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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167화 (167/307)

167화. 영주 동행

이완 회장은 목소리까지 높여 가며 사정을 들려주었다.

그간 진행되었던 미국과 서방의 개발 도상국 개발 지원금은 90% 이상이 차관 형태로 장기 저리였다.

그에 반해 동서경제벨트 사업은 50%만 차관이고 나머지는 각국이 중국인민은행에 담보를 제공해서 높은 이율로 빌려야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공사는 중국 업체만 맡도록 되어 있어, 결국 중국 배불리기만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어요.”

“너무 일방적으로 중국에게만 유리한 조항인데요.”

“그나마 파키스탄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참겠는데, 그것도 아닙니다. 라호르에 20억 달러를 투입해 경전철 사업을 시작했는데 전혀 경제성이 없어요. 총리가 공사비를 착복하기 위해 억지로 밀어붙인다는 설이 파다합니다.”

여기서도 동서경제벨트 사업이 도마 위에 올라 있었다.

* * *

바쁜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진혁은 한국으로 들어가 오랜만에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사업에만 매달려 가장 소중한 딸을 잃었던 지난 삶의 실수를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혜주와 함께 강릉의 부모님 댁에도 다녀오고 지민이 동행에 출근하는 날에는 같이 놀아 주기도 했다.

물론 간간히 알라딘 코리아와 동행 사무실에 들러 업무 현황 보고도 받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들이 무수히 인터뷰를 요청해 왔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진혁은 혜주를 단장시키고 나와 동행 사무실로 갔다.

오늘은 지민이 출근하는 날이라 함께 퇴근해서 이모네 집에 놀러 갈 작정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대표 사무실로 들어서던 진혁은 중앙의 의자에 앉아 있는 지민과 우상우를 봤다.

테이블 위에는 잘 익은 사과와 이런저런 제품들이 올려져 있었다.

그들 앞에는 부부가 앉아 있었는데 분위기가 꽤 심각했다.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 다시 나가려는 순간 혜주가 소리쳤다.

“엄마, 엄마!”

진혁의 품에 안겨 있다가 지민과 눈이 마주치자 부르며 가고 싶어 몸부림을 쳤다.

갑작스런 소란에 부부가 고개를 돌렸는데, 아내의 눈이 붉어져 있는 게 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진혁이 어색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마침 잘 오셨습니다. 단장님을 찾아오신 분들입니다.”

우상우가 반가운 얼굴로 얼른 일어나 인사를 했다.

진혁이라면 어쩌면 이 난감한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진혁이 어쩔 수없이 혜주를 지민에게 넘기고 자리에 앉자 우상우가 얼른 두 부부에 대해 알려 줬다.

“영주 동행의 조합원 부부십니다. 단장님을 찾아오셔서 저희가 사정을 듣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이유영입니다. 단장님을 뵙고 싶어서 무작정 찾아왔습니다.”

“여기 대표님이랑 직원분들도 이쪽 분야에서는 전문가들이십니다. 어떤 사정이신지 모르지만 다들 머리를 맞대면 좋은 방법이 나올 겁니다.”

“동행분들을 못 믿어서가 아닙니다. 단장님은 최초로 6차 산업을 크게 성공시키신 분입니다. 저희 사정을 들으시면 뭔가 방법을 찾으실 것 같아서 실례인 줄 알면서 억지로 찾아왔습니다.”

이유영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마저 절박한 얼굴로 바라보는 모습에, 진혁은 그냥 일어날 수 없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가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 사정을 들어 보죠.”

얼굴이 밝아진 이유영이 자신의 사정을 들려주었다.

이유영은 영주 출신이긴 하지만 대학 때 서울로 올라와 취직까지 한 평범한 직장이었다.

그가 고향으로 귀농한 것은 사과 농사를 짓던 아버지가 암에 걸려서였다.

