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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197화 (197/307)

197화. 빅딜

진혁은 눈도 깜박이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미국을 포함한 5개국이 이 일에 참여 의사를 밝혔습니다. 중국이 끝까지 함반토타 항에 욕심을 부린다면 인도양을 군사적으로 장악하려는 의도가 명확해지는 것이라며, 동서경제벨트 사업 저지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상황을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핑은 답을 하지 못했다. 생각하기도 싫은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시간을 두었다가 진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는 조였던 나사를 조금씩 풀어주어야 할 때였다.

“중국은 이미 스리랑카 콜롬보 항에 지분을 가지고 있어 동서경제벨트 사업을 펼치는 데 문제가 없습니다. 모두 다 가지시려다가는 전부를 잃으실 수도 있습니다.”

“…….”

“함반토타 항에 투자된 초기자금에 대해서는 지분율을 인정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중국이 최대 지분을 소유하는 것이니 스리랑카의 사업은 실패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간 동서경제벨트 사업을 비난하던 국가들과 공동으로 사업을 펼치게 된 겁니다. 그 효과가 적지 않을 겁니다.”

우핑은 놀라움을 넘어 진혁의 폭넓은 생각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동서경제벨트 사업 대상 국가들 사이에 부채를 씌워서 주권을 가져가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고 있었다.

진혁의 말대로 함반토타 항만운영주식회사 설립을 잘만 포장한다면 그런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이는 또한 왕칭린이 사업 실패로 자신을 숙청하는 것을 피할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우핑이 마침내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차우크퓨 항에서 확실히 손을 떼는 것이지?”

“그럼요. 여기서 나가면 바로 공항으로 가서 미얀마를 떠나겠습니다.”

“좋네. 자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속마음을 숨긴 채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속 좁은 우핑은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배웅한다는 핑계로 비서 딸린 차까지 내주고 공항까지 태워 줬다.

이륙한 비행기 창문으로 보이는 총리관저를 보고 진혁은 곤란한 표정을 지을 마웅 총리를 생각하며 주먹으로 빅엿을 먹였다.

로힝야를 핍박한 것에 대한 앙갚음이었다.

* * *

진혁이 도착한 곳은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 위치한 반다라나이케 국제공항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사례쓰 보조관이 얼른 달려왔다.

“대통령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갑시다.”

대통령 전용 차량이라 거침이 없었다. 철저한 검문으로 유명한 대통령궁 검문소도 바로 통과했다.

“알라딘 서진혁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카순입니다. 그리고 여기는 페레라 총리입니다.”

“귀한 선물에 감사드립니다.”

스리랑카는 대통령 중심의 공화제로 총리가 따로 있었다.

자리에 앉아 진혁이 우핑 총리와 합의한 내용부터 들려주었다. 카순 대통령의 입이 함지박하게 벌어졌다.

“제일 큰 골칫거리가 해결됐습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을 뿐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기뻐하시기에는 이릅니다.”

“……?”

“이번 사태의 근원인 중국이 포함되어 있고, 참여한 국가들 역시 큰 틀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하지만 세부적인 운영 방안에 대해서는 자국의 이득을 우선시할 겁니다. 초기에 기틀을 제대로 잡지 않는다면 두고두고 우환거리가 될 겁니다.”

“그건 그렇지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석 수 확보입니다. 항만 운영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모든 게 공염불입니다.”

“맞습니다. 결국 이익이 나야 그다음 이야기도 가능합니다.”

경제를 담당하고 있는 페레라 총리라 이해가 빨랐다.

카순이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지분 참여와 항만 운영을 별개로 가져가야 합니다. 항만 운영은 철저히 경제 논리에 입각해 전문 운영사에게 맡겼으면 합니다. 또한 이익 배분을 일반적인 지분율에 따라 정하는 것과는 달리, 선석 유치 실적에 따라 차등 배분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합니다.”

“……?”

