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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192화 (192/307)

192화. 차우크퓨 항, 함반토타 항

“……?”

“고유가로 한동안 좋았는데, 회장님이 가스전을 발견하면서 유가가 하락세로 접어들어 다시 어려워졌습니다. 세계 경기도 안 좋고 해서 역내 무역도 많이 줄어들고 있는데, 회장님이 가스전 지분을 매각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져 경기가 더 나빠질 거라고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건 아닌데…….”

“회장님 덕분에 그동안 모은 재산이 꽤 됩니다. 그래서 원래는 배 몇 채를 더 사서 운송업을 하려고 했는데, 상황이 그러다 보니 선뜻 나서지도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다가 마침 회장님이 부르셔서 얼른 달려온 겁니다.”

“이곳에서 그 사업을 펼쳐 보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여기서요?”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 바라캇에게 진혁이 이곳의 사정을 알려 줬다.

“방글라데시는 내륙 수운이 발달해 선박이 내륙 운송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총 하천 길이만도 2만 4천 킬로미터에 달합니다. 연간 내륙 수운 운송량은 약 3천만 톤, 여객은 2억 5천만 명 수준입니다.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거기에…….”

“더 이상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 무조건 찬성입니다.”

“아니, 그렇게 쉽게 결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말리는 진혁에게 바라캇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제 일생에서 제일 큰 행운은 회장님을 만난 것입니다. 평생 남의 배나 몰 팔자였던 뱃놈이었는데 회장님 덕분에 큰돈을 벌어 내 배를 사서 사업할 생각까지 하게 됐습니다.”

“그건 선장님이 열심히 해 주신 덕분이지요.”

“그렇게 할 수 있게 해 주신 분이 회장님이시잖습니까. 그러니 그 말씀은 더 이상 마시고 그때처럼 지시만 내려 주시면 됩니다. 저 역시 선원들과 열심히 화물을 나르겠습니다.”

진혁은 바라캇을 데리고 위층으로 올라가 아노아르에게 회사 설립을 도와주라고 했다.

새로 마련된 회장실로 들어가 업무를 보고 있을 때 희준이 들어왔다.

“한 가지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일단 앉자.”

둘만 있는 자리라 진혁이 편하게 이야기했다. 소파로 가서 앉아 희준도 편한 어투로 말했다.

“이왕 항만 건설을 하는 김에 심해항으로 개발하자는 게 낫지 않냐는 의견들이 많아. 알라딘 건설의 한 사장님도 마찬가지 의견이고. 방글라데시에는 심해항이 없다며? 그럼 우리가 심해항을 갖추면 이 나라의 해상 물류 전체를 장악할 수 있어.”

자신의 말이 끝났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에 희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어?”

“아니. 내 앞에 앉아 계시는 분이 방글라데시 항만청장님이신가 해서.”

“이 자식이. 확.”

희준이 농담이라고 여기고 화를 냈다.

“우리의 목표는 서남아시아지 방글라데시의 경제 발전이 아니야. 그 점을 잊으면 안 돼.”

“……!”

“겨우 방글라데시의 해상 물동량이나 처리하려고 심해항을 개발했다가는 한국의 평택항이나 군산항 꼴이 날 거야.”

한국 정부는 급격히 늘어나는 중국과의 교역량에 장밋빛 미래를 꿈꾸며 서해안에 평택항과 군산항을 새로 개장했다.

그러나 한동안 호황을 누리던 두 곳은 중국 정부가 잇달아 대형 항만을 개설하면서 큰 위기에 처했다.

진혁이 설명을 해 줬다.

“항만의 실질적인 수익은 자국의 화물이 아니라 환적 화물의 양에 달려 있어. 중간 기항지에서 이적과 선적이 이루어져 하역 작업을 두 번 하기 때문에 직간적접인 부가가치가 훨씬 커.”

희준은 그제서야 한국의 항만이 부실해진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글로벌 선사들과 중국 항만의 전략적 제휴 강화로 환적 화물이 줄어들자, 군산항과 평택항은 적자가 나는데도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진혁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는 비단 두 항만만의 문제가 아니야. 동북아의 허브항의 역할을 했던 부산항에도 영향을 미쳤어. 한국 내 항만 간의 출혈 경쟁으로 한때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2위 환적 항만으로 성장했던 부산항이 지금은 6위로 미끄러져 난감한 상황이라고 하더라.”

