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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08화 (208/307)

208화. 덫을 향해

이번에 답을 내놓은 사람은 구필준이었다.

“쉐도우 서버를 만드는 게 가장 확실하고 안전할 것 같습니다.”

“그림자 서버를 만들어서 그쪽으로 유인하자는 겁니까?”

“맞습니다. 네 생각은 어때? 빈센트.”

-교수님 말씀이 맞습니다만, 적을 속일 정도 규모의 서버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비용도 많이 들고요.

“마침 적당한 서버가 있습니다.”

한상국이 바로 의견을 내놓았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서버를 이중으로 운영하려고 확보해 놓은 게 있습니다.”

“그럼 그걸 쓰기로 하지요. 비용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빈센트가 진혁의 결정을 듣고 말했다.

-제가 내일 당장 팀원들을 이끌고 한국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진혁이 바로 막았다.

“여러 정황으로 봐서 놈들은 오래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해 왔습니다. 지금도 빌딩을 감시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무언가 대비한다는 것이 느껴지면 계획을 변경하거나 최악의 경우 숨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빈센트 사장님을 직접 부르지 않은 건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진혁의 정확한 지적에 다들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맞는 말이었지만 서버 구축이라는 게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간은 물론 기술력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국내의 다른 기술자들을 불러들이면 역시나 적의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이번에도 구필준이 대안을 내놨다.

“저희 연구소 직원들을 활용하겠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분야는 다른지만 다들 IT 기술자들입니다. BLC에서 원격 지원을 받으면서 진행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BLC 의견은 어떻습니까?”

-상당히 빡빡한 작업이 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진행하기로 하고, 이번 건도 확실히 정산해 드리지요.”

진혁의 거침없는 결정에 다시 화면 저편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오자 빈센트가 팀원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려 있었다.

회사를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실적이 없었다. 그런데 알라딘에서 먼저 투자 제의를 해 오고 연달아 큰 용역까지 맡겨 줬다.

비용을 전혀 아끼지 않는 진혁의 행동에 금맥을 발견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건 성급한 판단이었다.

진혁이 말을 이었다.

“다른 한 가지를 준비해 주셨으면 합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빚을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서요. 똑같이 돌려주고 싶습니다.”

-……?

“우리에게 하려던 방식 그대로 저들의 서버를 망가트리고 정보를 빼 올 방법을 강구해 주십시오. 나를, 알라딘을 건드린 걸 뼈저리게 후회하게 할 겁니다.”

빈센트는 차가운 한기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바로 했다.

그건 뒤에서 듣고 있던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유분방하게 취하고 있던 자세가 어느새 바로 되어 있었다.

진혁은 봉이 아니라 냉혹한 승부사였다.

빈센트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놈들이 회장님의 말씀대로 고객 정보를 가져간다면 그 안에 바이러스와 트로이목마를 심을 수 있습니다. 훔쳐간 데이터를 확인하려고 파일을 여는 순간 저들은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겁니다.

“기대하지요.”

진혁이 물러나자 구필준과 한상국이 BLC와 구체적인 일정을 논의했다.

고용준은 희준과 지원 방안에 대해 상의를 했다.

혼자가 된 진혁에게 김상균이 빠르게 다가와 물었다.

“정보 출처, CIA입니까?”

진혁은 대충 얼버무렸다.

“그와 비슷한 곳입니다.”

“음……. 그래서 그런 움직임이 있었군요.”

“국정원에서는 이미 알고 있었단 말입니까?”

진혁의 날카로운 질문에 김상균이 고개를 저었다.

“도이에 중공업 인수도 그렇고, 지난번 스마트팜 기술 이전이나 후쿠오 선박수리회사의 지분 인수는 그간 폐쇄적인 일본 기업의 형태로 봐서는 놀랄 정도로 신속하게 내려진 결정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느낌이 좋지 않아 지켜보던 중이었는데, 최근에 여러 이상한 정황들이 포착됐습니다. 일본 쪽에서 벌인 일이지요?”

“일본인이 가담된 것은 맞습니다만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습니다.”

“정 사장님은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

“……어떻게 아신 겁니까?”

진혁이 놀라 물었다.

