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일본 반격
“뭡니까?”
“인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스마트팜 사업만 해도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 전 연구원이 매달려도 쉽지 않습니다. 거기에 함반토타 항만은 사전 준비 없이 중국이 구축한 것을 인수하는 것이라, 도입된 시스템을 분석하는 일만도 얼마가 걸릴지 모릅니다.”
“관련 인력을 최대한 확보하세요. 돈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회장님도 아시다시피 인력 확보라는 게 물건 생산하듯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국내 전문 인력을 찾는 것도 쉽지 않고요.”
“압니다만, 두 가지 일 중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무조건 해내야 합니다.”
“…….”
진혁의 강한 압박에도 구필준이 답을 하지 않았다.
사정은 알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었다.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혼나더라도 현실을 알려 대책을 마련해야 앞으로 발생할 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진혁이 그제야 사태가 생각보다 심각함을 알고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제가 조만간 도이에 중공업을 방문할 생각인데, 그때 그쪽 연구진의 협조를 구해 보겠습니다. 소장님은 이번에 인도에서 투자한 스타트업 업체를 상대로 도와줄 수 있는지 알아봐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말씀이 나와서 말인데,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또요? 한 가지라고 했잖아요.”
진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구필준은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의 말을 했다.
“이번에 인도에 투자한 업체들은 빅데이터와 사물 인터넷 쪽입니다. 도이에 중공업으로 로봇 기술도 확보했는데, 문제는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기술입니다. 4차 산업의 완성을 위해서는 모든 기술력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인공지능 쪽은 제가 따로 준비하고 있으니 걱정이 없는데, 블록체인 기술이 문제군요.”
“블록체인은 제가 염두에 둔 업체가 있습니다.”
“그래요?”
“예전에 가르친 학생이었는데 해킹 천재입니다. 미들스쿨 다니던 시절 펜타곤까지 해킹했던 놈입니다. 화이트 해커로 변신해 활동하더니, 작년에 실리콘 밸리에 블록체인 관련 스타트업 창업을 해서 개업식에도 참석했습니다.”
“잘됐군요. 그쪽은 소장님이 맡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구필준이 흔쾌히 수긍하고 물러났다.
지금까지 진혁이 이뤄낸 것을 보면 인공지능 기술도 확보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자신은 블록체인 기술 확보에만 신경 쓰면 된다.
스마트 기술 연구소를 나온 진혁은 동행 사무실부터 들렸다.
우상우가 고진무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가 진혁을 보고 얼른 일어나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
두 사람 모두 서로 눈치만 보고 답을 하지 못했다.
진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일부 지역에서 농민들이 스마트팜 시범 사업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답니다.”
“네 차례나 컨퍼런스를 열었습니다. 치열한 논의 끝에 추진하기로 결정해 놓고 이제 와서 막는 건 무슨 경우입니까?”
“그래서 저희도 답답합니다. 현지 동행 센터장들이 1차적으로 만나 봤는데 막무가내라고 합니다. 일부 조합원들도 그들과 같은 생각이라며 우려감도 나타냈습니다.”
“빌어먹을.”
진혁의 입에서 욕설이 절로 나왔다.
스마트 기술 연구소에 이어 여기도 문제가 발생해 있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인상을 찌푸리던 진혁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우상우와 고진무를 보고 자신의 실책을 깨달았다.
두 사람의 잘못이 아니었다.
진혁이 빠르게 냉정을 되찾고 말했다.
“일단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부터 하세요.”
“알겠습니다.”
“잠시 일본에 다녀와야 하니 그때까지 철저히 조사해 놓으십시오.”
당부를 하고 나온 진혁은 알라딘 빌딩으로 가서 한상국을 만나 굿딜의 알쇼핑으로 통합 작업을 체크했다.
굿딜은 힌두교 회원을 알쇼핑은 밴더와 제품을 확보하고 있으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간 문제가 되었던 힌디어 서비스를 추가로 제작 중이라고 했다.
“굿딜 작업도 중요하지만 전체 알쇼핑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일은 그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일도 신경 써 주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관련해서 자료 조사는 물론 여러 전문가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습니다. 조만간 중간보고를 드리겠습니다.”
