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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148화 (148/307)

148화. 숟가락 든 청와대

“그 동행 사업을 전국적으로 펼쳐 보는 게 어떤가? 이미 일부 진행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네만.”

“……!”

“감귤 값 폭락이 심상치 않고 농민 시위가 길어지자 우리도 주시하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서 회장이 관여된 것은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현국이 오해할지 몰라 사정을 들려주었다.

“다 아신다니 말씀드리기가 편합니다. 이미 전국 확대를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부가 돕겠다는 말이네. 그럼 훨씬 빠르게 많이 설치할 수 있지 않겠나?”

“동행은 우리가 알아서 우리끼리 천천히 진행할 겁니다. 정부는 그냥 지켜봐 주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

거절당할지는 몰랐던 권성일이라 잠시 말을 못 했다. 이현국은 물론 위정근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한참 만에 권성일이 물었다.

“거절하는 연유를 물어봐도 되겠는가?”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동행이 효율적이라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가장 비효율적인 조직입니다. 받아들이는 게 이상하지요.”

“말씀이 지나치시오!”

위정근이 참지 못하고 한 소리 했다.

그는 휴일 날 갑자기 불려 와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서진혁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또한 국민 중 한 사람일 뿐이었다.

진혁이 그에게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동행이 정부와 연계하지 못하는 이유를 몸소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사람이!”

“대통령님 앞입니다.”

이현국이 위정근에게 주의를 줬다.

진혁이 말을 이었다.

“믿고 지켜봐 주십시오. 저희끼리 해 나가겠습니다. 힘들면 말씀드릴 테니 그때 도와주십시오.”

권성일은 진혁의 진솔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학연, 지연, 연줄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대통령이 먼저 도와주겠다는데 거부할 이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진혁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

그 이유도 타당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이유로 반드시 동행을 정부가 주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의 눈짓을 받은 이현국이 말했다.

“대통령께서 동행 사업에 관심을 가진 것은 농촌에서도 충분히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제일 시급한 게 농촌의 공동화 현상입니다. 수도권 집중화를 막고자 지난 정부 때 세종시로 정부 청사를 이전하고 공공 기관과 기업들의 지방 이전을 추진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습니다.”

“억지로 추진한다고 될 일이 아니지요.”

“맞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귀농 지원 정책의 실패입니다. 실재 귀농 교육을 받는 이 중 대부분이 귀촌자로 조사됐습니다. 귀농자들도 90% 이상 정착에 실패해서 역귀성하고 있습니다.”

“먹고살 게 없으니 당연하지요.”

“동행은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귀농자들에게는 농사를 지어서 안정적으로 살수 있다는 희망을 줬고, 귀촌자들에게는 시골에서도 농사 이외의 일에 종사하면서 전원생활을 누리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진혁이 자리에 앉은 후 처음으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이현국이 제대로 조사했다는 게 느껴졌다.

“또한 동행은 역대 정권 모두가 실패한 농산물 유통 구조의 문제점을 순수한 민간 차원에서 개선했고, 그 필요성을 증명한 사례가 됐습니다. 이해 당사자들이 첨예하게 대립되다 보니 정부가 직접 나서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나서지 않은 것은 아니지요. 다만 농민이 아니라 이해 당사자의 주장을 대변해서 실패한 겁니다. 제가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것에는 그 이유도 있습니다.”

진혁의 냉철한 지적에 위정근이 발끈한 표정을 지었지만 주의 받은 게 있어 나서지는 않았다.

“그간 정부는 다양한 방법으로 직거래 비율을 높이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정부 주도의 사업은 일회성에 그치고 농민들의 사정은 열악했습니다. 그런데 동행은 지킴이 사업을 통해 농민들은 생산만 하고 직거래 일은 지킴이가 맡는 새로운 방식을 선보였습니다.”

“새로운 방식은 아닙니다. 이미 많은 다른 기업에서 시행하고 있습니다.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이 농업을 가장 낙후된 산업으로 만든 겁니다.”

