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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180화 (180/307)

180화. 주드 모건

일어나 인사하는 진혁에게 모건이 손에 들고 온 테이크아웃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사람들은 보여지는 것에 쓸데없는 돈을 낭비한단 말입니다. 2달러면 충분한데 말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강이 한눈에 보이고 번잡하지 않으니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진혁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주드 모건은 어려서부터 천재라는 말을 수없이 듣고 자랐다.

그리스계 아버지와 중국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유년 시절 게임에 빠져 살았다. 체스, 보드, 카드 대회를 모두 휩쓸었다.

그런 그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게 ‘바둑’과 ‘뇌’였다.

졸업 후 인공 지능 벤처 기업 ‘스톰 브레인’의 창업자이자 개발자가 됐다.

나란히 벤치에 앉은 후 모건이 템스 강변에 시선을 두고 입을 열었다.

“메이슨 회장님의 전화를 받고 당신에 대해서 조사해 봤습니다. 상당히 독특한 이력을 가진 분이시더군요.”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건 모건 씨도 마찬가지시고요.”

“맞는 말씀입니다만, 제가 독특하다고 하는 것은 나와 전혀 접점이 없으신 분이라 그런 겁니다. 컴퓨터나 정보 통신 분야 사업을 하시는 것도 아니고.”

“모건 씨가 그리는 세계는 인공 지능이 모든 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세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첫 시작이 컴퓨터나 정보 통신일 뿐이지요. 결국 전 산업과 인간의 삶마저도 인공 지능의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

모건이 시선을 돌려 진혁을 바라보다가 다시 원위치 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허풍쟁이라고 놀립니다. 하지만 난 확신합니다, 인공 지능이 세상을 지배하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제가 그 일을 돕게 해 주십시오.”

진혁은 기회는 이때다 싶어 얼른 목적을 꺼냈다.

하지만 그건 성급한 판단이었다.

모건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에 대한 조사는 상상 이상으로 철저하게 진행했습니다. 온라인상에 떠도는 빅데이터 속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들이 담겨 있습니다. 알라딘과의 결합은 전혀 시너지 효과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인정합니다만 그 정보는 지난 과거의 자료일 뿐입니다. 미래를 나타내는 건 아닙니다.”

“인공 지능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스톰 브레인’의 최종 목표는 미래 예측입니다. 과거에 벌어진 여러 사건들의 공통점을 찾아내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면 재앙이 닥친다는 것을 알고 미리 막는 겁니다. 이미 기후 및 환경 변화 등 여러 분야에서 성과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모건은 천재 개발자답게 자신의 기술에 대한 신념이 대단했다. 진혁이 갖은 방법으로 설득해 봤지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제일 상대하기 골치 아픈 인간이었다.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설득이 불가능했다. 그를 흔들 특별한 뭔가가 필요했다.

어느새 먼동이 떠오르고 있었다.

진혁이 고심하느라 침묵이 이어지자 모건이 마지막 남은 커피를 마시고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의 인공 지능은 이미 체스, 오델로, 카드 등 상존하는 게임의 세계 챔피언들에게 연달아 완승을 거뒀습니다. 마지막 남은 게임이 바둑인데, 내년으로 예정된 중국과 한국의 세계 바둑 챔피언에게 승리를 거두면 세계가 인공 지능의 우수성을 인정하게 될 겁니다.”

“……!”

“인수 제의를 해 온 기업들이 여럿이지만 IT 기업이 아닌 곳은 알라딘이 처음입니다. 그것만으로도 당신이 얼마나 뛰어난 사업가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지금 당장, 직접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기업과 손을 잡을 겁니다. 우리의 인연은 세월이 지난 다음에 이루어지는 게 낫겠습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잠시만요.”

진혁이 돌아서려는 모건을 막았다.

마침내 방법을 찾았다. 그의 말에 힌트를 얻었다.

“저랑 게임 한번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게임을요?”

게임이라면 밤새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모건이라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현재 시장에서 추정하는 ‘스톰 브레인’의 기업 가치는 5억 달러로 알고 있습니다.”

“인공 지능의 뛰어남을 몰라서 매긴 가치이니 의미가 없습니다. 내년에 바둑강자들이 우리 앞에 차례로 무릎을 꿇는 것을 보면 가치가 몇 배나 뛰어 오를 것입니다.”

“바둑을 우습게보지 마십시오. 바둑은 인간이 만들어 낸 최고의 난해한 게임입니다.”

“우리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번에도 완승으로 승패가 날 것입니다.”

“완승을 확신하십니까?”

“100% 확신합니다.”

