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소말리아의 눈물
진혁이 당황해 얼른 티슈를 빼내 건네줬다.
감정이 격해진 일한이 쉽게 울음을 그치지 못하자 아메드가 대신 나섰다.
“소말리아가 오랜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국경을 넘은 난민들이 케냐의 다다브 난민 캠프에 머물고 있는데 굶주림에 죽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국가지만 무슬림 비율이 90%가 넘었다.
사람들은 권력을 잡기 위한 무차별적인 살인과 고문을 자행하는 무장 군벌들을 피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난민 캠프로 들어갔다.
하지만 거기도 지옥이긴 마찬가지였다.
9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 난민 캠프지만, 40만 명이 밀집해 있으니 항상 물과 식량이 부족했다. NGO 단체들이 보내 주는 구호 물품으로 버티고 있지만 역부족이었다.
겨우 감정을 추스른 일한이 말을 이었다.
“올해는 세계적인 이상 기후로 곡물 가격이 치솟았습니다. 게다가 아프리카 북동부 지역의 극심한 가뭄으로 소말리아는 물론 에티오피아, 케냐, 우간다도 수확량이 부족해 50만 명이 넘는 주민이 아사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음…….”
“아이들이 굶어 죽어 가고 있어요. 살아 있는 아이들도 영양실조로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일한이 다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진혁이 화난 얼굴로 아메드를 쏘아붙였다.
“대체 대사원에서는 이렇게 될 때까지 뭘 했답니까?”
“나도 돌아와서 알았는데, 그동안 어렵지만 계속 지원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이제 그것도 한계에 달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스터 서를 찾아온 겁니다.”
세계적인 경기 하락으로 헌금이 준 데다 곡물 가격까지 뛰는데 난민은 계속 오니 알-아즈하르 대사원도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 됐다.
진혁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이 정도면 국제 사회가 나서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간 미국의 주도로 UN이 몇 번 군대를 파견하고 평화를 중재했지만 실패하고 사상자만 생겼어요. 미국 내 반 무슬림 분위기에 행정부가 난민 신청도 거부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자 UN도 방관만 하고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도와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다음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아니, 그럴 여유도 없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가 죽어 가고 있어요.”
세 아이의 엄마인 일한은 감정이 격해 있어 제대로 된 상황 판단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무조건 이렇게 쳐들어와 떼를 쓸 수 있는지도 몰랐다.
진혁은 그녀를 놔두고 아메드를 쳐다봤다.
“일단 돌아가 계십시오.”
“안 돼요. 아이가 죽…….”
쾅!
진혁이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이렇게 해서는 답이 없어요. 그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많은 아이들이 계속 죽어 나갈 겁니다. 죽음의 순환 고리를 끊어야 이 상황이 진정될 겁니다.”
“…….”
“돌아가 계십시오. 최대한 빨리 연락드리겠습니다.”
진혁의 차가운 말에 아메드가 확답을 듣기 전에는 일어나지 않으려는 일한을 억지로 데리고 돌아갔다.
진혁은 그 자리에서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무조건 도와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의 굶주림은 면하게 해 줄 수 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건 자명했다.
생각을 정리한 진혁은 핸드폰을 꺼냈다.
-오, 마이 갓! 럭키 가이가 먼저 전화를 다 주시고. 어쩐 일이십니까?
“상 하나 받았다고 엉덩이가 무거워진 게 아니면 당장 이집트로 날아오셔야겠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올해도 그 상 받고 싶으면 오세요.”
-오케이. 바로 공항으로 달려가겠습니다.
NS통신의 조나단이었다.
그는 예상대로 일본 원전 사고 폭로 기사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진혁은 급히 사장들을 불러 대책 회의를 열었다.
돕는다.
하지만 무조건 물건만 넘겨주지는 않는다.
* * *
다음 날, 알쇼핑에 접속한 회원들은 팝업 창에 뜬 공지 사항을 봐야했다.
통조림 주문량 제한.
일반 회원은 주당 10개, 슈퍼 트위터는 100개를 넘지 못하게 제한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장 비난의 글이 쇄도해 사이트가 다운될 정도였다.
일부 회원은 알라딘도 앞에서만 자신들을 위하는 척하고 결국을 소비자를 기만하는 미국계 기업이나 마찬가지라고 비난하며 불매 운동을 벌여야 한다며 성토했다.
