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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178화 (178/307)

178화. 달아오르는 분위기

“소나르에 대규모 공단을 조성하신다면서요? 난민들의 일부도 그쪽으로 옮겨 간다고 들었습니다.”

진혁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까지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그런 사실도 모르고 우리는 인근에 추가로 부지를 확보하느라 고생만 했습니다. 난민 캠프 확장에 대해 환경 단체의 반발이 심하거든요.”

“환경단체가요?”

“부지 확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산림을 훼손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폐쇄된 국경의 난민 캠프도 여전히 흉물로 남아 있는데 또 나무들을 베어 낸다니 좋아할 리가 없지요.”

파브가 로힝야 난민 캠프에 대해 자세히 알려 줬다.

“남부에는 현재 세 곳의 공식 난민 캠프 외에도 이십여 개의 비공식 난민 캠프 및 임시 수용소가 있었습니다. 그중 환경 단체가 제일 문제로 삼는 곳이 발라캔 지역의 난민 캠프입니다.”

“……?”

“1번 고속도로가 유일하게 숲을 관통하고 개설되어 있다 보니 난민들이 유입되면서 가장 많은 산림이 훼손됐던 곳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환경 단체가 개입되면 좋을 게 없습니다. 도대체가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이거든요. 아무튼 회장님 때문에 더 이상 고민할 필요 없게 됐으니 고맙습니다. 바쁘실 테니 어서 들어가 보십시오.”

진혁이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난민 캠프의 열악한 환경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난민들의 표정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무표정이었던 얼굴에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아이들도 바람 빠진 공을 차면서도 시끄럽게 웃고 떠들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변화는 진혁을 보고 애 어른 할 것 없이 한국식 인사를 하듯 고개를 숙인다는 것이었다.

진혁도 그들을 향해 일일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보니 시에라의 집에 도착한 건 한참이나 시간이 지난 후였다.

샤물이 먼저 들어가 양해를 구한 뒤에 진혁이 희준과 함께 들어갔다.

단출한 살림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테이블과 의자가 새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의 아내가 내오는 컵에도 물이 아닌 음료가 담겨져 있었다.

시에라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공장 일부터 해서 이런저런 상의를 하느라 사람들이 자주 찾아와서 하나 마련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돈은 돌아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 가지 일이 생겨나고 다른 이들도 경제 활동을 하게 됩니다.”

“모두가 회장님 덕분입니다. 다들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진혁은 어색한 칭찬이 이어질 것 같아서 얼른 본론을 꺼냈다.

“쉬시는데 이렇게 찾아온 것은 소나르 공단 건설 때문입니다.”

“소문은 들었습니다. 그 소식에 다들 들떠 있습니다.”

“너무 소문이 일찍 퍼져나가 부지 확보가 걱정입니다. 하지만 총리께서도 허락하신 일이니 무조건 추진될 겁니다. 다만 부지 확보에 문제가 있어 늦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여라도 기대하고 있다가 길어지면 실망하실 테니 미리 사정들을 알려 오해가 없도록 해 주십시오.”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젊은이들은 이곳에 일자리가 생겨 좋아하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미얀마에서 들리는 소식 때문에 걱정이 많으십니다.”

“……?”

“고향에 남아 있던 동족들이 아라칸 로힝야 구원군(ARSA)을 결성해 미얀마 군의 탄압에 무력 대응하려고 한답니다.”

“그건 오히려 미얀마 정부에 탄압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다들 같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만, 막바지에 몰려 있는 상황이라 다른 선택이 없을 겁니다.”

시에라는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사태 초기만 해도 국제 사회가 미얀마의 반인륜적 인종 청소 작업을 막아 줄 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중국이 강력하게 미얀마 정부를 두둔하고 나오자 다들 모른 척하며 외면하고 있었다.

그사이 로힝야는 매일 죽어 나가고 있었다.

우려감이 들었지만 생사의 갈림길에 선 그들에게 마냥 무저항으로 탄압을 버텨내라고만은 할 수도 없었다.

