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196화 (196/307)

196화. 이중 작전

“2010년 중국 수출입 은행을 통해 연 2.5%의 저리로 4억 달러의 차관을 빌려 항구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추가 개발이 필요하다는 판단 하에 2012년 다시 중국으로부터 8억 달러를 빌렸는데, 이자는 두 배가 넘는 6.3% 고정 금리였습니다.”

“이용 현황은요?”

“그게…… 거의 없습니다. 하루 한 척 정도 수준입니다.”

사례쓰가 얼굴이 벌게진 채로 고개를 숙이고 겨우 답했다.

전임 대통령이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벌인 일이지만 결국은 자기 나라의 치부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진혁이 앨런 대사를 보고 물었다.

“미국 측 의견을 먼저 듣고 싶습니다.”

“중국은 이미 스리랑카의 콜롬보 항을 이용하고 있는데도 굳이 경제성이 없는 함반토타 항의 건설을 밀어붙이는 것은 인도양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막아야 합니다.”

“우리도 정부도 같은 의견입니다. 함반토타 항은 인도양의 관문으로, 이곳이 군사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야마모토 대사도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시선을 받은 리암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다.

“인도는 이미 중국의 동서경제벨트로 포위된 심각한 상황입니다. 군사적인 부분은 이미 두 분이 이야기해서 생략하고, 경제적으로도 우리나라의 수출입의 대부분이 인도양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함반토타 항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스리랑카 정부의 대응 방안은 뭡니까?”

“카순 대통령께서 취임하시고 중국 측에 이자율의 조정을 요청했는데 오히려 항구의 지분 85%와 99년간 임차를 요구를 해 와 국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굳이 더 설명할 것도 없었다. 밖에만 나가면 얼마든지 시위 장면을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도 중국은 항구 주변 60제곱킬로미터 규모의 산업 단지를 지을 수 있는 땅도 요구하는 등 몰염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사정으로는 외부의 도움이 없다면 그들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습니다.”

“결국 부채 12억 달러만 갚으면 되는 문제군요. 어떻게 하실 생각들이십니까?”

진혁의 질문에 다들 시선을 피했다. 괜히 나섰다가는 자신들이 덤터기를 쓸 수 있었다.

진혁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알라딘 그룹에서 부채만큼 저리로 빌려드리겠습니다.”

“그걸 다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대신 항만 운영권을 50년간 주십시오.”

“그건 곤란합니다. 지금 국민들이 시위하는 것은 국토를 외국 자본에 넘긴다는 것 때문입니다. 알라딘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이해합니다.”

사례쓰의 반대에 진혁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모두를 둘러보고 말했다.

“제가 여러분을 한자리에 다 모이시게 한 것은, 함반토타 항을 지키는 것은 어느 한 국가가 책임진다고 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 함반토타 항만운영주식회사의 설립을 제안합니다.”

“항만운영주식회사를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여기 모인 국가들과 방글라데시가 참여하는 세계적 주식회사입니다. 그럼 개별 국가의 부담이 그만큼 줄고 스리랑카 카순 대통령도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 있으니 최선의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자본 부담액은 어떻게 정하실 생각입니까?”

“알라딘 그룹과 미국, 일본이 각 3억 달러씩, 방글라데시, 인도가 각각 1억 달러씩으로 하는 게 적당할 것 같습니다.”

“11억 달러군요. 그럼 1억 달러가 모자라는데…….”

사례쓰의 말에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중국이 초기에 투자한 4억 달러는 저리니 굳이 서둘러 갚을 이유가 없습니다. 8억 달러는 고리 부채를 갚는 데 쓰일 겁니다. 나머지 3억 달러는 시설 개선비와 초기 운영 자금으로 두어야 합니다. 지분율은 투자금에 따라 정하면 됩니다.”

“우리나라의 국토를 이용하는데 자본금만 내고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귀국이 책임져야 할 부채인데 도움을 주려는 우리에게 떠넘기면 안 되지요. 게다가 귀국은 이리저리 중국과 얽혀 있는데, 그들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

사례쓰의 눈이 커졌다.

맞는 말이었다. 스리랑카의 대중국 부채는 100억 달러가 넘었다. 거기에 최대 교역 국가이기도 했다. 중국과 적이 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의문이 남았다.

