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로힝야의 고난
콕스바자르는 방글라데시 최고의 관광지라 하루 아홉 편의 비행기가 운행되고 있었다.
비행시간은 한 시간 십 분 정도 걸렸다.
그동안은 방글라데시를 알기 위해 일부러 힘든 자동차로 이동했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콕스바자르 공항에서 다시 차로 두 시간 가서야 난민 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몇 번의 검문을 받고 쿠투팔롱 난민캠프에 겨우 도착했을 때는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로힝야 직업 학교로 가자 김연희 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많이 변해 있었다.
작업복 차림에 짧았던 머리칼은 길게 자라 뒤로 묶여 있었다. 얼굴도 까맣게 타 이곳 난민들처럼 보였다.
“어떻게 된 겁니까?”
“제 자리를 지키고 있었어요, 회장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리며.”
“하지만 이건…….”
“회장님이 학교를 세워 주시면서 아이들을 잘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셨잖아요? 졸업한 아이들은 회장님이 책임져 주시겠다고 하면서요.”
“그렇다고 사표까지 내고 여기에 내려오라고 한 건 아니잖습니까?”
“그럼 아이들을 가르치지 말라고 하는데 어떻게 해요. 우리가 약속해서 찾아온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었단 말이에요……. 으앙…….”
말을 하던 김연희가 대성통곡을 했다.
힘들어도 겨우 참아 왔는데 진혁의 얼굴을 보자 그간의 서러움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정확한 이유는 몰랐지만 자신이 늦은 것 때문에 김연희가 그 부담을 모두 떠안았다는 것을 진혁은 느낄 수 있었다.
우는 그녀를 토닥여 줬다.
“미안합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진혁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실컷 울고 난 김연희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진혁을 숙소로 데리고 갔다.
그녀는 창고 한쪽에 야전 침대를 놓고 생활하고 있었다. 도와주는 다른 선생님들은 NGO 텐트에서 생활한다고 했다.
커피를 타 와 내놓고 앉자마자 진혁이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밤이라 보지 못하셨을 거예요. 지금 난민 캠프에 머무르는 로힝야들이 50만 명을 넘었어요.”
“네?”
처음 왔을 때는 3만이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많이 늘어 있었지만 10만~20만 정도였다.
“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테크나프 난민 캠프를 폐쇄시키는 바람에 그곳에 있던 로힝야들이 이쪽으로 옮겨 왔습니다. 다른 국경 인근의 난민 수용소도 점차적으로 폐쇄하고 이쪽으로 이주시켜서 통합 관리한다고 해요. 미얀마 정부의 탄압도 다시 시작되었어요.”
“대체 국제 사회는 이 지경이 되도록 뭘 했답니까?”
“미국을 주도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제재안을 만들었는데 중국의 반대로 무산됐어요.”
왕칭린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내륙과 해상의 실크로드를 재건하겠다며 동서경제벨트 사업을 펼치고 있었다.
문제는 미얀마도 그 계획에 들어 있는 나라라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자식들.”
진혁의 입에서 욕설이 절로 터졌다.
북한이 벼랑 끝 전술을 펼칠 수 있는 건 중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뒤에서 버텨 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미얀마 역시 중국을 믿고 국제 사회의 여론을 무시한 채 만행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있었다.
“상황이 최악인데 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겁니까?”
“방글라데시 정부는 로힝야를 돕는 어떤 세력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어요. 그러면서 몇 가지 행위를 금지시켰는데, 그중에 하나가 로힝야 관련 취재 금지예요. 카메라를 꺼내는 순간 바로 체포되어 강제 추방 당하고 있어요.”
“미친.”
“또 하나는 어느 단체라도 로힝야족을 도와주면 설립 허가를 취소하겠다는 조항이에요. 물론 NGO의 도움 없이는 난민들을 먹여 살릴 수 없어 단속은 안 하지만, 저로 인해 코이카가 난처한 입장이 되게 할 수는 없어서 사표를 쓰고 내려온 거예요.”
진혁은 염치가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회장님이 이영석 소장님께 졸업생들이 일할 공장을 알아보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전해 들었어요. 하지만 로힝야족의 채용은 불법이에요. 게다가 로힝야족에 대한 이동 금지 조치가 내려졌어요. 난민 캠프를 벗어나는 것조차 불가능해요.”
