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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143화 (143/307)

143화. 부부가 좋은 이유

중국에서 불어 닥친 ‘검은 월요일’ 탓이었다.

중국 증시가 새해 첫 거래일에 대폭락하면서 사상 처음으로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고, 장 마감 시각이 되기도 전에 거래가 완전 중단됐다.

6.85% 하락한 채 조기에 장 마감을 할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 도래하자 세계 투자가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 * *

제주 동행은 마늘과 양파의 비축물량을 소진하고 본격적인 월동채소 판매에 들어갔다.

2년간의 산지 폐기의 경험으로 농민들 스스로 재배 면적을 줄이고 품종을 다변화해서 가격이 안정적이었다.

작년 같은 큰 수익을 얻지 못해 실망한 조합원도 있지만, 진혁이 원하는 것은 이렇게 안정적이며 꾸준한 농가 소득이었다.

유통 마진을 줄였기에 제주 동행의 수익금도 꾸준히 적립되고 있었다.

하지만 서귀포 동행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

공장은 정신없이 돌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판매 전이라 매출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감귤 농가들의 시위는 더욱 격해지고 있었다.

‘가공용 감귤 수매 확대 요구’에 대해 제주도청은 단호하게 불가 입장을 천명했다.

문제는 저급품 감귤을 농가 자율적으로 처리하지 못한 게 감귤 값 폭락의 원인이라며 농가에 그 책임을 떠넘긴다는 것이었다.

성난 농민들이 도청 앞 도로에 감귤을 쏟아붓고 도지사의 면담을 요구하며 무기한 천막 농성에 들어갔다.

최창봉이 오늘도 시위에 참석해서 빈 사무실에 앉은 진혁은 다른 고민에 빠져 있었다.

무크린이 신도들을 통해 선호도 조사를 한 결과를 보내왔다.

중동인들은 금귤 제품을 선호했고 동남아시아는 청귤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금귤은 별도의 숙성 기간이 필요 없고 물량도 풍부하다. 그래서 가공용 감귤로 나오는 양이 많고 가격도 낮아 제품 단가를 맞추는 데는 이상이 없었다.

문제는 청귤이었다.

여전히 조례안이 통과되지 않아 불법인 데다가 수확 기간도 짧았다.

가장 큰 난제는 가공용으로 헐값에 나올 양이 없다는 점이었다. 숙성과 값이 어찌 될지 모르는데 먼저 포기할 농민은 없었다.

거기에 설탕 속에서 한 달간 숙성을 해야 해서 재료비와 인건비가 추가로 들어가야 했다.

물기를 빨아들인 설탕의 처리도 고민이었다. 건조 과정이 추가로 들어가니 생산 원가가 더 높아졌다.

일부 직원이 음료로 만드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제주미로’를 이미 확보한 터라 불가능했다. 너무 서둘러 계약한 게 아닌가 하는 후회마저 들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했는데 답이 없었다.

그러다 무심코 시간을 확인한 진혁이 놀라 급히 일어나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지민과 혜주가 돌아오는 날이었다.

그날 저녁 중동의 ‘슈퍼 트위터’와 동남아시아의 ‘슈퍼 블로거’에게 한 편의 동영상이 전달되었다.

걸 그룹 하이디가 찍은 ‘제주로 동행’ 제품들에 대한 광고 영상이었다.

K-POP 마니아인 그들은 하이디를 즉각적으로 알아보고 바로 행동을 개시했다.

해당 지역 알쇼핑에는 이미 상품들이 올려져 있었고, 한국에서는 하이디 멤버들이 자신들의 SNS에 바로 올렸다.

그녀들의 추종자들이 그것을 열심히 퍼 나르기 시작했다.

주문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비감귤 농장 조합원들이 주문서를 확인하며 박스 작업을 하느라 분주히 손길을 놀리고 있었다.

반응이 가장 핫한 곳은 동남아시아 시장이었다.

아무래도 한국과 가깝다 보니 K-POP 팬이 많아 일반인들도 하이디를 알고 있었다.

그녀들의 미모가 노화 방지에 탁월한 청귤 제품 때문이라는 소문이 여성들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간 덕분이었다.

우상우가 흥분한 얼굴로 급히 들어오며 외쳤다.

“인도네시아 알쇼핑에서 추가로 물량을 보내 달라고 합니다!”

