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인도 공작
“사장님이 어렵게 모은 데이터는 아쉽게도 한국에서는 대부분 쓸모가 없습니다. 토양과 기후가 다른데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지요. 어떤 데이터가 필요하고 어떻게 분석해 활용하는지 그 노하우를 전수해 주십시오.”
“……!”
“50곳은 시범 사업입니다. 추후 크게 확대할 것입니다. 정부가 하는 사업이라 국가가 관리하는 기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으니 기초 데이터는 충분할 겁니다. 이곳 사업은 그대로 진행하십시오. 저희가 직원을 보내 배우겠습니다.”
“음…….”
“도시 스타트업에 비해 농촌 스타트업의 투자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인도의 농업 분야의 투자 효율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방법은 수출입니다. 인도가 아닌 다른 선진국을 상대로 판로를 개척하셔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한국 정부와의 프로젝트 진행은 큰 이력이 되실 겁니다.”
솔깃한 제안이었다.
지분도 유지하고, 좀 더 많은 자료도 확보하고, 새로운 분석 방법을 개발하고 적용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진혁에게 받은 돈으로 운영하면서 투자 환경이 좋아지기를 기다릴 수도 있었다.
“좋습니다. 회장님의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
“버블 붕괴로 사장님뿐만 아니라 뛰어난 기술을 가진 많은 스타트업 업체가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 분들도 소개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다들 좋아할 겁니다.”
정식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계약을 하기로 하고 마눌라가 떠나자 구필준이 말했다.
“기술 도입까지 생각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단순히 기술만 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맞습니다. 인도 환경에 맞게 개발된 것이라 한국의 상황에 맞을지에 대한 우려감이 없지 않았습니다. A/S에 대한 문제도 고민이었고요.”
“이 건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투자할 업체도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어도 기술 이전 조건이 아니면 제외시키십시오.”
“알겠습니다만, 기술력 검증에는 자신이 있는데 경제성 여부는 제가 판단할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소장님은 기술력만 판단해 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우리 쪽에서 조사해 판단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안심입니다. 당장 직원들부터 호출해야겠습니다.”
일이 갑자기 커지자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구필준이 핸드폰을 들고 일어나자 희준이 얼른 말했다.
“우리도 직원을 불러야 하지 않겠어?”
“굳이 여기로 부를 필요는 없지. 자료만 넘겨주면 서울에서도 충분히 검토는 가능해.”
“물론 그렇지만 현지 사정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잖아?”
“그건 네가 맡으면 되잖아?”
“내가?”
“밥값은 해야 할 거 아니야.”
“헐.”
어이없어하는 희준을 놔두고, 진혁은 통화를 끝내고 온 구필준과 함께 앞으로 일에 대해 상의했다.
* * *
다음 날, 진혁은 희준과 구필준에게 팜스핀과의 계약을 맡기고 혼자서 총리실을 찾아갔다.
“비서실장 리암입니다.”
“알라딘 그룹의 서진혁입니다.”
“총리께서 기다리십니다. 가시지요.”
만길라 총리는 편해 보이는 인상으로 총리실만 아니면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 같은 친근한 느낌이 들었다.
“어서 오십시오.”
“면담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난 투자자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특히나 서 회장님 같은 뛰어난 사업가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만길라는 진혁에게 면담 요청이 오자 낱낱이 조사를 시켰다.
과거는 물론 최근 일본의 도이에 중공업을 인수한 것을 알고 크게 기대하고 있었다.
비록 소량이지만 군에 통조림 등을 납품하고 있고, ‘다부다 인디아 그룹’과 합작한 알쇼핑 인디아도 진출해 있으니 인연이 전혀 없지도 않았다.
비서가 차를 내놓고 돌아가자 리암 실장이 배석한 채 대화를 나눴다.
만길라 총리가 말했다.
“인도는 성장 잠재력이 대단히 뛰어난 나라입니다. S/W 분야는 세계 최고라고 자부합니다. 중국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나라인 데다가 모두 영어 구사가 가능합니다. 세계적 IT 기업 CEO에 우리나라 출신들이 다수 포진해 있지요.”
“저 역시 역동이 넘치는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간 아웃소싱으로 쌓은 경험과 실력에 빠르게 늘어나는 인터넷과 모바일 가입자로 수많은 스마트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내가 발표한 ‘스타트업 인디아’ 정책으로 그 어느 때보다 투자 환경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한 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습니다. 이후에도 좋은 업체가 있다면 얼마든지 투자할 용의가 있습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최근 버블 붕괴로 투자가 일시적으로 줄고 있지만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역시 ‘검은 머리 짐’이라 감각이 남다르십니다.”
어떻게든 투자를 이끌어내려는 만길라 총리의 사탕발림에도 진혁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얼마 정도 이런저런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홍보를 더 듣고 진혁이 말했다.
“도이에 중공업에서도 오토바이 생산 공장을 인도에 세우려고 했다가 잠정 중단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런지 모르지만, 이유를 말씀하시면 최대한 편의를 봐드리겠습니다.”
스타트업에 대한 간접 투자와 달리 공장 유치는 직접적으로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에 그 효과가 훨씬 컸다.
만길라 총리의 몸을 달게 한 후 진혁이 본론을 꺼냈다.
“인도의 불안정한 대외 변수 때문입니다.”
“……?”
“북쪽 내륙은 물론 남쪽의 해상도 중국의 동서경제벨트로 봉쇄되기 일보 직전입니다. 중국과 화해해도 부족할 판에 국경 문제로 대치하고 있잖습니까. 전쟁이라도 일어나 중국이 퇴로를 막아 버리면 물건을 빼 올 방법이 없습니다.”
