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주고 얻기
“경제 특구(EZ)입니다.”
이영석이 경제 특구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정부에서 2010년에 경제 특구를 개발하기 위한 경제 특구법을 제정해 발효시켰습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정부 주도의 수출 가공 공단(EPZ)입니다. 나즈마 총리는 정부의 열악한 재정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외국인이 직접 투자해 개발하는 경제 특구를 추진하고 있지만 현재 실적은 없는 상태입니다.”
“혜택은 수출 가공 공단과 같습니까?”
“그렇습니다. 거기에 한 가지 더 혜택이 추가됐습니다. 수출 가공 공단의 경우 수출용 제품만 생산이 가능하지만, 경제 특구는 수출용은 물론 내수 판매용 제품도 생산 가능합니다. 물론 그에 따른 관련 세금을 내야 하지만요.”
“이런 호조건인데 왜 실적이 없는 겁니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는 진혁에게 이영석이 말을 이었다.
“몇몇 기업들이 치타공 인근을 대상으로 추진해 보았지만, 치타공 항구 자체가 포화 상태라 기존 입주 기업들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예?”
“다른 지역은 전력, 가스와 도로 등 주변 산업 인프라가 완비되지 않았고, 부지 매입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한 부담, 원주민과의 마찰, 환경 문제까지. 여러 가지 난제들이 튀어나와 좌초됐습니다.”
“그건 방글라데시 정부에서 해결해 줘야 할 문제 아닌가요?”
“맞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정부의 재정이 열악하고 나즈마 총리의 정치적 입지가 약하다 보니 해당 기업에서 그 부담을 모두 떠안을 수밖에 없어 결국 포기한 것으로 압니다.”
고심하는 진혁에게 이영석이 최악의 말을 꺼냈다.
“투자 의향이 있는 기업들이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최소 개발 단위가 100헥타르라는 큰 규모 때문입니다.”
“100헥타르요?”
“맞습니다. 30만 평이 조금 넘습니다. 치타공의 절반이 넘는 면적이라 일개 기업이 개발할 수 있는 크기가 아니지요.”
그제야 진혁은 왜 기업들이 여러 가지 호조건에도 경제 특구 개발을 포기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건 국가가 나서야 할 일이었다.
입맛을 다시는 진혁의 모습에 이영석이 오해를 하고 말했다.
“아무래도 ‘대장금’보다는 맛이 떨어지지요?”
“맛을 느낄 기분이 아니라서 그런지 특별히 못 느끼겠는데요.”
“‘대장금’에 예약이 꽉 차서 어쩔 수없이 이리로 모신 겁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람팔 석탄 화력 발전소’ 입찰 때문이지요.”
“……?”
의아한 표정의 진혁에게 이영석이 설명을 해 줬다.
고질적인 전력난에 고민하던 나즈마 총리는 ‘인도 화력 발전’과 합작해 방글라데시 최대 규모인 총 1,320메가와트 발전 용량을 낼 수 있는 석탄 화력 발전소를 남부의 람팔에 짓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었다.
“설계, 시공 일괄 입찰(턴키) 방식이라 공사 예정가만도 1조 원에 이릅니다.”
“엄청나군요. 세계 각국에서 다 몰려왔겠는데요?”
“현재 중국, 일본, 인도, 스페인 국적 기업이 참여 의사를 밝혔고, 우리나라에서는 시공 경험이 있는 대형 건설사 두 곳이 사전 입찰 미팅에 참여하는 등 관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경쟁이 치열하군요.”
“그렇긴 한데 결국 다 헛물만 들이키게 될 겁니다.”
“……?”
“입찰 마감 시한이 지난 4월이었는데 한 달 연기됐다가 또 연기될 거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환경 단체의 반대가 극심합니다.”
발전소 건설 예정지인 람팔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순다르반스 맹그로브 숲에서 14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석탄 화력 발전은 원가가 싸게 먹히는 대신 미세 먼지와 분진 등으로 심각한 대기 오염을 일으켜, 선진국에서는 앞다퉈 철거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처음에는 방글라데시 내 소수 환경운동가의 주장으로 가볍게 치부했는데, 총리실 에너지 보좌관이 국제회의 석상에서 유네스코가 발전소 건설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철회했다는 거짓 발언을 하는 바람에 문제가 커져 버렸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즉각 반박 성명을 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세계 환경 운동 단체들이 일제히 방글라데시 정부를 비난했다.