진혁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걸려들었다.

“전 완승은 아니다 쪽에 걸겠습니다. 2억 달러를 선입금 시켜 드리지요. 이기면 가지시고, 지면 대가로 지분 40%를 내놓는 조건의 게임을 제안합니다. 받으시겠습니까?”

“……!”

모건의 눈썹 끝이 올라갔다.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진혁은 한 번 더 찔렀다.

“금액과 지분을 높여도 상관없습니다. 이건 무조건 제가 이기는 게임이니까요.”

“좋습니다. 당신의 패를 받죠. 그 돈은 잘 쓰겠습니다. 변호사가 찾아갈 겁니다.”

모건은 찬바람이 생하게 돌 정도로 차갑게 말하고 돌아서 걸음을 옮겼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원래는 운영비 부족으로 다음 주에 그간 협상했던 업체와 계약을 맺기로 했는데, 미루기로 했다.

자금이 수혈됐으니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바둑마저 정복하고 나면 더 높은 가격에 매각할 수 있을 테니까.

다음 날, 진혁은 모건이 보낸 변호사와 계약서를 작성하고 돈을 입금시켰다.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이기는 게임이었다. 세상이 변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모건과 진혁은 서로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며 내년에 벌어질 대결을 기대했다.

* * *

진혁이 방글라데시로 돌아온 다음 날 총리 공관에서 나즈마 총리와 권성일 대통령의 방글라데시-한국 간 공동 프로젝트 개발 펀드 조인식이 열렸다.

그 자리에서 나즈마 총리는 파드마 대교 건설을 포함한 50억 달러 규모의 십여 개의 사업에서 한국 정부와 함께할 계획임을 밝혔다.

거기에 소르나 공단 건설에 관련된 사업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어 권성일 대통령도 2억 달러의 차관을 포함한 총 10억 달러 규모의 투자 계획도 발표했다.

투자 금액이 커진 것은 소나르 공단 건설을 한국 정부의 투자 사업으로 해 달라는 나즈마 총리의 부탁 때문이었다.

로힝야의 이동 거리를 넓힌 데다 취업까지 허락한 것에 대한 국민의 반발을 우려해서였다.

진혁은 명분보다 실리를 택하는 주의라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흡족한 표정의 권성일을 태운 비행기가 다카 공항을 이륙하는 것으로 기나긴 공단 건설의 사전 작업이 끝났다.

그날 진혁은 이영석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오랜만에 소주를 마음껏 마셨다.

* * *

계속 울리는 핸드폰 벨 소리에 진혁은 눈을 뜨지도 못하고 손만 뻗어 받았다.

“여보세요?”

-회장님, 박 실장입니다. 공장에 큰일이 났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진혁이 벌떡 일어나 물었다.

-시위대가 공장을 포위한 채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경찰까지 출동했습니다.

“다친 사람은요?”

-다행히 없습니다만 작업을 못 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출발하겠습니다.”

옷도 제대로 걸치지 못하고 갑자기 방에서 튀어나오는 진혁의 모습에 신문을 보고 있던 샤물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공장으로 간다, 즉시.”

“바로 차 준비하겠습니다.”

샤물이 먼저 서둘러 나갔다.

콕스바자르 공항에 도착하자 밤방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눈빛이 흔들리고 있는 게 불안감이 여실히 드러났다.

“지금 어떤 상항이냐?”

“시위대가 공장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방글라데시안 공원들은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로힝야들은 불안해하며 나오지도 못하고 있고요.”

“경찰들은?”

“책임자만 찾습니다.”

“가 보자.”

공장으로 가자 밤방의 말대로였다.

진혁이 내리는 모습에 시위대가 더 목청껏 자신들의 요구 조건을 소리쳤다. 벵골어라 진혁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눈치 빠른 샤물이 재빨리 통역해 줬다.

“로힝야는 미얀마로 돌아가랍니다. 소르나는 더 이상 로힝야를 받아들이지 않겠답니다. 자리아 산의 파괴는 안 된답니다.”

“자리아 산……!”

“로힝야가 파괴한 나머지 산림도 살려내라고 합니다. 환경 단체들도 같이 온 것 같습니다.”

샤물의 시선을 따라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이들 중에 아는 얼굴이 있었다. 환경 연합 치타공주 지부장인 사비르였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서로 눈길을 돌려 모른 체했다.

그때 제복을 입은 사내가 다가와 말했다.

“경찰서장입니다. 총리실에서 즉시 들어오시랍니다.”

“일단 직원들 상태부터 확인하겠습니다.”

“아니…….”