“너무 많은 일을 맡겨서 죄송합니다만 시기를 놓치면 안 되는 일이니 조금만 고생해 주십시오.”
“고생은요.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인데요. 회장님이 먼저 관심을 가져 주셔서 오히려 감사합니다.”
얼마간 한상국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나왔다.
* * *
진혁은 다음 날 일본으로 넘어갔다.
나리타 공항에서 나오자 도이에 중공업에서 보낸 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노무라 사장이 정중히 맞았다.
진혁이 비록 경영권을 양보했지만 최대 주주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R&D 연구소의 이시가와 소장님이십니다.”
노무라가 날카롭게 생긴 중년의 사내를 소개해 줬다. 진혁이 미리 연락을 해서 함께 보자고 했었다.
모두 자리에 앉자 진혁이 용건을 꺼냈다.
“이번에 제가 스리랑카의 함반토타 항을 인수하게 됐습니다.”
“소식은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항만 운용 자동화설비 쪽을 도이에에게 맡기려고 하는데, 가능하시겠습니까?”
“그럼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노무라 사장의 얼굴이 당장 밝아졌다.
진혁이 한국인이라 한국 업체에 맡길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중국 업체가 건설한 곳이라 운영 시스템을 분석하는 데 애로점이 있는 듯합니다. 소장님은 알라딘 연구소와 함께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정상화시킬 수 있도록 협력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연락이 오는 대로 전담팀을 꾸려 협력하겠습니다.”
이시가와 소장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회사에 도움도 되고, 이번 기회에 한국은 물론 중국의 기술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데다, 다른 기술의 발전상도 파악할 수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진혁이 말을 이었다.
“알라딘 연구소와 협업하는 김에 한 가지 더 처리해 주십시오. 한국에서 스마트팜 사업도 펼치기로 했습니다. 기술 이전에 대해서도 논의해 주셨으면 합니다.”
“…….”
이시가와가 이번에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고 노무라 사장의 눈치를 봤다.
진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저기 그게, 그쪽 관련한 기술은 정부 정책 자금으로 개발된 것이라 저희가 임의로 해외 이전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음……. 정부 시책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그건 제가 다른 방도를 강구해 보겠습니다.”
진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순순히 물러났다.
쇼다 대신의 목줄을 쥐고 있으니 허락을 받는 건 어렵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진혁이 노무라 사장을 보고 말했다.
“함반토타 항의 선석 유치 작업의 일환으로 선박 수리 서비스를 시행하려고 합니다. 미나미 조선소와 합작으로 세운 후쿠오 선박수리회사를 인수할까 하는데, 사장님이 그쪽과 자리를 마련해 주십시오.”
“…….”
이번에는 노무라 사장이 답을 하지 못했다.
연이은 침묵에 진혁이 마침내 눈살을 찌푸렸다.
“미나미 조선소도 실적 악화로 고전하고 있고 도이에 중공업에서 40% 지분을 가지고 있는데도 어려운 겁니까?”
“우리 쪽 지분은 문제가 아닌데, 나머지 60%의 지분이 올 초에 닛뽄 그룹으로 넘어갔습니다.”
“닛뽄 그룹?”
후쿠오 선박수리회사는 비상장 회사로 공시의 의무가 없어서 조사되지 않은 내용이었다.
노무라 사장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진혁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쪽에 의사는 타진해 보겠지만 크게 기대는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닛뽄 그룹은 다에쓰 그룹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그룹이었다.
특히 이에다 회장은 재계의 총리로 불릴 정도로 일본 경제계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인물이었다.
도이에 중공업이 서진혁에 넘어간 것을 두고 공개 석상에서 일본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강도 높게 비난했던 터라 감정이 좋지 않았다.
결국 진혁은 계획했던 세 가지 중 하나만 이룬 채 찜찜한 기분으로 도이에 중공업을 나와야 했다.
호텔로 돌아온 진혁은 소피에 앉아 한참을 생각하다가 핸드폰을 꺼냈다.
“서진혁입니다, 대신님.”
-……어쩐 일이십니까?
“이런저런 일로 도와주셨는데 감사 인사는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아닙니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당연히 그렇게 결정한 것입니다. 그런 인사는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지금 회의에…….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는 쇼다 대신을 막았다.
