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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132화 (132/307)

132화. 공성계, 우왕좌왕

손을 든 주명근이 장내를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서진혁의 등장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기자들끼리 의견을 나누느라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주명근은 그런 소란을 무시하고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오늘 이 시간부로…… TG 그룹이 알라딘 코리아를 흡수 합병하게 되었음을 밝힙니다.”

방금 전까지 소란스럽던 장내가 폭탄이라도 맞은 듯 일순간 조용해졌다.

기자들 모두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 서로를 돌아보며 웅성거렸다.

기다렸다는 듯 주명근이 다시 한 번 말했다.

“TG 그룹은 서진혁 회장님의 고귀한 뜻을 받아들여 인위적인 계열사 간 통합이나 인력 조정은 최소화하고, 알라딘 코리아 고유의 영역을 지키며 계승, 발전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임을 밝힙니다.”

그가 두 그룹 간 합병을 재차 확인해 주자 기자들의 벌떼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갑작스럽게 이런 결정을 내리신 이유가 뭡니까?”

“흡수 합병이라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의미입니까?”

기자들의 중구난방식 질문이 쏟아졌다. 대기하고 있던 TG 그룹 직원들이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좀처럼 분위기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만큼 충격적인 발표였다.

발 빠른 기자들은 속보라도 먼저 내보려고 데스크에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봐! 석간 일면 비워놔!”

“잔소리 말고 경제면 특보 보낼 준비하라니까!”

어느 정도 장내가 진정되자, 주명근 회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부터 질문을 받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한 분에 한 가지 질문만 받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나가실 때 받아 보실 보도 자료에 들어 있으니 참고하시면 되실 겁니다.”

제일 먼저 손을 든 기자에게 TG 그룹 직원이 마이크를 건넸다.

“민국일보의 손승호 기자입니다.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만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경영권은 어느 분이 가지시게 됩니까?”

“TG 그룹에 흡수 합병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서진혁 회장님은 어떠한 직함도 맡지 않으십니다.”

“아니, 그럼…….”

손승호가 다시 입을 열려는 순간 마이크가 꺼졌다.

“죄송합니다만 한 분에 한 번의 기회밖에 없으니 질문에 신중을 기해 주십시오. 다음 분!”

마이크가 다음 기자에게 넘어갔다.

“MBS의 박진환 기자입니다. 흡수 합병이라고 하셨는데, TG 그룹과 알라딘 그룹 간의 역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정확히 말씀드리면, 알리딘 코리아가 TG 그룹으로 넘어오면서 사라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음 기자가 소속을 밝히고 질문을 이었다.

“알라딘 코리아를 넘겨주고 경영권을 포기하는 대신 서진혁 회장님이 받는 대가는 무엇입니까?”

“어떠한 대가도 없습니다.”

“아니, 그건 말이 되지 않잖습니까?”

마이크가 꺼졌지만 기자가 육성으로 크게 외치며 끝까지 질문을 마쳤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기자들도 비슷한 질문을 쏟아내어 다시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TG 직원들이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난처한 주명근의 시선을 받은 서진혁이 결국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서진혁입니다. 직접 말씀드릴 테니 조용히 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혁은 장내가 조용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전 한 번도 알라딘 코리아가 제 개인 회사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알라딘 코리아의 주인은 작게는 직원들이고, 크게 보면 대한민국 국민들이십니다. 전 다만 그분들을 대신해 회사를 운영해 왔을 뿐입니다. 회사를 다시 주인에게 돌려드리는 건데 대가를 받을 수는 없지 않잖습니까.”

장내가 다시 침묵에 휩싸였다. 맞는 말이었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말하는 경영자는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손을 든 기자에게 마이크가 넘어갔다.

“국제경제의 이준혁 기자입니다. 회장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TG 그룹을 선택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한 말씀 해 주십시오.”

“기자님께서 믿기 힘들어하시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제가 대한민국의 많은 기업 중에 TG 그룹을 택한 것은 옆에 서 계시는 주명근 회장님을 존경해서입니다.”

