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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75화 (75/307)

75화. 위험한 동행

“지금은 가서 쉬세요.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연락기다리겠습니다.”

김상균도 솔직히 지쳐 있었다. 일이 터지고 3일 동안 거의 자지 못했다.

떠밀려 나가는 김상균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CIA가 추천할 정도면 능력은 출중하겠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그 이상으로 만만치 않았다.

혼자 남은 진혁이 전화기를 들었다.

어렵게 셰리피 소장과 연결되어 사정을 이야기하고 압델 국장과 면담을 부탁했다.

초조하게 기다린 지 30분 만에 전화가 왔다.

-바쁜 일정이 있어 시간 내기 어렵다시네. 그리고 자신을 만나도 들어줄 수 없는 일이니, 미스터 서도 괜한 일에 끼어들어 곤욕을 치르지 말라는 말씀도 하셨네. 좋은 소식을 전해 주지 못해 미안하네.

“아닙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전화를 끊은 진혁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집트 정부는 나설 뜻이 전혀 없었다.

가끔 정보를 전해 주는 세나위를 떠올렸지만 그가 감당하기는 벅찬 일이었다.

그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전화를 걸었다.

-어이, 미스터 서, 오랜만이야. 이렇게 먼저 전화를 주고, 어쩐 일인가?

“지금 어디십니까?”

-새벽에 카이로에 도착해서 쉬는 중인데, 무슨 일인가?

“지금 당장 뵈어야겠습니다.”

상대는 알트라드였다.

얼마 후, 진혁은 시내 중심가의 한적한 카페에서 알트라드와 만났다.

푸다를 데려온 것은 당연했지만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이 손님처럼 주변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이, 경호원인 듯했다.

알트라드는 지금도 리비아에 밀수품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돈이 되는 반면 위험도 커져 경호를 강화했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하게 보자고 한 건가?”

“지금도 시나이 반도에 선이 있습니까?”

“거기가 내 고향인데 당연하지. 사람이 자신의 본분을 잊으면 안 되네.”

“3일 전 시나이 반도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납치된 걸 아십니까?”

“그런 일이 있었어? 거길 왜 들어갔대. 요즘 나도 거의 가지 못했어. 온갖 잡것들이 다 들어와 설쳐대서 나도 안전을 장담 못 해.”

알트라드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납치했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납치된 관광객들 중에 친척이라도 있어?”

“그건 아닙니다.”

“그럼 나서지 말게. 너무 위험한 일이야. 잘못되면 자네가 이룬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어. 나도 마찬가지고. 못 들은 것으로 하겠네.”

자살 폭탄 테러도 서슴없이 감행하는 자들이었다. 설혹 관광객들을 무사히 구한다고 해도, 어디서 어떤 보복 공격을 당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진혁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알트라드 씨가 시나이가 고향이듯 전 한국이 고향입니다. 제가 아는 누군가의 가족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납치되어서 죽을지 모르는데 구경만 하고 있으란 말입니까? 알트라드 씨는 친구의 가족들이 죽어가도 위험하니까 구경만 할 겁니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무리 같은 국민이라지만 목숨까지 걸고 나서야 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납치된 사람 중에 여대생이 있다는 것이다. 희수 같은.

그 생각을 하니 도저히 나 몰라라 할 수가 없었다.

“그거랑 이거는 달라. 내 가족 모두를 위험에 빠트릴 수 있단 말이야.”

“알트라드 씨가 나서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알아만 봐 달라는 겁니다. 그 정도는 해 주실 수 있잖습니까?”

알트라드는 난감했다.

진혁은 합리적인 성격이었다. 절대 무리한 요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억지를 쓰고 있었다.

거부하는 게 맞지만 리비아의 일을 넘겨받은 빚이 있었다.

알트라드가 입맛을 다셨다.

“그때 배에 태우는 게 아니었어.”

“덕분에 이렇게 카이로까지 진출해서 잘 지내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흠……. 난 알아만 봐 주는 거네. 그 이상은 절대 안 돼.”

“그거면 됩니다. 더 이상 부탁은 안 하겠습니다.”

“나도 그렇게 하겠지만, 미스터 서도 내 이름을 절대 언급하면 안 되네.”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알아보고 연락 주지.”

“사정이 급합니다.”

“최대한 빨리 연락을 할 거니 걱정 말고 돌아가서 기다리게.”

진혁은 알트라드와 헤어져 회사로 돌아왔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잠을 설치던 진혁은 동이 틀 무렵 전화를 받고 숙소 앞으로 나갔다.

검은색 승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푸다가 뒷자리 문을 열어 주어 들어가자 알트라드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네. 정말 이 일을 꼭 해야겠나?”

“그렇습니다.”

“자네의 모든 것이 날아간다고 해도?”

“때론 목숨을 내놓더라도 무조건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아실 겁니다. 제겐 이 일이 그렇습니다.”

“끙.”

수없이 사선을 넘나들며 여기까지 온 알트라드였다.

