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무사 귀환
카이로 공항에 도착한 일행은 세나위가 준비한 버스를 타고 시나이 반도로 출발했다.
“일반 관광객처럼 행동하셔야 합니다. 종교적인 발언이나 기자 같은 질문은 하시면 안 됩니다.”
세나위가 대원들에게 주의를 줬다.
이집트는 관광 수입으로 먹고 사는 나라였다.
게다가 대다수의 국민들은 극렬 단체의 주장과 무관한 선량한 사람들이었다.
관광객들을 공격하면 국민들의 공분을 산다는 것을 알기에 극렬 단체도 종교인이나 기자들만 공격했다.
성카트리나 수도원은 시나이산 근처인 내륙의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사막 한가운데 외따로 떨어져 있고 뒤에 바위산이 있어 척 보기에도 요새였다.
버스를 멈추고 몇몇 대원이 내려 관광객처럼 수도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척하며 근처에 설치된 천막들을 촬영했다.
오래 머물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어 얼른 올라타고 다시 출발했다.
도착한 곳은 가장 가까운 호텔인 캐서린빌리지였는데,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이곳의 불안한 치안이 알려지고 있어 손님들이 뚝 끊겼는데 갑자기 단체 손님이 몰려오자 사장이 반색을 하며 직접 마중을 나왔다.
여기 사정을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꾹 참았다. 지금은 누구도 믿을 수 없었다.
일행은 한 동을 통째로 빌려 쉬기로 했다.
그날 밤 일부 대원들이 은밀히 숙소를 빠져나갔다.
다음 날, 관광객처럼 다시 한번 버스를 타고 시나이산을 오가며 수도원을 정찰하고 돌아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최종 작전 회의를 열었다.
마이클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상당히 영리한 자입니다. 수도원을 옆에 두고 있어 공중 폭격도 쉽지 않아 보이고, 앞이 넓게 트여 있어 대규모 병력 투입도 힘든 위치입니다.”
“그럼 어떻게 공격할 겁니까?”
“뒤의 바위산을 넘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몇몇 지키는 병사들이 보이지만 그 수가 많지 않아 충분히 제압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뭡니까?”
“어디에 인질이 잡혀 있는지 파악이 안 된다는 겁니다.”
천막은 열 개나 됐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누가 뭐라 해도 인질의 안전한 구출이었다. 적을 다 제압해도 그 전에 인질을 죽여 버리면 작전은 실패다.
함부로 공격을 감행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천천히 알아볼 시간은 더더욱 없었다.
테러범들이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인질은 참수하겠다고 공표한 상황이었다.
기회는 오늘 밤밖에 없었다.
진혁이 말했다.
“자신은 못 하지만 내가 알아보겠습니다. 설혹 못 알아낸다고 해도 작전은 결행합니다.”
“알겠습니다. 팀원들과 준비하겠습니다.”
세나위와 함께 밖으로 나온 진혁이 주변을 둘러보고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눌렀다.
-이게 누구야? 신밧드, 자네가 내게 다시 전화할 줄은 몰랐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잭슨 씨 때문에 다시 전화하게 됐네요.”
-설마 미스터 김이 찾아간 건가? 동족이라 이집트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자네를 찾아가라고 한 것뿐인데. 무슨 일인가?
잭슨도 정확한 사정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는 진혁의 설명을 듣고 바로 욕을 했다.
-빌어먹을. 그 작전을 당장 취소하고 카이로로 돌아가게. 자네가 낄 일이 아니야.
“그럼 잭슨 씨가 안전하게 구출해 준다고 약속하실 수 있습니까?”
-…….
“전 안 돌아갑니다.”
-자넨 그때나 지금이나 미친놈이야.
잭슨은 누구보다 진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를 말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이라크에 가서 전문가를 초빙해 왔습니다.”
-더러운 블랙워터 놈들. 끝을 볼 작정이군.
“그게 뒤끝이 없으니까요. 테러범들을 제압할 자신은 있습니다만,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뭔가?
“포로들이 잡혀 있는 천막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잭슨은 말이 없었다.
구출 작전에서 그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이 적외선 위성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나보고 지금 국가 기밀을 빼내라는 말인가?
“설마요. 제가 그렇게 무모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한 번만 봐 달라는 말씀입니다.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습니까?”
-그게 그 말이잖아.
“우린 튀니지에서 생사를 같이한 동지 아닙니까? 반가워 전화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진혁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튀니지를 꺼내 목숨을 구해 줬다는 걸 언급했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전화기 너머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한참 만에 잭슨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약속은 못 해.
“그래도 저는 들어갈 겁니다.”
-누가 자넬 말리겠나.
잭슨이 대답도 듣지 않고 끊었다.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대원들이 하나씩 빠져나갔다.
도로를 피해 걸어갔다.
바위산에 도착하자 공격팀이 무기를 내려놓고 칼 한 자루씩만 챙겨 바위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파른 암벽인데도 마치 평지를 걷는 듯 빠르게 올라갔다.