당황하는 서장을 놔두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최원섭, 권기남, 박이동과 시에라가 빠르게 다가왔다. 그 뒤로 로힝야들이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친 사람은 없습니까?”

“다행히 없습니다. 위해를 가하려고 온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방글라데시안 공원들이 안 왔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아예 출근을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끼리는 사전에 미리 이야기가 된 듯합니다.”

진혁의 굳은 얼굴에 시에라가 말했다.

“우리들은 괜찮습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오늘은 작업이 어려울 것 같으니 무사히 돌아가게만 해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이 사태를 해결하겠습니다. 다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럼. 이놈이 문제 해결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하니 걱정 말고, 간만에 좀 쉬자우.”

진혁이 몸을 돌려 서장에게 갔다.

“로힝야들이 난민 캠프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안전하게 돌아가게 하겠습니다. 그러니 서둘러 총리실로…….”

“출발하는 것을 보고 가겠습니다.”

진혁의 완강한 태도에 경찰서장은 어쩔 수 없이 부하들에게 소리쳐 시위대를 밀어내고 로힝야를 탑승하게 했다.

시위대가 소리쳤는데 샤물이 차마 통역을 하지 못했다. 뜻은 모르지만 온갖 욕설을 퍼붓는 게 분명했다.

진혁이 튀어나가려는 것을 박이동이 급히 몸으로 막았다.

“회장님이 여기서 움직이시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지금은 참으셔야 합니다.”

박이동의 말이 맞았다. 문제가 커지면 지금까지 로힝야와 이룬 모든 것이 무너진다.

로힝야를 태운 버스가 출발하자 진혁은 경찰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콕스바자르 공항을 통해 다카로 갔다.

총리실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갔다.

나즈마 총리가 쵸두리 국토부 장관과 말을 나누다가 쳐다봤는데 눈빛에는 불쾌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

쵸두리가 거칠게 나무랐다.

“이 무슨 무례한 짓이오!”

“이번에도 정보가 사전에 유출됐습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무슨 말이죠?”

“로힝야는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답니다.”

“그거야 서 회장님이 지금도 그들을 채용하고 있으니 충분히 유추가 가능하지 않소.”

별것 아니라는 듯이 끼어들어 말하는 쵸두리를 놔두고 나즈마 총리를 노려보며 물었다.

“자리아 산 개발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전 그 이야기는 총리님께만 했습니다.”

나즈마 총리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은 쵸두리가 더듬거리는 말로 답했다.

“그게…… 부하 직원들에게 타당성 조사를…….”

“내가 분명히 보안을 철저히 하라고 했을 텐데요.”

“믿을 수 있는 직원들에게만 시켰습니다. 절대 우리 쪽은 아닙니다. 서 회장님 쪽에서…….”

“이 계획은 저 혼자 세운 겁니다. 모두 한국인인 데다 벵골어도 할 줄 모른단 말입니다!”

진혁의 호통에 쵸두리가 입을 닫았다.

나즈마 총리가 말했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요. 야당에서도 소르나 공단 건설을 위한 국유지 불하 계획에 대해 특혜라며 문제 삼고 있어요.”

“이번 일을 잘못 대처했다가는 한국 정부와 추진하기로 한 모든 사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내가 공장 지을 곳이 없어 방글라데시를 택한 게 아닙니다. 로힝야를 위한다고는 하지만 반절의 일자리가 방글라데시안에 돌아갑니다. 공단이 건설되면 제일 이득을 보는 것은 이 나라 국민들이잖습니까.”

진혁의 호통에 괜히 끼어들었던 쵸두리는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즈마 총리가 말했다.

“장관은 책임지고 이번 사태를 해결하세요.”

“지역 경제를 살리는 일이라 대다수 현지 시위대는 설득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환경 단체입니다. 아시다시피 아주 지독한 놈들입니다. 자이라 산을 건들지 않는 쪽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

“부지 매입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은 다른 쪽으로 보상해 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건 제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공단만 건설할 것이라면 최악의 경우 고민해 볼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난민 캠프의 로힝야 인구가 60만 명이었다. 100헥타르를 확보한다고 해도 턱 없이 부족할 판이었다.

나머지 난민들이 머무를 부지가 추가로 필요했다. 그래서 자리아산을 개간할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잠시 생각하던 나즈마 총리가 말했다.

“장관이 그들을 만나 설득하세요.”

“그게 쉽지 않습니다.”

“국익을 해치는 주장을 계속하겠다면 잡아들이세요.”

나즈마 총리의 강경한 발언에 쵸두리 장관이 기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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