진혁의 말이 어떤 뜻인지 모르지 않았다.

“다행히 놈들은 우리 베두인이 아니었네.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라고, 알카에다와 연계된 놈들이었어. 시나이 반도로 쫓겨 들어온 놈들이 저지른 일이야.”

“놈들의 근거지는 어디랍니까?”

“성카트리나 수도원 인근 사막에 천막을 치고 지낸다고 하더군. 대장은 오마르라는 자로, 부하가 100명에 이른다고 하네.”

미국은 빈 라덴만 제거하면 후계자를 정하지 못한 알카에다가 자동으로 소멸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테러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후계자 그룹들이 각기 조직원을 이끌고 분열해 세계 곳곳에서 폭탄 테러를 자행하고 있었다.

오마르도 그중 한 명이었다.

“고맙습니다.”

“진정……. 아니네. 자네가 말린다고 들을 사람도 아니고. 부디 몸조심하게.”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진혁이 문을 열고 나가 숙소로 들어갈 때까지 알트라드는 눈을 떼지 못했다.

말은 안 했지만 형제보다 소중한 존재였다.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 * *

아침 일찍 호텔로 찾아가 눈이 퀭한 모습의 김상균을 만났다. 밤새 한숨도 못잔 모습이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다행히 어디에 잡혀 있는지는 알아냈습니다.”

알트라드에게 들은 정보를 들려줬다.

얼굴이 어두워진 김상균이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알카에다 잔당이라면 미국이 용인해 줄 수도 있습니다. 이집트도 자국 베두인의 소행이 아니니 협조해 줄 겁니다. 위에 보고해야겠습니다.”

“진정 그들이 협조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그보다 위에서 작전 승인을 해 줄까요? 우려한 대로 알카에다인데.”

“……!”

핸드폰을 꺼내던 김상균의 동작이 멈췄다.

미국과 이집트가 허락할지도 회의적이었지만 한국 정부가 더 큰 문제였다.

뉴욕의 쌍둥이 빌딩을 직접 공격한 자들이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선택은 과장님이 하셔야지요. 어떻게 하실 겁니까?”

“…….”

진혁이 막상 그렇게 묻자 김상균은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다급한 김에 달려왔지만 이런 최악의 상황이 될 줄은 몰랐다.

승인 없이 단독으로 작전에 나섰다가 실패하면 분명 한국 정부에서는 부인할 게 분명했다.

결국 자신은 개죽음만 당하는 꼴이 된다.

그동안 쌓아 온 커리어와 한국의 가족들…….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결행하겠습니다.”

“실패했을 때 뒷감당을 어떻게 하시려고요?”

“전 국정원에 들어오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겠다고 명세했습니다. 이대로 포기하고 돌아가서 어떻게 뻔뻔스럽게 더 근무하겠습니까. 하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요.”

“알겠습니다. 제가 어떻게 도와 드리면 되겠습니까?”

김상균과 진혁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인질 구출 작전에 대해 구체적인 대화를 나눴다.

회사로 돌아온 진혁이 사장들을 모두 불러 모아 오늘 바로 휴가를 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미 사전에 조만간 한국으로 휴가를 다녀온다고 해 놔서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밀린 일을 마무리하고 있을 때 카심이 투덜거리며 들어왔다.

“일정이 당겨졌으면 먼저 나한테 이야기를 해야지요. 나도 준비를 해야 할 거 아니요.”

“카심 씨는 천천히 오십시오.”

“그런 게 어디 있소? 갈 거면 같이 가야지.”

“젯다에 들려 며칠 있다가 갈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설마 혼자 찾아갈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겁니까?”

“사람이 누굴 띄엄띄엄 보고 있어.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으니 걱정 마시오.”

“부모님부터 뵈어야 하니 서울의 모스크에서 쉬고 계십시오.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알겠소. 그럽시다.”

김상균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비행기를 탔다.

* * *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 도착하자 세나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알아보라는 것은 어떻게 됐습니까?”

“프랑스 국적의 마크롱이 입이 무겁고 일 처리가 깔끔하다고 해서 약속을 잡아놨습니다.”

“갑시다.”

한 시간 정도 차를 타고 바그다드를 벗어나자 사막 지대가 나타났다.

구릉을 몇 개를 넘자 천막이 보였다. 주변에 철조망이 쳐져 있고 무장한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마크롱 씨와 약속된 분입니다.”

세나위의 말에 경비병이 전화를 들어 확인하더니 차단봉을 올려 줬다.

중앙의 가장 큰 천막으로 가자 훤칠한 키에 핸섬하게 생긴 남성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군복만 아니었다면 모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마크롱이오.”

“연락을 드렸던 짐입니다.”

“안으로 들어갑시다.”

급하게 내뱉은 가명이었지만 둘 다 신경 쓰지 않았다.

사전에 김상균과 협상은 진혁이 맡아서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천막 안은 리비아의 무하마디 총사령관 지휘 본부와 비슷했다.