“음……. 여러 나라의 요직을 맡고 있어서 국제 정세에도 밝으시군요.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만, 많은 나라와 상의하고 있으니 조만간 그 문제는 해결될 겁니다.”
만길라가 어렵게 말했지만 진혁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미국은 물론 유럽까지 그간 저가 중국산 제품에 내수 시장의 상당 부분이 잠식당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중국이 경제는 물론 군사적으로 인도양을 장악하려는 야욕이 있음을 알면서도 모른 척 나서지 않고 있는 겁니다.”
“…….”
“중국은 이미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서 아프리카 지부티의 오보크 항구를 연결하는 해상 동서경제벨트를 거의 완성했습니다.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의 운영권을 인수하고 미얀마의 차우크퓨 항의 공사가 끝나면 더 이상 그들을 막을 기회는 없습니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하실 생각이십니까!”
흥분한 진혁의 말소리가 높아지자 리암 실장이 바로 경고를 했다.
“말씀을 삼가십시오.”
“죄송합니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아니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총리님!”
“세계의 투자자들이 다 아는 사실을 우리만 부인한다고 달라지지 않아. 실장은 날 벌거숭이 임금님으로 만들지 말게.”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리암의 시선을 피한 만길라 총리가 진혁을 보고 말했다.
“정확한 지적입니다. 인도는 지금 중국으로부터 심각한 위협에 처해 있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 차례 관련국에 도움을 청했지만, 말씀하신 이유로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이 없는 실정입니다. 러시아에 도움을 청하기는 했지만 그들 역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터라 큰 힘이 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인접국인 방글라데시 역시 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제가 총리 자문역으로 남부에 민간 경제 구역을 건설하는 것을 알고 계시지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서 회장의 면담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겁니다.”
“나즈마 총리님과 중국의 동서경제벨트를 막을 방법을 강구해 봤습니다. 나즈마 총리님이 보내신 친서입니다.”
진혁이 내민 서류 봉투를 받은 만길라 총리가 안에 든 계획서를 꺼내 읽었다.
맨 앞의 편지는 나즈마 총리가 직접 자필로 작성한 것이지만 나머지 계획서는 진혁이 만든 것이었다.
다 읽고 난 만길라 총리가 뜨거운 눈으로 물었다.
“이게 정말 가능한 계획입니까?”
“전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설혹 실패한다고 해도 이대로 서서히 숨통이 조여 망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합니다.”
“……실장도 읽어 보게.”
잠시 진혁을 노려보던 만길라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리암에게 진혁의 계획서를 넘겨줬다.
너무 엄청난 계획이라 혼자서 결정을 내리는 게 쉽지 않았다.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판단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리암이 빠르게 읽고 만길라가 그랬던 것처럼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정말 가능합니까?”
“중국의 야욕은 인도 정부 혼자서 막을 수 없습니다. 국제 사회를 끌어들여야 합니다. 다행히 제가 여러 나라에 사업을 펼쳐 온 터라 저를 도와줄 인맥들은 많습니다.”
진혁의 확신에 만길라가 리암과 빠르게 시선을 교환한 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서 회장님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은 뭐라도 해야 할 때입니다. 계획에 동의합니다.”
“감사합니다. 반드시 중국의 야욕을 꺾도록 하겠습니다.”
“믿겠습니다. 그럼 내가 뭘 해 줘야 합니까?”
“러시아에 국방장관을 사절로 보내 주십시오.”
“국방장관을요?”
“경제 문제는 큰 이슈가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군사적 대치 상황이라는 것을 알면 국민들이 불안해할 겁니다. 여론을 형성해 미적거리는 정치 지도자들을 움직이게 해야 합니다.”
“좋은 생각이오. 마침 내년이 여러 나라의 대선이 열리는 해라 민감하게 반응할 거요.”
“논의 내용은 인-러 인도양 합동 군사 훈련으로 발표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하. 아주 화들짝 놀라겠군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만길라가 최근 들어 가장 큰 소리로 웃으며 만족해했다.
총리실을 나온 진혁은 희준을 만나 그 일을 당부하고 바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워싱턴의 한 호텔로 가자 NS통신의 조나단 기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방글라데시에 이어 일본에서 여러 가지 큰일을 하신 것은 기사로 잘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쓴 기사가 아니더군요.”
직설적인 성격답게 조나단은 자리에 앉자마자 섭섭한 마음을 그대로 내비쳤다.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문제로 연락하자 바로 달려와 준 고마운 이였다.
세계적인 이슈가 되는 큰 사건에 자신을 불러 주지 않은 것이 서운했던 모양이었다.
진혁이 웃으며 말했다.
“퓰리처상을 타셔서 엉덩이가 무거워지신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그깟 상보다는 특종이 좋습……. 좋은 건수가 있는 거군요?”
역시 기자라 촉이 남달랐다.
“이번 건은 상당히 큽니다.”
“회장님이 통 큰 것은 이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으니 걱정 마십시오.”
“위험해지실 수도 있습니다.”
“제가 전쟁터만 전전했던 종군 기자 출신입니다.”
진혁이 가져간 계획서를 건네주었다.
빠르게 훑어본 조나단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물었다.
“어디까지 진행된 겁니까?”
“내일 만길라 총리가 기자 회견을 열어 발표하면 국방장관이 바로 러시아로 출발할 겁니다.”
“중국의 동서경제벨트 사업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경제 문제라 치부하고 무시했는데, 이건 세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초래하는 일이군요.”
“맞습니다. 그런데도 각국 지도자들은 중국의 경제 보복이 두려워서 모른 체했던 겁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기자님 혼자서 기사를 터트려서는 오히려 역풍을 맞으실 수도 있습니다. 정치권 내부에서 직접 공론화해야 합니다.”
진혁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조나단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마침 적당한 분이 있습니다.”
“누굽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