도착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물량 걱정을 할 정도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연락을 받은 ‘제주미로’ 정민국 사장은 희희낙락하며 고마워했지만 진혁은 아니었다.

전혀 반갑지 않은 추가 주문이었다. 청귤 제품은 팔면 팔수록 손해였다.

잊고 있던 두통이 다시 밀려왔다.

우상우가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어디 아프십니까?”

“청귤 제품의 원가 때문입니다.”

사정을 들은 우상우의 얼굴에서 흥분이 사라졌다. 오히려 굳어졌다.

“그럼 큰일이잖습니까. 지금이라도 품절 처리를 하라고 할까요?”

“그건 안 됩니다. 상거래에서는 한번 신뢰를 잃으면 끝입니다. 거짓말쟁이 사업가를 누가 믿고 계속 거래를 해 주겠습니까?”

“그렇다고 이렇게 적자를 보면서 계속 팔다가는 감당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 전에 방법을 찾아야지요, 어떻게든.”

깊이 고민에 빠진 진혁의 모습에 우상우도 나가지 못하고 고민을 해 봤지만 그 역시 답을 찾지 못했다.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지민이 들어왔다.

우상우가 얼른 일어났다.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우 이사님도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진혁은 새해가 되자 일부 인사를 단행했는데 우상우를 사단법인 동행의 이사로 등재했다.

전국 사업을 총괄해야 하니 (사)동행에 적을 두는 게 맞다고 보고 내린 조치였다.

우상우와 함께 앉은 지민이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는 진혁을 보고 물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추가 주문이 들어왔다면서요?”

“그거 때문에 골머리 썩고 있는 거야. 도대체 답이 안 나오네.”

“당신이 해결 못 하는 일도 있네요.”

“뭐, 나는 만능 해결사인 줄 알아?”

“우리 신랑도 이제 한물갔네. 그런 자신 없는 말도 하고.”

“놀릴 거면 가서 일이나 해. 가뜩이나 머리 아프구먼.”

귀찮다는 듯이 나가라고 손까지 흔드는 진혁에게 지민이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두통을 해결할 방법이 있는데. 대표가 나가라니 힘없는 조합원은 나가야지, 뭐.”

“가긴 어딜 가. 대체 어떤 방법이야?”

“맨입으로요?”

“헐.”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진혁의 눈에 지민의 초로초롱 빛나는 눈동자가 보였다.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거면 확실한 거였다.

바로 꼬리를 내렸다.

“조건을 말해 봐.”

“일주일간 혜주 책 읽어 주기.”

“일주일은 너무 길잖아?”

“그만 나가서 일…….”

“알았어. 콜! 치사하게.”

투덜거리며 승낙하는 진혁의 모습에 우상우는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황당한 부부였다.

진지한 표정으로 바뀐 지민이 가져온 결재판을 펼치고 말했다.

“카페니아에서 우리 청귤청 원액을 받겠대요.”

“카페니아에서?”

진혁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커피 프랜차이즈 순위 3위인 카페니아는 가맴점 수만도 750여 개에 이르는 대형 업체였다.

“커피 전문점이지만 일반 음료도 팔아요. 대화 나눌 장소를 찾아 커피 전문점에 들어오는 사람들 중에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거든요.”

“맞습니다. 저도 자주는 안 가지만 손님을 만나 어쩔 수 없이 가게 되면 일반 음료를 먹습니다.”

“어떤 걸 드세요?”

“레몬이나 자몽밖에 없더라고요. 우리 차가 있으면 좋은데. 유자차나 생강차 같은.”

“우리 차가 없는 것은 단가 때문이에요. 레몬에 비해 유자가 30% 이상 비싸거든요.”

지민이 핵심을 말하지 않고 우상우와 주변 이야기만 하는 모습에 진혁이 짜증을 냈다.

“본론만 말해.”

“지금 하려고 하잖아요. 듣기 싫어요?”

“아니야. 편하게 말해.”

진혁이 다시 바로 꼬리를 내렸다. 우상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민이 말을 이었다.

“물론 우리도 청귤청만 판매한다고 가정하면 유자차 정도의 단가는 받아야 해요. 하지만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 보존이 가능하잖아요?”

“건더기는 제품을 만들어 팔고 원액은 카페니아에 팔자는 거네.”

“맞아요. 그럼 청귤 값은 거의 빠져요. 카페니아도 수입 과일 대신 국산 과일 원액을 판매하는 거니 좋고요.”