“직장에 회의감이 밀려올 때라 부모님을 모시자는 생각으로 내려갔습니다. 농사는 안 지어 봤지만 아버지가 평생 하신 일이니 배우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농사라는 게 쉽지 않았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이유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바쁜 농장 일을 하면서도 농업 기술 센터에서 하는 교육을 받으며 자신의 농장에 맞는 방법을 찾아냈다.

“농장을 직접 운영해 보니 사과 농사만으로는 도저히 수익을 맞출 수 없다는 생각에 6차 산업을 염두에 두고 아내도 틈틈이 제과 제빵과 바리스타 교육을 받아 두게 했습니다.”

귀농 5년차에 접어들자 농장의 사과나무들이 제대로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아내인 장희윤도 그간에 배운 기술을 이용해 남편이 기른 사과로 잼, 쿠키, 요거트, 주스, 에이드 등 디저트를 만들어 주변에 맛보이니 다들 호평을 했다.

“이제 됐다는 생각에 작년에 카페를 차렸습니다만 하루 매출이 3만 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습니다. 당장 그만두고 싶은데 정부 지원금을 받아 시작해서 그마저도 어렵습니다.”

“제품을 만들 때 반드시 계량컵과 저울을 사용했고요. 유기농으로 직접 재배한 사과로만 만들었어요. 설탕 같은 첨가물도 일절 넣지 않았어요. 드셔 보세요. 맛은 자신 있어요.”

장희윤이 직접 주스를 컵에 따라 모두에게 건네줬다.

맛을 보니 아주 달콤하면서도 뒷맛이 상큼한 게 딱히 어떤 맛이라고 정의하지 못할 정도로 오묘했다.

장희윤이 다시 말했다.

“한 종류 사과로만 착즙했더니 맛이 단순해서, 남편이 만든 사과들을 모두 배합해서 겨우 이 맛을 찾아냈어요.”

그 하나만으로도 이 두 부부가 그 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 수 있었다.

재배 품종도 후지, 히로사키, 료카, 홍로와 양광 등 다양했다.

혜주도 맛이 있는지 연신 쿠키를 집어서 입에 넣고 있었다.

진혁이 입맛을 다셨다.

“제가 사업에서는 냉정합니다.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이 아프게 들리실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이 빌어먹을 상황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말씀이라도 듣겠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실패 원인은 욕심은 많았고 귀는 얇았다는 겁니다. 이것저것 다 해 봤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 놓지 못했습니다. 그게 오히려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압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유영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장희윤도 멈췄던 눈물을 다시 흘렸다.

마지막 희망을 걸고 찾아왔는데.

진혁만이 아니라 상담했던 많은 이들이 같은 결론을 내렸었다.

사과만 해도 특정 품종만 생산했다면 수량이 되니 그에 따른 처방은 간단했다. 그런데 품종이 다양하다 보니 그것도 어려웠다.

거기에 어쭙잖게 6차 산업을 하겠다고 이것저것 만들어 놓은 데다 보조금을 받아 카페까지 차려 문제가 더 꼬여 버렸다.

아무리 진혁이라도 방법이 없었다.

이런 경우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게 맞는데 차마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이들 부부가 지난 5년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들었기 때문에 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만이 흐르는 중에 유일하게 신난 이가 있었는데 혜주였다. 눈앞에 맛있는 게 잔뜩 쌓여 있으니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눈치 없이 자꾸 집어 먹는 모습에 지민이 참지 못하고 말렸다.

“이제 그만 먹어. 이모할머니네 가서 맛있는 것 먹자.”

“시러, 시러. 이거 맛있어.”

“이따가 더 맛있는 거 사 줄게. 그만.”

“줘. 줘.”

“안 돼.”

“으앙!”

손에 든 것을 빼앗긴 혜주가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난감한 표정으로 우상우가 얼른 자리를 정리했다.