고민하는 진혁의 모습에 시에라가 말했다.

“너무 깊이 고민하지 마십시오. 회장님 덕분에 마음의 여유가 생기다 보니 괜한 걱정들이 생겨난 겁니다. 고향의 문제는 당장에 해결될 일이 아니니 저희들이 천천히 고민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아무튼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수시로 알려 드릴 테니 로힝야들도 준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회장님의 말씀이라면 다들 믿고 기다릴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걱정 마시고 신이 이끄는 대로 행하십시오.”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자 희준이 바로 어깨를 잡아채 돌려세우고 물었다.

“너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냐?”

“사업.”

“이런 데서 사업은 무슨……. 얼른 말해.”

“한 군데 더 들를 곳이 있다. 일단 지켜봐.”

진혁이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로힝야 직업학교였다.

수업 시간인지 조용했다.

교실을 기웃거리다가 김연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반을 찾을 수 있었다.

창문으로 내다보는 진혁을 발견한 김연희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손짓을 해서 불렀다.

그 모습에 아이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진혁이 난감한 표정으로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희준과 샤물도 얼떨결에 뒤를 따랐다.

“수업 중이신 것 같은데 이렇게 불러도 되는 겁니까?”

“정 선생님이 가르치던 한글반인데 안 계셔서 제가 대신 가르치고 있어요. 간단한 한국말은 알아들으니 한 말씀해 주세요.”

“제가요?”

“아이들이 제일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회장님이세요. 그렇지, 애들아?”

“예, 선생님.”

힘차게 대답하는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진혁이 어쩔 수 없이 교단에 섰다.

“갑작스러운 자리라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걱정했는데, 여러분들의 눈을 보니 꼭 한 가지 해 주고 싶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제가 여러분 같은 큰일을 겪어 보지 못해서 지금 얼마나 힘든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절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건 꿈입니다.”

샤물이 눈치 빠르게 얼른 벵골어로 통역을 했다.

“여러분 모두 가슴에는 각자의 꿈이 있을 겁니다. 그 꿈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꿈을 절대 놓치면 안 됩니다. 물론 중간 중간 시련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꿈은 언젠가는 이루어질 겁니다. 저 역시 무수한 실패로 아파했고, 쓰러져서 좌절한 적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설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렇게 할 수 있지요?”

“예!”

“이건 아무에게나 가르쳐 주지 않는 비밀인데, 여러분을 만난 기념으로 꿈을 이루는 지름길을 알려 드릴게요.”

샤물의 통역이 들은 아이들의 눈이 더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친구들을 많이 사귀세요. 아프고 힘들어할 때는 도와주고, 내가 힘들 때는 의지하세요. 혼자 가면 빨리 갈 것 같지만 넘어지면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의지하며 같이 가면 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제 인생에 가장 큰 행운이라면 그건 바로 그런 친구가 있다는 겁니다.”

진혁이 옆에서 엉거주춤 서 있는 희준을 끌어와 어깨를 감싸고 말을 이었다.

“꿈을 이루게 해 준 소중한 친구입니다. 너무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이 친구가 저를 일으켜 세워 주고 힘을 주었습니다. 이 친구가 없었고 그때 제가 꿈을 포기했다면 여러분과의 이런 인연도 없었을 겁니다. 함께 꿈꾸고, 그 꿈을 향해 함께 달려가는 소중한 친구를 꼭 만드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진혁의 마무리 인사에 아이들이 열화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먼저 교실을 나오자 희준이 다시 붙잡고 다그쳤다.

“여긴 또 뭐 하는 곳인데?”

“아이들이 꿈을 키우는 곳.”

“계속 선문답할래?”

“이야기하자면 길어. 그리고 이건 말로 해서 알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겪어 봐. 네가 올 줄 알았나 보다. 마침 한국어 선생님이 부재중이시네.”

“뭐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어.”

