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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168화 (168/307)

168화. 잘 팔려도 문제

“지금도 겨우 주문량을 맞추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선 사장님이 동남아 시장을 넓히시는 바람에 주문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걸 왜 이제 말씀하십니까!”

“…….”

진혁의 호통에 권영호는 물론 아노아르와 샤물도 움찔한 표정이었다.

그 모습에 진혁이 아차했다. 이들에게 화낼 일이 아니었다.

아시아 지역은 선병식이 맡아야 하지만 그는 동남아시아의 일을 처리하는 데도 버거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남아시아는 딱히 관리하는 이가 없었고, 그간 진혁이 도맡아 해 왔다.

특히나 방글라데시의 사업은 진혁이 혼자서 벌일 일들이었다.

다시 한번 서남아시아 관리 책임자가 필요함을 절감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고민보다 당장 화장품 공장을 증설하는 게 급했다.

권영호 사장에게 사과부터 했다.

“제가 챙겼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회장님이 제일 바쁘신 것을 압니다. 제가 더 잘 보필했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지금은 누굴 탓하는 것보다 하루빨리 화장품 공장 증설 계획을 세우는 게 우선입니다. 그 일은 제가 알아볼 테니 권 사장님은 현 상황에서 생산량을 늘리는 방안에 대해 대책을 세워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뭡니까?”

“로힝야 직업 학교의 김 소장님이 더 이상의 지원은 안 해 줘도 된다고 알려 왔는데, 혹시 사전에 무슨 말씀을 나누셨는지요?”

“처음 듣는 이야기입니다.”

샤물에게 눈짓으로 물었지만 그 역시 모르긴 마찬가지인 듯했다.

진혁이 권영호를 보고 말했다.

“총리실에 들어가 공장 부지를 확보하고 바로 그쪽으로 넘어갈 예정이니 제가 찾아가 보겠습니다. 권 사장님은 대책부터 세워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권영호가 나가자 진혁은 총리실에 전화를 해서 면담을 요청하고 허락이 떨어지자 바로 달려갔다.

* * *

나즈마 총리는 오늘도 변함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맞이했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은 진혁이 입을 떼기도 전에 나즈마가 먼저 말했다.

“알아봤는데 다카공에는 빈 부지가 없어요.”

“아니, 그 넓은 공단에 공장 하나 세울 여유가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지난번 서 회장의 지적이 있어 비어 있는 부지를 정리해서 이제는 정말 없다고 해요. 치타공도 마찬가지고요.”

예기치 못한 상황에 진혁의 얼굴이 굳어졌다.

“다른 공단에 세우는 방법밖에 없어요.”

“그건 안 됩니다.”

진혁이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다른 공단은 위치선정이 잘못되었거나 인프라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입주율이 낮다는 것을 이미 이영석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아무리 급해도 그런 곳에 공장을 세울 수는 없었다.

나즈마가 다른 제안을 했다.

“이번에 인수한 방직소의 여유 공간에 세우는 건 어때요?”

“아직 제2공장이 설치되지 않았는데도 생산품에 대해 인도의 유니핏이 계약하자고 난리입니다. 데님 공장 증설을 고려해야 할 상황입니다.”

ETC의 주 거래처인 유니핏이 인접국인 인도에 데님 의류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소나르 데님 공장의 가동을 제일 반긴 이가 유니핏이었다.

원단을 수입해 오는 데 들어가는 물류 비용이 베트남에서 오는 것보다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으니 당연했다.

고심하던 진혁이 입을 열었다.

“소나르 인근의 땅을 추가로 매입해서 세우겠습니다.”

“그건 곤란해요.”

이번에는 나즈마가 반대했다.

“소나르의 데님 공장은 특수한 상황이라 가능했지만 확장하는 것은 문제가 많아요. 수출 가공 공단과 같은 혜택을 주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로힝야를 채용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 두 가지를 포기하겠다면 난 환영이에요.”

“그건 제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어요.”

“…….”

“나도 지금의 상황이 답답합니다. 국민들을 이해시킬 방법을 찾지 못하면 어려워요.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나즈마의 솔직한 표현에 진혁은 더 이상 부탁을 할 수도 없었다. 결국 서로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고 총리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코트라로 가서 이영석 과장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방법을 찾아달라며 부탁을 한 뒤 다카 공항으로 갔다.

소나르 공장에 가자 이전보다 훨씬 더 분주했다.

완공된 제1공장에서는 로힝야와 방글라데시안 공원들이 뒤섞여 데님 원단을 생산하고 있었다.

제2공장에서는 시에라가 이끄는 로힝야 건설팀들이 공장을 짓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작업을 지시하던 최원섭이 차에서 내리는 진혁을 보고 얼른 달려왔다.