희준은 자신이 생각이 너무 안일했음을 자책했다. 그러면서 진혁의 폭넓은 시야에 감탄했다.

그 모습에 진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심해항을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야.”

“……?”

“한국 정부만 중국의 경제 성장에 대한 장밋빛 꿈을 꾼 건 아니야. 미얀마와 스리랑카도 중국 정부로부터 차관을 받아 심해항을 개발했다가 큰 곤란에 처해 있거든.”

“그래?”

“스리랑카는 대통령이 탄핵당하기까지 했어. 친미 성향의 새 대통령이 재협상을 주장했지만, 중국 정부는 오히려 돈을 갚지 못하면 항만 운영권을 내놓으라며 압박하고 있어. 그 문제로 국민들이 반중 시위를 벌이고 있는 중이고.”

“아, 그래서 중간 기착지로 미얀마의 차우크퓨 항을 선택한 거였구나. 그걸 인수하려고?”

희준이 탄성을 터트리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진혁은 건설 장비를 들여오는 주 기착지로 차우크퓨 항으로 정했다.

오너의 결정이라 대놓고 반대는 안 했지만 다들 그 결정에 의아한 시선을 보냈었다.

로힝야 난민 문제의 시발국인 미얀마의 항구를 이용하겠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동안 감탄한 표정으로 있던 희준이 무언가를 생각해 내고는 바로 인상을 찌푸렸다.

“차우크퓨 항은 중국이 추진하는 동서경제벨트의 핵심 거점이라 중국 자본으로 확장 공사까지 진행되고 있는 곳으로 아는데, 우리가 인수할 수 있겠어?”

“미얀마 정부도 스리랑카에서 벌어지는 반중 시위에 놀라 급히 재검토에 들어갔다고 하더라. 환적 화물 유치가 부진해 경영 위기에 봉착하면 중국에 항만 운영권을 넘겨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은 거지.”

“그렇다고 해도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래서 준비가 필요해. 여기 일은 정 사장에게 맡기고 나랑 인도에 좀 다녀오자.”

“거긴 왜?”

“꿩 먹고 알 먹으러. 잠시 내려가서 한 사장님께 한 가지 당부만 하고 바로 떠날 테니까, 너도 얼른 준비해.”

“하튼 저 자식은. 좀 미리 알려 주면 어디가 덧나나?”

투덜거리던 희준이 얼른 일어나 서둘렀다.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자리를 비워야 하니 자신도 정호영에게 말을 해야 했다.

그 후, 진혁은 희준과 함께 다카로 가서 나즈마 총리를 만나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인도로 건너갔다.

* * *

그 시각, 중국 베이징의 부총리실에서 호통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는 거야?”

우핑 부총리 앞의 무역부 부장 허융은 고양이 앞의 쥐라도 된 양 찍 소리도 못하고 서 있기만 했다.

스리랑카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해지고 있었다.

전임 대통령에게 은밀한 뒷거래를 제안해 함반토타에 항만을 만들게 했었다.

경제성이 없어 갚을 능력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대규모 대출까지 해 주며 개발하게 한 것은, 대출금 상환 연장을 미끼로 항만 운영권을 넘겨받아 군사항으로 사용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함반토타 항은 인도양의 첫 관문으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였다.

우핑 부총리가 겨우 화를 참고 물었다.

“카순 대통령은 뭐래?”

“국민들의 반중 시위를 핑계 대며 대출금 이자율에 대한 재조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빌어먹을 자식.”

우핑의 입에서 절로 욕이 나왔다.

항만이 완성되자 문제가 터졌다. 전임 대통령의 실정이 함반토타 항까지 번졌다.

결국 국민 투표로 탄핵이 결정되고 카순이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는데, 문제가 있었다.

그는 친미 성향 인사로, 이번 사태의 원인은 중국의 과도한 이자율 때문이라고 발표하는 바람에 국민들의 반중 시위가 더 격해지고 있었다.

허융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출금 이자율을 조금 조정하는 선에서 서둘러 진화하는 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바로 터진 우핑의 호통에 허융의 목이 자라마냥 움츠러들었다.

“이건 스리랑카만의 문제가 아니란 말이다. 다른 참여국들이 모두 이번 사태를 예의 주시하고 있어. 한번 이자율을 낮춰 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단 말이다.”

“…….”