“환경 단체들의 반대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일로 세계 언론이 주목하게 되자 차관을 약속했던 다자간 개발 은행(MDB)에서 발을 빼려고 한다는 겁니다.”
“다른 곳에 건설하면 안 되는 겁니까?”
“람팔은 인도와 방글라데시의 국경 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인도 화력 발전’이 참여를 결정한 것은 발전 전력의 절반을 자국으로 가져간다는 조건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곳은 거리가 멀어 송전 설비 설치용만도 엄청나게 추가될 겁니다.”
“첩첩산중이네요.”
“나즈마 총리도 골치깨나 아프실 겁니다. 부족한 전력난을 타계하려고 민간 발전소(IPP)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제일 큰 사업이 암초에 부딪혔으니.”
“그러겠지요. 아마 저녁에 잠도 제대로…….”
말을 하던 진혁의 눈이 반짝였다. 남의 불행이 나에게는 기회인 경우가 있는데 지금이 딱 그 경우 같았다.
갑자기 말을 하다 마는 모습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이영석에게 말했다.
“방글라데시의 경제 특구와 발전소 건설 계획에 관한 모든 자료가 필요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합니다만 자료가 엄청나게 많아서 출력하는 데만도 한참이나 걸릴 텐데요.”
“샤물을 보내 돕게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그렇다면 걱정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하는 일인데요. 그보다 회장님이 이번에는 어떤 일로 절 놀라게 해 주실지 기대가 더 큽니다.”
일이 엄청나게 많아졌는데도 환하게 웃는 이영석의 모습에 진혁은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 * *
다음 날부터 진혁은 호텔에 머물며 샤물이 중간 중간 가져다준 자료들을 훑어봤다. 워낙 양이 많아 검토하는 데만도 사흘이나 걸렸다.
코트라 사무실로 찾아온 진혁을 보자마자 이영석이 물었다.
“답은 찾으셨습니까?”
“찾았습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대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개략적인 생각만 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못했습니다. 외부 변수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잖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방글라데시 정부와 인도 화력 발전, 거기에 환경 단체와 다자간 개발 은행의 마음을 움직여야 할 일이니까요.”
“맞습니다. 이번 일은 저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되는 큰 프로젝트입니다. 그래서 소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제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그 정도로는 안 됩니다. 전력을 다해도 될지 말지 모를 일입니다. 이참에 직접 현장 일을 해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
“대우는 최고로 해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조건이 있으시다면 전부 수용하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고개를 숙이는 진혁을 바라보는 이영석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스카우트 제의였다.
코트라는 무역 진흥과 국내외 기업 간의 투자 및 산업, 기술 협력을 지원하는 게 주 업무였다.
정부가 100% 출자해 설립한 공사다 보니 안정적이었고 보수도 높았다.
하지만 지원 업무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진혁 같은 열혈 사업가의 활동을 돕다 보면 자신도 직접 현장에 나가 뛰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진혁의 한마디에 코이카에 사표를 던지고 떠난 김연희를 부러워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때 따라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미혼인 그녀와 달리 자신은 한국에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었다.
이영석이 물었다.
“회장님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이곳에서 사업하는 목적은 로힝야 난민 때문입니다. 그게 지금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그래서 전 경제 특구와 발전소 문제를 묶어서 한 번에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진혁이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영석의 눈은 커져만 갔다. 그만큼 엄청난 계획이었다.
그동안 진혁이 일 처리하는 것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느꼈는데 그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김연희가 왜 그런 과감한 결정을 내렸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건 무조건 참여하는 게 맞았다.
이영석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진혁이 먼저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을 내리지는 마십시오. 주변 분들의 이야기도 들어 보시고 무엇보다 가족들로부터도 승낙을 받으십시오.”
“……!”
“가족의 행복이 목적이어야지 일이 우선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소장님의 능력이 필요하지만, 그게 가족을 포기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무슨 말씀인 줄 알겠습니다.”
“전 사전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마음의 결정이 되시면 그때 알려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영석은 달아오른 기분을 억지로 식혔다.
* * *
다음 날, 진혁은 총리실을 찾아갔다.
