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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00화 (200/307)

200화. 부산항만공사

희준이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걸 보고 진혁이 물었다.

“그건 왜 가지고 나와?”

“서울 가려고. 이왕 갈 거 빨리 가자.”

“뭐? 나 아직 밥도 못 먹었단 말이야.”

“비행기 기다리면서 먹으면 돼. 요즘 기내식도 좋더라.”

“아주 꼴값을 떨어라. 그런데 이 시간에 비행기가 있겠어?”

“내가 확인해 봤는데 있대. 얼른 가자.”

희준의 성화에 결국 진혁은 급히 한상국을 불러 뒷일을 부탁하고 한국으로 건너갔다.

* * *

집에서 하루 푹 쉰 진혁은 AK 사무실과 동행 사무실을 잇달아 들러 업무 보고를 받고, 시간이 되자 청와대로 들어갔다.

권성일 대통과 이현국 비서실장, 그리고 머리가 벗겨진 중년 사내가 함께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은 진혁이 찾아온 용건을 밝혔다.

“이번에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을 여러 나라와 함께 인수하게 되었습니다.”

진혁은 함반토타 항에 얽힌 이야기를 최대한 간략하게 들려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권성일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한국이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였다.

하지만 이어진 진혁의 말에 표정이 단번에 바뀌었다.

“항만 운영은 지분 참여자를 배제한 제3의 기관에 위탁 운영을 맡기기로 했는데, 저는 부산항만공사가 그 자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말입니까?”

부산항만공사의 최호식 사장은 대통령 앞이라는 것도 잊고 놀라 물었다.

“그렇습니다. 비록 지금은 순위에서 밀렸지만 동북아 허브항, 세계 2위의 환적 항만으로 저력과 경험이 있으니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맡겨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호식이 당장 반색했다.

부산항만공사는 현재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경쟁 항만인 상하이, 싱가포르, 두바이 등 세계 주요 항만은 대형화되어 있는 반면 부산항은 소규모 터미널로 분산되어 있어 효율성이 떨어졌다.

각 터미널별로 운영사가 다르다 보니 통합관리가 안 되고 있었다.

타 부두 환적 화물의 육상 운송을 위한 추가 비용과 시간이 발생했고, 선박이 바다에서 대기하는 체선도 증가하는 비효율성을 유발했다.

진혁이 냉정하게 말했다.

“자격이 된다고 했지 결정된 것은 아닙니다. 운영 계획서와 참여한 인사들의 면면을 보고 냉정하게 판단할 것입니다.”

“……!”

“지위보다는 경험과 실력을 최우선적으로 두고 평가하겠습니다. 함반토타 항은 철저하게 환적 항으로 운영될 것이며, 첨단 관리 운영 시스템을 도입해 항만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선적 소요 시간을 최소화할 예정입니다. 이에 대한 방안도 포함시켜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답을 하는 최호식의 표정이 처음과 달리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공사다 보니 여러 정권에 걸쳐 낙하산 인사들이 대거 들어와 있었다. 그들을 이번 기회에 일부 정리하려고 했는데 처음부터 좌절됐다.

진혁의 요구가 이어졌다.

“함반토타 항은 인도양의 길목으로 중동,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교두보입니다. 부산항은 동북아의 허브항으로 두 항만을 연계하는 방안도 포함시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분 참여사들의 수익은 지분율에 더해 선석 유치 실적에 따라 배분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부산항만공사라고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한국 해운의 이용을 적극 유도해 주십시오.”

“그쪽 루트는 싱가포르 항을 이용하고 있어서 당장 변경은 어렵습니다.”

“그렇군요. 일본 측에서는 키타큐슈와 나라항만관리회사만 선정해 주면 싱가포르 항을 이용하는 물량의 절반을 옮겨 주겠다고 했는데, 그쪽으로 가는 게 낫겠군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진혁이 자리를 정리하려고 하자 다급해진 이현국이 얼른 막았다.

