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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166화 (166/307)

166화. 동서경제벨트

진혁과 함께 앉아 스쳐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말하는 시에드의 목소리가 떨렸다.

“난민 캠프를 벗어날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서 회장님이 오시고 꿈을 꿀 수 있게 됐는데 이렇게 이루어지네요. 고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직 그런 말씀을 하시기에는 이릅니다. 오늘 꿈을 이룬 분들은 0.1%도 되지 않습니다. 99.9%가 넘는 가족들은 아직도 꿈만 꾸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도 오늘 여러분들이 느낀 그 벅찬 감격을 느끼게 해 주셔야 합니다.”

“해내겠습니다. 내 가족과 우리 민족을 위해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저도 옆에서 힘껏 돕겠습니다.”

의지를 다지는 이는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대화를 듣고 있는 이들, 듣지 못하지만 뒤따르는 버스에 타고 있는 로힝야족 선발대 모두가 같은 심정이었다.

한 시간여를 달려 도착한 공장에는 모든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한쪽에는 건설 자재들이 쌓여 있었고, 다른 쪽에는 컨테이너에 실려 와 비닐도 벗기지 않은 새 직조 기계들이 내려져 있었다.

가운데는 건설 중장비들이 움직여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각자 위치로.”

시에드의 지시에 사전에 계획한 대로 팀별로 빠르게 움직였다.

기계공들은 공장 안으로 들어가 낡은 기계를 뜯어내는 작업을 했고, 설비공들은 1공장과 2공장 사이에 먼지 방지를 위한 가림 막 설치 작업에 들어갔다.

건설 장비팀은 중장비에 달라붙어 상태를 점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들 사이로 설계팀이 도면을 들고 다니며 위치를 잡고 있었다.

뒤로 물러난 진혁은 권기남, 최원섭과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침내 시작하는군요.”

“오래 기다린 만큼 한 치의 착오도 없어야 합니다.”

“걱정 마라우. 내래 권기남이야.”

큰소리에 진혁이 웃으며 최원섭에게 물었다.

“기술자들은 언제 옵니까?”

“내일 출발한다고 했으니 모레쯤 올 겁니다. 독일 산토니 사에서 기계 설치 텀이 길고 나눠져 있다며 불만이었습니다.”

“우리 사정이 그러니 어쩔 수 없지요.”

진혁은 제2공장 건물에 우선 기계를 설치하는 식으로 가자는 최원섭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한 가지를 더 요구했다.

제1공장 철거와 건축에 최대한 장비의 사용을 자제하고 수작업의 비율을 높이라고 한 것이다.

최원섭은 공사 기간이 길어지고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사정을 듣고 바로 수긍했다.

진혁이 그런 비능률적인 공사 방식을 택한 것은 로힝야족들에게 최대한 많은 일거리를 주기 위해서였다.

포크레인 한 대면 열 명분의 일을 한다. 기사 한 명이 일을 하는 동안 나머지 아홉 명은 난민 캠프에서 갇혀 지내야 했다.

늘어난 공사 기간만큼 돈은 더 들겠지만, 더 많은 로힝야족들에게 희망의 실체를 보여 주는 것은 향후를 위해서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부수적으로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단순히 공사비만 가지고 논할 일이 아니었다.

다른 팀들이 공장 주변을 둘러 펜스를 치는 모습에 진혁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나즈마 총리는 공장의 로힝야족이 탈출하는 사태를 가장 우려했다.

펜스 설치와 방글레시안 경비원을 두라는 총리의 강력한 요청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진혁이 곁에 서 있는 샤물에게 물었다.

“방글라데시안 공원 모집은 어떻게 되고 있냐?”

“지원자가 너무 많이 몰려 난감하다고 합니다. 일단 중단했다가 공장이 완공될 때쯤 다시 내는 게 어떠냐고 여쭤보라고 했습니다.”

나즈마 총리와 공원의 수를 로힝야족과 방글라데시안 동수로 하기로 합의해서 아노아르에게 모집 공고를 내게 했었다.

높은 실업률에다 AA 화장품 공장의 급여와 복지가 업계 최고라 구직자가 많을 것이라 예상은 했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훨씬 뜨거웠다.

