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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152화 (152/307)

152화. 전세 역전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권성일이 다가와 안았다.

“큰일 했네.”

“그간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고개부터 숙이는 진혁의 모습에 곁에 있던 이현국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권성일이 가스전 관련 질문을 쏟아냈는데, 기자들의 질문과 다를 바가 없어 비슷하게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각, 수행해 온 김상균은 김세동의 집무실에 있었다.

“같이 참석하지 않으시고요?”

“내 업무도 아닌데 뭐 하러 가.”

“서 회장님께 부담이 될까 봐 일부러 안 가신 것 아니고요?”

“그놈이 내가 있다고 할 말 못 할 놈인가?”

“하긴 두 분 다 한 성질 하시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진혁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가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김세동이 물었다.

“특별한 소식은 없지?”

“맨날 들려오던 숙청 이야기가 잠잠해진 것 외에는 없습니다.”

두 사람은 북한의 이야기로 남은 대화를 이어 갔다.

한편, 대통령 집무실에서는 찻잔을 내려놓은 권성일이 본론을 꺼냈다.

“거제시 상황이 최악이네.”

거제는 조선업으로 대표되는 도시였다. 한때 세계 1위의 조선 강국의 위상에 걸맞게 돌아다니는 개도 만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세계 경기의 위축과 중국의 저가 공세로 수주량이 급감하면서 지금은 구조 조정이란 심한 홍역을 앓고 있었다.

이현국이 말을 이었다.

“각 조선사별로 자구 노력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모색하고 있는데 잘 안 되는 모양입니다.”

“조선업의 위기는 이제 시작입니다. 각자 조금씩 다운사이징 하는 것은 땜질 처방이고요. 과감하고 선제적인 사업 통폐합이나 인수 합병으로 전체 규모를 축소해야 합니다.”

“우리도 아는데, 그렇게 되면 하청 업체까지 줄도산하게 되어 대량 실업이 발생합니다.”

조선업은 대표적인 노동 집약적인 사업이었다. 거기에 하청 업체의 비중이 60%가 넘었다.

일자리 창출을 국정 제1의 목표로 삼고 있는 권성일이 선택하기에는 힘들었다.

진혁은 할 말은 많았지만 입을 닫았다. 자신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시 살아나기야 하겠지만, 그러기까지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침묵이 이어지자 권성일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부담을 주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광구 개발을 우리나라 기업이 수주할 수 있게 도와주게.”

“기자들에게 이야기했듯이 제가 위원장이지만 한 표일 뿐입니다. 제 능력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압니다만…….”

다시 입을 열려는 이현국을 권성일이 손을 들어 막았다.

매달려서 될 일이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이 정도로 마무리 짓는 게 나았다.

권성일이 화제를 돌렸다.

“가스전 개발만으로도 정신없을 텐데, 동행의 일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당연히 추진해야지요. 그 어떤 일보다도 동행이 최우선입니다.”

“그런 각오라니 든든하네. 하루 빨리 추진해 주게.”

“알겠습니다.”

이미 모든 계획은 수립되어 있었다. TG 그룹이 꼼수를 부리는 바람에 시행이 미뤄졌을 뿐이었다.

일어나려는 진혁에게 이현국이 말했다.

“한 가지 바뀐 게 있습니다.”

“뭡니까?”

“보다 주도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단장님의 위치가 차관에서 장관급으로 격상됐습니다.”

“……믿어 주신 만큼 빠른 시일에 성과를 내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 진혁의 입가에 고소가 지어졌다.

가스전 개발 위원장을 맡은 것에 놀라 올린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 * *

호텔로 가자 알라딘의 모두가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님!”

“고생 많았습니다.”

진혁은 벌게진 눈으로 한 사람 한 사람 포옹을 했다.

“주 회장님이 꼭 좀 만나고 싶다는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더 고생해 주십시오.”

“저희는 조금도 고생스럽지 않으니 걱정 마십시오. 전에는 닭 개 쳐다보듯이 했는데 지금은 완전 상전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하하하. 맞습니다. 전 옮겨 갈 때 같이 데려가 달라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언제 절망했냐는 듯이 얼굴에는 웃음만 가득했다.

진혁이 모두를 보고 말했다.

