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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104화 (104/307)

104화. 인도네시아 진출

“조금 힘들긴 했습니다만, 다행히 실망시켜드리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른 투자자들까지 나서서 설득한 끝에, 진혁이 2,000만 달러를 투자하고 20%의 지분을 갖는 조건으로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관리를 맡는 게 결정됐다.

20%의 지분은 투자자별로 갹출하기로 해서 겨우 삼부 회장을 설득했다고 한다.

“고생하셨습니다.”

“원하신 대로 되셨으니 자포라는 반드시 살려 주셔야 합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제가 언제 손해나는 투자 하는 것 봤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스미스가 마주 보고 웃었다.

두 사람은 어젯밤 만나서 이미 오늘의 일에 대해 상의를 했었다.

“참, 오젝 쪽은 어떻게 됐습니까?”

“말씀하신 대로 하르자토 사장이 크게 반색했습니다. 당장 찾아오겠다는 것을 사장님이 직접 가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잘하셨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것만큼 정확한 것은 없으니까요.”

스미스와 대화를 마친 진혁은 방으로 돌아와 하마드를 불렀다.

“우리의 요구대로 됐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알쇼핑이 이제 동남아시아에도 진출하는군요.”

“힘드시겠지만 하마드 사장님이 맡아 주셔야겠습니다.”

“당연히 제가 와야지요. 중동 쪽은 이제 안정이 되어서 제가 붙어 있지 않아도 됩니다.”

하마드가 오히려 의욕을 불태웠다.

그 역시 지민과 마찬가지로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날, 진혁은 하마드 사장과 실사팀을 이끌고 인도네시아로 건너갔다.

오젝의 하르자토는 삼십 대 초반으로 진취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상담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졌다.

그 역시 자포라와의 협력이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혁은 그에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개발을 서두르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해 주었다.

호텔방에서 자료를 검토하고 있을 때 하마드가 핸드폰을 건넸다.

“마르와 양인데 사장님과 통화하고 싶답니다.”

반가운 인물이라 얼른 받았다.

“마르와, 잘 지내지?”

-너무해요, 사장님.

“미안. 한국에서 우리가 꿈꿨던 할랄 식당을 여느라 바빴어. 근데 무슨 일이냐?”

-예전에 인도네시아 사람인 제 룸메이트의 아버지가 유통을 한다면서 우리 화장품에 관심이 있다고 했던 것 기억하세요?

“어. 그랬던 것도 같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혀 기억이 없었다.

-트위팅을 하다가 사장님이 거기 있다니까 아버지가 뵙고 싶대요.

“지금 좀 바쁜데…….”

-정말 이러실 거예요?

“알았다, 알았어. 약속 잡아서 문자로 보내.”

진혁이 얼른 말하고 통화를 끊었다. 더 들고 있어 봤자 잔소리밖에 들을 게 없었다.

* * *

자카르타 중심부에 새로 오픈한 쇼핑몰 ‘코타 카사블랑카’에 도착한 진혁은 입이 딱 벌어졌다.

자신이 생각했던 규모보다 훨씬 컸다.

동남아시아는 백화점도 한 코너에 불과할 정도로 대형 쇼핑몰이 대세였다.

안내 데스크에 물어 어렵게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에 도착해 보니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이름을 밝히자 룸으로 안내되었는데, 귀엽게 생긴 아가씨와 후덕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먼저 와 있었다.

“서진혁입니다. 찾아오는데 애를 먹어서 늦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조코 라이꾸두입니다.”

“마야예요. 마르와 친구입니다.”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리에 앉자 라이꾸두가 보기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마야의 성화가 얼마나 심하던지, 이제 한시름 놓았습니다. 공부하라고 한국을 보냈더니 K-POP 마니아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예전에 이야기는 들었는데 사업이 바빠 이제야 찾아뵙게 됐습니다.”

“아닙니다. 이리저리 많이 바쁘시다는 것은 들었습니다. 좋지 않은 일을 겪으셨다니 심심한 위로를 전합니다.”