“언제 그 일을 다한 거야?”

“지난번에 서울 가서 제안서를 주고 왔어요. 그동안 가격 때문에 실랑이를 하다가 이번에 하이디 광고를 보고 서둘러 결정했다고 하더라고요. 지들도 우리 제품이 뜰 거란 것을 안 거죠.”

“설마 독점 납품을 약속한 건 아니지?”

“내가 바본가요? 내 신랑이 서진혁이에요.”

“그럼, 그럼. 누구 마누라인데. 암.”

아주 쌍으로 지랄하는 모습에 우상우는 일찍 일어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지민 덕분에 청귤의 단가 문제가 한 방에 해결이 되었다.

이제 미친 듯이 팔면 된다.

진혁의 다짐을 들었는지 정말 미친 듯이 주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동남아시아의 수출도 계속해서 늘고 있었다.

물건을 만들기 바쁘게 포장해서 내보내야 했다.

카페니아에서 하이디가 광고한 제품의 청귤 원액을 차와 에이드로 내놓자 손님들이 몰려왔다.

다른 커피 전문점 프랜차이즈에서도 원액 공급을 요청해 온 것은 당연했다.

그렇다고 다 받아 줄 수는 없었다. 팔고 싶어도 팔 물량이 없었다.

청귤 슬라이스마저 부족할 것 같아 제주미로 정민국 사장에게 SOS를 쳤다.

그는 제주미로를 만들고 남은 절임 청귤은 폐기 처분해 왔다. 그런데 돈까지 주며 버려야 할 음식물 쓰레기를 돈을 주고 사 간다고 하니 마다할 리가 없었다.

진혁은 제품의 차별화를 위해 청귤정 저가형 제품을 새롭게 등록시켰다.

이 정도면 대박도 초대박이었다.

그런데 환호를 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감귤 농가 조합원들의 시위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노지 감귤 값은 8,000원대마저 무너져 투매 양상으로 번졌다.

천막 농성이 삭발과 단식 농성으로 변해 있었다.

한편, 그곳과는 별개로 서귀포 동행의 공장에서는 또 다른 낭보가 날아왔다.

“사우디아라비아 알쇼핑에서 있는 금귤 제품 재고 전량을 바로 실어 보내고 만들어지는 대로 최대한 많이 보내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갑자기 왜?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청귤 제품에 비해 중동의 금귤 제품의 판매 성장세가 둔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직원들에 비해 진혁은 떠오르는 것이 있어 즉시 유튜브에 접속했다.

역시나 라이나 왕비의 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언젠가는 알려질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일찍 알게 된 모양이었다.

전화를 할까 하다가 말았다. 그럼 그녀의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진혁이 우왕좌왕하는 직원들을 보고 외쳤다.

“지금부터 공장은 24시간 풀로 가동합니다!”

“아이구…….”

다들 비명을 질렀다.

벌써 며칠째 강행군을 하고 있었다.

비록 감귤 농사를 짓지는 않지만 이들도 짓는 농사들이 있었다. 계속 이 일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우상우가 다가와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계속 이렇게 돌리다가는 다들 쓰러질 겁니다.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일손 구하러 갑시다.”

“월동채소 수확기라 다른 곳에서도 일손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걱정 말고 따라오세요. 일손이 떼거리로 몰려 있는 곳이 있으니.”

걱정스런 표정의 우상우를 끌고 제주시로 넘어갔다.

진혁이 도착한 곳은 제주도청 앞이었다.

도청의 출입구는 시위 농민들이 막고 있어 차가 들어갈 수 없었다.

적당히 길가에 주차한 진혁은 우상우와 함께 농성 천막을 찾았다. 천막마다 푯말이 붙어 있어 ‘서귀포 동행’ 식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 회장님.”

얼굴을 알아본 조합원의 목소리에 최창봉이 놀란 얼굴로 급히 달려왔다.

그간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머리도 삭발했고 수염도 깎지 않아 덥수룩하게 자라나 있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늦게 와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자리를 지키지 못해서 죄송……. 흑.”

“다 큰 사람이 울기는.”

진혁이 안아서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 모습에 우상우는 물론 주변의 조합원들이 눈가는 물론 코까지 벌게졌다.

진정된 최창봉의 손을 잡아끌었다.

“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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