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64화 (64/307)

64화. 알쇼핑 태동

카심도 처음 보는 격한 반응이었다.

“미스터 서, 무슨 일이야? 애가 놀라서 말도 못하잖아.”

“아, 마르와, 미안. 방금 소셜타이징라고 했어?”

“교수님이 이번 주 리포트 숙제로 내준 거예요.”

“이런, 바보!”

진혁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내려쳤다.

‘윽.’

당연히 아팠다.

계속되는 진혁의 이상 행동에 이제는 카심까지 불안한 눈빛이 되었다.

“미스터 서, 조금 쉬었다 갑시다. 아무래도 이런 상태로는 운전은 무리 같아요.”

“그래요. 조금 있다가 출발해요.”

대충 근처에 주차한 진혁은 바로 문을 열고 나와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할랄 화장품이 시장에 먹힐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홍보 방법이었다.

이집트는 국영 TV의 여성 앵커도 히잡을 쓰고 나오는 나라였다. 거기에 여성용 화장품 광고를 내보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시장에 뿌려 놓고 천천히 반응을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마르와가 그 문제를 해결할 힌트를 줬다.

담배를 끈 진혁이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카심과 마르와를 데리고 휴게소의 카페로 갔다.

주문한 음료가 나오자 사과부터 했다.

“미안합니다.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저도 모르게 놀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르와, 고맙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기에 그렇게 놀란 거요? 그리고 마르와에게 고맙다는 말은 또 뭐고.”

“화장품을 가져가도 알릴 방법이 마땅치 않아 고민했거든요. 그런데 마르와가 소셜타이징이란 기가 막힌 방법을 알려 줬어요.”

소셜타이징(Socialtising)은 사회적 관계를 의미하는 ‘Social network’와 광고를 의미하는 ‘Advertising’의 합성어다.

소비자가 어떤 상품에 대한 광고를 제작해 유통에 참여하는 판매 방식으로, 아직 시장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신개념 유통 방식이었다.

마르와가 의아한 시선으로 물었다.

“교수님이 새로운 방식이라 한국에는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사장님이 어떻게 그걸 알고 있어요?”

진혁의 기억으로 내년에 칸 국제 광고제의 코카콜라 광고가 수상하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중국의 파워 블로거 파피쟝이 선도한 ‘왕홍 마케팅’으로 유명세를 탔다.

미래의 일을 그대로 알려 줄 수는 없었다.

“화장품을 이집트 시장에 어떻게 접목시킬까 고민하면서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알게 됐어. 그보다 마르와가 이집트 최초, 아니, 무슬림 최초의 파워 트위터리안을 해 보는 게 어때?”

“제가요?”

“그래. 모든 지원은 내가 해 줄게. 이제 아르바이트는 그만둬.”

진혁의 급작스런 제안에 마르와가 놀란 시선을 주자 카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좀 이상하긴 했지만, 진혁이 돌변할 때는 분명 일을 저지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르와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 주시면 해 볼게요.”

“오늘처럼만 해 주면 돼. 한두 가지만 보완하면 완벽할 것 같다. 그건 가면서 이야기하자.”

세 사람은 서둘러 일어나 차를 타고 산청으로 갔다.

가면서 진혁은 왕홍 마케팅을 떠올리며 마르와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러는 사이 두리식품에 도착했다.

여긴 유닉스와 달랐다.

인증서도 요구한 뒤에야 보여줬고, 샘플도 미리 준비되어 있지 않아 기다려야 했다.

신제품인 렌틸콩과 누에콩은 물론 기존 병아리콩도 시식을 했다.

진혁은 입맛에 맞았지만 마르와와 카심의 표정은 아니었다.

“단맛이 약해요. 콩도 너무 딱딱하고요.”

“지난번에 우리가 당도를 높이고 더 익혀 달라고 하지 않았나요?”

“설탕을 먹자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더 높이고 익히면 그건 콩이 아니지요.”

사장의 말에 카심의 얼굴이 붉어지자 진혁이 얼른 나섰다.

“지역마다 먹는 방식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요구대로 해 주십시오. 그럼 바로 주문을 넣겠습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하지만 설탕과 가스비가 추가로 들어가니 가격은 올라갑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디자인과 번역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그건 당신들이 준비해야지. 우린 통조림만 만들어.”