“하루아침에 결론이 날 일이 아니니 오늘 이야기는 이쯤에서 정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직원들이랑 상의해서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움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바쁜데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하는 이우영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우는 혜주를 안아 들고 일어나려는 지민에게 장희윤이 옆에 있는 봉투에 얼른 이것저것을 담아 건네줬다.

“애기가 좋아하니 가져가셔서 나중에라도 주세요.”

“고맙습니다.”

“사과도 좀 더 드릴게요.”

사과까지 주워 넣는 장희윤의 모습에, 일어나려던 진혁의 눈이 반짝였다.

이것저것 담겨 불룩해진 봉투를 보자 뭔가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

갑자기 외치는 소리에 모두 동작을 멈추고 시선을 진혁에게 돌렸다.

진혁이 이우영에게 물었다.

“농장 주소가 어떻게 됩니까?”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입니다만…….”

“노트북 좀 씁시다.”

지민이 들고 있던 노트북 가방을 빼앗듯이 가져간 진혁이 노트북을 꺼내 부팅을 시켰다.

화면이 뜨자 바로 네이버 지도를 열어 주소를 입력했다.

“소수 서원 근처군요?”

“맞습니다.”

“위로 올라가면 선비촌도 있고 청소년 수련관도 있네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더 올라가면 영주에서 제일 유명한 부석사도 있습니다.”

“이런 데서 물건을 못 판다는 게 말이 됩니까!”

벼락같이 지르는 소리에 이유영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내내 그 이야기를 했었던 건데.

이미 경험한 적 있는 우상우가 얼른 진혁의 주위를 환기시켰다.

“저기, 단장님, 일단 진정하시고 천천히 알려 주십시오.”

“하도 답답해서 그렇습니다. 소수 서원을 찾는 관광객만 해도 적은 수가 아닐 텐데…….”

“우리도 그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닙니다만 도로변에 다른 농가들이 세운 판매장들이 많다 보니 우리 카페까지 들어오지도 않아요.”

“그들을 유인할 킬러 아이템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사과 모듬 선물 세트를 만들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모듬 선물 세트요?”

되묻는 장희윤을 보고 말했다.

“어렸을 때 받았던 종합 선물 세트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잘 익은 사과와 잼, 쿠키, 요거트, 주스, 에이드가 섞여 있는 선물 세트 말입니다. 관광지에서 뭔가를 살 때는 자신들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지인에게 선물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관광지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 특색이 있습니다.”

“……!”

“거기에 안의 내용물이 일정치 않을 테니 포장을 풀면서 느끼는 설렘은 덤입니다. 해 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이우영의 대답에 우상우를 보고 말했다.

“세부적인 계획은 우 대표님이 함께 세워 보십시오. 동행 게시판에 관련 내용을 올리고 식구들이 영주를 방문하면 한 번씩 들르게 유도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개를 숙이는 이우영에게 진혁이 말했다.

“사람들을 보낼 수는 있지만, 그들의 마음을 사는 건 두 분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일회용으로 끝나지 않고 단골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한 것보다 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서 선물 세트를 꾸리셔야 할 겁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만들겠습니다.”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진혁은 인사를 하고 지민과 혜주와 함께 떠나자 동행 사무실이 갑자기 바빠졌다.

* * *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진혁은 방글라데시로 넘어갔다.

샤물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사무실로 가자 권영호 사장이 아노아르와 기다리고 있었는데 얼굴빛이 좋지 않았다.

소나르 데님 공장에 근무할 방글라데시안 공원들을 선발하느라 고생한 탓이었다.

제1공장이 완공되어 1차 선발된 이들을 보내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답을 하는 권영호 사장의 말에 힘이 없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었고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제2공장이 완공되면 또 고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진혁이 미안한 마음에 다시 한번 격려의 말을 했다.

“한 번만 더 고생해 주십시오. 그럼 급한 일은 끝날 겁니다.”

“소나르 데님 공장의 일 때문만이 아닙니다. 화장품 공장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흠칫한 진혁이 물었다.

“화장품 공장이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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