진혁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가 빠르게 사라졌다. 자신의 사정을 사전에 알아본 것 같았다.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중에 사업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한류와 세계 경제에 대한 이야기가 다였다.

그때 마야가 빠르게 라이꾸두에게 말했다.

“아빠, 화장품 이야기는 언제 하실 거예요?”

“느긋하게 기다려라. 사업에서 최대 적은 조급함이다.”

두 사람은 중국어를 사용했고, 대화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둘 다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진혁이 중국어를 모른다고 생각해서 한 행동이었다.

진혁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 줬다.

“두 분 모두 중국어를 잘하시네요. 저는 영…….”

“아, 죄송합니다. 우리 집안은 화교입니다.”

“아, 그러시군요.”

진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인도네시아에서 화교계 인구는 4%에 지나지 않지만, 경제 부문의 약 80%를 지배하고 있었다.

매출 순위 상위 20대 기업 중 대통령 가족이 소유한 두 곳을 제외하고 나머지 기업이 모두 화교 기업일 정도로 그들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건 비단 인도네시아뿐만이 아니었다.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국가가 마찬가지로 화교들이 경제를 장악하고 있었다.

“마야가 한국에 있을 때 그곳 화장품에 단단히 반한 모양입니다. 특히나 서 사장님이 무슬림을 위해 할랄 인증 제품을 만든 것을 알고 그걸 가져와 팔자며 이렇게 성화입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에서도 좋은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 내는 것으로 압니다. 일부 한국 유통 기업들이 들어와 제품을 판매하고 있고요.”

진혁이 일부러 느리게 말했다.

중국에서 사업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게 중국인과 상담할 때는 무조건 ‘만만디’ 정신으로 느긋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쪽이 조급해하고 달려들수록 상대를 더 느긋하게 만든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다.

마야가 고개를 저었다.

“우리나라 제품은 한국의 기술력을 따라가지 못해요. 한국의 기업들이 유통하는 화장품은 우리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고요. 하지만 사장님은 할랄 인증도 받고, 또 현지인에게 맞는 화장품을 만드셨다고 알아요. 그래서 요르단 왕비님도 써 보시고 유튜브에 올려 극찬하신 거고요. 여기에서도 그런 제품을 만들어 주세요.”

“마르와가 너무 절 과대 포장한 것 같습니다. 그건 저 혼자 한 게 아닙니다. 마르와는 물론 직원 모두가 매달려서 이룬 성과입니다.”

“알아요. 하지만 그걸 진두지휘하신 것은 결국 사장님이시잖아요. 마르와도 사장님이 결정하시면 여기 와서 돕겠다고 했어요.”

마야가 작정한 듯 몰아붙이는 모습에 진혁이 입맛을 다셨다. 사업은 억지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라이꾸두가 결국 딸을 위해 먼저 말을 꺼냈다.

“온라인 사업을 준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여기 와 계시고요.”

“정보력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같은 계통에 있다 보니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들이 있어 유추해 본 겁니다.”

“실례지만 정확히 어떤 일을 하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제 명함입니다.”

라이꾸두가 내민 명함을 받은 진혁이 눈을 크게 떴다.

평점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곳 시장을 조사하면서 너무도 많이 들은 익숙한 이름이었다.

Simber Allaria Trijaya Tbk. CEO.

‘알라마트’를 운영하는 회사로 임텍(Imtek) 그룹 산하 ‘인니마렛’과 인도네시아 편의점 업계를 양분하고 있는 강자였다.

가맹점만 만 개 이상을 거느린 인도네시아 부자 20위권 이내의 인물이었다.

진혁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유명하신 분을 몰라 뵈어 죄송했습니다.”

“뭘 그걸로 그러십니까. 앉으세요.”

라이꾸두도 직접 일어나 손을 잡아 앉혔지만 얼굴 가득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딸 아이 앞에서 제대로 체면이 섰다.

진혁은 일부러 그런 분위기를 연출했다. 중국인들은 체면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했다.

기선을 제압했다고 여긴 라이꾸두가 말을 이었다.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감사히 듣겠습니다.”

“향후 온라인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것은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특히 동남아시아의 소비자들은 제품을 확인하고 사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프라인 시장도 함께 운영하셔야 합니다.”

