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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81화 (81/307)

81화. 쑤피넷과의 동맹

“골드만삭스에서 들은 게 아니니 괜한 의심은 하지 마십시오. 저도 사업하다 보니 소식을 듣는 곳이 있습니다.”

“그건 다른 용도요. 알쇼핑 인수 자금은 충분히 비축되어 있습니다.”

“알쇼핑을 인수하듯 다른 나라 쇼핑몰 업체를 인수할 자금이겠지요. 그렇게 해서 얼마나 시장을 넓힐 수 있겠습니까?”

이번 질문은 다시 하이다르를 보고 하는 것이었다.

대답이 없자 진혁이 말을 이었다.

“아마존은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이란 힘이 있고, 최근 급성장하는 중국의 알리바마는 단일 국가라는 이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중동은 여러 국가로 찢어져 있고 그 관계도 좋지 않습니다. 그들과 똑같이 M&A를 통한 인수 합병으로 중동 시장을 장악하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나 역시 그 문제에 대해 고민을 안 해 본 건 아니오. 하지만 미스터 서도 그렇듯 순순히 우리 품에 들어오질 않으니 그게 문제지요.”

“왜 꼭 품에 끌어안으려고만 하십니까. 같이 갈 수도 있지 않습니까?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

“중동의 온라인 쇼핑 시장은 전체 소비 시장의 2%밖에 되지 않습니다. 시장이 성숙하려면 아직도 멀었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빨리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함께 천천히 가다 보면 언젠가는 아마존과 알리바마가 저 뒤에 있지 않겠습니까?”

하이다르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영역을 넓혀 시장을 선점할 생각만 했지 그걸 지키며 기다려야 한다는 점은 간과했다.

하지만 와르다의 생각은 달랐다.

“미스터 서의 생각은 너무 이상적입니다. 쇼핑몰 간 협력은 경쟁적인 요소가 많아 어렵습니다. 그게 말처럼 쉬웠다면 아마존이나 알리바마가 인수 합병으로 성장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들이 그랬다고 우리도 그러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미 한참이나 뒤졌는데 그들의 방법을 답습해서 언제 따라잡으시겠다는 겁니까?”

“허황된 말장난만 하지 마시고 실질적인 대안을 내놔 봐요.”

“그래서 준비해 왔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진혁이 가방에서 사업 제안서를 꺼내 내밀었다.

하이다르와 와르다가 각각 한 부씩 받아 펼쳐 봤다.

진혁은 차를 마시며 차분히 기다렸다.

마지막 장을 덮은 하이다르의 눈이 번들거렸다.

“몰인몰 형태로 가자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쑤피넷에 알쇼핑몰이 입점하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알쇼핑에도 쑤피넷의 카테고리가 생기는 구조입니다.”

“서로 동일 상품을 가지고 가격 경쟁을 하는 문제는 어떻게 풀 생각입니까?”

“지역, 나라가 구분되어 있으니 문제될 게 없습니다. 알쇼핑 고객이 쑤피넷의 같은 제품이 조금 싸다고 구매하려다가는 높은 배송비를 보고 놀라 포기할 겁니다.”

“쑤피넷 회원이 알쇼핑몰에서 구매한 것에 대한 정산은 어떻게 됩니까?”

“알쇼핑은 슈퍼 트위터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단계로 지급되는 총 인센티브는 15%입니다. 그레이트 트위터 등급을 만들어서 지급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집트의 우리 회원이 쑤피넷에서 구매한 것에 대한 배송과 비용 정산 방안도 있습니까?”

“알쇼핑의 배송 방식을 인정한다면 저희가 배송하겠습니다. 다만, 이 경우 배송비를 계산할 때 저희 쪽 마진을 포함해서 결정하시면 됩니다. 저희도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후 이런저런 질문이 이어졌지만 진혁은 막힘없이 대안을 제시했다.

그 내용은 알쇼핑에게만 유리한 것이 아니었다. 합리적이었고, 일부 이견이 있는 경우는 그 자리에서 수정안을 제시하며 조율했다.

흡족해하는 하이다르와 달리 와르다는 여전히 불편한 표정이었다.

“충분히 검토해 볼 안이긴 합니다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남았습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이대로라면 쑤피넷은 이집트 하나를 얻기 위해 세 나라 시장을 내놓는 꼴이 됩니다. 우리가 너무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제가 돈 벌려고 사업을 합니다만 그렇게 염치없진 않습니다. 그에 대한 보상으로 현재 진행하고 있는 해외 투자금을 제가 대겠습니다.”