“자신들의 의도가 무산됐는데 중국이 함반토타 항에 투자된 자금을 회수하고 철수하겠다고 하지 않을까요?”

“그러지 못할 겁니다. 그 부분은 제가 책임지고 막겠습니다. 정 안 되면 나머지도 저희 알라딘이 책임지지요.”

그제야 사례쓰의 표정이 펴졌다.

“알겠습니다. 회장님만 믿겠습니다.”

“그럼 각자 상황을 알리고 허락을 받아 오십시오.”

다들 부리나케 나가는 모습에 진혁이 리암 비서실장을 불렀다.

“실장님은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리암만 남자 진혁이 용건을 꺼냈다.

“1억 달러를 마련하실 수 있겠습니까?”

“…….”

리암이 바로 답을 하지 못했다.

미국, 일본, 한국은 부국들이라 억 단위도 쉽게 결정을 내리겠지만 인도는 아니었다.

경상 수지 적자와 재정 적자, 루피화 약세, 물가 급등, 성장률 하락으로 인도 경제는 자금 심각한 중병을 앓고 있었다.

한때 중국에 이은 12억의 거대 인구로 투자 적격국으로 각광받았지만, 버블이 꺼지면서 지금은 정크 등급 전락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짐작하시겠지만 방글라데시가 부담하기로 한 1억 달러도 제가 책임질 겁니다.”

“……!”

“굿딜을 인수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굿딜요?”

“실장님은 잘 모르실 겁니다. 전자 상거래 기업입니다. 요즘 경영 상황이 좋지 않아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데 결과가 신통치 않다고 합니다. 인도 중앙은행이 벤처 자금으로 5,000만 달러를 지원하면서 지분의 33%를 확보하고 있는데, 그걸 제가 1억 달러에 인수하고 싶습니다.”

“음…….”

“일전에 말씀드린 대로 검토를 마친 스타트업 업체를 대상으로 5억 달러 정도 투자할 생각입니다. 도이에 중공업도 오토바이 공장 건설에 대해 재검토에 들어갔습니다.”

리암의 눈이 커졌다.

인접국이라 방글라데시의 일에 대해서는 귀가 따갑게 듣고 있었다.

경제특구 건설 자금만도 100억 달러였다. 그보다 더 많은 투자 유치 금액이 몰려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인도 정부 입장에서는 투자를 부탁해야 할 판이었다.

리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총리께서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실 겁니다.”

“실장님만 믿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진혁의 예의 바른 인사를 받고 리암이 나가자 내내 지켜보던 희준이 얼른 다가와 물었다.

“쇼핑몰도 인수하게?”

“방글라데시 공단에서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팔지 못하면 다 헛일이야. 바로 지척에 12억의 소비 시장이 있는데 당연히 진출해야지.”

“그건 그렇지. 그런데 너 정말 중국을 설득해 순순히 함반토타 항을 포기하게 할 자신은 있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차우크퓨 항을 내놓아야 하는데, 절대 그러진 못할 거야.”

진혁의 확신에 찬 답변에도 희준이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가 뭔데?”

“중국 정부가 미얀마에 투자한 게 너무 많거든.”

진혁은 중국의 미얀마에 대한 투자 현황을 들려주었다.

중국은 동서경제벨트의 시발점을 차우크퓨 항으로 잡고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었다.

차우크퓨 항 주변은 석유, 천연가스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인도양과 중국, 동남아시아를 잇는 핵심 지역으로 ‘미니 싱가포르’로 개발될 계획이었다.

그 일환으로 중국 내륙으로부터 차우크퓨 항에 이르는 송유관을 설치하고 있었다.

이 송유관을 통해 중국은 벵골만에 생산된 천연가스와 인도양을 건너온 중동산 석유를 해양을 거치지 않고 직접 공급받을 생각이었다.

희준이 그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짜 중국으로서는 차우크퓨 항을 절대 포기할 수 없겠네.”

“그에 반해 함반토타 항은 미국 측 분석대로 군사적인 목적이 더 커. 경제와 달리 군사 문제는 해당국의 국민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든. 왕칭린의 동서경제벨트가 ‘부채 패권주의’라는 비판이 국내외적으로 일고 있는 상황에서 그런 무리수를 두지는 못할 거야.”

“대단한데? 어떻게 그런 것을 다 알아?”