“아이들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처음에는 다들 의욕적으로 찾아오고 배우려는 열의도 대단했어요. 하지만 졸업을 해도 일을 할 수 없다는 소문이 퍼지자 의욕이 많이 꺾여 있어요. 그나마 지금 찾아오는 아이들은 새롭게 유입된 아이들뿐이고요. 공부보다는 회장님의 지시로 AA 화장품에서 보내 주는 빵을 타기 위해 오는 경우가 더 많아요.”
들을수록 암담한 이야기들뿐이었다.
이영석이 왜 직접 들으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개인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았다.
혜주를 위해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진혁이 그럴진대 방글라데시안인 샤물은 아예 시선이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자 김연희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다 나쁜 것은 아니에요. 좋은 일도 있어요. 이곳 주민들과 방글라데시 정부가 더 이상 로힝야를 적대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하고 있어요.”
“……?”
이번에는 앞전의 이야기와 전혀 다른 말이었다.
“초기에는 로힝야 난민들이 들어와 자기들 땅에 마음대로 천막을 짓고 땔감을 베어 간다며 적대시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NGO가 밀려들어와서, 그들의 일을 돕거나 구호품 나르는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으니 좋아하고 있어요.”
“…….”
“나즈마 총리도 처음에는 난민 유입을 막겠다며 국경 경비를 강화하고 잡히면 미얀마로 돌려보내는 정책을 폈어요. 그로 인해 국제 사회의 비난만 듣고 난민은 난민대로 막지 못하자 기조를 바꿨어요.”
“……?”
“지금은 로힝야에 대한 국제 사회의 지원 요청이 오면 적극적으로 승인해 주고 있어요. 다만 지원금 중 일부는 방글라데시를 위해 써야 한다는 조항을 넣게 하고는 있지만. 그 때문에 국경 경비가 느슨해져서 난민 유입이 급격하게 늘어나게 된 거예요.”
“아주 돈독들이 올랐군요.”
“그런 이해관계를 따질 만큼 여기 난민들의 생활이 여유롭지 못해요. 받아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문제는 지금도 상황이 안 좋은데 계속 몰려올 거라는 점이에요. 언제까지 NGO가 지원해 주고 방글라데시 정부가 보호해 줄 수는 없어요. 그런 생각들을 하면 하루에 몇 번이고 포기하고 떠나고 싶지만, 배우러 찾아오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버티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예요.”
샤물의 머리는 이제 아예 땅에 닿을 정도로 숙여져 있었다.
김연희 소장 같은 사람도 있는데 자신의 지도자와 국민들은 그들의 어려움을 이용해 돈만 벌려는 궁리를 하고 있으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다.
하지만 진혁은 오히려 눈을 반짝였다.
사업하는 사람이 제일 설득하기 힘든 이가 물욕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돈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했다.
반면 욕심이 많은 사람은 설득하기 쉬웠다. 원하는 것만 채워 주면 쓸개라도 내주니까.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다.
밤이 늦어 진혁과 샤물은 학교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청했다.
힘든 여정이라 샤물은 바로 코를 골며 잠들었지만 진혁은 아니었다.
밤새 뒤척였다.
* * *
다음 날 아침, 진혁은 아이들의 등교만 보고 서둘러 그곳을 떠났다.
들어올 때는 느슨했던 검문이 나가려고 하니 철저했다.
그나마 진혁은 외모가 외국인이라 나았는데, 택시 기사와 샤물은 철저하게 조사를 받았다.
그사이 군인들이 택시도 샅샅이 뒤졌다.
김연희 말대로 국경은 넘는 것은 허용해 주는 대신 이 지역을 경계로 철저히 차단하고 있었다.
비행기로 다시 다카 공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타고 코이카로 가자 이영석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물었다.
“찾았습니까?”
“찾긴 찾았습니다만……. 이거 참.”
“소장님!”
“너무 최악이라 말씀드리기가 죄송스러워서요.”
“지금 로힝야 사태가 어떤지 아시고 그런 말씀 하시는 겁니까? 거긴 당장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을 만큼 최악이었단 말씀입니다.”
잠을 거의 자지 못해 시뻘게진 눈으로 벼락같이 호통을 치는 진혁의 모습에 이영석이 놀라 말도 못하고 눈만 껌벅거렸다.
