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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156화 (156/307)

156화. 아시아 사업 복귀

-비트코인 말입니까?

“맞습니다. 유통 물량이 많지 않을 테니 표시 안 나게 매일 조금씩 매입하셔야 합니다. 200달러가 넘어가면 매수는 중단하시면 됩니다.”

-소량 매수, 200달러에서 매수 중단. 알겠습니다.

“이번 건은 극비로 처리하셔야 합니다. 갈리 사장에게도 비밀로 하십시오.”

-넵.

“그럼 나중에 다시 통화하지요.”

전화를 끊은 진혁이 깊은 생각이 잠겼다.

제주도에서 긴 시간 마음속의 칼을 갈며 억지로 기억을 쥐어짜내 찾아낸 것이 비트코인이었다.

이전 세상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급등락을 반복하며 진혁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눈물을 양분 삼아 상승한 끝에 세계 10대 통화로 자리매김했었다.

그 시작이 바로 ‘키프로스 금융 위기’부터였다.

* * *

자카르타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선병식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반갑게 인사를 하는 선병식의 표정이 밝았다.

회사로 가는 차 안에서 간략하게 들은 업무 보고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난 2년간 매출이 꾸준히 증가해 있었다.

“어떻게 하신 겁니까?”

“제가 했다기보다는 그간 자포라가 많이 도와줬습니다.”

“자포라가요?”

“회장님에게 변고가 생기고 알리바마로 넘어가서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베나토른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고 있습니다. 이번 청귤 제품 주문이 많은 것도 자포라가 필리핀, 태국, 베트남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해 준 영향이 컸습니다.”

베나토른 소속이었을 때 자포라는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에서만 협조를 했었다.

필리핀, 태국, 베트남은 비무슬림 국가라는 이유를 들어 알쇼핑의 진입을 철저히 막았었다.

“원인은 파악됐습니까?”

“제품도 좋았지만 채린 씨의 광고 영향이 컸다는 분석입니다. 생각보다 동남아시아에서 한류의 영향력이 대단했습니다.”

“……!”

“한류 스타가 나오는 제품은 언제든지 환영한다며, 무조건 팝업창으로 띄워 홍보해 주겠다는 약속까지 들었습니다.”

원래 진혁은 자포라가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한 이유를 물었던 것이었는데 선병식은 다른 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것은 상관없었다.

한류.

세계 곳곳에 한류가 퍼져나가고 있지만 그 효과는 지역마다 차이가 있었다.

동남아시아는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웠다. 외모도 비슷한 데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문화까지 닮아 한류 스타에 대한 감정 이입이 훨씬 강했다.

무슬림에 집착하느라 한류를 잊고 있었다.

진혁의 눈이 반짝였다.

어쩌면 자신이 세운 계획에서 부족한 마지막 퍼즐을 찾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싱가포르의 타오마오와 아마존, 일본의 라쿠텐에서도 몰인몰 방식의 상호 입점을 제안해 왔습니다. 파노나에서 미팅을 하고 싶다고 했고요.”

“파노나는 패션 전문 쇼핑몰 아닌가요?”

“맞습니다. 아무래도 종합 쇼핑몰로의 전환을 꾀하는 데 우리도 고려 대상 중 하나인 듯합니다.”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니 시간을 두고 검토해 봅시다.”

진혁은 우선 여유를 뒀다.

떠나 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이곳의 정확한 상황 파악이 먼저였다.

그리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회사로 가서 실적을 확인하고 웨스트 자바 베카시 공단으로 가서 AA 화장품 공장을 둘러보았다.

공장 간부들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노선기의 처남인 밤방도 끼어 있었다. 눈이 많아 아는 체는 하지 않았다.

그러자 돌아오는 길에 선병식이 말했다.

“밤방이 작년에 작업반장에 선출됐습니다.”

“특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그런 일은 절대 없었습니다. 성실해서 직원들의 자발적인 투표로 뽑힌 겁니다.”

진혁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날 저녁은 라이꾸두 회장과 먹었다.