진혁이 핀잔을 줬다.

“인터넷에 다 나와 있어, 인마. 맨날 야동만 보지 말고 공부 좀 해라, 공부.”

“지롤. 학교 다닐 때는 내가 더 성적이 좋았거든.”

둘은 일부러 쓸데없는 농담으로 긴장감을 풀었다.

그사이 본국의 허락을 받았는지 한 사람씩 들어왔다.

제일 늦게 들어온 리암 실장이 시선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사례쓰 보좌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카순 대통령께서 중국 정부의 반대만 없다면 서 회장님의 항만운영주식회사 제안을 받아들이시겠다고 했습니다.”

“미국 정부도 같은 의견입니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앨런 차관과 야마모토 대사가 동의를 했다.

마지막으로 리암 실장이 말했다.

“총리께서는 서 회장님의 제안에 대해 조건 없이 수용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중국 정부의 양보를 받아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온 진혁은 따라온 희준에게 말했다.

“리암 실장하고 굿딜 인수 작업을 진행해.”

“내가?”

“난 마무리 작업을 하러 미얀마로 돌아가야 해. 한국의 한상국 사장을 불러. 행정적인 부분은 이영석 부장이 처리해 줄 거야.”

“알았어. 몸조심해라.”

“너도.”

둘은 서로 주먹을 마주치고 헤어졌다.

* * *

마웅 총리를 만나고 돌아온 우핑 부총리의 손이 저절로 관자놀이로 향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왔다. 그만큼 이번 면담은 최악이었다.

하인처럼 굽실거렸던 이전의 마웅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오히려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아랫사람 대하듯이 했다.

대중국의 2인자로 처음 당하는 굴욕이었다.

하지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만큼 왕칭린이 차우크퓨 항에 거는 기대가 컸다.

일이 이 따위로 된 것은 모두가 그 빌어먹을 서진혁이란 놈 때문이었다.

‘죽일 놈의 새끼!’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허융이 들어왔다. 기분이 나쁘니 나오는 말이 고울 리 없었다.

“무슨 일이야?”

“로비에서 면담을 요청하는 이가 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내가 아무도 만나지 않겠다고 했잖아.”

“그게…… 그자가 찾아왔습니다.”

“……?”

“서진혁 말입니다.”

“그놈이 왜?”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부총리와 상의할 일이 있다고 했답니다. ……쫓아 버리라고 할까요?”

“아니다. 올려 보내라고 해라.”

허융이 나가자, 우핑은 얼른 진혁이 찾아온 이유를 유추해 봤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얼마 후 허융의 안내를 받으며 진혁이 들어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서진혁이라고 합니다.”

“내게 차우크퓨 항을 포기하라는 헛소리를 하러 온 건가?”

“오해이십니다. 전 그 일을 돕기 위해서 왔습니다.”

“도와?”

“그렇습니다. 중국이 차우크퓨 항을 인수하는 데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앉지.”

똑바로 쳐다보는 진혁의 태도에서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우핑이 자리를 권했다.

진혁에 이어 허융까지 앉자 우핑이 물었다.

“어떻게 돕겠다는 것이지?”

“제가 물러나면 마웅 총리는 닭 쫓던 개가 됩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역시 조건이 있겠지?”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을 넘겨주십시오.”

“함반토타 항을?”

“그렇습니다. 이건 제 뜻만이 아니라 미국, 일본, 인도, 방글라데시 정부의 생각이기도 합니다.”

진혁은 함반토타 항만운영주식회사의 설립에 대해 들려주었다.

우핑은 진혁의 성동격서 전법에 당했음을 깨달았다. 놈의 목표는 이곳이 아니라 스리랑카였다.

우핑이 으르렁거렸다.

“중국 정부를 상대로 전면전을 펼치겠다는 것인가?”

“제가 그렇게 무모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지난번처럼 힘없이 도망치지만 않을 겁니다.”

“흥.”

“부총리께서 제 제안을 거절하신다면 즉시 나가 마웅 총리를 만나, 아직 남아 있는 40만 명의 로힝야를 위해 방글라데시와 같은 사업을 미얀마에서도 펼치겠다는 제안을 할 겁니다. 경제 개발에 목을 매고 있는 마웅 총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뻔합니다.”

“……!”

우칭은 이를 악물고 진혁을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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