얼마 후 답답한 신음 소리가 몇 번 들리더니 위에서 뭔가 떨어졌다. 목숨이 끊긴 적 경비병들이었다.
위에서 밧줄이 내려오자 마이클 팀원들이 그걸 잡고 오르기 시작했다.
그중에 김상균은 물론 진혁도 끼어 있었다.
정상에 오르자 이미 PMC 대원들은 적당한 곳에 앉아 물을 마시며 쉬고 있었다.
돈을 받을 만했다.
김상균이 숨을 헐떡이는 진혁에게 물병을 내밀었다.
“밑에서 기다리시라니까요.”
“성질이 지랄이라 기다리는 걸 잘 못합니다. 차라리 여기서 지켜보는 게 맘 편합니다.”
“여기까지만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아무리 겁 없는 상사원이라도 전쟁터에 총 들고 뛰어들 만큼 무모하지는 않습니다.”
그때 마이클이 다가와 물었다.
“언제까지 연락 주기로 했소?”
“시간 약속은 안 했지만 반드시 연락이 올 겁니다.”
“오래는 못 기다립니다. 탈출할 시간도 감안해야 합니다.”
마이클이 돌아가고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었다. 먼저 전화를 하려다가 진혁이 포기했다.
재촉한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마이클이 더 이상 기다리기 힘든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김상균의 얼굴에도 다급함이 묻어났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영상 통화였다.
-말로 하는 것보다 직접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한 시간 전 사진이지만 밤이라 큰 변동은 없을 거야.
“정말 고맙습니다.”
화면에는 적외선 위성으로 찍은 사진의 모니터가 비치고 있었다.
진혁이 손짓으로 김상균과 마이클을 불러 같이 봤다.
흘러가는 화면을 보던 마이클이 빠르게 외쳤다.
“잠깐, 거기!”
체온 때문에 붉은색으로 나타나는 부분이 다섯 개가 보이는 천막이었다.
다른 곳은 많거나 없었다.
납치된 한국인과 그들을 지키는 경비 두 명이 분명했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 천막이었다.
잭슨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PMC 친구.
“난 얼굴을 비치지 않는 자는 친구로 생각하지 않소.”
-그건 상관없고. 내 친구도 살려서 데려오게, 받아야 할 빚이 있으니까.
“그건 걱정 마시오. 그가 가지 못하면 나도 가지 않을 생각이니.”
-좋아. 건투를 빌어.
화면이 꺼졌다.
진혁과 마이클이 눈을 마주쳤다.
모든 준비가 다 됐다. 이제 움직일 시간이었다.
마이클이 빠르게 대원들을 불러 모아 방금 전 본 위성 화면의 내용을 들려주고 작전 계획을 확정했다.
완전 무장을 갖춘 김상균이 진혁에게 말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제 걱정은 마시고 무조건 빨리 빠져나가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구해서 돌아오십시오.”
“고마웠습니다.”
“그 말씀은 인질을 구출한 다음에 하시지요.”
진혁의 말이 끝나자 마이클의 손짓에 구출팀이 앞에 섰다.
모두 내려가고 혼자 남게 되자 진혁은 바위 위에서 적외선 망원경으로 작전 모습을 지켜봤다.
조심스럽게 산을 내려간 대원들이 세 번째 천막에 도착했다.
김상균과 마이클은 한 팀이었다.
공격팀이 계획대로 테러범들이 자고 있는 천막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신호를 보내자 마이클이 공격 신호를 보냈다.
펑, 펑!
따다다다다다다.
폭탄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천막으로 뛰어들었다.
불이 켜진 천막 안의 중앙 의자에 검은 복면이 씌워진 납치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탕, 탕, 탕, 탕!
경비병은 정보와 달리 두 명이 아니라 네 명이었다. 늘어난 두 명은 장교였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놀란 표정도 짓기 전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상황이 종료됐다고 안심하는 순간 의자 뒤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있었다.
“멈춰!”
손에는 총이 들려 있었는데, 총구가 납치된 사람들의 뒤통수를 겨누고 있었다.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를 이끄는 오마르였다.
내일 있을 처형식을 인터넷 생중계로 유튜브에 올려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릴 계획이었다.
그래서 부관을 데리고 다시 한번 확인하러 왔다가 김상균 일행과 맞닥뜨린 것이다.
“난 이슬람의 위대한 전사 오마르다. 너희 누구냐?”
“그 더러운 입에 이슬람을 올리지 마라!”
김상균이 재빨리 앞으로 나서며 영어로 호통을 쳤다.
“네놈은 전사가 아니라 쥐새끼다.”
“네놈이 감히!”
흥분한 오마르가 총구를 김상균에게 향하게 하려다가 얼른 다시 내렸다. 하마터면 상대의 심리전에 당할 뻔했다.