“그동안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전 서 회장님이 이렇게 건재하게 나타나실 줄 알고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

“제 말이 이상하게 들리시겠지만 사정을 들으시면 이해하실 겁니다.”

갑작스럽게 태국에서 열린 화교 회의에서 황쉐인 객가주가 알리바마의 베나토른 인수를 지지한다고 발언하자 라이꾸두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 다음 목표는 알쇼핑일 게 불을 보듯 뻔했다.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놀라운 소식이 들렸다.

서진혁의 갑작스러운 은퇴.

거기에 알라딘 동남아시아의 소유권이 라이나 왕비에게 넘어갔다는 말에 라이꾸두는 손바닥으로 무릎을 쳤다.

진혁이 미리 알고 알리바마의 예봉을 피해 숨어 버린 것이다.

화교가 경제를 장악하고 있다지만 종교의 힘은 더 강했다. 특히나 무슬림 비중이 높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서 회장은 숨기라도 했지만 나는 모든 기반이 이곳에 있어 그러지도 못하고 걱정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알리바마 회장님이 전화를 주셨습니다.”

“하윤 회장님이요?”

“예. 저도 놀랐습니다. 아무튼 알쇼핑을 많이 도와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

“그때 깨달았습니다. 이번 공작은 하윤 회장의 뜻이 아니라 그 위에서 내린 결정이구나 하고요.”

진혁은 라이꾸두 회장의 혜안에 놀랐다. 임텍 그룹과 인도네시아를 양분하고 있는 것은 그냥 운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는 체를 할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침묵이 답이었다.

라이꾸두가 말을 이었다.

“자포라의 다른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는 보고는 받으셨지요?”

“그렇습니다. 게다가 자포라 외의 업체로부터 쇼핑몰 제휴 제의도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그들 역시 하윤 회장으로부터 언질을 받았을 겁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까?”

라이꾸두의 눈이 커졌다. 진혁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물어올 줄은 몰랐다.

자신은 화교였다.

하윤 회장의 말 한마디에 칼을 겨눌 수 있음을 알 텐데도…….

하지만 이어진 말에 의문이 사라졌다.

“알라마트의 오너가 아닌 마야의 아버지께 드린 질문입니다.”

“서 회장님은 아주 지독한 사람이군요.”

마야는 지금 알쇼핑에서 가장 핵심적인 슈퍼 블로거를 관리하는 업무를 맡아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설마 진혁이 이런 식으로 압박해 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그가 겪은 일을 알기에 그냥 물러서지만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한바탕 큰 태풍이 불어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제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무게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회장님이 더 잘 알 겁니다.”

“그 정도로 됐습니다. 나도 마야의 행복이 깨지길 바라지 않으니 아는 만큼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결국 라이꾸두가 수긍하고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자포라의 협조는 이쪽에서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리바마가 뒤를 받쳐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쇼핑몰 제휴는요?”

“그건 신중했으면 싶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입니까?”

“이이제이(以夷制夷)란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압니다.”

오랑캐를 이용하여 다른 오랑캐를 부린다는 한족의 중국 대륙 통치 철학이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한족 비율이 97%라고 하지만 그건 틀린 말입니다. 순수 한족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소수민족을 침략할 때마다 어김없이 아녀자들을 겁탈해 반쪽짜리 한족을 만드는 전략으로 씨를 넓혀간 겁니다.”

“……!”

“그들에게 나나 하윤 회장은 여전히 오랑캐입니다. 순수 한족이 공산당을 장악해 중국 대륙을 관리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리 하윤 회장이라도 공산당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습니다. 이번 일이 그걸 증명했습니다. 그게 내가 신중해야 한다는 이유입니다.”

누구에게나 자기 민족의 치부를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맙습니다.”

진혁이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 * *

다음 날 진혁은 선병식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포라의 업무 협조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AK의 고용준 사장에게 연락해서 동행 사업을 통한 관련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해 달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사이트 제휴를 해 온 업체는 만나 보십시오.”