“지분 참여국들이 자국의 국적 선사가 함반토타 항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겁니다.”

이어진 진혁의 항만 운영에 대한 계획에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만큼 진혁의 계획은 전혀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철저했다. 그가 왜 알라딘이라는 세계적인 그룹을 이끌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진혁의 말이 끝나자 카순 대통령의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대단하시오. 난 그간 방글라데시를 최빈국이라 무시해 왔소. 그런데 이제는 나즈마 총리가 너무도 부럽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총리님께서는 오히려 제게 큰 힘이 되고 계십니다.”

진혁의 겸손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카순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우리 스리랑카에서도 사업을 펼쳐 주시오. 서 회장님의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습니다.”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의미로 이번 항만운영주식회사를 직접 맡아 주시는 것이 어떻겠소?”

“그건 어렵습니다. 다른 지분 국가들을 배제하자고 해 놓고 제가 그 일을 맡을 수는 없습니다. 대신 다른 곳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어디를 말입니까?”

“한국의 부산항만공사입니다.”

“……?”

처음 듣는 곳이라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룬 주역 중의 한 곳입니다. 한때 동북아의 허브항으로 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2위 항만으로 명성을 떨치던 곳입니다. 중국 신항의 개장과 대형 터미널 체계의 개편 지연으로 6위로 추락했지만, 충분한 경험과 저력이 있으니 함반토타 항만 운영을 맡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한국인인 서 회장이 이번 프로젝트에 한국을 배제한 것이 의아했는데 그런 복안이 있었군요.”

“전혀 아니라는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만 저는 세계를 대상으로 움직이는 사업가입니다. 국적 때문에 사업에 손실을 볼 만큼 애국자는 아닙니다. 한국은 반도 국가로 전체 화물의 99.7%를 선박으로 운송하는 해운 대국입니다. 국적사인 한국 해운은 세계 7위권의 컨테이너 운송 규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히려 부탁해야 할 처지입니다.”

“……!”

“우려감에 말씀드리지만, 혹여라도 중국의 지분을 인수해 항만운영주식회사에 참여하실 생각이시라면 재고해 주십시오.”

“왜 그렇소?”

“제가 한국을 배제한 것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하십시오. 어차피 스리랑카 국토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차라리 그 돈을 주변 인프라에 투자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게 스리랑카 경제 발전에 더 도움이 될 겁니다.”

“알겠습니다. 서 회장님의 조언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카순 대통령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듣기에도 합리적인 안이었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이 일을 시작하신 분이 서 회장님입니다. 부산항만공사에게 떠넘기고 잊으시면 안 됩니다.”

“그럴 리가요. 저도 지분 참여자인데 당연히 신경 써야지요.”

“함반토타 항만이 아니라 다른 사업도 꼭 좀 부탁드립니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재차 확인하는 말에 진혁은 더 이상 언급을 피했다. 함반토타 항의 일이 우선이었다.

그 후 며칠간 머물면서 페레라 총리와 함께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진혁은 스리랑카를 떠났다.

사업가인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나머지는 정치가인 카순 대통령이 참여국을 상대로 해결할 문제였다.

* * *

두바이의 알라딘 홀딩스로 가자 야만 사장이 중년의 동양인 사내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진혁이 예전에 중국 쪽 스마트 기술 관련 벤처 캐피탈 사를 알아봐 달라고 했는데, 야맘이 마이클 창을 데려온 것이다.

“버전 캐피탈의 마이클 창입니다.”

“서진혁입니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야맘 사장이 며칠 전에 전화를 줬지만 함반토타 항 인수 작업을 하느라 몸을 뺄 수가 없어 이제야 왔다.

진혁과 마주 앉은 마이클 창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야맘을 통해 진혁이 베일에 싸인 ‘검은 머리 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만남이 자신의 일생을 결정할 거란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진혁이 물었다.

