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받은 건 돌려준다
이수호는 바로 진혁을 찾아갔다.
“형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뭔데?”
“레드향을 넘기기로 약속했던 농가에서 취소하겠답니다.”
“이유는?”
“중국 단체 관광객을 유치한 여행사에서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답니다. 중국의 경제 성장으로 늘어나는 떼국 놈들 때문에 여기저기 문제가 많습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언제까지 승승장구하지만은 못……. 윽.”
갑자기 밀려오는 두통에 진혁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괜찮다. 잠시 머리가 좀 아파서.”
“무리하셔서 그렇습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세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아라. 대책은?”
“지금까지 주문은 확보한 물량으로 버티겠지만 더 이상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 일찍 완판 처리하라고 해. 그것 말고도 할 게 많다.”
“알겠습니다. 아무튼 얼른 들어가세요.”
다시 한번 걱정하는 말을 하고 수호가 나가자, 진혁은 얼른 휴대폰을 꺼내 상해 종합 지수를 확인했다.
중국 주식 시장은 축제 분위기였다.
전인미답의 지수인 5,000선을 돌파해 계속 상승 중에 있었다.
중국 경제의 지속적인 고성장에 따른 부작용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었지만 왕칭린 주석은 이를 과도기의 자연스러운 형상, ‘신창타이(뉴노멀)’로 보고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직장인, 농민은 물론 공직자들까지 빚을 내서 주식 투자에 나서고 있었다.
싸늘한 미소를 지은 진혁이 전화를 걸었다.
-미스터 서?
“오랜만입니다. 지점장님.”
상대는 JK모건 젯다 지점장 스미스였다.
진혁의 갑작스러운 은퇴를 다들 아쉬워했지만 그중 스미스가 받은 충격이 제일 컸다.
그로 인해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며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미국으로 재입성이 눈에 보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상황이 악화되어 있었다.
알쇼핑의 매각을 눈치채지 못하고 쑤피넷과 자포라의 인수 작업을 경쟁사인 매킨리로 넘어간 것도 막지 못했다는 비난까지 듣고 있었다.
싱가포르 지점장 요한슨이 자신의 실책을 감추기 위해 스미스에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운 탓이 컸다.
미국 재입성은커녕 지금의 자리도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2년 만의 연락에 멍해진 스미스가 침묵하자 진혁이 다시 말했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처음에는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어떻게 된 사정인 줄 알고 안타까웠습니다. 도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 지난 일입니다. 제 잔고를 좀 확인해 주십시오.”
-잠시만요.
스미스가 잠시 후 말했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입금되어서 현재 1억 달러가량 됩니다.
진혁은 실용신안 사용료를 JK모건의 계좌로 받게 했었다. 2년간 쌓인 터라 적지 않았다.
스미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따로 사용하실 계획이 있는 겁니까?
“아닙니다. 투자를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예? 투자를 하신다고요?
“제가 또 은혜를 입으면 갚지 않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서요.”
스미스는 진혁이 하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다시 투자를 하겠다는 게 중요했다.
입 안이 마르는 느낌에 얼른 침을 삼키고 물었다.
-어디에 투자하실 생각이십니까?
“이번에는 중국입니다.”
-음, 거기는 현재 활활 타오르고 있는 중입니다.
“뜨겁게 타오를수록 식는 것도 빠르지요.”
-역시 공매도입니까?
“그렇습니다. 내 걸 가져갔으니 그 이상 받아내야지요. 아주 철저하게.”
스미스는 그제야 방금 전 진혁이 한 말이 이해가 됐다. 그가 분노하는 이유를 알기에 한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본분은 잊지 않았다. 급히 냉정을 되찾고 물었다.
-종목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차스닥의 황제주들입니다.”
-차스닥의 황제주……. 알겠습니다.
“청산은 3,000선이 붕괴되면 알아서 해 주십시오. 기간은 세 달입니다.”
-그렇게 심하게까지 망가질까요?