이곳 치타공 주뿐만 아니라 수도 다카는 물론 방글라데시 전역에서 구직 신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이유는 임금 때문이었다.

두 번의 참사로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국내외 여론의 압박에 나즈마 총리는 최저 임금을 50% 가까이 올리는 법령을 공표했다.

하지만 외국 기업의 철수를 우려해 수출 가공 지역은 예외로 두어 실질적인 인금 인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진혁은 최저 임금법에 근거해서 급여를 지급하겠다는 문항을 삽입하게 했다.

“공고는 그대로 나간다. 아니, 더 많은 곳에 올리라고 해라.”

“어떻게 하시려고요?”

“아르바이트생을 채용하라고 해. 여기 일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해야 한다. 그렇게 전해라.”

“알겠습니다.”

샤물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진혁은 시선은 이미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저 멀리 탑차가 다가오고 있었다.

시내에서 오는 밥차였다.

외부에서 식사를 제공받을 것이라는 계획에 시에르가 도시락을 싸 가거나 조리 기구만 준비해 주면 자신들이 해 먹겠다는 뜻을 전해 왔었다.

그렇게라도 공사비를 줄여 진혁의 부담을 줄겠다는 의도였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 일은 단순히 로힝야족만 봐서는 안 된다. 방글라데시안들이 로힝야족의 필요성을 느끼고 인정해 줘야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 * *

수작업이라 기계 철거와 기존 건물 철거만도 며칠이 걸렸다.

같은 공정이지만 인부들은 매일 바뀌었다. 진혁이 더 많은 로힝야족을 참여시키기 위해 내린 조치였다.

힘든 작업을 마치고 난민 캠프로 돌아간 인부들은 쉬지 못했다. 가족들은 물론 인근 주민들까지 몰려와 바깥세상과 공장 건설에 대해 물어 왔다.

피곤한 표정이었지만 답을 하는 인부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낡은 기계 철거가 끝나자 산토니 사의 기술자들이 대당 1억이 넘는 최첨단 기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최원섭이 이끄는 베트남 공장에서 건너온 기술자들이 바짝 붙어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끊임없이 질문을 해댔다.

그들의 어깨너머로 로힝야의 경험자들과 직업 학교 졸업생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기계가 무사히 설치되고 첫 시험 원단이 나오는 모습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그날 난민 캠프에서는 진혁이 보내 준 양고기로 파티가 열렸다.

다음 날부터 제1공장 재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습을 보고 진혁은 다음 일정을 위해 방글라데시를 떠났다.

진혁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인도의 디럭 스토어 강자 ‘다부다 인도 그룹’이었다.

아먼 루먼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는 아버지를 이어 의장이 되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의장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서 회장님이 언제 오시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넌드 전 의장이 의학 박사 출신인 반면 아먼 의장은 경영학도 출신이라 소비재 시장에 더 관심이 많았다.

공동 설립한 알쇼핑 인디아의 성장이 최근에 정체되어 있어 고심이 깊어 가고 있었다. 경영을 ‘다부다 인도 그룹’이 맡고 이어 더욱 그랬다.

그때 마침 서진혁이 방문한다고 해서 한껏 기대를 하고 있었다.

진혁은 선병식으로부터 들은 알쇼핑 인디아의 문제점을 떠올리고 말했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매장의 수익률은 얼마나 양질의 제품을 확보하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요.”

“우리 쪽에서 제공하는 제품군은 꾸준히 증가한 반면 인도 자국 벤더들의 유입이 정체되어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알쇼핑의 제품은 무슬림에 특화되어 있어 나머지 80% 힌두교도를 유인할 현지 제품들의 확보가 필요합니다.”

“그건 아는데, 어렵게 섭외한 벤더들도 매출이 나오지 않자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원인에 대해서는 알아보셨습니까?”

“벤더들이 영세하다 보니 홍보에 적극적이지 못합니다.”

“그에 따른 대책은요?”

“예?”

예상치 못한 질문인지 아먼 의장의 얼굴에 당혹감이 드러났다. 그는 겨우 짜내 입을 열었다.

“연락을 해 권유는 하고 있지만 효과는 별로 없습니다.”

“그게 끝입니까?”

그는 유구무언이었다.