“후쿠오 선박수리회사를 인수하려고 왔는데 닛뽄 그룹에 나머지 지분이 넘어가 버리는 바람에 곤란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
“도이에 중공업의 스마트팜 기술을 한국으로 수출하려고 했더니 정부 규제에 묶여 있어서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그쪽은 농림 수산 대신의 권한이라 제가…….
“이번 일만 잘 처리해 주시면 더 이상 연락드릴 일은 없을 겁니다.”
-…….
“좋은 소식 기대하겠습니다.”
자신의 답변은 필요 없다는 듯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리는 진혁의 무례한 태도에 쇼다가 분통을 터트렸다.
“칙쇼!”
퍽!
바닥에 내팽개친 핸드폰이 산산조각이 났다.
하찮은 조센징에게 끌려 다니는 자신의 처지에 분통이 치밀었다.
하지만 약점을 단단히 잡혀 있으니 어떻게든 이번 문제를 잘 풀어야만 했다.
통화를 끝낸 진혁이 밖으로 나오자 반가운 얼굴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춘섭이 고개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회장님.”
“바쁘신데 오시라고 한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불러 주셔서 오히려 영광입니다.”
“지난 도움을 받은 것에 인사를 제대로 못 드린 것 같아서요. 같이 술이나 한잔하고 싶어서요.”
“제가 최고로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전 최고보다 편한 곳이 좋습니다. 도움을 받았으면 응당 갚아야지요.”
“아, 알겠습니다.”
이춘섭이 금방 이해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쇼다 대신을 불러내는 데 도움을 준 긴자의 요정으로 갔다.
* * *
진혁이 이춘섭, 요정의 마담과 함께 즐거운 술자리를 갖는 동안 쇼다는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렇게 돼서 어쩔 수 없이 놈에게 협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헌데 놈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과한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때 바로 나를 찾아왔어야지요.”
“회장님께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고 제 선에서 해결해 보려고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다시 머리를 탁자에 닿을 정도로 처박는 쇼다의 모습을 이에다 회장이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버러지만도 못한 놈이었다.
머리를 반쯤 들고 쇼다가 말했다.
“놈이 자료를 터트리면 닛뽄 자동차는 물론 일본 자동차 산업 전체가 위험해집니다. 후쿠오 선박수리회사 정도로 막는 게 낫습니다.”
“…….”
“농림수산 대신 쪽은 제가 어떻게든 설득해 보겠습니다. 이번 일만 잘 처리해 주면 다시는 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단단히 받았습니다. 이번만 양보해 주시면 회장님의 뜻대로 다에쓰 자동차를 넘겨드리겠습니다.”
“……좋소. 그렇게 하지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쇼다가 안심한 얼굴로 연신 인사를 고개를 물러나자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던 모리 비서실장이 물었다.
“저대로 보내도 되겠습니까?”
“자동차 산업 구조 조정 때까지는 놔두는 게 낫다. 그것이 끝나는 순간이 저놈의 목숨도 끝나는 날이 될 거다.”
“알겠습니다. 후속 조치는 제가 알아서 진행하겠습니다.”
“시늉만 해라.”
“……?”
“조센징은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이 하는 족속들이다. 입을 막는 게 최선이다. 쇼다는 필요에 의해서 잠시 살려 두지만 서진혁이란 놈은 아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감히 나를 건드린 게 얼마나 큰 죄인지 알게 해 줘야지.”
“……!”
이에다의 차가운 시선에 모리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이에다의 분노를 사서 살아남은 자를 보지 못했다.
“기술 이전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시간을 번다.”
“네!”
“후쿠오 선박수리회사 지분은 도이에 중공업에게 넘긴다. 어차피 놈이 제거되면 모두 내 품으로 들어올 회사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넌 놈을 안심시키고 쇼다를 재촉해 자동차 산업 구조 조정을 서둘게 하는 일에만 매진하면 된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한다. 나가 봐라.”
모리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혼자 남은 이에다가 허공에 대고 입을 열었다.
“히요미.”
말소리가 흩어지기도 전에 천장에서 누군가가 바닥으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