하지만 알라딘은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그로부터 10일 후, NS통신의 조나단 기자가 기획 기사를 내놓았다.
《세계인의 무관심 속에 죽어 가는 소말리아. 그곳에도 온정의 손길은 있었다.》
케냐의 다다브 난민 캠프의 참상이 담긴 사진과 함께 컨테이너 트럭에 가득 실린 콩 통조림 사진이 동시에 실렸다.
《미국과 UN의 무관심에 버려지고 가뭄으로 기아에 허덕이며 죽어가는 소말리아 난민을 돕기 위해 이집트의 한 사업가가 나섰다.》
기사 어디에도 진혁과 알라딘에 대한 언급은 없었지만, 통조림의 로고는 상대적으로 선명히 찍혀 있었다.
다음 날, 알쇼핑에는 하나의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이집트에서 가장 핫한 연예인, 마르와가 땀범벅이 된 얼굴로 퀭한 눈, 앙상한 갈비뼈, 젓가락처럼 야윈 팔다리로 힘겨워 보이는 아이의 손에 알라딘 통조림을 쥐어 주고 있었다.
미처 통조림을 받기 전에 굶어 죽어 길바닥에 버려진 어린아이의 시체를 붙잡고 오열하는 마르와의 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
유튜브에 올라간 동영상이 1위 뷰에 오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회원들은 조나단 기자가 언급한 이집트 사업가가 누구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조나단 기자는 연속 기획 기사로 소말리아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미국과 UN의 비겁함을 비판하며 국제 사회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집트 언론도 가만있지 않았다.
알라딘 쇼핑은 물론 SEZ의 공장까지 찾아가 취재해, 외국 기업 최초로 공장에 모스크를 설치하는 등 친무슬림 정책과 높은 임금, 다양한 복지 제도에 만족하는 직원들의 인터뷰도 실었다.
진혁은 보름 뒤 2차 구호 물품을 보낼 예정이라고 알리고, 그 때문에 회원들에게 주문량 제한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사과하는 글도 실었다.
언론만 떠드는 게 아니었다.
알-아즈하르 대사원의 대변인 또한 전 세계 무슬림의 동참을 촉구하며 진혁이 그간 무슬림을 위해 한 일을 소개하고 명예 신도 자격을 부여한다고 발표했다.
사장실의 분위기는 좋았다.
“비판 글이 다 사라졌습니다. 이제 알쇼핑은 이집트 기업이고 사장님도 같은 무슬림이라고들 합니다. 우리가 도와야 한다며 성금 모금 운동을 벌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글까지 올라오고 있습니다.”
“유니로브의 메이슨 회장님이 직접 전화하셔서 사장님 일에 동참하겠다며 10만 달러어치 생필품을 보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베링하임에서도 의약품을 지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다른 협력 업체들도 물품을 내놓겠다는 연락이 계속 오고 있습니다.”
사장들의 보고도 듣기 좋았지만, 진혁은 무엇보다 알쇼핑의 회원이 다시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 기뻤다.
다른 일은 일회성이지만 회원은 알라딘을 받치고 있는 근간이었다.
2차 구호품이 전달될 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수니파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이 소말리아 난민들을 위해 5,000만 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뒤를 이어 다른 수니파 국가들도 각각 지원금을 확정했다.
미국은 다시 소말리아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UN은 회원국에 소말리아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사장실로 아메드와 일한이 다시 찾아왔다. 표정이 처음과 정반대로 무척 밝았다.
“미국으로 가기 전에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저를 찾아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좀 더 일찍 알았다면 구할 수 있는 아이들도 많았을 텐데.”
“그건 미스터 서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의 잘못이 큽니다.”
“저도 잘못한 게 많아요. 미국 주류 사회에 불평만 했지, 우리의 힘을 길러야 한다는 걸 간과했어요.”
서로 자신의 잘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희망이 있었다.
두 사람이 거듭 감사의 말을 하고 돌아가자 진혁은 가슴이 뿌듯했다. 무슬림을 상대로 사업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이집트 국민들이 큰 변화를 선택했다.
세계인의 우려 섞인 시선 속에 치러진 대선에서 무슬림 형제단이 지지하는 하페즈 대통령이 당선됐다.