“같이 다시 모여 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가 또 굴릴 때는 확실히 굴려 드리잖습니까. 그때까지 휴가다 생각하고 푹 쉬십시오.”

“아이구, 죽었네.”

모두 엄살을 부렸지만 표정은 웃고 있었다.

“박이동 실장님은 저랑 같이 움직이실 겁니다. 그렇게 알고 준비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동행몰 작업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질문을 받은 한상국이 얼른 답변을 했다.

“외주 업체에서 제작이 완료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양방향은 첫 시도라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습니다. 회장님이 돌아오시면 바로 알쇼핑에 올릴 수 있도록 준비를 끝내겠습니다.”

진혁이 계획하는 동행몰은 C2C로 센터 간 물품 거래를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단순히 가지고 있는 물품을 파는 게 아니고 필요한 물품이 있으면 올려서 납품을 받을 수 있는 양방향 식이라 제작에 어려움이 있었다.

한상국이 알쇼핑의 기술진으로 충분하다고 했지만 진혁은 외주에 맡기게 했다. 현재까지는 엄연히 TG 소속이기 때문이었다.

고용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작업하실 때 알쇼핑에 동행 전용 매장을 오픈하시는 건 어떠십니까? 여러 가지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동행 사업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다른 사업자들에게는 특혜라는 위화감을 줄 수 있습니다.”

“아,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모두에게 당부드리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동행이라고 해서 특별 대우는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엄격하게 대하십시오. 그게 동행의 경쟁력을 높이고 오래가게 해 주는 길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다들 또 일하러 갑시다.”

밖으로 나와 다들 흩어졌지만 진혁과 박이동은 고용준, 한상국과 역삼역까지 같이 갔다.

알쇼핑 빌딩의 바로 옆 건물을 임대해서 농어촌 지원단과 동행의 사무실로 꾸몄다.

일행과 헤어져 사무실로 가자 우상우 등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노일영, 김미정, 한상미, 이민영…….

한 명의 탈락자 없이 제주도에서 올라와 같이 있었다.

각지에서 온 이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서 준비하고 있었다.

“고생했습니다, 회장님.”

“모두 함께해 주시기로 해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호칭은 단장으로 통일합시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동행의 대표는 우상우 씨입니다.”

“아니, 회, 아니, 단장님.”

“아시겠지만 전 조만간 알라딘을 다시 이끌어야 합니다. 해외 사업도 챙겨야 하고요. 거기에 이집트의 가스전 개발까지 맡게 되어 수시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습니다. 동행의 대표는 농어민을 이해하고 항상 곁에 있을 수 있는 이가 맡는 게 맞습니다.”

다들 알고 있는 내용이라 반박하진 못했지만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동행은 알쇼핑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제가 딴 데로 가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께도 약속드렸듯이 모든 일에 우선해서 동행에 집중할 테니 우 대표님과 여러분도 자리와 상관없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미력하지만 맡겠습니다.”

조직 문제가 정리되자 다 함께 앉았다. 노일영이 휑한 주변을 둘러보고 말했다.

“여긴 너무 넓은 것 같습니다.”

“여기뿐만 아니라 아래층도 전체가 동행이 사용할 곳입니다.”

“헉.”

“회, 아니, 단장님의 스타일을 모르셔서 그러시나 본데, 올해 안에 이 건물을 매입하라고 하실 게 틀림없습니다. 저랑 내기하셔도 좋습니다.”

놀라는 그들에게 박이동이 웃으며 말했다.

진혁이 말을 이었다.

“농민은 농사만 지어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농어민을 위해 농수산물을 잘 팔아 주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도 버리십시오. 국내만 보지 마십시오. 해외는 훨씬 더 넓습니다. 하고자만 하다면 농어촌에서 할 일은 무궁무진합니다. 새로운 사업과 거기에 맞는 인력이 계속 충원될 겁니다.”

“……!”

“안주하려 들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멈추는 순간 농어촌의 발전도 멈춥니다. 부담감을 가지고 임해야 할 일입니다. 그들을 위한 새로운 일들을 찾는 것만 계속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십시오. 모든 지원은 제가 다 해 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들 묵직한 음성으로 고개를 숙였다.

진혁의 시선이 박이동에게로 향했다.

“박 실장님께서 그간의 진행 상황에 대해 보고해 주세요.”