진혁은 끝까지 정부를 물고 늘어졌다. 그 모습에 김세동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현국이 상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지킴이 사업은 다른 의미로 중요합니다. 시골 공동화만큼 심각한 게 청년 실업입니다. 인터넷 세대로 불리는 요즘 청년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제시했다는 겁니다. 이건 비단 동행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른 노동 집약적인 사업에 젊은 층의 필요성을 각인시켜 준 큰일입니다.”

“이제 그만하시지요. 충분히 들었습니다만 정부의 참여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너무 칭찬 일색이라 계속 듣고 있기가 거북했다.

하지만 이현국은 말을 이었다.

“마지막으로 수출입니다. 농민이나 농산물 가공 업체 모두 영세하다 보니 각종 수출 지원 정책을 펴고는 있지만 효과는 미비했습니다.”

“그건 제가 알쇼핑 사업을 하면서 이미 유통 채널을 확보했기에 가능했던 겁니다.”

“그래서 이 일에는 서 회장이 반드시 필요한 겁니다.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농산물 제품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 일부는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땅한 판매 전략이 없어 묻힌 경우가 태반입니다.”

“유통 전문가가 참여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저여야 한다는 말씀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국내에는 저보다 더 뛰어난 유통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이현국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할 말은 다 했는데 진혁의 태도는 여전히 확고했다.

그런 그에게 권성일이 말했다.

“이 실장, 조사하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빠졌습니다.”

“……?”

“동행은 우리가 그렇게 원했던 6차 산업을 실현해 냈다는 겁니다. 생산, 제조, 유통. 현재 국내에서 이만큼 성과를 낸 업체가 있습니까?”

“동행이 처음입니다.”

권성일이 진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많네. 하지만 그들은 한 분야만 알지. 지금의 농촌 문제는 어느 한 분야만 보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름을 ‘동행’으로 했다고 생각하는데?”

“맞습니다.”

“그게 기존의 많은 단체를 놔두고 내가 동행에 일을 맡기려는 이유네. 기존 단체들은 경직되어 있고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문화가 굳어져서 새로운 일을 맡기기에는 부적합해. 서 회장과 동행만이 온갖 난제로 얽힌 농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부의 도움 없이도 잘 진행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겁니다. 그러니 과도한 관심은 거둬 주십시오.”

진혁은 다시 한번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권성일은 그를 직접 공략해서는 쉽지 않다고 생각해서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얼마 전에 축산업 대표들과 만찬을 가졌는데 계란 이야기를 하더군. 산지 가격은 70원에 불과한데 대형 할인 매장에서는 300원에 팔린다고 했어. 서 회장이 제주에서 동행 사업을 할 때 통영에서는 통발 어선들이 해상 시위를 벌렸다네. 바닷장어 어민들이 수출 감소와 외국산 공세까지 겹쳐 줄도산 하겠다며 대책을 세워 달라고 했다지.”

“……!”

“올해 말 한중 FTA가 발효되네. 지금도 빈사상태인데 중국산 저가 농산물이 밀려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서 회장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네. 농민들에게는 더 이상 시간이 없다네. 그들을 위해서라도 도와주게. 어떤 조건이라도 받아들이겠네.”

고개까지 숙여 보이는 권성일에게 진혁도 함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의 손을 잡는 이가 있었는데 김세동이었다. 그 역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현국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위정근만이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숙였다.

잠시 생각하던 진혁이 입을 열었다.

“경제부총리 산하에 ‘동행 지원단’을 만들어 주십시오.”

“아니, 농촌 문제를 왜 그쪽으로 가져간다는 말이오?”

위정근이 당장 따지고 들었다. 대통령 앞이라도 이건 절대 인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진혁이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

“바닷장어 문제를 농림식품부에서 해결하실 수 있습니까? 지킴이 사업에 대한 청년 인건비 지원은 고용노동부 소관 아닌가요?”

“그건 그쪽 부서와 긴밀한 업무 협의를 통해…….”