스미스는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 증시의 버블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경고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속 성장하고 있는 중국 경제의 저력을 감안한다면, 3개월 만에 40%가 넘게 폭락한다는 것은 너무 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혁의 냉정한 음성이 들렸다.
“1차가 그렇다는 겁니다. 다시 한번 처절하게 망가질 겁니다.”
-음…….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나야 끝날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비밀은 지키겠습니다.
“아닙니다. 매도 의견을 내십시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평소와 달리 자신의 투자 전략을 공개적으로 밝히겠다는 말에 스미스가 놀라 물었다.
“이제 지점장님을 미국에서 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아메만 회장님께는 지점장님이 대신 안부 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검은 머리 짐의 귀환을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그럼 청산하고 연락 주십시오.”
통화를 끝낸 진혁이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 * *
알라딘 홀딩스의 야맘 사장도 갑작스런 진혁의 전화에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일전에 만들어 놓은 기부 펀드는 사용이 가능합니까?
“예. 회장님 개인 계좌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어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지난번에 투자한 유가 선물의 수익금과 그간의 이자가 더해져서 1,500만 달러가 조금 넘습니다.”
-예상 투자 기간 3개월. 레버리지를 최대로 해서 중국 차스닥의 안시 교육과 치안둥 정보를 공매도해 주십시오.
“차스닥의 안시 교육과 치안둥 정보. 알겠습니다.”
“수고하시고 제가 연락한 것은 비밀로 해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진혁이 전화를 끊자 야맘은 그제야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갈리에게 진혁이 ‘검은 머리 짐’이라는 말을 들었는데도 막상 대하고 보니 압박감이 엄청났다. 이걸 버텨 온 갈리가 대단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 *
며칠 후, 스미스가 내놓은 투자 의견서로 세계 증권가가 들썩였다.
중국 증시에 대한 ‘강력 매도’ 의견이었다.
약세가 예상된다고 해도 매도 우위, 매도 추천 정도가 일반적이었다. ‘강력 매도’는 지금 즉시 팔라는 극단적인 사인이었다.
예상과 다를 때 후폭풍에 시달릴 게 불을 보듯 뻔했다.
게다가 다른 투자 분석가들은 여전히 중국 증시를 좋게 보고 매수를 외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JK모건 본사에서도 우려를 나타냈지만 스미스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날 중국 증시는 신고가 행진을 거듭하며 5,100선을 넘었다.
* * *
‘제주 동행’에 새로운 활기가 들었다.
직원 열 명이 합류했다.
모두 합심해 이번에 조합원이 된 천 개 농가의 실태 조사를 했다.
재배 작물과 보유 농산물 현황, 저장 창고의 보유 여부는 물론 가족 관계까지 세세하게 데이터를 만들어 구축했다.
그 업무가 끝나면 적성에 맞춰 지민에게 오픈 마켓 관련 업무를 배우거나 수호를 따라 물품의 구입과 배달에 투입됐다.
또 일부는 권기남과 함께 일꾼들을 데리고 제품 가공 및 포장을 관리하는 일을 했다.
제주 동행의 근무 형태는 일곱 시부터 네 시를 근간으로 하는 자율 근무 시간제였다.
진혁이 7시 출근을 고집한 것은 농민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실제로 농민들은 그 전에 일어나 밭에 나가는 게 일상이었다.
자율 근무제는 일과 가정을 병행해야 하는 여성들을 위한 정책이었다.
실재로 지민과 함난숙은 서로 시간을 달리 해서 양쪽 집안의 아이들을 돌아가면서 돌보고 있었다.
그 외의 다양한 복지 정책들을 도입해 직장의 만족도를 높였다.
진혁은 마늘과 양파의 구입을 지시했다. 조합원 출자금으로 받은 100억이 쌓여 있어 자금은 충분했다.
진혁이 자꾸 눈치를 보는 수호를 불렀다.
“무슨 할 말이 있냐?”
“이번에는 양파와 마늘 값이 오르는 겁니까? 우리가 매집한다는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서 문의 전화가 많이 옵니다.”
