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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빌더, 두 번의 후회는 없다-210화 (210/307)

210화. 일본의 굴욕

“와우! 잡았다! 으아아아!”

팀원 모두의 눈이 한쪽을 향해 홱 돌아갔다.

“정말?”

“물론이지!”

“어디야?”

“북한이야? 아니면 차이나?”

“아니, 일본 도쿄시……. 닛뽄 자동차 연구소 IP다.”

“오케이! 이제 쓰레기 데이터를 방출한다. 먹고 죽어라. 물러서.”

빈센트의 지시에 팀원들이 마치 포기한 것처럼 일제히 자판에서 손을 뗐다.

데이터들이 빠르게 상대에게 넘어가면서 쉐도우 서버가 차례로 파괴되기 시작했다.

* * *

통화를 마친 진혁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예상이 맞았다.

증거도 충분히 확보했다.

이제 철저하게 복수를 해 줄 때가 됐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진혁은 알라딘 홀딩스의 야맘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 계좌의 가용 자금이 얼마나 됩니까?”

-그간 여기저기 투자를 많이 하셔서 70억 달러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닛뽄 그룹 관련주로 풋옵션에 전액 투자해 주십시오.”

-풋옵션. 알겠습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으로 통화를 끝냈다. 야맘 사장과의 통화는 언제나 깔끔해서 좋았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던 진혁이 다시 꺼내 들었다.

챙겨 줘야 할 사람이 생각났다.

-어쩐 일이시니까? 회장님.

JK모건의 스미스였다.

“여러 번 도움을 주셨는데 인사를 못 드린 것 같아서요.”

-그런 말씀 마십시오. 도움은 제가 더 많이 받았습니다.

“혹시 닛뽄 그룹 주식을 가지고 계시면 최대한 빨리 처분하십시오.”

-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어떤 결정을 할지는 그가 선택할 문제였다.

* * *

프랑스 남부의 니스는 오래전부터 유럽인들의 휴양지로 사랑을 받아 왔던 도시였다.

지중해와 접해 있는 해변은 광활했다.

진혁은 해변가 비치파라솔 아래에 누워 즐겁게 해수욕을 즐기는 가족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일본 정부의 반응을 기다리는 동안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해변가 2층 저택을 통째로 빌려 지민 자매와 혜주는 물론 양가 부모님도 모두 오시게 했다.

처음에는 일이 밀렸는데 불렀다고 투덜대시던 아버님은, 뛰어난 경치와 가족 모두가 즐거워하는 모습에 조용해지셨다.

의외의 인물도 따라왔는데 사촌 동생 연희였다.

이제 완연한 처녀티가 나 비키니를 입은 동양적인 자태로 뭇 사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녀가 혜주를 맡아 준 덕분에 몸이 무거운 두 명의 임산부가 편히 쉴 수 있었다.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혁에게 희준이 차가운 맥주잔을 건네며 말했다.

“고객 데이터는 확인 결과 조작된 허위 자료로 판명이 났대.”

반나절가량 접속이 불가능했던 알쇼핑에 대해 알라딘 그룹에서는, 디도스 공격이 있었지만 잘 막아냈고 어떠한 자료 유출도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에 일부 일본 언론이 고객 정보가 유출된 정황이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알라딘 그룹은 즉각 반박하며 허위 사실 유포와 명예 훼손으로 해당 언론사들을 고발 조치했다.

“닛뽄 그룹 쪽은?”

“난리도 아니지. 메인 서버가 완전히 파괴되어 급하게 임시 서버를 이용해 복구했는데 아직도 불안정한가 봐. 거기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객 데이터 유출설까지 제기되면서 주가가 완전 폭락하고 있어. 오늘도 20%도 넘게 떨어졌어.”

어제는 15% 가까이 폭락했다.

이틀 만에 35%가 넘는 기록적인 폭락이었다.

진혁이 차갑게 말했다.

“아직 멀었다. 내가 당한 고통 그 이상을 느끼고 나서야 끝날 일이다. 살아 있는 게 지옥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될 거다.”

희준은 손에 쥐고 있는 맥주잔보다 더 차가운 기운을 진혁에게서 느꼈다.

* * *

진혁이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반면, 일본 총리실은 연일 대책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해외의 불순 세력에 의한 디도스 공격이라 생각하고 정부 차원에서 강력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위해 마련된 회의였다.