“건방진 미제국주의 앞잡이. 감히 나를 놀리다니. 조금만 이상한 기색이 보이면 인질은 죽는다.”
“그럼 너도 죽는다.”
“위대한 전사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은 셋, 너는 하나. 내겐 손해 나는 장사가 아니다.”
오마르가 도발해 봤지만 김상균은 여전히 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겨눈 M16 총구도 흔들림이 없었다.
오마르는 초조했다.
폭탄이 터졌고 기관총 소리도 들었다. 얼마라도 살아남아 지원하러 올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도 조용했다.
오히려 얼마 후 천막을 열고 들어온 것은 상대편이었다.
“다른 자들은 모두 정리됐습니다.”
“수고했다.”
다섯 개의 총구가 자신을 겨누고 있자 천하의 오마르라고 해도 심장이 떨려 왔다.
김상균이 불을 질렀다.
“날이 밝는다. 빨리 끝내자.”
“이놈이!”
“누굴 죽일지는 네가 정해라. 너랑 손잡고 저승으로 같이 갈 목숨이니.”
“…….”
“셋을 세겠다. 하나, 둘.”
“잠깐, 잠깐!”
오마르가 급히 소리치느라 무의식중에 총을 든 손이 올라오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마이클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이마 정중앙에 구멍이 뚫린 오마르가 서서히 옆으로 쓰러졌다.
“나이스 샷!”
대원들의 감탄을 무시하고 김상균이 빠르게 말했다.
“인질을 데리고 나갑시다. 최대한 빨리 시나이 반도를 벗어나야 합니다.”
“서둘러라.”
대원들이 움직임이 빨라졌다.
인질을 데리고 도로로 나오자 세나위가 버스를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진혁은 이미 내려와 타고 있었다.
어둠 속으로 버스가 빠르게 사라졌다.
* * *
버스가 멈추고 복면이 벗겨지자 눈물 콧물로 엉망이 된 얼굴이 드러났다.
갑자기 빛이 들어오자 눈을 뜨지 못했다.
잠시 후 시력을 회복한 그들의 눈에 아랍인이 보였다.
“당신들은 구출됐습니다. 버스를 내려 건너가면 한국 대사관이 보일 겁니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인질들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예쁘장한 여대생은 울음을 터트리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흥분이 가라앉자 아랍 사내가 말했다.
“당신을 납치한 자들과 우리 베두인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을 구해 준 겁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제게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시면 이곳의 실상을 똑똑히 알려, 무모한 성지 순례는 자제하게 해 주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가십시오.”
문이 열리자 풀려난 인질들이 정신없이 길을 건너 한국 대사관으로 뛰어 들어갔다.
“미스터 서는 왜 이 일을 내게 맡겨서는…….”
버스 문을 닫고 출발하며 세나위가 투덜거렸다.
* * *
그 시간 진혁은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있었다.
김상균과는 시나이 반도를 벗어나자마자 헤어졌다.
김상균이 잔금 100만 달러를 입금하는 사이 진혁은 준비한 10만 달러가 든 가방을 마이클에게 건네주며 대원들과 회포를 풀라고 했다.
카이로로 들어와서는 세나위에게 운전대를 넘겨주고 택시로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를 탔다.
영웅 대접을 받으려고 나선 일이 아니었다.
얼굴이 알려지면 오히려 곤란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리무진 버스를 타고 바로 강릉으로 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해 이틀 내내 죽은 듯이 잠만 잤다.
공장 건설에 시나이 반도의 일까지. 긴장이 풀리자 강행군의 여파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얼마나 잤는지 어머니가 병원에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할 정도였다.
그 모습에 아버지는 혀를 찼다.
“젊은 놈이 골골하기는.”
“그동안 죽기 살기로 일만 했단 말입니다.”
“우린 쉰 줄 아니? 지난 1월 달에는 네 엄마랑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우리도 만만치 않았어.”
말과는 달리 아버지 얼굴은 밝았다.
나가시면서 어머니에게 한약이라도 지어 먹이라고 봉투를 찔러 주셨다.
예상대로 스페이스 워커의 패딩 점퍼는 대박을 터트렸다.
‘국민 교복’으로 당당히 인정받았고, 학생들 중에 한두 벌 가지고 있지 않은 이가 없었다.
덕분에 대리점도 속초, 동해, 태백, 삼척에 새로 개설됐고 강릉에도 한 곳이 더 생겼다. 그 바람에 총판의 일이 엄청 늘어 배송 기사도 추가로 채용했다.
직장 때와 달리 자기 사업이다 보니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다.
방 안에서 48시간 동안 시체놀이를 하던 진혁은 허리도 아프고 체력도 보충되어 밖으로 나왔다.
3월의 강원도라 바깥 날씨는 쌀쌀했다, 그래도 봄은 오는지 집 주변 여기저기 새싹들이 나오고 있었다.
창고로 가서 사무실로 들어가자 반가운 사람이 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