“총 50곳의 센터 위치를 확정하고 토목 공사와 설계를 마쳤습니다. 단장님이 지시만 내리시면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공무원들이 잘 협조해 주던가요?”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는 곳이 있는 반면, 길도 없는 산골짜기로 데려가서 거기다 설치하라는 이도 있었습니다.”

다들 고생했지만 누구보다 고생한 이가 박이동이었다. 그는 전국을 몇 번이나 돌면서 센터 건립의 최적지를 찾았다.

애초에 지자체가 좋은 땅을 내놓을 리가 없었다. 보고를 받은 진혁이 국토교통부를 통해 전국 국유지 리스트를 받아 무조건 좋은 곳을 선택하라고 했다.

“단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청와대에 보고하겠다고 하니까 찍 소리도 못 하더군요. 그런 놈들이 무슨 국민들을 위하는 일을 한다며 월급은 받아 가는지. 하여튼 우리나라 공무원은 문제 많습니다.”

“박 실장님도 이제 공무원입니다.”

“제가요?”

“이민영 씨도 마찬가지고요.”

놀란 표정을 하는 그들에게 진혁이 사정을 들려줬다.

농어촌 지원단은 임시지만 정부 조직이고 단장이 국장급이라 그에 맞는 지원이 따랐다. 규정에 따라 어공, 어쩌다 공무원이 되는 보좌관 둘을 둘 수 있었다.

“허참, 내가 이 나이에 공무원이 될 줄은 몰랐네.”

“이민영 씨를 넣은 것은 사후 점검 때문입니다.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내역을 철저하게 공개할 의무가 있습니다. 빈틈없이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이민영의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 직업이 공무원이었다.

이번에는 우상우에게 말했다.

“일주일 후에 센터 공사를 지원해 줄 한 사람만 남고 센터장 포함 센터 직원 모두 짐 싸서 올라오라고 하세요.”

“짐을 싸서요?”

“최소 2주는 합숙하면서 교육을 받고 토론도 해야 하니 각오 단단히 하고 오라고 하시고요.”

“당장 일주일 후는 너무 촉박합니다.”

노일영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참석 인원을 파악해서 규모에 맞는 교육 장소와 숙소도 구해야 합니다. 계획도 세워야 하고, 강사도 섭…….”

“노 선생님, 제가 처음이라 이번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농촌의 현실이 그런 사정 따질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한중 FTA는 우리가 준비 안 됐다고 해도 무조건 시행됩니다.”

“…….”

“박 실장님이 책임지고 진행해 주세요. 전 전화 좀 하고 오겠습니다.”

진혁이 나가자마자 우상우가 큰 숨을 내쉬었다.

“후아……. 회, 아니, 단장님은 만날 때마다 숨을 턱턱 막히게 하시네.”

“우 대표님이 그리 말하면 안 되지요. 몇 년간 옆에서 모신 나는 어떻겠습니까?”

“대단하십니다.”

두 사람은 편하게 농담을 나눴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노일영은 아니었다.

“단장님 말씀은 알겠지만 이건 억지로 밀어붙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뭐가 불가능해요?”

박이동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50개 센터에서 네 명씩만 와도 이백 명입니다. 그 인원이 숙식하면서 교육받을 곳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서울에만 국가에서 운영하는 연수원이 십여 개는 될 거요. 인근 수도권까지 범위는 넓히면 백 개도 훌쩍 넘어요. 그런데 단장님 성격에 무조건 서울을 고집할 거니 서울로 알아봐요.”

“국가가 운영하는 연수원을 빌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아십니까? 최소 6개월 전에 신청해도 될까 말까 합니다.”

“이 양반, 내 이야기 헛들었네. 이러쿵저러쿵 따지면 청와대에 이야기하겠다고 하세요. 아니, 처음부터 청와대라고 하는 게 효과가 더 클 겁니다.”

“그건 거짓말이잖습니까?”

“단장님이 동행을 이렇게 급하게 확대하고 싶어서 했습니까? 대통령이 직접 불러서 억지로 떠맡겨서 이리 된 거잖아요? 그러니 청와대가 시킨 일이 맞죠.”

노일영은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 반발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수긍하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 사람 참 답답하네. 내가 시범을 보여 줄 테니 한번 봐 봐요.”

박이동이 핸드폰으로 여기저기를 검색하더니 통화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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