“이자 대신 항만 인근에 공단을 조성할 부지를 내놓으라고 해.”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역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해 보라고 해. 우리가 교역만 중단해도 당장 경제가 박살날 거야. 이럴 때일수록 강하게 나가야 해.”

“……알겠습니다.”

“모든 정보 역량을 스리랑카로 집중해라. 움직임을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된다. 서둘러 조치해.”

“예!”

허융이 얼른 대답하고 나와 숨을 크게 쉬었다.

원래는 이렇게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문제가 생기면 우핑이 먼저 자신에게 의견을 구할 정도였다.

그런데 알쇼핑 인수 공작의 실패로 상황이 바뀌었다. 그때 이후로 우핑은 묻지도 않고 모든 것을 자신이 결정하고 고집대로만 하고 있었다.

으드득.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든 원흉인 서진혁이란 놈을 생각하자 절로 이빨이 갈렸다.

* * *

인도의 수도 뉴델리는 ‘포스트 차이나’로 불릴 정도로 투자금이 밀려들어와 급격히 성장해 발전해 있었다.

그런데 최근 뜨거운 열기가 급격히 식어 암울한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었다.

작년에 당선된 만길라 총리가 ‘스타트업 인디아’를 선언하며 스타트업 창업에 대한 파격적인 규제 완화 정책을 쏟아냈었다.

이에 신생 벤처 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서방 IT 기업들의 자금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한국에서 2000년에 벌어진 벤처 열풍과 흡사했다.

하지만 그런 과도한 열기는 필연적으로 버블로 이어졌다.

뛰어난 S/W에 비해 낙후된 H/W 인프라가 부각되면서 환상은 깨지고 일순간에 폭락했다.

지금은 신생 벤처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애를 먹고 있었다.

진혁이 약속한 호텔로 가자 알라딘 스마트기술 연구소장 구필준이 중년의 사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말씀드린 팜스핀 사장님이십니다.”

“카르식 마놀카입니다.”

“서진혁입니다. 앉으시지요.”

진혁은 고진무로부터 스마트팜 사업의 성공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맞춤형 설비 못지않게 빅데이터의 안정적인 수집과 분석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구필준에게 관련 기술을 가진 해외 업체를 알아보라고 했더니 ‘팜스핀’을 추천했다.

“팜스핀은 농장 경영 소프트웨어 제공 업체입니다. 우리 회사의 플랫폼은 농민들이 경험이나 감에 의존해서 해오던 농사 관련 데이터를 수집해, 이를 토대로 보다 정확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신뢰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10억 개 이상의 지점과 400만 에이커 이상의 농지 정보를 디지털화했습니다. 작물의 종류는 3,500종에 이르며, 데이터 용량으로 치면 100테라바이트 수준입니다.”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진혁은 무심코 한 말이었지만 마놀카의 눈이 벌게졌다.

그는 원래 애플의 정보관리 분석 프로젝트 리더였는데 고향으로 돌아와 창업했다.

인구의 거의 절반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농업 분야의 국내총생산(GDP)은 전체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 발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봤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일이 힘든 것은 시간과 몸으로 때우면 됐지만 운영비는 그럴 수 없었다.

가진 돈을 전부 투자해 겨우 플랫폼을 만들었지만 홍보와 영업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었다.

버블 붕괴로 투자 규모가 준 데다 그마저도 도시를 중심으로 운영한 곳에만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시 스타트업들은 손쉽게 1,000만 달러 규로로 투자를 받지만 농업 기술 관련은 백만 달러도 쉽지 않은 실정이었다.

마눌라가 감정을 추스르고 말했다.

“한 카피당 천 달러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총 50곳에 들어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6만 달러인데, 5만 달러만 받겠습니다.”

“50만 달러를 투자하지요.”

진혁의 제안에 마눌라가 놀란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저었다.

사정이 급하긴 하지만 지금 지분을 헐값에 매각할 수는 없었다.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농업 기술이라, 도시 스타트업 모델처럼 저가에 지분을 매각했다가는 금방 자본이 바닥나게 된다.

좀 더 많은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기술을 발전시키면 투자 환경이 나아질 때 더 높은 가격에 매각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전 아직 지분 공개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지분을 달라는 게 아닙니다. 전 사장님의 기술과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습니다.”

“공유요?”

의외의 제안에 마눌라의 눈이 동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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