이영석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나즈마 총리의 얼굴이 까칠해 보였다.
하비불 수출 가공 공단 관리청장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고민이 많은 나즈마 총리라 바로 본론을 물었다.
“결정을 했나요?”
“경제 특구를 건설하겠습니다.”
“최소 단위가 100헥타르인 것은 아시지요?”
“압니다. 투자비로 2억 달러를 예상하고 있습니다.”
한번 크게 당한 터라 하비불이 조심스럽게 묻자 바로 답해 줬다.
통 큰 결정에 놀란 표정을 짓던 하비불이 이어진 말에 경악하고 말았다.
“1차가 그렇다는 겁니다. 향후 더 커질 겁니다.”
“헉.”
“요구 조건은요?”
역시 나즈마 총리였다.
그녀는 진혁이 아무 조건 없이 이런 투자를 결정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100킬로와트급 발전소를 건설해 주시고 가스 저장 시절도 확보해 주십시오. 교량도 필요합니다.”
“지금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말씀하신 겁니까?”
하비불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못해도 수억 달러가 들어가는 공사였다. 겨우 2억 달러 투자 유치를 받고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진혁은 그런 하비불의 반응은 무시하고 나즈마 총리를 직시하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로힝야의 취업을 50% 보장해 주십시오.”
“이보시오!”
“조용히 하세요.”
흥분해 나서는 하비불을 나즈마 총리가 막고 노려보자 진혁도 지지 않고 똑바로 쳐다봤다.
시선을 먼저 돌린 건 나즈마 총리였다.
“서 회장님은 항상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시는군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끝에서는 항상 웃게 해 드리고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랬지요. 대체 그런 과한 요구 조건을 할 정도로 준비해 온 게 무엇인지 들어 봅시다.”
나즈마 총리는 진혁이 충분히 무리라는 것을 알 텐데도 이렇게 당당한 것은, 자신이 거부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온 것이라 짐작했다.
“람팔 화력 발전소 문제를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
“그게 제일 시급하신 것 아닌가요?”
“맞아요. 그걸 서 회장이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겁니까?”
“말씀드리기 전에 한 분을 더 모셨으면 합니다. 아마 밖에 도착해 있을 테니 모셔 오십시오.”
진혁의 시선을 받은 하비불이 엉거주춤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가 프라부 인도 화력 발전 사장을 데리고 왔다.
“다들 바쁘신 분들이라 한꺼번에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제가 오시라 했습니다.”
진혁이 태연스럽게 말했지만 나즈마 총리의 얼굴은 굳어졌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하지만 반발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람팔 화력 발전소의 건설이 절실했다.
자리가 정리되자 진혁이 입을 열었다.
“환경론자들이 석탄 화력 발전소 건설을 왜 반대하는지, 다자간 개발 은행에서 왜 차관 지원을 주저하는지는 다들 아시니 생략하겠습니다. 이 문제의 원인은 결국 석탄입니다. 그걸 청정에너지인 가스로 대체하는 게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우리 역시 그 부분을 검토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천연 가스 발전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프라부 사장이 기분 나쁜 얼굴로 말했다.
그는 총리실에서 급히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고 왔는데, 돌아가는 사정을 보니 진혁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 기분이 상했다.
프라부의 말이 이어졌다.
“천연 가스가 친환경이라는 장점은 있지만 단점이 더 큽니다. 무엇보다 낮은 열량으로 인해 고열을 발생시키기 힘들어 발전용으로 부적합하다는 겁니다.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접 연소를 하는 터빈 발전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건설 단가가 올라가 채산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많이 아시네요.”
순순히 수긍하는 진혁의 모습에 프라부가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즈마 총리는 아니었다. 겨우 이 정도로 물러날 진혁이 아니었다.
진혁이 나즈마 총리에게 시선을 두고 말했다.
“총리님도 참 힘드시겠습니다. 거짓말쟁이 보좌관에, 이런 단세포적인 사람이 에너지 기업 사장이라고 떠드는 말만 들으시니 문제가 안 풀리는 겁니다.”
“말씀이 심하십니다.”
“이보세요. 내가 세계 최대 규모의 조흐르 가스전 소유자이자 개발 위원장입니다. 감히 누구 앞에서 가스에 대해 나불거리는 겁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