“그게 얼만 줄이나 알고 하는 말이오?”

“4,500만 달러라고 들었는데, 아닙니까?”

이번에는 두 사람 모두 입이 딱 벌어졌다. 설마 진혁이 그 정도의 재력가인 줄은 몰랐다.

그제야 쑤피넷을 1억 달러에 인수하겠다는 말이 단순한 엄포만은 아니었음을 깨닫고 가슴이 서늘해졌다.

와르다와 눈빛을 교환하고 하이다르가 말했다.

“미스터 서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감사합니다.”

“이번 주 내로 긴급 이사회를 열어 결정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주시오.”

“당연한 절차니 기다려야지요.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진혁은 그들과 악수를 하고 나와 카이로로 돌아왔다.

* * *

초조하게 쑤피넷 이사회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때 반가운 사람이 찾아왔다.

“준장님.”

“오랜만입니다. 역시 제가 알던 그분이 맞군요.”

리비아 민병대 병참을 맡았던 알자위 준장이었다. 비밀 작전이라 이름 대신 ‘신밧드’란 암호명을 사용했었다.

반갑게 포옹하고 자리에 앉아 말을 나눴다.

“무하마디 총사령관님은 잘 계시지요?”

“물론입니다. 가끔 미스터 서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시군요. 언제 한번 찾아뵈어야겠다고는 생각했는데 여기 일이 바쁘다 보니 마음만 있었습니다. 대신 안부나 전해 주십시오.”

“그때나 지금이나 미스터 서는 참 이상한 분이십니다.”

“……?”

“트리폴리 진격 때 뒤만 졸졸 따라왔던 이도 대단한 일을 했다며 이런저런 요구를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어의 새벽’ 작전이 성공한 것은 미스터 서의 목숨 건 후방 침투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건 카다피의 막내아들인 카이리가 날 먼저 노려 어쩔 수 없이 그런 겁니다. 저야 배만 빌려준 거고, 목숨 걸고 고생한 것은 총사령관님 이하 시민군이지요.”

알자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 진혁은 여전히 진솔했다.

금을 넘겨주며 대신 물건을 가져다 달라고 하기 전에 전문가를 불러 금 시세를 미리 알아봤었다.

당시 시민군 사정이 다급해 폭리를 취해도 상관없었을 텐데, 진혁은 합당한 금액만큼의 군수품을 가져다줬었다.

그런 고마움을 잊지 않고 무하마디가 알자위를 진혁에게 보낸 것이다.

알자위가 용건을 꺼냈다.

“리비아는 얼마 전 60년 만의 자유선거로 알리 제이단 총리가 이끄는 과도 정부가 꾸려졌습니다. 헌데 혁명에 참가했던 일부 민병대가 무장 해제를 하지 않고 과도 정부를 부정하며 지금도 곳곳에서 정부군과 대치하는 것은 물론, 일부 과격파 민병대는 납치와 테러를 감행하고 있습니다.”

“리비아가 여전히 혼란스럽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이에 제이단 총리가 민병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리비아 혁명군 위원회를 만들었는데, 무하마디 총사령관님이 위원장을 맡게 되셨습니다.”

“어려운 자리에 앉으셨네요.”

리비아 사태는 예고된 혼란이었다.

카다피 축출이란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도 의견이 엇갈렸던 임시 조직이었다.

목표를 이루고 난 지금은 각자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더 혼란스러울 게 자명했다. 그래서 진혁도 리비아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던 거였다.

그래도 당시 여러 시민군을 이끌었던 무하마디를 중용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알자위가 말을 이었다.

“얼마 전에 유엔이 동결된 리비아의 해외 자산 일부를 해제해 줘서 혁명군에도 예산이 편성됐습니다. 위원장님께서는 그중 일부를 미스터 서에게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제 정체를 미리 알고 계셨다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유튜브에 올라온 동영상을 본 병사들이 보급품으로 콩 통조림을 지급해 달라고 건의를 했습니다. 언제 전투가 벌어질지 모르는데 조리하는 것도 쉽지 않고 미군이 보내 주는 전투 식량은 우리 입맛에 맞지 않다면서요.”

“……!”

“콩이 단백질 식품이고 아미노산의 종류도 육류에 비해 손색이 없다며 저보고 알아보라고 해서 조사하다가 신밧드가 미스터 서라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전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콩 통조림에 대한 칭찬을 들으니 가슴이 뿌듯했다.

“당연히 제공해 드려야지요. 얼마나 필요하십니까?”

“1차분으로 50만 개입니다.”

“그렇게나 많이요?”