진혁은 말만 한 게 아니라 직접 머리까지 숙여 보이며 주명근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주명근 회장님은 한강의 기적을 일구신 주역이십니다. 그러면서 ‘인화와 단결’이라는 사훈을 걸고 사람 중심의 경영을 직접 실천해 오신 분입니다. 알라딘 코리아의 다음 관리인으로 이보다 더 적합하신 분은 없다고 생각해서 삼고초려의 심정으로 어렵게 부탁드린 겁니다.”

이어진 질문들도 앞의 기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믿지 못하고 사실 확인에 급급했다.

하지만 진혁은 전혀 짜증스러운 표정 없이 초지일관 친절하게 답했다.

“NS통신의 조나단 기자입니다.”

처음으로 외국인 기자가 손을 들어 자신을 소개하자 기자들이 웅성거렸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조나단과 서진혁의 관계를 모르는 기자는 없었다.

조나단이 말을 이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서진혁 회장이 알라딘 코리아를 정리하시니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듭니다. 그럼 이제 알라딘 중동과 알라딘 동남아시아의 사업에 집중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알라딘 중동은 이집트의 알-아즈하르 대사원이, 알라딘 동남아시아는 요르단의 라이나 왕비께서 만드신 ‘국제난민구호재단’이 운영을 맡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부로 모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납니다.”

서진혁이 다시 던진 폭탄은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핵폭탄 급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장내가 진정되지 않아, 추가 질문은 받지 않고 보도 자료로 대신하겠다고 한 뒤 서둘러 기자회견을 마쳤다.

* * *

《서진혁 회장, 알라딘을 사회에 환원하고 경영 일선에서 퇴진.》

《TG 그룹, 알라딘 코리아를 흡수하며 단숨에 재계 3위로 도약.》

《요르단의 라이나 왕비, 서진혁 회장의 아낌없는 기부에 찬사.》

《알-아즈하르 대사원, 모든 무슬림을 대표해서 서진혁 회장의 통 큰 결정에 감사.》

국내는 물론 국제의 모든 언론이 서진혁에 대한 기사를 속보로 내보냈다.

퍽!

우핑 부총리가 던진 명패가 머리에 부딪혀 피가 났지만 허융은 장승이라도 된 듯 꼼짝하지 않았다.

아니, 움직이면 안 됐다. 입이 열 개라도 부족할 만큼 명백한 실패였다.

우핑의 뒤를 이어 공산당 중앙 정치국 위원이 되겠다는 꿈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제는 목숨만 부지해도 감사할 판이었다.

분을 겨우 삭인 우핑이 물었다.

“출구 전략은?”

“아쉽지만 애초의 목표대로 알리바마가 자포라를 서둘러 인수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짓는 게 최선이라 여겨집니다. 어떻든 베나토른이 믿고 있던 서진혁이 사라졌으니, 그들도 더 이상 거부는 못 할 겁니다.”

“국가안전부 쪽은?”

“리정팅 부부장에게 안 된 일이지만, CIA를 직접 압박한 것은 좀 과한 대처였습니다. 그들이 벌인 일이니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한국의 작업 실패에 따른 대책은?”

“장이 대사가 과도한 충성심에 독단적으로 벌인 일입니다. 상대방인 태후 그룹 후계자인 정호영도 우리가 약점을 잡고 있으니 함부로 입을 놀리지는 못할 겁니다.”

“어디서건 내 이름이 나오면 안 돼.”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나가 봐.”

“목숨 걸고 확실히 마무리 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이고 나온 허융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지옥에 갔다 왔다.

그러나 안도의 한숨을 내쉰 허융과 달리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있었다.

* * *

태후 그룹 회장 정진호의 한남동 자택에는 질식할 것 같은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TV에서는 서진혁의 통 큰 기부와 무소유의 기업가 정신에 대한 찬사가 계속해서 보도되고 있었다.

상석의 정진호가 입을 열지 않자 정호영은 물론 정인영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정인영은 갑작스럽게 연락받은 터라 이곳에 와서야 서진혁에 대한 작전이 진행 중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사전에 알았다면 어떻게든 막았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갑갑함을 참지 못한 정인영이 TV를 끄고 말했다.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해요. 진혁 씨는 은원이 분명한 사람이에요. 우리를 배제한 채 TG를 택한 것을 보면 오빠가 개입된 걸 알고 있다고 봐야 해요.”