진혁이 아무런 대비 없이 이 자리를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한국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선, 해운 강국으로 위상을 날렸었다.

세계적 경기 불황으로 선박 수주가 줄자 조선업이 타격을 받아 울산, 거제 경기가 최악이었다.

이는 부산항의 이용 실적 저조로 부산 경기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한국 해운도 실적 악화로 부도 위기에 처해 있었다.

부산 경남 라인 전체가 불황을 겪고 있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이현국이 최호식에게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최 사장님은 서 회장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셔야 합니다.”

“싱가포르 항구는 전 세계로 운송되는 화물의 1/7이 통과하고 있고, 특히 아시아와 유럽 교역 항로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세계 석유 운송량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어 환적항을 바꾸면 이중 경비가 들게 되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지금까지는 그랬지요. 중동 국가의 원유 컨테이너와 유럽의 화물 컨테이너가 함반토타 항을 이용하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

“전 함반토타 항을 세계 1위 환적항으로 만들 겁니다. 부산항이 함께 성장할지 아니면 이대로 침몰할지 결정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최 사장님은 잠시 나가 계세요.”

최호식이 다시 진혁의 말에 토를 달려고 하자 이번에는 권성일이 싸늘한 목소리를 냈다.

최호식은 진혁을 처음 만난 터라 아직 그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일은 단순히 부산항만공사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의 해운업의 미래가 걸린 일이었다.

권성일이 직접 진혁과 담판을 지을 생각이었다.

최호식이 나가자 권성일이 말했다.

“서 회장의 제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부산항만공사가 선정되게 도와주시오.”

“준비만 철저히 하시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대신 제대로 된 팀을 보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철저히 실력 위주로 뽑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몇 가지 더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진혁이 자신이 생각해 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자동 설비 파트는 도이에 중공업에게 맡겨 주십시오.”

“일본에요?”

“현재 한국 업체의 기술력으로는 첨단 시스템을 따라올 수 없습니다. 함반토타 항은 여러 나라가 참여해 있고 세계적인 환적 항이 될 겁니다. 일본도 주 고객 중 하나입니다.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시면 안 됩니다.”

“무슨 말씀인 줄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권성일의 허락을 받아낸 진혁이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제가 도이에 중공업을 인수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 하나가 미나미 조선소와 합작해서 설립한 선박수리회사를 보유하고 있어서입니다. 해외 선사들 유인책의 일환으로 선박 무상 점검 서비스와 즉시 수리 서비스를 할까 합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확인해 보니 그동안 실적이 없어서 인원을 많이 감축했더군요. 그래서 추가 인력 확보가 필요합니다.”

“……!”

“거제에 실업자가 넘쳐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들의 경험을 살릴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바로 준비를 하겠습니다.”

권성일이 반색을 하고 답했다.

거제의 문제는 권성일이 집권한 이후 계속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진혁의 이어지는 말에 권성일의 머리가 다시 아파 왔다.

“저번 이집트 조흐르 가스전의 FGTL을 이용한 개발권 획득이나 이번 일부 실업자의 재취업은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선박 수주만이 거제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서 회장님도 아시겠지만, 세계 경기 하락에 따른 물동량 감소로 조선업뿐만 아니라 항만업도 경영난이 심각합니다. 도대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세계 경기는 좋았던 때보다 어려웠던 때가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IMF 때 금 모으기 운동까지 펼치며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저력을 가진 민족입니다. 대통령께서는 그들에게 스스로 헤쳐 나갈 길만 열어 주시면 됩니다.”

“무슨 방법이 있는 것이오?”

“있습니다만 욕을 엄청나게 듣게 되실 겁니다.”

“……?”

의아해하는 권성일에게 진혁이 자신의 계획을 들려주었다.

말이 끝나자 제일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은 이현국 비서실장이었다.

“그건 너무 무모한 계획입니다. 세계 모든 기업이 대통령님께 비난을 쏟아낼 겁니다.”