이번에는 진혁의 얼굴이 붉어졌다. 하지만 폭발하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빨리 제품을 가져가야 했다.

“알겠습니다. 비용은 제가 낼 테니 기존에 거래하던 업체를 소개시켜 주십시오. 번역은 여기 마르와가 도와줄 겁니다.”

“서울에 있는 업체이니 찾아가서 확정되면 보내 주시오. 우리가 그런 것에 신경 쓸 시간은 없으니.”

“그렇게 하지요. 하지만 보완된 샘플을 확인해야겠습니다.”

“지금 그걸 만들어 오라는 말이오?”

어이없어 하는 사장의 표정에 진혁의 얼굴도 굳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제품의 질은 양보할 수 없었다.

“어렵습니까? 그럼 이번 거래는 6개월 후에 하지요. 서울 올라가면 바로 이집트로 가서 그때나 올 것 같습니다. 그만 갑시다.”

“에헤, 젊은 사람이라 성격도 급하기는. 콩은 삶아 올 수 있지만 통조림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오.”

“일단 콩부터 삶아 오십시오. 통조림 상태의 제품은 여기 마르와가 최종 컨펌을 할 겁니다. 거기서도 문제가 생기면 이번 거래는 없습니다.”

“알겠소. 잠시 기다리시오.”

사장이 부리나케 나갔다.

카심이 혀를 찼다.

“아주 최악이구만. 도대체 물건을 팔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그러게요. 왕짜증이네요.”

“어디건 이상한 사람은 있기 마련입니다. 거기에 일일이 신경 쓰다가는 제 명에 못 삽니다. 물건을 가져가는 게 급하니 오늘은 참읍시다.”

틀린 말이 아니기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마르와도 자신의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핸드폰으로 인증서는 물론 통조림도 찍었다.

한참 지나 사장이 그릇에 담긴 삶은 콩을 가져왔다. 한결 나았다.

카심과 마르와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진혁이 말했다.

“좋습니다. 각 10만 개씩 만들어 주십시오. 신용장은 마르와가 오케이 사인을 하면 그때 바로 열어 드리겠습니다.”

“그럽시다. 이번에는 할랄인가 하는 인증 비용이랑 디자인 비용이 들어가서 처음 가격으로 주지만 다음부터는 올려 주셔야 합니다.”

“감안하지요. 일단 이번 제품부터 잘 만들어 주십시오.”

“그건 걱정 마시오. 먼 길 오셨는데 제가 식사 대접을 하지요.”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제가 바로 서울로 올라가야 해서요. 다음에 하지요. 마지막까지 잘 부탁합니다.”

진혁이 속마음을 숨기고 정중히 거절했다.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차 안의 분위기가 무거웠다. 유닉스를 나올 때와는 딴판이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만난 세 사람은 강남의 ‘디자인 봄’을 찾아갔다.

두리식품의 거래처였는데, 디자인뿐만 아니라 상품 사진 촬영까지 하고 있었다.

진혁은 바로 디자인 작업 일체를 맡겼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았다.

담당자에게 물어 근처의 유명 디자인 학원에 마르와를 등록시키고, 카메라도 간편하면서 성능이 좋은 것으로 사 줬다.

오후에는 박이동의 연락을 받고 강릉 땅을 10억 5천만 원에 계약을 했다.

약속대로 낮아진 가격의 절반인 1억 2,500만 원을 챙겨 줬다.

다음 날은 아버지와 함께 태후패션으로 가서 총판 계약을 마무리 짓고 인천의 우리씨엔티 사장님을 소개시켜 드렸다.

진혁은 이집트로 가야 해서 창고를 짓는 것까지는 볼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에 희준을 만나 마지막 술자리를 하고 다음 날 카심과 함께 한국을 떠났다.

* * *

이집트로 돌아온 진혁은 정신없이 한 달을 보냈다.

갈리의 업무 보고를 시작으로 한국에 가 있는 동안의 실적을 체크했다.

그리고 태후물산의 카이로 지사 법인 설립 작업을 하는 한편 사무실도 얻었다.

알라딘 컴퍼니의 업무 공간도 부족해 두 층 아래 전체를 빌려 그리로 이사를 했다.

화장품과 콩 통조림 판매를 위한 작업도 착착 진행했다.