이집트 최초로 민주적인 선거에 의해 선출된 지도자였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돌아가 분위기가 좋은 알라딘 빌딩에서 유독 한 사람, 진혁만 얼굴을 찡그리고 다녔다.
그는 오늘도 출근하자마자 소마야에게 물었다.
“혹시 연락 온 데 없습니까?”
“특별한 건 없어요. 혹시 무슨 연락 기다리세요?”
“아닙니다.”
진혁은 입맛을 다시며 사장실로 들어갔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인터폰에서 소마야의 말이 흘러나왔다.
“쑤피넷이란 데서 통화하고 싶다고 하네요.”
“당장 연결해 주십시오.”
진혁의 얼굴이 활짝 폈다. 드디어 입질이 왔다.
얼마간 통화한 진혁은 급히 카심을 불러 공항으로 향했다.
두바이에 도착한 진혁은 쑤피넷 본사를 찾아갔다.
이미 예약이 된 터라 바로 CEO 조나타스 하이다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이란 출신으로, 2003년 경매 사이트로 시작한 쑤피넷을 2년 전에 인터넷 소매업체로 사업을 전환한 사업가였다.
최근에는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쑤피’는 아랍어의 양털(ṣūf)에서 유래된 말로, 초기 이슬람 수도자들이 양털로 된 옷을 입고 다닌 데서 나왔다.
“서진혁입니다.”
“하이다르요. 이쪽은 CFO(최고 재무 책임자) 와르다로 쑤피넷을 함께 창업한 동지요.”
와르다와도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집트에서 알쇼핑의 인상적인 활약은 잘 알고 있소. 공통된 관심사가 있을 것 같아서 전화 드린 겁니다.”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불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업가에게 겸손은 미덕이 아니지요. 슈퍼 트위터나 기부를 통한 홍보 전략을 보면 미스터 서의 뛰어난 재능은 충분히 입증된 거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역시 쑤피넷을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입에 발린 인사를 하며 탐색했는데 진혁은 시종일관 겸손한 자세로 틈을 보이지 않았다.
하이다르의 눈짓을 받은 와르다가 나섰다.
“쑤피넷에서는 올 초부터 이집트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는 대로 시작하려 했는데, 알쇼핑의 활약을 보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우리에게 파시는 게 어떻습니까?”
“글쎄요.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까?”
“우리 분석팀의 평가로는 천만 달러면 적당하다고 합니다.”
“천만 달러라……. 실례지만 쑤피넷의 가치는 얼마로 보십니까?”
대답은 하지 않고 오히려 묻는 모습에 와르다가 눈가를 찌푸렸다.
“현 가치로는 1억 달러 이상입니다.”
“그럼 제가 그 가격에 쑤피넷을 인수하겠습니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십니까. 쑤피넷은 몇 년 안에 그 몇십, 아니, 몇백 배로 성장할 겁니다.”
“전 오히려 와르다 씨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알쇼핑은 현 가치로 인수하겠다면서 쑤피넷은 미래의 가치로 논한다는 게 어폐가 있지 않습니까!”
진혁의 싸늘한 말에 와르다가 찔끔했다가 이내 차갑게 말했다.
“그럼 전쟁뿐입니다. 쑤피넷의 전 역량을 집중해 이집트 시장을 공략할 겁니다.”
“그렇게 하세요. 환영합니다. 그 덕분에 이집트 국민들이 전자상거래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다면 저로서도 대환영입니다.”
“정말입니까?”
“제가 걱정하는 것은 쑤피넷입니다. 이집트에 전력을 쏟아부으면 나머지는요? 설마 그 정도로 만족하시겠다는 건 아니시지요?”
진혁이 시선을 하이다르에게 주고 물었다.
와르다에게 힘쓸 이유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정권자와 담판을 짓는 게 최선이었다.
“난 쑤피넷을 중동과 아프리카의 아마존으로 만들 생각이오. 이집트는 아프리카의 관문이라 반드시 잡아야 할 시장입니다. 내게 들어와 주시오.”
“들어가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능력이 되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말씀을 삼가시오!”
“알쇼핑 인수 자금도 없어 해외 투자자를 물색하면서 무슨 아마존을 언급합니까?”
끼어들었던 와르다는 입을 딱 벌렸다. 하이다르와 둘만 아는 일급비밀이었다.
하지만 그런 놀람은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