그런데 갈수록 상황이 점입가경으로 흐르고 있었다.

닛뽄 그룹이 의도적으로 사건을 은폐 축소한다고 느낀 총리가 결국 검찰청 사이버 테러 대응팀에게 직접 조사를 맡겨서 보고를 받았다.

보고는 미요 검찰청장이 직접 했다.

“이번 사건은 닛뽄 그룹이 알라딘 그룹을 공격하려다가 역공을 받아 벌어진 일로 밝혀졌습니다.”

“사실입니까?”

“그게…… 직원들이 호승심에…….”

꽝!

“그걸 지금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어떻든 닛뽄 그룹이 먼저 벌인 일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정도면 이에다 회장이 직접 나와서 해명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아버님은 몸이 좋지 않아 입원하셨습니다.”

호시노 사장이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겨우 답했다.

그는 이에다 회장의 아들로 닛뽄 전자 사장이었다.

미요 청장의 보고가 이어졌다.

“서버 파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자료 유출입니다.”

“얼마나 유출된 겁니까?”

“닛뽄 그룹의 비협조로 정확한 규모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서버에 저장된 대부분의 데이터가 저쪽으로 넘어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음…….”

“전기차는 물론, 상용화를 앞둔 무인 자율 주행차의 핵심 자료뿐만 아니라 고객 데이터도 유출된 것 같습니다.”

“고객 데이터요? 사실입니까?”

총리의 추궁에 호시노가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저희도 지금 파악 중입니다만, 그보다 먼저 한국 정부에 공식 항의하고 알라딘에 대한 조치를 취하는 게 우선 아닙니까? 피해를 입은 것은 일본 기업입니다.”

“이보세요, 호시노 사장님. 알라딘 그룹이 공격했다는 증거나 가지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그건 미요 청장님이 파악하시지 않았습니까?”

“아이피를 추적했더니 실질적인 공격은 실리콘밸리였습니다. 그래서 사태가 더 심각하다는 겁니다. CIA가 개입됐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더 잘된 것 아닙니까?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그쪽을 뒤지면 알라딘과 연관되어 있다는 게 나올 겁니다.”

계속 책임을 떠넘기는 호시노 사장의 태도에 미요 청장이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사하면 알라딘과의 연결 고리는 밝혀지겠지요. 하지만 닛뽄 그룹이 먼저 공격한 사실도 드러날 겁니다. 한국과 일본을 한꺼번에 때려잡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놈들이 아닙니다. 거기에 알라딘으로 넘어간 자료를 CIA가 순순히 되돌려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

“장이 전 대사도 이 일에 관련되어 있으니 중국 정부마저도 알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일이 확대되면 될수록 우리에게 불리합니다. 서둘러 정리하는 게 최선입니다.”

여전히 변명과 은폐에만 급급한 호시노 사장의 태도와 미요 청장의 냉철한 판단에 총리가 마음을 굳혔다.

“청장은 지금 당장 전 인원을 투입해 닛뽄 그룹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세요. 관련자들은 빠짐없이 조사하고 방해하는 자는 즉각 연행하세요. 여기에 이에다 회장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는 닛뽄 그룹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지난 정권이 일본 전력을 비호하다가 몰락한 것을 보시고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쇼다 대신은 나섰다가 호통만 듣고 물러나야 했다.

“최근 잇단 품질 조작 사실이 드러나 ‘메이드인 재팬’의 신뢰성에 큰 흠집을 입었습니다. 여기에 상대 기업에 대한 선제공격 사실과 고객 정보 유출이 외부로 알려진다면 이 나라 전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

“닛뽄 그룹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런 상황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그자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프랑스 니즈의 휴양지에서 가족과 함께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쇼다 대신이 그자를 만나 보세요.”

“제가 말입니까?”

다시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인간이었다.

하지만 총리의 생각은 달랐다.

“목줄을 쥐고 있는데도 함부로 나서지 않은 것은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반증입니다. 요구 조건이 뭔지 듣고 오세요.”

“……그러겠습니다.”

쇼다의 답변을 듣고 난 총리가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과거 대동아 전쟁에 패해 천황께서 굴욕적인 항복문을 낭독하셨지만 우리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지금 이 나라는 그때 못지않은 위기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치욕스럽더라도 이 나라가 침몰하는 것만은 막아야 합니다,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그러니 각오 단단히 하고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다들 눈이 벌게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한 그룹의 어설픈 만행이 국가 전체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해 버렸다.