우선 갈리의 추천을 받아 유통 전문가인 하마드를 영입해 알라딘 유통을 설립하는 한편, 온라인 쇼핑몰인 ‘알쇼핑’을 PC 버전과 스마트폰 버전으로 제작해 시범 테스트에 들어갔다.

무역, 유통, 기술 지원 분야의 신규 직원들도 충원했다.

새롭게 마련된 사장실에서 임원 회의를 열었다.

핫산이 카이로 지사장 자격으로 참석했고, 갈리와 하마드는 알라딘 컴퍼니와 유통의 대표였다.

업무 보고가 끝나고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의 화제는 당연히 새롭게 시작할 알라딘 유통이었다.

“알쇼핑 테스트 결과는 어떻습니까?”

“몇 가지 발견된 버그가 해결되어 현재는 정상 가동되고 있습니다만, 온라인 쇼핑몰은 아무래도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전체 유통 시장의 1%도 안 되는 곳에 너무 많은 자금이 투여되는 것 같아 우려됩니다.”

갈리가 여전히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이집트는 인터넷 보급률이 37% 정도밖에 안 되고, 결제 시스템이 후진적이라 온라인 유통 시장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집트 소비자들이 물건을 직접 고르고 구매하는 습관도 성장을 막는 요인 중 하나였다.

사이트 제작과 시스템 구축에 200만 달러가 넘는 돈이 들어간 데다 유지 보수를 위해 직원 두 명까지 채용했으니 그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주력 상품인 화장품의 주 고객은 젊은 층입니다. 온라인 쇼핑몰 이용자의 75%가 35세 이하라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낮은 인터넷 보급률과 반대로 휴대폰의 보급률은 100%가 넘었습니다. 언젠가는 온라인이 유통 시장의 대세가 될 겁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결제 수단의 80% 이상이 현금인데 카드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과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20%는 그래도 카드를 사용한다는 의미지요. 그리고 그분들은 프리미엄 고객입니다. 앞으로 고가 제품을 런칭했을 때 매우 중요한 고객이 되실 겁니다. 이미 시작된 일이니 앞만 보고 달려 주십시오.”

갈리의 입을 막자 이번에는 핫산이 다른 우려를 나타냈다.

“제가 제일 걱정되는 것은 가격입니다. 한국에서 판매되는 것보다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하시겠다는 건 반드시 재고하셔야 합니다.”

“알라딘 유통의 판매 방식은 네트워크 마케팅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중간 유통 단계를 배제하여 유통 마진을 줄입니다. 관리비, 광고비, 샘플비 등 제비용도 들지 않습니다. 그 가격으로 수지를 맞출 수 있어요.”

“하지만 30%의 관세에 셀러에게 지급되는 판매 장려금을 고려하면 회사 마진은 없습니다.”

“그래도 손해는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그동안 들어간 투자비는 생각 안 하십니까?”

“그건 때가 되면 돌아올 겁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들 마십시오.”

며칠째 반복된 이야기지만 진혁은 얼굴 찌푸리지 않고 같은 답을 내놨다.

보통 사람들은 직위를 이용해 입을 닫게 하겠지만 진혁은 그러지 않았다. 옳든 그르든 건전한 토의는 조직을 살찌우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자기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윗사람도 독선에 빠지지 않고 다른 의견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게 진혁이 원하는 건강한 조직이었다.

결국 두 사람이 굳은 얼굴로 먼저 나가자 혼자 남은 하마드가 웃으며 말했다.

“속 시원하게 계획을 밝히시면 다들 이해할 텐데 왜 가만 계십니까?”

“제 계획을 들으면 저들이 이해할까요?”

“쉽지 않을 겁니다. 온라인 유통 전문가라고 행세하던 저도 처음 사장님의 계획을 들었을 때 황당했거든요.”

“그래서 회사를 별도로 세운 겁니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판매 방식이라 우리 내부에서도 혼란이 올 테니까요. 지금처럼 말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그냥 독자적으로 운영한다고 하시면 되지, 왜 같은 질문을 계속 받으십니까?”

“이번에 적용할 유통 방식은 솔직히 저도 성공 여부가 의심스럽습니다. 비교할 데이터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계속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놓친 부분이 있는지 체크하는 겁니다.”

하마드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미진한 표정으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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