그 모습에 진혁이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이영석은 자신의 부탁으로 힘들게 도와주는 사람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흥분했습니다.”
“김 소장님께 대충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보다 상황이 안 좋은 모양입니다. 이해합니다.”
“이제 말씀해 주십시오.”
“휴, 알겠습니다. 나즈마 총리는 방만한 운영으로 적자 상태인 국영 방직공사 산하 80여 개의 방직소를 민간에 매각해 왔습니다. 그중 18개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왜 안 팔린 겁니까?”
“생산 품목이 황마 원단입니다. 건물은 물론 설비도 낙후되어 있어 제대로 된 생산마저 못 하고 있답니다.”
이영석이 주저하는 이유가 있었다.
황마 원단은 곡물 등을 담는 가마니 같은 제품을 만드는 데 쓰는 가장 질이 떨어지는 원단이었다. 그러니 가격이 제일 저렴했다.
섬유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라면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저가 원단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나즈마 총리가 매각하려는 이유나 아직 팔리지 않은 이유가 모두 이해됐다.
진혁의 부탁만 아니었다면 이영석은 이런 쓰레기 같은 것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남은 18개 중 두 곳이 난민 캠프에서 가까운 해안 도시 소나르에 있습니다. 제1공장은 지어진 지 50년도 넘었고, 제품 생산도 10년 전에 멈춰서 지금은 관리인만 있고요. 제2공장은 20년 전에 세워져서 작년까지 600명 정도의 직원이 생산에 참여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영석이 공고문과 함께 제공된 서류를 건네줬는데 말한 대로였다. 면적은 동일하게 각각 16에이커로 2만 평씩 됐다.
“제2공장이 낫겠군요.”
“그중 나을 뿐이지 상황이 나아진 것은 아닙니다. 이건 운영할수록 적자입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때로는 적자가 나더라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전 이 일이 바로 그런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일어나서 나가려는 진혁의 손을 이영석이 얼른 잡았다.
“아무리 급해도 지금 이런 상태로 가시는 건 아니신 것 같습니다. 나즈마 총리는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내일 가십시오.”
이영석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지금 흥분한 상태였다.
게다가 나즈마 총리는 여우였다. 그것도 불여우. 이대로 만나면 백전백패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소장님이 아니었으면 큰 실수를 할 뻔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회장님 같은 분이 이성을 잃을 정도면 얼마나 상황이 안 좋은지 알겠습니다. 더 도움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퇴근 시간이 다 되었는데 같이 식사나 하러 가시지요.”
함께 나와 한국 식당 ‘대장금’으로 갔다.
김치찌개와 함께 소주를 마셨다.
진혁은 일부러 과음을 했다. 그래야 잠이 들 것 같았다.
피곤한 몸에 술까지 마신 진혁 때문에 샤물이 고생을 했다.
눈을 뜬 진혁이 낯선 환경에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이내 어제 일을 떠올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침실 문을 열고 나오자 단정한 차림의 샤물이 앉아 있었다.
“어제 고생 많았지?”
“아닙니다, 회장님. 그리고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건 없다. 하지만 죄송한 그 마음은 가슴에 간직해 둬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걸 갚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회장님.”
진혁은 우선 총리실에 전화해서 면담 약속을 잡고 욕실로 들어가서 씻고 나오자 룸서비스가 도착해 있었다.
* * *
들어서는 진혁을 맞이하는 나즈마 총리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에 얼음이 한 겹 더 입혀져 있었다.
그는 일부러 조금 늦게 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카 시내 교통이 너무 복잡해서요. 좀 넓히든지 해야지.”
말과는 달리 진혁은 전혀 미안해하는 표정 없이 은근히 다카의 도로 사정이 열악함을 비꼬았다.
나즈마 총리의 눈꼬리가 올라갔지만 나무라지는 않았다.
진혁이 전화로 국영 방직소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나즈마의 신경을 거스르는 일 중에 하나를 해결하겠다는데 이 정도로 판을 깰 수는 없었다.
“이제 본론을 이야기해 보지요.”
나즈마가 그렇게 이야기했는데도 진혁은 별말 없이 건너편에 앉은 사람만 바라보았다.
나즈마의 눈이 커지든 말든.
“저분은 누구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