확실한 것이 아니기에 일부러 밝히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자신의 예상이 틀리기를 바라고 있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정호영은 자신이 저지른 죗값을 받는 것이라 상관없었지만 김연희가 받을 상처가 걱정됐다.

김상균이 답했다.

“며칠 전, 전 주한 중국 대사였던 장이 대사가 닛뽄 그룹의 초청으로 일본을 다녀갔습니다. 이에다 회장님과 같이 식당에서 나오는 장면도 포착됐습니다.”

“……!”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몇 년 전 회장님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정호영 사장을 매수하는 역할을 맡았던 이가 장이 대사였습니다. 그때 제가 회장님의 부탁으로 둘의 만남을 확인하고 알려 드렸었습니다.”

김상균의 분석은 정확했다.

진혁이 재빨리 숨어 버리는 바람에 쓸모없어 처박혀졌던 자료를 이번에 꺼내 정호영을 압박한 게 틀림없었다.

진혁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 사장에 대한 결정은 당분간 미루려고 합니다.”

“……?”

“어차피 그가 악성 코드를 심어야 저들이 안심하고 일을 진행합니다. 그때까지는 그냥 놔둘 수밖에 없습니다. 약속하신 대로 지켜봐 주십시오.”

김상균이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국정원 차장의 신분이 아니라 정보 분석가로 조언만 하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김상균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회장님의 신변에 조금이라도 위해가 된다고 판단된다면 국정원 직원들을 즉시 투입하겠습니다.”

“그건 약속과 다르지 않습니까?”

“회장님은 지금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의 태후물산 상사원이 아니십니다.”

옛이야기를 꺼내는 김상균의 행동에 진혁은 눈에 모은 힘을 풀어야 했다.

회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사업외적으로 처음 인연을 맺은 이가 김상균이었다.

시나이 반도의 인질을 구해진 일로 항상 고마워하며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지지해 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김상균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때처럼 위험한 도박을 하시면 안 됩니다.”

“…….”

“계속 고집을 부리시면 선배님께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안 됩니다.”

진혁이 바로 고개를 저었다. 김세동이 이 일을 알게 되면 분명 어떤 식으로든 지민도 알게 된다.

하지만 김상균도 물러설 수 없었다.

“이제 회장님은 개인이 아닙니다. 신변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한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조그마한 위협이라도 피하셔야 합니다. 직접 나서시는 것은 절대 안 됩니다.”

“혜주 엄마가 둘째를 가졌습니다.”

“……!”

진혁의 말에 김상균의 눈이 커졌다.

지민은 자신에게도 조카 같은 존재였다.

임신 초기의 임산부가 정서적으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것은 자식을 가져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다.

진혁이 말했다.

“차장님의 우려는 충분히 알겠습니다. 최대한 조심하고 앞에 나서는 것은 자제하겠습니다.”

“…….”

“그 정도로 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아무리 대비를 철저히 해도 100% 안심하시면 안 됩니다. 매사에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간 더 이런저런 당부를 하고 물러나는 김상균의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진혁은 미안함을 느꼈다.

놈들은 알라딘에 대한 공격과 자신을 공격하는 것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계획하고 있었다.

결국 자신을 노출시킬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고민하던 진혁은 대안을 생각해내고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베트남으로 가셔서 한 가지 일을 준비해 주셔야겠습니다.”

상대는 일본에서 흥신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춘섭이었다.

* * *

동남아시아로 떠나기 전날.

10월 22일.

일찍 퇴근한 진혁이 지민과 혜주를 불러 앉혔다.

“내일 또 출장 가야 해서 선물을 준비했어. 이건 자기 것. 이건 혜주 것.”

“와, 예쁘다.”

붉은 빛의 루비가 박힌 팔찌에 반한 혜주가 얼른 손을 내밀었다.

진혁이 직접 팔찌를 채워 줬다.

왁스로 깨끗이 닦았더니 오랜 세월 낀 때가 벗겨지고 제법 그럴 듯한 보석 팔찌가 되었다.

혜주의 손에 약간 크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딱 맞았다.

어떤 마법이 작용해서 착용자의 신체 특징에 맞게 크기가 조절되는 모양이었다.

“얼마 전에도 선물했으면서…….”

지민의 손에는 반지를 끼워 줬다.

선물에 만족한 표정을 짓는 혜주에게 진혁이 말했다.