“중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솔직히 그 부분이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진혁의 진솔한 표현에 라이꾸두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이제 자신에게 부탁할 차례였다.

하지만 진혁의 다음 말은 그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조사해서 아실지 모르지만, 제가 유니로브의 메이슨 회장님과 친분이 좀 있습니다. 그분이 다음 주에 공장 시찰차 오셔서 임텍 그룹의 안톤 사장을 소개해 주신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그럼 안 되지요. 저랑 먼저 이야기를 나눴으니 우리끼리 이야기를 끝냅시다.”

라이꾸두의 얼굴은 미소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최대의 라이벌에게 진혁을 뺏길 수는 없었다.

그에 대해 조사할수록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무조건 잡아야 할 상대라고 판단해 마야를 앞세워 억지로 약속을 잡았다.

조금이라도 좋은 조건을 얻어 내려고 연막을 쳤다가 큰일 날 뻔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라이꾸두의 사무실에 가서 본격적인 협상을 시작했다.

이미 선기를 잡은 진혁이라 거칠게 없었다.

알라딘 화장품은 물론 통조림까지 알라마트에서 판매를 대행해 주기로 했다. 더불어 자포라의 배송 서비스도 일부 맡아 주기로 했다.

인도네시아는 1만 3,677개의 섬들로 구성된 세계 최대의 도서 국가로, 해안선의 길이만도 54,000킬로가 넘었다.

고젝이 미치지 못한 시골이나 섬 지역은 SAT의 알라마트와 알라 익스프레스에서 처리해 주기로 했다.

물론 그 반대급부로 진혁은 독점 판매권을 줘야 했지만 절대 손해나는 장사는 아니었다.

진혁은 아델라에게 즉시 그 사실을 알리고 인도네시아 시장에 맞는 화장품을 개발하도록 지시했다.

전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하마드가 우려를 나타냈다.

-사업이 동남아시아까지 확대되면 아무래도 데이터 센터를 이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데이터 센터를요?”

-그렇습니다. 이집트 정국이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전기도 자주 나가고요.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곳으로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제가 미처 그 부분은 고민하지 못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먼저 말씀드렸어야 할 일입니다.

“그럼 어디가 좋겠습니까?”

-두바이가 좋을 듯합니다. 세계 금융과 허브 공항으로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IT 환경이 굉장히 뛰어납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쑤피넷과 상의해서 그쪽으로 옮길 계획을 세워 보세요.”

-알겠습니다.

며칠간 더 머물던 진혁은 하마드에게 뒷일을 맡기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 * *

‘할랄 여행’ 가맹점들의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아직 알려지지 않아 적자 상태이긴 하지만 진혁은 조급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홍보 방안을 마련해 보라고 하고 자신은 다른 준비를 했다.

대한푸드 양떼 목장은 남해에 자리 잡고 있었다.

넓은 부지에 풍력 발전기나 남해 바다까지 보이는 조망, 드넓은 초지와 방목하는 다양한 가축들은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진혁이 찾은 날은 다행히 평일 낮이라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입구의 주차장에 차를 두고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달려가 구경하고 사진 찍기 바쁜 일반 관광객들과는 달리 진혁은 따로 떨어져 주변을 둘러봤다.

한참을 이리저리 돌아다닌 끝에 언덕 뒤편에서 쪼그리고 앉아 잡초를 뽑고 있는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발소리를 들었는지 노인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여긴 관광지가 아니니 돌아가게, 젊은이.”

“회장님을 뵈러 왔습니다.”

“잘못 찾아왔군. 난 회사 일에서 손 뗀 지 오래이네.”

노인은 한때 한국의 라면업계를 석권했던 대한푸드의 창업주 문기영 회장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준 후 지금은 이곳에 있는 선산을 지키며 말년을 보내고 있었다.

“회사 일 때문이 아니라 조언을 들으려고 찾아온 겁니다.”

“일 없으니 돌아가시게.”

“제가 요즘 한국종합식품을 다시 살리고 있습니다, 회장님.”

고개를 드는 문기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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