“압니다만 지금으로서는 빈사 상태인 한국 조선업을 구할 방법은 그 길밖에 없습니다.”

“저희 입장도 고려를…….”

“됐습니다.”

권성일 대통령이 이현국의 말을 막고 진혁을 직시하며 물었다.

“성공할 자신은 있습니까?”

“있습니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좋습니다. 서 회장의 말대로 하지요.”

“하지만…….”

“내게 쏟아지는 비난이 불 꺼진 거제 조선소에서 한숨으로 세월만 보내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받아야지요. 그러니 실장은 이 시간 이후로 서 회장의 계획을 돕는 데 최선을 다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이현국이 안타까운 표정에 벌게진 눈으로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국민들을 위한다는데 말릴 수는 없었다.

청와대를 나온 진혁은 바로 집으로 갔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혜주가 이미 예쁘게 단장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민과 함께 차를 타고 강릉으로 건너갔다.

“할부지, 할부지.”

“어이구, 내 새끼.”

뛰어오는 혜주를 안으며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진혁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혔다.

이틀간 어머니가 해 주시는 고향 밥을 먹고 푼 쉰 진혁은 서울로 올라왔다가 다시 양산으로 내려가 황영재를 만났다.

카나풀리 EPZ의 임차 사실을 알리고 입주기업의 유치를 부탁했다.

진혁이 다음으로 간 곳은 부산항만공사였다.

서울에서 내려와 있던 이현국 실장이 중년 사내를 소개시켜 줬다.

“부산항만공사와 역사를 같이한 권오일 운영본부장이십니다. 함반토타 항만 운영 준비팀을 이끌기로 하셨습니다.”

“서진혁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권오일은 키는 작았지만 딱 벌어진 어깨에 목이 짧아, 어렸을 때 ‘자라’라고 놀림을 받았을 성싶은 체격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무게감을 주어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자리에 앉자 진혁이 물었다.

“검토해 보시니 어떻습니까?”

“부러웠습니다. 우리 부산항도 진작 투자가 이루어져 그렇게 변했어야 했습니다.”

“중국이 자신들이 운영할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지었다고 들었습니다.”

“느꼈습니다. 스마트 항만으로 지어져 완전 무인 자동화가 가능한 터미널과 대형화된 컨테이너선의 하역 서비스에도 최적화되게 시설, 장비가 갖추어져 있습니다. 기존 항만보다 인력은 80%, 운영비는 30% 이상 절감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권오일 말에 진혁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함반토타 항의 인수가 결정되자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관련 자료를 모두 받아 왔었다.

이현국이 그걸 직접 가지고 내려와 권오일과 밤새 분석을 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뭡니까?”

진혁이 놀라 물었다.

“운영 시스템 전반에 빅데이터, 인공 지능, IoT 등 스마트 기술이 도입되어 현재 우리 기술력으로는 운영에 한계가 있습니다. 외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부분은 제가 따로 대책을 마련했으니 걱정 마십시오.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없습니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디까지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함반토타 항은 반드시 성공해야 합니다. 단순히 부산항만공사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을 넘어, 대한민국의 조선업과 해운업의 사활이 걸려 있습니다.”

“들었습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준비해서 반드시 성공적인 운영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권오일의 각오를 듣고 나와 이현국 실장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판교 테크노벨리에 있는 스마트 기술 연구소로 가자 구필준 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안색이 까칠했는데 보자마자 앓는 소리부터 했다.

“너무하십니다.”

“……?”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일을 주시면 어떻게 하십니까?”

“적용 현장이 필요하다고 하신 분은 소장님입니다.”

진혁의 날카로운 지적에 구필준이 반박하지 못했다.

스마트팜 사업에 이어 인도 스타트업 업체의 기술 검증까지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진혁은 함반토타 항 운영 시스템에 대한 검토를 맡겼다.

쉴 시간도 주지 않고 몰아붙이고 있었다.

진혁의 일 처리가 어떤 식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구필준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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