진혁이 말했다.

“세계가 하나의 경제 시장으로 변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이전까지는 공급자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수요자 중심으로 바뀐 것은 저보다 잘 아실 겁니다. 그건 비단 소비자에게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오픈 마켓이 공급자고 벤더들이 수요자입니다. 그들을 유치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지원 정책을 펴셔야 합니다.”

“…….”

“교육도 하고 홍보에 대해서도 지원해 줘야 합니다. 벤더가 살아야 알쇼핑 인디아도 삽니다.”

아먼 의장이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말의 의미는 알지만 그걸 실천할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코리아 알쇼핑은 오픈 마켓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곳으로 직원을 파견해 배우게 하십시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알쇼핑은 모두 한 가족입니다. 알쇼핑 인디아의 성장이 결국 모든 알쇼핑에게 돌아갑니다. 걱정 마시고 당당하게 가서 가르쳐 달라고 하십시오. 제가 따로 전화를 해 놓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먼 의장의 얼굴이 활짝 폈다. 내내 머리를 짓누르던 고민이 해결되었다.

반대로 진혁은 한 가지 고민을 떠안았다.

알쇼핑 인디아의 문제는 선병식이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지켜봤다면 훨씬 더 일찍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렇다고 선병식을 나무랄 수도 없었다. 자신의 부재로 동남아시아 시장을 관리하기도 벅찼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다른 나라로 시장을 확대하는 일로 정신이 없었다. 서남아시아까지 관리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아쉬움이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인도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2억 명이 넘는 무슬림이 살고 있지만 전체 인구의 20%도 되지 않는다.

힌두교도에 대한 아무런 대안도 준비하지 못하고 있었다.

진혁은 다시 한번 자신의 방글라데시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공시켜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업 이야기가 끝나자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먼 의장도 기부 펀드의 기부자 중 한 사람이라 로힝야족 난민을 돕는 사업에 대해 알고 있었다.

“사업하시기도 바쁘실 텐데 우리를 대신해서 로힝야를 돕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제가 고생하는 것은 상관없는데, 그들의 삶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게다가 미얀마 정부는 중국을 믿고 계속 탄압만 하고 있으니.”

“동서경제벨트는 굉장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당장 중단 되어야 합니다.”

아먼 의장이 격하게 반응했다.

동서경제벨트도 결국은 돈을 앞세워 중국의 영향력을 넓히겠다는 의도였다.

계획에 참여한 나라들 모두가 경제가 어려운 개발 도상 국가들이라 중국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미얀마 하나와 국경을 접한 방글라데시가 그 지경인 데다 인도는 전쟁 중인 파키스탄이 포함되었다.

거기에 중국 국경과 완충 역할을 해 주고 있는 부탄과 네팔마저 동서경제벨트에 참여시켜 달라며 중국 정부에 요청한 상황이었다.

결국 방글라데시를 제외한 모든 국경이 중국과 그들의 세력들로 포위된 형국이라 인도는 상황이 매우 심각했다.

“미국의 행정부는 너무 나약합니다. 우리가 러시아와 가까워진다고 우려만 할 게 아니라, 직접 나서서 중국의 야욕을 막아야 합니다.”

좋았던 분위기가 중국의 동서경제벨트 사업 때문에 답답한 상태로 끝났다.

진혁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파키스탄의 TSC 이완 회장이었다.

알쇼핑 파키스탄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그 자체로는 적자 상태이긴 했지만 이완 회장이 새로 시작한 디럭 스토어의 매출이 손실분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PSO의 주유소 매장에서 나오는 이익은 고스란히 수익금이 되고 있었다.

서로 윈윈 하고 있으니 딱히 고민거리가 없어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 역시 기부 펀드에 돈을 냈기에 로힝야족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었다.

현재 난민 캠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결국 다시 동서경제벨트 사업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부다 인도 그룹의 아먼 의장님을 만나고 오는 길인데, 동서경제벨트에 대해 많이 우려하고 있으시더군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가 많아요.”

“파키스탄은 계획에 포함되어 수혜국이라고 하던데요?”

“수혜국이 아니라 종속국이 된 겁니다, 종속국.”

진혁의 눈빛이 빛났다.

“자세히 말씀해 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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