“혁명군이 10만입니다. 반응이 좋으면 매달 그 정도씩은 공급해 주셔야 할 겁니다.”

의외로 물량이 컸다.

게다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매달 지속적으로 납품할 수 있으니 대박이었다.

“대신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리비아인의 입맛에 맞게 올리브와 샤르바를 첨가해 주십시오. 그리고 전투 배낭에 넣기 편하게 모양이 사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샘플이 준비되는 대로 연락드리고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그보다 더한 것도 무조건 된다고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진혁은 오랜만에 상사원의 피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알라위는 아쉽게 다음 상담이 잡혀 있어 트리폴리에서 보기로 하고 돌아갔다.

그 시간 이후로 SEZ에 있는 동성F&B의 R&D 센터가 갑자기 바빠졌다. 리비아 출신 셰프를 초청해 통조림 요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한편, 진혁은 통조림 케이스 납품 회사를 찾아가 새로운 용기에 대해 협의를 했다.

그사이 기쁜 소식이 날아왔는데 쑤피넷 이사회에서 진혁의 제안을 승인했다는 것이었다.

즉시 하마드와 함께 두바이로 가서 MOU를 체결했다.

투자금은 알라딘 쇼핑의 자금으로 입금하고 쑤피넷 지분 15%를 받았다.

옥수수 선물에 투자된 돈을 회수하면 되지만 아직은 더 상승할 것이라 놔뒀다.

알쇼핑과 쑤피넷의 시스템 연동 작업은 하마드에게 맡기고 이집트로 돌아왔다.

샘플이 완성돼 알자위를 만나러 가야 했다.

* * *

트리폴리 공항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과도 정부 청사로 향했다.

거리는 평온한 것 같았지만 건물 곳곳에는 아직도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마중 나온 알자위를 따라 가자 무하마디가 웃는 얼굴로 반겨 줬다.

“위원장님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축하받을 일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맙네. 앉지.”

일이 힘든지 무하마디의 얼굴이 많이 까칠해져 있었다.

차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과거의 일을 추억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자위에게 이집트에서 크게 사업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먼저 찾아오지 그랬나?”

“제가 질질 끄는 걸 싫어합니다. 그때 총사령관님이 많이 도와주셨는데, 더 욕심을 부리면 폐가 될 것 같아서요.”

“사람하고는. 일단 가져온 샘플부터 보지.”

진혁이 가방을 열어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통조림을 꺼내 놓기 시작했다.

10개가 넘어도 계속 나오더니 20개가 넘어가는 모습에 알자위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전 콩 통조림만 이야기했던 것 같은데요?”

“이왕 준비하는 것, 리비아 대표 음식들도 만들어 봤습니다.”

“하하하. 내가 그랬지 않나. 신밧드라면 분명 그냥 콩 통조림만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제가 졌습니다, 위원장님.”

두 사람이 웃는 사이 진혁이 가방에서 준비해 온 일회용 숟가락을 건네줬다.

“시식부터 하십시오.”

통조림 뚜껑을 따 무하마디부터 맛을 봤다.

“난 이게 입맛에 맞는 것 같군.”

“전 이게 좋은 것 같습니다.”

이어 비서도 들어오고 부관까지 불려와 맛을 평가했다.

최종적으로 선정된 것은 콩 통조림 세 종류와 리비아의 대표 요리인 쿠스쿠스, 스프 종류의 쇼르파였다.

“우선 각각 5만 개씩 가져다주게. 병사들의 반응을 보고 추가 물량은 조절하기로 하지.”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난 회의가 있어 일어나야 하니 나머지는 알자위와 상의하면 될 거네. 저녁이나 같이 하지.”

무하마디가 나가고 본격적인 상담이 이루어졌다.

콩 통조림과는 달리 쿠스쿠스와 쇼르파는 미리 재료를 확보하지 못한 데다 조리 과정이 별도로 들어가 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몇 번의 줄다리기 끝에 마침내 최종 합의를 봤다. 이번 오더의 총액은 120만 달러였다.

저녁은 무하마디와 함께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 * *

무하마디와 헤어져 카심과 함께 호텔로 돌아온 진혁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술 생각이 간절했는데 리비아도 금주 국가였다.

예전에는 외국인 전용 클럽이 있었는데 내전으로 그마저도 없어졌다고 했다.

내일 아침 첫 비행기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하며 문을 열고 들어서던 진혁이 동작을 멈췄다.

소파에 자리 잡고 앉은 선객이 양주를 옆에 놓고 자작하고 있었다.

진혁이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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