그 원흉인 호시노 사장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날 총리실 대변인은 닛뽄 그룹에 대대적인 조사 방침과 이에다 회장을 비롯한 그룹 임직원에 대한 출금 금지조치가 내려졌음을 밝혔다.

* * *

해변가 레스토랑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진혁은 희준의 안내로 들어와 인사하는 쇼다 대신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봤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서로 얼굴 보지 않기로 하지 않았나요?”

“……총리께서 보내서 왔습니다. 어떤 조건도 수용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진혁이 어떤 인간인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쇼다라 어설프게 감추지 않고 솔직히 털어놨다.

진혁이 수첩에 메모한 것을 펼쳐 놓고 말했다.

“첫째, 지난 정권에 졸속 결정된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재협상. 둘째, 독도에 대한 일방적인 영토권 주장 철회. 셋째, 이번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엄벌. 이 정도는 약속을 해 주셔야 할 것 같네요.”

“그렇게 말씀 전하겠습니다.”

“용건이 끝났으면 가 보세요.”

진혁의 차가운 말에도 쇼다는 일어나지 못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직 남아 있었다.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고 입을 뗐다.

“획득한 데이터의 처리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아주 유익한 자료들이 많더군요. 잘 사용하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회장님도 사업가십니다. 고객 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알려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아실 겁니다. 살려 주십시오.”

쇼다는 말만이 아니라 직접 바닥에 무릎을 뚫는 것으로 일본 정부의 다급한 사정을 몸소 표현했다.

그 모습을 진혁이 마뜩잖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번 일이 세상에 공개되면 일본 경제는 한동안 일어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

자신에게 한 것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크게 당해도 싸지만, 그건 아시아에서 중국의 득세를 돕는 꼴이 된다.

자신의 최종 목표는 중국이지 일본이 아니었다.

잠시 생각하던 진혁이 말했다.

“닛뽄 그룹에서 알라딘 그룹으로 기술을 이전하는 식으로 정리합시다.”

“기술 이전요?”

“그렇습니다. 뺏고 빼앗긴 게 아니라 정당한 계약에 의해 정보를 넘겨준 것으로 하면 서로 무리가 없을 것 같네요. 물론 거기에 고객 정보의 관리에 대한 책임은 알라딘에 있다는 단서 조항을 달면 우리가 외부로 유출할 일은 없겠지요.”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그렇게 보고드리고 추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요.”

쇼다 대신이 서둘러 떠나려는 것을 막은 진혁이 갑자기 자신에게 손을 내밀자 희준이 의도를 몰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지갑!”

“아.”

희준이 얼른 지갑을 꺼내 내밀었다.

진혁은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쇼다의 손에 억지로 쥐여 줬다.

“무릇 모든 계약에는 금액이 오고가야 그 효력이 발생합니다. 알라딘은 누구처럼 상대의 약점이나 잡아 이득을 취하는 몰염치한 집단이 아닙니다. 기술 이전료입니다. 귀하게 쓰십시오.”

“……감사합니다.”

돌아서 나가는 쇼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렀다.

그 모습에 희준이 통쾌한 표정을 지었다.

“아주 쌤통이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네. 그런데 넌 지갑 안 가지고 다녀?”

“다녀.”

“그런데 왜 내 지갑을 달라고 해?”

“오만 원짜리밖에 없어서. 아깝잖아?”

“헐.”

희준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나가자 진혁이 서둘러 휴대폰을 꺼냈다.

야맘 사장이 받았다.

“닛뽄 그룹에 투자된 것은 어떻게 됐습니까?”

-현재 풋옵션 행사가 가격은 1.90으로 투자 대비 1.89포인트 상승했습니다. 투자 시점에는 0.1이었으니 18.9배 치솟은 상황입니다.

70억 달러를 투자한 게 1,323억 달러가 됐다는 말이었다.

진혁이 오더를 내렸다.

“정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야맘 사장의 답변이 시차를 두고 이루어졌다.

더 떨어질 것 같은데 이해가 안 된 것이다.

하지만 진혁은 알고 있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일본도 저력이 있는 나라였다. 이전과 같이 이번에도 그냥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잠시만요.”

진혁이 전화를 끊으려는 야맘 사장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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