“제가 말입니까?”

선병식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지금까지 이런 식의 회사 간 사업 제휴는 진혁이 맡아서 해 왔었다.

“제가 모든 지역을 다 커버할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이곳의 일은 사장님이 맡아 주셔야 합니다. 사람이 더 필요하면 충원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병식의 허리가 직각으로 꺾였다. 직장인에게 상사가 자신을 인정해 주고 믿어 주는 만큼 큰 힘이 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진혁은 다른 의도가 있었다.

자신이 다 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자신의 상대는 하윤과 제크 회장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때를 대비해 미리 체제를 갖춰 가야 했다.

* * *

다카 공항에 도착하자 AA 화장품 권영호 사장이 차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회장님이 더 힘드셨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공장부터 가 보셔야지요?”

“선 총괄 사장님께 보고는 받았습니다. 공장은 천천히 방문하기로 하고 사무소부터 가시지요.”

AA 화장품 사무소로 가자 연락을 받은 아노아르와 샤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진혁의 모습에 다들 눈이 벌게졌는데 샤물이 특히 더했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참느라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진혁이 다가가 안아 줬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

“흑흑흑…….”

샤물이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어쩔 수없이 갑작스럽게 은퇴하면서 남은 이들이 걱정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방글라데시의 직원들이 제일 눈에 밟혔다.

다른 곳들은 자리를 잡아 걱정이 덜했지만 이곳은 막 첫걸음을 뗀 상태였다. 그래서 중동을 나두고 이곳을 먼저 찾아왔다.

샤물이 진정되자 권영호에게 물었다.

“김동식은 어떻게 됐습니까?”

“한국으로 강제 추방됐다고 들었습니다.”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김동식은 이곳에서 말썽을 일으켰다.

아노아르는 물론 공장 여성 직원을 함부로 대하는 것에 권영호가 주의를 줬음에도 고치지 못했다.

결국 작년에 술에 취해 식당 직원을 성추행한 것도 모자라 출동한 경찰을 폭행까지 해서 구속됐었다.

보고를 받은 진혁은 절대 구명하지 말고 오히려 원칙대로 처리하게 하라는 지시를 내렸었다.

권영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노아르 양이 혼자서 일 처리를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사장님이랑 서울에서 오신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서로 공을 넘기는 모습에 진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아노아르가 여길 맡아서 운영해도 되겠군요.”

“전 아직 능력이 부족합니다. 서울에서 오신 분에게 맡겨 주시면 제가 보조하겠습니다.”

“직장인에게 겸손은 미덕이 아니야. 언제까지 한국 사람에게 의존만 할 거냐? 네가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면 동생들이나 후배들에게는 기회가 사라진다. 그럼 방글라데시의 미래도 없어.”

잠시 고민하던 아노아르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맡겨 주시면 최선을 다해 해냈습니다.”

“잘 생각했다. 보조할 사람을 구해라. 그리고 당분간 샤물은 제 일을 도와줘야 할 것 같으니 이곳으로 출근하게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권영호를 공장으로 돌아가게 하고 샤물과 함께 인근의 코트라 사무실로 가서 이영석을 만났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고 바로 물었다.

“알아보셨습니까?”

“여기저기 물어봤는데 다들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매물로 나온 공장이 하나도 없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매물은 많습니다. 그런데 사정이 있습니다. 그건…… 아무래도 그 이야기는 김연희 소장님께 직접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코이카로 직접 가서 듣겠습니다.”

일어나려는 모습에 이영석이 급히 말했다.

“김 소장님은 지금 쿠투팔롱 난민 캠프에 계십니다.”

“출장 가신 겁니까?”

“코이카에는 작년에 사표를 내셨습니다.”

“아니, 왜요?”

“그것 역시 직접 들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영석이 계속 말을 아꼈지만 진혁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김연희 소장을 만나 보면 저절로 풀릴 일이었다. 우선은 그녀를 만나는 게 급선무였다.

진혁은 서둘러서 샤물과 함께 다카 공항으로 향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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