“애들 꿈이고 나발이고 쭉쭉빵빵 구경하고 싶다면 해변으로 데려다주고.”

희준이 입을 열려고 할 때 문이 열리고 수업을 마친 김연희가 나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곳 학교를 맡고 있는 김연희입니다.”

“아, 네. 오희준입니다.”

인사가 끝나기를 기다려 진혁이 재빨리 끼어들어 말했다.

“휴가차 왔다가 이곳의 딱한 사정을 듣고 임시 한국어 선생님을 맡아 주겠다고 합니다.”

“어머, 너무 감사해요. 역시 회장님 친구분이시라 마음씨가 남다르시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김연희의 과한 인사에 희준이 얼떨결에 같이 고개를 숙였다. 빼도 박도 못하는 외통수에 걸려드는 순간이었다.

“샤물이랑 같이 학교 구경하고 있어. 난 잠시 김 소장님하고 할 이야기가 있어서.”

김연희와 따로 자리를 가졌다.

“정 사장님은 아직 한국에 있습니다.”

급격히 어두워지는 김연희의 얼굴을 보고 진혁이 한국에서의 일을 들려주었다.

“단순히 공단을 세우는 일이 아니었군요.”

“그걸 허락받기 위해 하나씩 풀어 가다 보니 거기까지 가게 됐습니다. 물론 로힝야에게도 득이 되는 일이기에 더 크게 키운 탓도 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로힝야 문제는 많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우리의 의도와 다르게 갈 수도 있습니다.”

“잘 알고 있어요.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난민들의 문제는 결국 몇몇 정치인들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이라는 것을.”

“그래서 외부에서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합니다. 전 그 역할을 소장님이 해 주셨으면 합니다. 로힝야에 대해 가장 잘 아시는 분이 소장님입니다. 외부 세계와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해 주십시오.”

“제가요?”

“언제까지 이곳 학교만 맡고 계실 수는 없습니다. 공단이 세워지면 정식 학교가 세워지게 될 겁니다. 이제 보다 더 적극적으로 로힝야를 위한 일을 해 주십시오. 모든 지원을 해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김연희의 확답을 받은 진혁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

“감춘다고 감춰질 일이 아닙니다. 정 사장님은 이미 가정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진혁은 김연희가 정호영과 함께 코트라 사무실로 찾아왔을 때 이미 두 사람의 관계를 눈치채고 있었다.

김연희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그 사람에게 가정이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하지만 그건 한국에서의 일이잖아요? 여긴 방글라데시고.”

“…….”

“제 말이 억지라는 건 알아요. 하지만 지금 제 심정을 표현할 방법은 그것밖에 없네요. 전 아무 욕심 없어요. 그 사람이 한국에서 안 돌아온다고 원망하지 않을 거예요. 여기에 이렇게 남아서 로힝야를 위해 살아갈 거니까요.”

이슬람 국가들 대부분은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두가 여러 명의 부인을 두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았다.

뭔가 더 말하려던 진혁이 입을 닫았다. 둘 다 성인이었다. 자신이 왈가불가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 기색을 느끼고 김연희가 말했다.

“그 사람이나 저나 로힝야에 대한 마음은 진심이에요. 개인적인 일로 우리의 본분을 잊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알겠습니다. 두 분을 믿습니다. 로힝야에게도 두 분에게도 모두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투다다다다.

그때 두 사람의 귀에 날카로운 프로펠러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는데 너무 가까웠다.

아이들이 아직 학교에 머물고 있었다.

놀란 두 사람이 얼른 밖으로 뛰어나오자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들까지 모두 나와 있었다. 샤물과 희준도 그 사이에 끼어 있었다.

학교 앞 공터에 헬리콥터가 내리더니 군인 하나가 빠르게 달려와 소리쳤다.

“서진혁 회장님! 어디 계십니까? 서진혁 회장님!”

“내가 서진혁인데 무슨 일입니까?”

“총리께서 급히 뵙고자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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