“중국의 스마트 기술 관련 기업에 투자하신다고 들었는데, 어느 분야입니까?”

“인공 지능입니다.”

“인공 지능 기술은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앞서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쪽은 성장세에 접어들었지만 중국은 이제 막 태동 단계라 기대 수익률은 훨씬 높습니다. 작년 중국 정부는 인터넷을 전 산업과 융합시켜 새로운 경제 발전 생태계를 이루겠다며 ‘인터넷 레벨업’ 계획을 발표하고 관련 사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창은 흥분된 얼굴로 중국 4차 산업에 대한 장밋빛 미래를 펼쳐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는 진혁의 눈은 반대로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 기색을 눈치채지 못하고 마이클 창은 자신의 말을 이었다.

“지금이 중국 스마트 기술에 투자할 최적기입니다. 나중에 큰 수익으로 돌아올 겁니다.”

“그래서 사장님은 돈 많이 버셨습니까?”

“……!”

진혁의 날카로운 질문에 달아올랐던 창 사장의 기분이 싸늘히 식었다. 그의 회사는 수익은 고사하고 겨우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창 사장이 겨우 입을 열어 답했다.

“인공 지능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기술이 아니다 보니까 시간이 필요합니다. 거기에 다시 상용화 기간도 필요하고요.”

“앞으로는 스마트 기술이 세상을 지배할 거라는 것은 사장님이 아니어도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수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요.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중국 정부의 발표만 믿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스마트 기술 벤처기업 열 곳 중 아홉 곳이 적자로 파산하고 있다는 게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인데, 틀렸습니까?”

“아닙니다. 맞습니다.”

창 사장은 이마에 흐르는 땀 때문에 손수건을 꺼내 닦으며 답했다. ‘검은 머리 짐’의 능력을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 정도면 됐다고 판단한 진혁이 말했다.

“제가 사장님을 뵙자고 한 것은 버전 캐피탈에 투자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

“버전 캐피탈을 인수하고 싶습니다.”

의외의 제안이라 창은 물론 야맘까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상은 현실을 이길 수 없고, 감성은 논리를 이길 수 없다. 제가 좋아하는 문구입니다. 이 안에 사장님이 실패한 이유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가 담겨 있습니다.”

“……!”

“마음을 결정하신 다음에 오십시오. 다만, 사장님과 같이 현실보다는 이상을, 논리보다는 감성을 택해 어려움에 빠진 벤처 캐피탈 사가 적지 않다는 것만 아십시오. 그럼.”

“잠시만요, 회장님.”

일어나려는 진혁을 창이 얼른 막고 물었다.

“계획이 있으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 일을 추진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 대행해 줄 회사를 찾은 것은 아닙니다.”

“직원들도 모두 데려와도 됩니까?”

“물론입니다만 더 충원하셔야 할 겁니다. 투자금은 100억 달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창 사장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난해 전 세계 인공 지능 산업에 투입된 융자 규모의 20%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회장님의 계획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받아 주십시오.”

“잘 생각하셨습니다.”

고개를 숙인 창의 머리를 보고 진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정 권한을 가진 이가 모두 모여 있어 회사 인수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야맘 사장이 창 사장과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는 동안 진혁은 AM 그룹의 갈리 회장과 오랜만에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하마드와 아자데도 함께 참석했다.

갈리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카이로의 작은 사무실에서 회장님께 면접을 봤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중동과 동남아시아를 넘어 서남아시아와 중국까지 진출하게 됐다니, 듣고도 믿기지 않습니다.”

“전 바이럴 마케팅에 대해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이마에 땀이 납니다. 기대는 했지만 알쇼핑이 이처럼 성장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하하하.”

하마드마저 감탄사를 터트리며 웃는 모습에 비해 진혁은 여전히 감정이 드러나지 않자, 아자데가 날카로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물었다.

“회장님은 우리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고 계시군요. 그렇지요?”

진혁이 묘한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되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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