“오셨습니까? 회장님.”

“고생이 많습니다, 공장장님. 어려운 결정을 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혁도 마주 고개를 숙였다.

이곳의 공장장을 정하는 문제로 진혁은 고민을 했었다.

권기남이 있었지만 나이가 적지 않은 데다 의류는 전혀 생소한 분야라 적합하지 않았다.

고민하던 진혁이 황영재에게 최원섭을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최원섭이 흔쾌히 그 자리를 맡아 줬다.

“공원들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어색해하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처음에는 작업의 효율성을 내세워 민족별로 따로 작업팀을 꾸리자는 안이 나왔지만, 진혁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사업은 효율을 고려하지 않고 시작했다. 로힝야 난민들이 방글라데시에서 적응해서 살아가게 해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 주민들에게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아야 했다. 함께 작업하는 것이 친해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었다.

진혁이 물었다.

“황 사장님께 이야기는 들으셨지요?”

“HEXA에서도 납품량을 늘려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요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에 들어가면 정확한 현황을 듣고 같이 상의하기로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2공장이 완료되면 나머지 부지에 바로 증설해야 할지도 있으니 준비를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최원섭과 헤어진 진혁은 제2공장의 건설 현장으로 넘어갔다.

작업반장 역할을 하고 있는 시에라와 인사를 나누고 급히 권기남을 찾았다.

권기남은 직접 작업을 지휘하느라 시커멓게 타 있었다.

“밤방에게 맡기시고 좀 쉬시지요?”

“쉬면 쉰다고 뭐라 할 놈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걱정 마라.”

“이곳만 완료된다고 끝날 일이 아닙니다. 여기 사업이 커지는 속도가 빨라질 것 같습니다. 거기에 화장품 공장도 증설해야 할 것 같고요.”

“그럴 줄 알았다. 내가 미쳤지. 번번이 당하면서도 왜 여길 와서.”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비행기 표 끊어 드릴까요?”

“일없다. 내 새끼들 다 편히 사는 것 보기 전에는 안 간다. 신소리 그만하고 일 봐라. 나도 가 봐야겠다.”

권기남이 언제 앓는 소리를 했냐는 듯이 다부지게 말하고 공사 현장으로 걸어가는 모습에 진혁도 웃으며 돌아섰다.

로힝야 직업 학교로 가서 만난 김연희의 얼굴은 그사이 활짝 펴져 있었다.

원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데다 그 영향으로 학생들의 면학 열기도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곳에서 배우고 나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한 터라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해 오히려 선생님들이 말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진혁을 보자마자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당연했다.

“고맙습니다.”

“고마운 것은 오히려 접니다. 오지 않는데도 제가 한 약속을 믿고 기다려 주셨잖습니까.”

“다른 선택이 없었어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 과거의 이야기는 이제 그만합시다.”

“알겠어요.”

“권 사장님에게 더 이상의 지원은 안 해 줘도 된다고 했다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진혁이 찾아온 용건을 밝히자 김연희가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도와주시는 분이 생겼어요.”

“……?”

“자원 봉사를 오신 분인데 여기 사정을 알고 운영비를 지원해 주시기로 했어요. 그리고 한국어 학과까지 열게 해 주시고 직접 아이들도 가르쳐 주시고 계세요.”

“고마운 분이시네요.”

“곧 수업이 끝나면 오실 테니 만나 보고 가세요.”

“그럽시다.”

김연희가 타 온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저분이…….”

“여긴 왜 온 겁니까?”

차가운 진혁의 호통에 정호영의 몸이 굳어 버렸다.

언젠가는 부딪힐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그날이 오늘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정호영의 태도에 진혁이 다시 호통을 쳤다.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온 겁니까? 당장 돌아가세요.”

“저기…….”

“저런 자의 도움은 받지 마세요. 우리는 물론 로힝야까지 망칠 자입니다.”

끼어들려던 김연희는 진혁의 차가운 말에 입을 닫아야 했다.

정호영이 무릎을 꿇었다.

“서 회장님에게 지은 죄는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로힝야에 대한 제 마음은 진심입니다.”

“흥. 당신이 한 짓이 있는데 나보고 그 말을 믿으란 거요?”

“용서받지 못할 일을 저지른 것은 압니다. 그 죄를 조금이라도 갚게 해 주십시오. 진심입니다.”

“됐습니다. 돌아가세요.”

차갑게 말한 진혁이 방을 나왔다. 정호영의 얼굴을 보는 것도 역겨웠다.