“내가 무슨 신이라도 된다더냐? 본격적인 출하로 인해 가격이 하락하고 있어 미리 사서 쌓아 두는 것뿐이야. 창고를 놀릴 수는 없잖아. 판매도 해야 하고.”
“그렇군요.”
“지난번 월동채소 같은 경우는 특이한 현상이었어. 우리야 수익을 얻어서 좋지만, 전체 농민들을 위해서는 그런 식의 가격 급등락은 좋지 않아.”
“맞는 말씀입니다. 그때 진 빚 때문에 고생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으니 저는 그만 일하러 가 보겠습니다.”
어두운 얼굴은 한 수호가 가자 지민이 다가왔다.
“알쇼핑과 수수료 인하에 대해 논의하다가 재미있는 제안을 받았어요.”
“뭔데?”
“우리에게 알쇼핑에서 생필품 등을 구매해 달라고 역제안을 해 왔어요. 그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차감해 주겠다고요.”
“괜찮은 아이디어네. 추진해 봐. 변함없이 다들 열심히 하고 있군.”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짓는 진혁을 바라보는 지민의 마음은 좋지 않았다.
알쇼핑을 만든 주역이면서도 어이없이 쫓겨나 오히려 부탁하는 처지로 변해 있었다.
화가 나지만 그걸 밖으로 내보일 수는 없었다. 자신이 그럴 지경이니 진혁의 속마음은 어떨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날이 가기 전에 직원들에게는 새로운 오더가 떨어졌다.
다시 조합원 농가들을 방문해서 매달 구매하는 물품 리스트를 작성해 오라는 것이었다.
한편, 진혁은 창고 하나를 사무실과 교육장, 식당으로 개조했다.
매입한 농산물의 양은 늘었지만 조합원들의 것은 자신들의 창고에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가져오기로 했다.
물론 그에 따른 비용은 판매 후 정산해 주기로 했다.
진혁은 새로 마련된 사무실에서 이수호가 안내해 온 중년의 사내를 맞이했다.
“말씀드린 우상우 형님이십니다.”
“잘 오셨습니다. 서진혁입니다. 앉으시지요.”
진혁이 얼마 전 이수호에게 서귀포 지역의 능력 있는 농민을 찾아보라고 하자 주저 없이 바로 추천한 이가 우상우였다.
함께 자리에 앉자 우상우가 먼저 말을 꺼냈다.
“농민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계시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저는 방향을 제시한 것뿐입니다. 비록 타의였지만 이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농민들이 한 것이지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보자고 하신 겁니까?”
“서귀포 쪽에도 동행 센터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곳을 맡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저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보다 더 좋은 분이 많습니다.”
이런 식으로 바로 거절당할 줄은 몰랐던 진혁이라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이수호가 괜히 안절부절못했다.
잠시 후에 진혁이 다시 물었다.
“거절하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처음에는 다들 순수한 의도로 시작하더군요. 그런데 조직이 커지고 여러 가지 이권이 얽히면서 변하는 모습을 너무 많이 봐서 그렇습니다. 물론 회장님이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저한테 죄송할 것은 없습니다. 전국 귀농인 지원 센터에서 나온 게 그 때문입니까?”
진혁은 이수호에게 들은 우상우의 이력을 떠올리며 물었다.
우상우는 전국 귀농인 지원 센터 교육 위원으로 있으면서 예비 귀농인들을 상대로 다양한 교육을 맡아 왔었다.
이수호도 교육생 중 한 사람이었다.
“제 지론이 ‘떠날 때는 말없이’입니다. 지난 일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실망했습니다. 굉장히 무책임하신 분이군요.”
“……?”
“여기 이수호 씨같이 당신에게 교육받고 희망에 차 시골로 내려온 뒤 절망하고 있는 수많은 이들은 그럼 뭡니까? 입으로만 떠든 겁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럼 교육이 끝났으니 이제 끝이라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