“꼭 그렇게 단정 지을 필요는 없지 않냐? 놈이 밝힌 대로 단순히 주명근 회장님을 존경해서…….”

“시끄럽다!”

정진호의 호통에 정호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말을 멈추진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변명할 길이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미국 CIA도 동의한 작전이라고 했습니다. 서진혁이 꼼수로 잠시 위기를 피했지만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겁니다. 미국이 알라딘 그룹을 테러 집단으로 규정하는 순간 TG 그룹은 놈의 손을 잡은 것을 뼈저리게 후회할 겁니다.”

“바보 같은 놈, 그렇게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거냐? 서진혁이 중동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CIA의 도움이 있어서였다. 미국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자기 발등 찍는 일을 하겠느냐?”

“하지만 분명 장이 대사가…….”

“그 사실을 가지고 중국이 압박해서 CIA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한 것이란 말이다. 서진혁이 사라져 버리는 바람에 중국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됐다. 거기에 놀아난 너만 바보가 된 거고.”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정진호의 모습에 정호영이 이를 악물고 억지로 입을 열었다.

“물론 그렇기는 하지만, 알라딘 그룹의 자금이 IS로 흘러간 것은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그것을 입증할 증거를 가지고 있느냐? 아니면 장이 대사에게 받아낼 자신이라도 있는 것이냐?”

“증거는 없지만 조사하면 금방 나올 겁니다. CIA가 안 한다면 우리라도 의혹을 제기해서…….”

“이놈!”

짝!

대노한 정진호가 벌떡 일어나 뺨을 후려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찌검을 당한 정호영은 물론 정인영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놈 하나 살겠다고 그룹을 위기를 몰아넣겠다는 것이냐? 해외 알라딘 그룹의 운영권은 라이나 왕비와 대사원에게 넘어갔다. 그들을 공격하는 것은 무슬림 시장 전체를 포기하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란 말이다.”

“……!”

“당분간 중국의 태후 자동차를 맡아서 관리해라.”

“아버지!”

“보기 싫다! 썩 물러가!”

정진호의 연이은 호통에 정호영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일어나 나갔다.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넌 잠시 더 있어라.”

눈치를 보며 따라 나가려는 정인영을 막은 정진호는 잠시 심호흡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입을 열었다.

“네가 그룹으로 들어와야겠다.”

“아버지.”

“너도 좀 전에 지적했듯이 서진혁은 예측이 불가능한 놈이다. 지금 현재로서는 그자를 막을 사람은 너밖에 없다.”

“…….”

“네 오빠를 멀리 보내기로 결정한 것은 단순히 이번 일 때문만은 아니다. 안타깝지만 태후 그룹을 지키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한 번만 더 생각해 주세요.”

“그룹 회장은 피도 눈물도 없어야 지켜지는 자리다. 너도 앞으로는 사사로운 정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정진호의 마지막 말에 정인영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버지는 자신을 후계자로 여기고 있었다.

* * *

“그 친구는 어떻게 하고 있소?”

청와대 앞마당을 걷던 권성일이 담담하게 물었다.

이현국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모든 걸 정리하고 제주도 처갓집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허어, 재주도 좋군. 그 복잡한 회사를 며칠 만에 정리하다니. 현세의 홍길동이 따로 없어.”

“미안할 뿐입니다. 중국의 공작이란 걸 알고도 막아주지 못했으니…….”

“정말 미안해할 일이지요. 대통령이라는 자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지 않소.”

“죄송합니다.”

“비서실장이 죄송할 일이 뭐 있소. 내가 잘못한 건데.”

“…….”

“하지만…… 항상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 거요. 언제든 기회가 오면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저들의 움직임을 철저히 살펴보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김세동 씨가 제주도에 있다고 했지요?”

“예.”

“연락해서 한번 보자고 전하시오.”

권성일의 그 말에 이현국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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