙찰받아도 답이 없는 물건입니다. 그래서 계속 유찰되어 반 토막에 나온 것이지요.”

“어느 정도 더 유찰될 거라고 예상하십니까?”

“글쎄요. 이런 경우는 참 예상하기 힘든데. 그래도 반값이라 독한 맘 먹은 사람은 한 번 더 유찰되길 기다렸다가 수도 끊고 전기 끊고 장기전으로 버텨서 처리하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말리고 싶습니다. 그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지요.”

박이동의 답변은 진혁의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다른 상담원이었다면 어떻게든 좋은 말로 꼬셔 낙찰받게 해 수수료만 챙기고 나 몰라라 할 텐데 그는 끝까지 말렸다.

“만약에 그런 상황이 아니라면 적정 건물가를 얼마로 보십니까?”

“요즘 그쪽이 젊은이들 사이에 핫한 거리로 떠올라 매매가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물건이라면 최소 감정가보다 5억 이상은 줘야 살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물건에 입찰해 주십시오.”

“아니, 선생님, 이건 아니라니까요?”

“제가 꼭 받아야 할 사정이 있습니다.”

“이번은 무조건 유찰됩니다. 하시더라도 다음번에…….”

“다음번에 반드시 받아내실 자신이 있습니까?”

진혁이 다른 각도로 박이동을 압박했다. 그냥 입찰만 주장했다가는 계속 반대할 게 뻔했다.

예상대로 바로 답을 못 했다.

“10억이 무너지면 돈에 눈먼 놈이 달려들 가능성이 있다면서요. 그러니까 이번이 잡을 수 있는 확실한 타이밍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탈레반은 어쩌시려고요?”

“그건 저한테 방법이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맡아 주시겠습니까?”

박이동의 얼굴에 갈등이 스쳐 지나갔다. 방금 전 부장에게 들은 말도 생각이 났다.

무조건 계약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자꾸 마음이 걸렸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 미친 투자입니다.”

“어차피 지금 세상이 미쳐 있습니다. 가끔은 같이 미쳐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맡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맡지요. 대신 수수료는 최대한 낮춰 보겠습니다.”

얼마 후 박이동이 계약서를 작성해 가져왔다.

“수수료는 법정 수수료인 낙찰가의 1.5%로 했습니다. 감정가의 1%보다는 조금이나마 이득이실 겁니다. 그리고 명의 변경을 옵션으로 적어 넣었습니다. 나중에 추가로 비용을 내라고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고맙습니다.”

진혁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이미 네이버의 지식IN의 자료를 검색하고 왔다.

박이동은 요구하기 전에 최적의 조건을 제시했다.

바로 계약을 하고 10% 입찰 보증금과 계약금 100만 원을 계좌 이체시켰다.

시계를 본 서진혁이 나중에 통화하자고 하고 서둘러 그곳을 나왔다.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하고 돌아온 박이동을 부장이 바로 불렀다.

“그거 봐. 하면 되잖아. 나도 알아봤는데 아주 쓰레기더군. 그것도 악취가 풀풀 풍기는.”

“투자자가 고집을 부려서…….”

“지 돈 가지고 지가 지랄한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우리는 수수료만 챙기면 돼. 잘했어.”

부장의 격려를 받고 돌아왔지만 박이동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역시나 말렸어야 했다. 그래서 진혁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지만 받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했는데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친구를 위한 일입니다. 가끔은 그냥 믿어 보시는 것도 필요합니다.]

더 이상 어떤 말도 듣지 않겠다는 표현이었다.

박이동이 핸드폰을 닫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 * *

서둘렀는데도 약속 장소인 카페에 도착하자 한지철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아니야. 나도 방금 전에 왔어. 너 스페이스 워커의 바람막이가 대박을 친 건 모르지?”

한지철이 신이 나 그간의 일을 떠들었다.

이미 정소연으로부터 들어 알고 있지만 내색하지 못했다. 한지철의 잔뜩 흥분된 기분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그걸 다 마실 때까지 그의 입은 쉬지를 않았다.

“이게 다 네 덕분이다. 정말 고맙다.”

“고마운 것은 오히려 접니다. 제 이야기를 믿고 이렇게 멋지게 성공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일등 공신은 누가 뭐라 해도 너야, 인마.”

“선배 직원 중에 정소…….”

계속 공치사를 할 것 같아 진혁이 화제를 돌리려고 정소연의 이야기를 꺼내려고 했다.

그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