거친 걸음으로 걸어가는 진혁의 뒤를 빠르게 쫓아온 김연희가 겨우 그를 따라잡았다.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김 소장님도 속지 마십시오. 저자는…….”

“듣지 않을래요. 회장님이 방금 그러셨잖아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며 과거의 이야기는 그만하자고요. 정 선생님과 회장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저는 몰라요. 다만, 난 지금 저분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걸 알아요.”

“다 쇼란 말입니다.”

“정 선생님이 오신 지가 벌써 세 달이 넘어가요. 몇몇 소식을 듣고 찾아온 자원 봉사자들이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도망치듯 떠나는 곳이 이곳이에요. 하루도 빠짐없이 한결같이 아이들을 위하는 모습을 위선이라고 매도하지 마세요.”

“…….”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많은 어려운 곳들을 전전한 저예요. 최소한 진심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줄은 알아요. 회장님이 말씀하셨듯이 앞으로도 해야 할 일도 많고 책임질 이들이 그보다 더 많아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보다 현재 우리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게 더 중요해요. 회장님이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여기서 일하는 것은 막지 말아 주세요.”

진혁은 돌아서서 가는 김연희의 등을 말없이 바라봤다.

정호영을 용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그녀의 말도 틀렸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만큼 책임져야 할 일도 많았고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결국 진혁은 힘없이 돌아서서 그곳을 나왔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알라딘 홀딩스의 야맘 사장이었다.

“서진혁입니다.”

-비트코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회장님.

“무슨 일입니까?”

-비트코인 최대 거래소 중 한 곳이 해킹을 당해 파산하면서 가격이 급락하고 있습니다.

“현재 투자 내역이 어떻게 됩니까?”

-평균 매수가 80달러에 50만 개를 사서 총 4천만 달러 정도 들어갔습니다. 물량도 없고 해서 말씀대로 200달러 선에서 매입 중단했는데, 300달러까지 갔다가 지금은 다시 100달러대로 떨어졌습니다.

진혁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말했다.

대량 거래가 시작되고 가격이 널뛰기하는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전에는 돈이 있어도 살 물량이 나오지 않았다.

“추가 매입을 시작해 주세요.”

-추가 매입요?

“그렇습니다. 일시적인 외부 충격에 의한 급락은 바로 가격이 회복된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오히려 매수 기회를 주는 겁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매입하시고, 제 말이 있기 전까지는 무조건 홀딩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럼.

“잠시만요.”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 전화를 끊으려는 야망의 행동을 막고 말했다.

“현재 WTI(서부 텍사스유) 유가가 얼마나 갑니까?”

진혁이 알아보고 싶은 것은 바로 유가였다.

조흐르 가스전 발견으로 끝없는 나락에 빠졌던 유가가 이때쯤 크게 한번 출렁였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말을 멈춘 야맘이 5초쯤 지났을 때 다시 말했다.

-최근 급격히 폭락해서 30달러 선까지 밀렸습니다, 회장님.

“만약 28달러 선이 깨지면 제 계좌의 가용 한도 내에서 최대한 선물을 매수하십시오. 그리고…….”

진혁은 기억을 최대한 짜내서 만기 기간과 매도 가격까지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야맘이 들뜬 목소리로 답했다. 그에게 진혁은 차원이 다른 세계의 인물이나 마찬가지였다.

통화를 끝낸 진혁이 스미스의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그렇지 않아도 전화 드릴까 했습니다, 회장님. 비트코인은 어떻게 했습니까?

“큰 문제 없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지난번에 못 드린 상담료를 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미스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검은 머리 짐’의 투자 전략을 들을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조만간 진보한 IT 기술로 인한 4차 산업이 크게 발전할 겁니다.”

4차 산업은 정보, 의료, 교육, 서비스 산업 등 지식 집약적 산업이었다.

진혁의 말이 이어졌다.

“그중에 저는 블록체인과 인공 지능이 유망하다고 봅니다.”

-블록체인과 인공 지능!

“시간이 필요한 일이니 기존 업체보다 그쪽 기술을 개발 중인 신생업체에 투자하시는 게 더 수익이 나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십시오.

“그럼 나중에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진혁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현재 관련 기술 개발은 미국이 제일 앞서 있었다. JK모건은 그곳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진혁의 목표는 다른 곳에 있었다.

* * *

오늘은 ‘두미옥’이라는 한국 식당에서 이영석을 만났다.

“나즈마 총리님의 말씀은 사실이었습니다. 현재 다카공, 치타공 모두 여유부지가 없답니다.”

“결국 답이 없는 건가요?”

“억지로 한 가지 방법을 찾아내긴 했는데 역시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게 뭡니까?”

진혁이 급히 물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할 절박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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