“언제요? 농민들이 다 죽어 나자빠진 다음에요?”

위정근의 입을 막은 진혁이 권성일을 보고 다시 말했다.

“제가 농림식품부를 택하지 않은 것은 농협 때문입니다. 그들이 현재의 농산물 유통 구조를 오히려 고착화시키고 농민들을 착취하는 데 앞장서기 때문입니다.”

“농협이 농민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는지나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오?”

“농협이 지난해 유통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 10조가 넘습니다. 농민에게 돌아갈 돈을 대기업의 대형 할인점보다 더 많이 가져갔습니다. 납품 업체 수수료도 최대 55%, 가장 악질적으로 폭리를 취해 오고 있습니다. 거기에 농협 마트에 가면 수입 농산물이 널려 있습니다.”

“그럴 리가 없소.”

“오늘 댁에 돌아가시면서 아무 농협 마트나 들러서 확인해 보세요. 백화점만 다니지 마시고요.”

위정근은 벌게진 얼굴을 했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그도 일부 그런 경우가 있다는 보고를 받았지만 다문화 가정을 위한 조치라는 말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권성일이 굳은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 진혁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위정근을 나무랄 때가 아니었다.

“알겠네. 서 회장 뜻에 따르겠네.”

“다음으로 동행 센터를 짓는 문제인데, 정부에서 세워서 저희에게 임대해 주시는 형태를 취해 주십시오.”

“그건 당연히 그렇게 해 줘야지.”

“그게 그렇게 쉽게 답하실 문제가 아닙니다. 위치 선정, 건축, 기계 설치. 모두 저희에게 일임해 주십시오.”

“그건 어렵습니다. 아무런 관리 감독 없이 일반 단체에 모든 것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이번에는 이현국이 반대하고 나섰다. 특혜 시비에 휘말릴 수 있었다.

“현 정부의 행정 시스템상 중앙 정부가 예산을 확정해도, 각 지자체가 사업을 검토해서 예산을 신청하고 집행하는 데 최소 1년은 걸립니다. 거기에 다시 설계하고, 업자 선정하고, 건축하는 데 다시 1년. 정부가 지은 건물치고 비 안 새는 곳은 없다는 말이 돌 정도로 부실시공입니다.”

“음…….”

“아무것도 안 받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통령께서 먼저 시간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사후에 점검은 받겠습니다. 문제가 발견되면 전액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하지만!”

“내 몸 보신하자고 한시가 급한 농어민을 외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네.”

반대하고 나섰던 이현국은 대통령의 말에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권성일의 소신이었다.

“지킴이를 포함한 상근자의 인건비를 최저 임금 수준으로 1년간만 지원해 주십시오.”

“지킴이야 청년들일 테니 그렇다지만, 관리자들은 나이나 경력이 꽤 될 텐데 최저 임금으로 되겠는가?”

“간섭이 귀찮아서 그렇습니다. 경력에 따라 인건비를 지급받으려면 거기에 맞춰 서류를 내야 하고, 확인받아야 하고, 인정해 주네 마네 규정 따지고. 아주 머리 아픕니다. 부족한 부분은 자체적으로 알아서 보상하겠습니다.”

“후후. 알겠네. 그런데 1년간만 해 달라는 건 또 왜 그런가? 다음 해는 어쩌려고.”

“1년간 했는데도 인건비마저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건 실패한 사업입니다. 빨리 접는 게 낫습니다.”

어떻게든 지원금을 더 길게 많이 받으려고만 하는 이들만 만나 봐서 신선하게 느껴졌다.

권성일이 웃으며 물었다.

“그 다음은 뭔가?”

“없습니다.”

“없어?”

“그렇습니다.”

“정부 기관에서 일정량 구매해 달라든지, 아니면 입점하게 해 달라든지.”

“그럴 필요가 있다면 다른 업체와 당당히 경쟁해서 들어가겠습니다. 떨어지면 될 때까지 더 노력하겠습니다.”

당황한 표정의 권성일에게 진혁이 말했다.

“건방지지만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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