간단한 집기류와 야전 침대, 중앙의 큰 탁자 위에 펼쳐진 지도.

마크롱은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PMC를 이끌고 있는 인물로, 블랙 워터라고 알려진 민간 군사 기업의 수장이었다.

이라크 전의 참전을 결정한 미군이 정규군 투입에 반대하는 국내 여론을 의식해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맡기려고 용병 부대를 끌어들인 게 그 시발점이 되었다.

미국이 떠났지만 PMC는 여전히 이라크에 남아 활동하고 있었다. 종파 분쟁으로 내전 상태라 일거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탁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진혁이 물었다.

“요즘 사업은 어떠십니까?”

“아시다시피 상당히 바쁩니다. 종파간 죽고 죽이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슬람 무장 단체 IS까지 이쪽으로 넘어와서요. 경호 의뢰가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마크롱이 일부러 바쁜 듯 장황하게 늘어놨다.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겠다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진혁이었다.

“돈 많은 졸부들 뒤치다꺼리만 했다면 몸이 많이 굳었겠군요.”

“무슨 소리. 우리 애들은 최고입니다.”

“글쎄요. 그건 봐야지요.”

“당장 훈련장으로 갑시다. 아마 놀랄 겁니다.”

“사양합니다. 실력은 실전에서 보는 게 정확합니다.”

다시 한번 밀린 마크롱은 진혁이 단순한 의뢰인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사전 탐색은 이 정도면 된 것 같고, 사업 이야기를 들읍시다.”

“3일, 아니 이제 4일이 됐군요.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서 무장 단체가 관광객 세 명을 납치해 몸값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구출 작전이군요.”

“최고를 원합니다.”

“챨리팀은 믿고 맡기셔도 될 겁니다. 하지만 그만큼 보수도 비쌉니다.”

“그 부분은 일단 만나 보고 합시다.”

실력도 모르는데 돈부터 협상할 수는 없었다.

얼마 후 금발의 백인 사내가 들어왔다. 건강한 몸에 사각 진 얼굴, 짧은 머리에 강인한 느낌을 받았다.

“어서 오게, 마이클. 이집트에서 구출 작전을 의뢰하러 오신 분이시네.”

“짐입니다.”

“정확한 사건 개요부터 듣고 싶습니다.”

맡을 일부터 챙기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이야기를 듣고 난 마이클이 잠시 양해를 구하고 책상의 컴퓨터로 구글에서 성카트리나 수도원 주변을 세밀하게 훑어봤다.

그리고 한참 만에 돌아왔다.

“맡을 수는 있지만 성공은 장담 못 하겠습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합니다. 제대로 파악도 못 하고 치고 들어가야 하는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변명을 듣자고 온 게 아닌데 실망이군요.”

“실망하셨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상의해도 같은 답을 들을 겁니다. 성공을 장담하는 놈은 돈만 밝히는 쓰레기라 보시면 될 겁니다.”

마이클이 전혀 꿀림 없이 당당하게 말했다.

전혀 손님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회사에서 이런 직원이라면 최악이었다.

하지만 김상균은 생각이 다른 것 같았다. 진혁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든다는 표현이었다.

“좋습니다. 일을 맡기지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마이클이 배려심은 적지만 일 하나는 확실합니다.”

마크롱의 입이 찢어졌다.

마이클이 이끄는 구출팀과 공격팀을 투입하기로 하고 200만 달러에 계약을 했다.

선금 100만 달러에 성공했을 시 100만 달러를 추가 지급하는 조건이었다.

김상균이 그 자리에서 바로 100만 달러를 이체해 줬다.

마이클이 팀원들을 소집하고 준비하러 나가자 김상균이 마크롱에게 물었다.

“사격을 해 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합니다만 설마 직접 작전에 참가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분들을 반드시 구출해내야 합니다. 우리나라 국민들인데 뒤에 빠져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위험하고 방해만 될 겁니다.”

“내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정 의심스러우면 사격 실력을 본 다음에 다시 말씀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하지요. 따라오시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마크롱을 따라가자 사격 연습장이 나왔다.

진열된 무기 중에 익숙한 M16을 집어 들었다.

세 발을 쏴서 영점 조준을 마친 김상균이 엎드려 쏴, 앉아 쏴, 서서 쏴 자세로 각각 아홉 발씩 사격을 했다.

옆의 버튼을 누르자 사격판이 다가왔다.

옆에서 지켜보던 마크롱의 눈이 커졌다.

“와우! 군 출신입니까?”

“비슷한 쪽 일을 하고 있습니다.”

과녁의 중앙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물론 한두 발 옆으로 비켜간 것도 있지만 오랜만에 쏜 것치고는 준수했다.

김상균은 마이클이 찾아올 때까지 사격 연습을 계속했다.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자신의 바뀐 운명도 이걸로 끝나게 될 터. 김상균의 온 신경이 긴장감으로 팽팽해졌다.

옆에서 지켜보는 진혁도 긴장되긴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시작한 일, 끝까지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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