“아빠가 없을 때는 이것이 혜주를 지켜 줄 거야. 그러니까 항상 지니고 다니고 절대 남을 주면 안 돼.”

“알았져. 짜랑해.”

“당신도 소중히 간직하고.”

“그럴게요.”

“자, 그럼 오늘은 다 같이 자자.”

진혁은 그날 양팔에 지민과 혜주를 안고 편한 잠을 잤다.

* * *

다음 날.

진혁은 희준과 함께 인천 공항으로 갔다.

티켓을 받아 출국장으로 향하던 희준이 갑자기 소리쳤다.

“어? 저기 정 사장님 아니야?”

“아닐 거야. 시간 됐다. 들어가자.”

“정 사장 맞는데.”

“가자니까.”

진혁의 짜증스러운 목소리에 희준이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며 따라왔다.

인도네시아로 가서 선병식과 마야를 만나 한류에 대해 듣고 인도네시아의 히자비 스타로 만가낭과 자우하리를 모두 지원하게 결정했다.

밤에는 K-POP 공연 구경을 갔다.

최고의 전망을 자랑하는 VIP석에 앉아 공연을 구경했지만 진혁은 전혀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최근에 구경했던 것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지루한 표정에 하품을 하던 진혁이 눈을 반짝였다. 크게 붙어 있는 현수막에 협찬사로 ‘JHC 엔터테인먼트’가 적혀 있었다.

정인영의 전남편 천진홍의 회사였다.

그때 진혁의 머리로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회귀했다고 똑같이 행동할 필요는 없잖아?’

두 번 사는 인생, 이왕이면 알차게 사는 게 좋았다.

희준에게 눈짓을 한 후 선병식에게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양해를 구하고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참 흥이 나는 판에 끌려나온 희준이라 입에서 퉁명스러운 소리가 났다.

“너 새디스트지?”

“뭔 소리야?”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화장실 간다고 끌고 나오는 놈이 어디 있냐? 변태도 아니고.”

“웃기고 자빠졌네. 사업하러 가는 거야, 인마.”

진혁이 한 소리 하고 화장실이 아닌 무대 뒤편으로 갔다.

그곳은 혼잡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공연을 끝내고 내려오는 팀과 다음 공연을 위해 올라가는 팀, 뒤에 대기하는 팀. 가수들과 스태프들이 뒤엉켜 정신없었다.

그 와중에 한쪽에서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이가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어? 회장님, 이곳에는 언제 오신 겁니까?”

상대는 정인영의 전남편 천진홍이었다.

“오늘 도착했는데 좋은 공연이 있다고 해서 어렵게 표를 구해 구경 왔습니다.”

“연락 주셨으면 제가 준비했을 텐데…….”

“이런 좋은 공연을 열어 준 것만도 감사한데 부탁까지 할 수는 없지요. 천 사장님 같은 분들 때문에 이곳에 한류 열풍이 불어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활짝 핀 진혁의 얼굴에 비해 천진홍의 얼굴은 그리 편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정인영과의 이혼에 대해 진혁이 알고 있는지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문제는 이번 공연 역시 겨우 적자만 면하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천진홍의 JHC는 한국 내 엔터테인먼트 순위로 중간 정도였다.

사정이 그러다 보니 가능성이 보이는 신인들을 잡는 것에 한계가 있었다.

서로 경쟁하다 보니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좀 더 발전 가능성이 있는 회사를 먼저 택했다.

한류는 이곳이 더 뜨겁지만 구매력은 상대적으로 아직도 낮았다.

그런 이유로 상위 회사들은 경제력이 높은 미국, 유럽, 일본에서만 공연하고 있었다.

집안에서 보내주는 자금으로 적자를 메우며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장담을 하지 못했다.

진혁이 멀뚱히 서 있는 희준을 소개시켜 줬다.

“이쪽은 알라딘 총괄 그룹의 오희준 사장입니다.”

“천진홍입니다.”

얼떨결에 인사를 한 희준이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무시하고 진혁이 천진홍에게 말했다.

“알라딘 그룹은 한류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 평가해서 홍보에 적극 활용하려고 합니다. 그 일을 JHC와 함께 해 보고 싶습니다.”

“저희와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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