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화. 차량 공유 서비스
강남역 인근의 도로는 난리도 아니었다.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차도까지 내려와 있었다.
지나가던 택시도 손님을 바로 태우는 게 아니라 목적지를 물어보고 나서 장거리 손님만 골라 태우고 있었다.
거기에 취객까지 섞여 있어서 혼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거의 30여 분 택시를 잡기 위해서 뛰어다니던 한상국이 지친 표정으로 돌아와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회사가 가까우니 대리 기사를 불러 차로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결국 회사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대리 기사가 도착하자 차에 탔다.
“조심해서 들어가십시오.”
한상국과 최진성의 인사를 받고 출발했다.
주차장에서 나와서 본 도로는 여전히 난리통이었다.
“참 대단들 하네요.”
“심야에 이곳에서 택시를 잡겠다는 멍청이들 때문이지요.”
“……!”
대리 기사의 말에 진혁은 속으로 뜨끔했다. 자신도 방금 전까지 그 멍청이 중 한 명이었다.
심심했던지 대리 기사가 말을 늘어놨다.
“택시들이 손님을 골라 태우는 것은 행선지가 중요해서입니다. 손님은 가기만 하면 되지만 택시는 돌아와야 하는데 빈 차로 오면 손해니까요. 부천 등은 돌아올 때 여의도나 홍대로 가기 쉽고, 강남에서 은평, 노원은 장거리이지만 선호하지 않습니다. 나올 때 빈 차의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손님들은 골라 받는 것은 불법 아닙니까?”
“불법이지요. 하지만 다 방법이 있습니다. 저기 1, 2차선으로 그냥 달려가는 택시 보이시지요?”
“예.”
“정차하지 않으면 승차 거부는 아니거든요.”
“그럼 손님을 못 태워서 손해 아닙니까?”
“콜택시들인데, 원하는 콜만 받겠다는 거지요. 단속반이 없는 골목에 기다리고 있다가 나오는 겁니다. 저도 좋은 콜을 받으려고 세 곳의 대리 기사 대행업체와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치열한 경쟁이지요.”
“참……!”
진혁은 입맛을 다셨다. 다들 먹고살려고 엄청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대리 기사가 말을 이었다.
“우리 일도 마찬가지로 돌아올 방법을 고려해야 하거든요. 원래 여기서 광명은 잘 안 갑니다만 마침 그쪽에 픽업 차량이 나와 있다고 해서 받은 겁니다. 사장님은 운이 좋으신 줄 아십시오.”
진혁은 어이없어하면서 입을 닫았다.
이건 뭐 손님이 왕이 아니라 하인이었다.
집에 도착해 대리 기사가 주차하고 돌아가자 진혁은 느릿한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골치 아픈 일을 연달아 겪은 데다 술까지 마신 터라 머리가 무거웠는데 상쾌한 바람에 머리가 좀 맑아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현관의 번호 키를 누르려던 진혁이 갑자기 멈췄다.
과거의 기억 속에 한 인터넷 업체에서 시작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서비스가 떠올랐다.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걸었다.
한상국이었다.
-잘 도착하셨습니까?
“집에 들어가신 겁니까?”
-아닙니다. 한잔 더 하면서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근처에서 재워야 할 것 같습니다.
“잘됐군요. 내일 아침에 데리고 출근하세요.”
-데리고요?
“예. 할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적당히 마시게 하세요.”
-알겠습니다.
진혁은 전화를 끊고 집으로 들어갔다.
* * *
다음 날.
출근한 진혁의 사무실로 한상국이 최진성 사장을 데리고 들어왔다. 술을 많이 마셨을 텐데도 깔끔한 모습이었다.
“갑자기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어제는 정말 죄송했습니다.”
군기가 팍 들어가 있는 답변이 한상국이 단단히 혼을 낸 모양이었다.
“같이 갈 곳이 있습니다.”
“……?”
“한 사장님도 같이 갑시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을 데리고 진혁은 논현동에 있는 한국택시업연합회 건물로 갔다.
입구에서 최진성이 기겁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청회에서 하도 싸워서 여기 직원들은 전부 제 얼굴을 압니다. 제가 들어가면 일만 더 커질 겁니다.”
“괜찮습니다. 들어갑시다.”
진혁은 머뭇거리는 최진성을 억지로 끌다시피 해서 데리고 들어갔다.
최진성이 그냥 한 말이 아닌 듯,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반응이 싸늘했다. 하지만 이미 진혁의 이름으로 약속한 터라 회장에게 안내했다.
“연합 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일용입니다.”
“서진혁입니다.”
“회장님은 반갑습니다만 이분은…….”
“오늘은 싸우러 온 게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앉으시지요.”
자리에 앉고 비서가 차를 내올 때까지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만큼 쌓인 감정이 많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진혁이 먼저 입을 뗐다.
“어제 강남역에서 늦게 택시를 잡으려고 했더니 손님 골라 받기와 승차 거부가 무척 심하더군요.”
“우리 회원 기관에서는 그런 곳은 없습니다. 개인택시 쪽에서 간혹 그런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정부가 강력하게 단속하겠다고 했으니 조만간 없어질 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
김일용이 답을 하지 못했다.
이건 단속한다고 없어질 일이 아니었다.
택시 업계 역시 한계에 달해 있었다. 경기 부진은 기업만이 아니라 서민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들었다.
국민들이 교통비라도 아끼려고 대중교통만 이용하니 낮 시간에는 빈 택시로 운행만 하는 일이 허다했다.
대중교통이 끊기는 심야에 바짝 벌어야 겨우 사납금을 채울 수 있으니 단속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김일용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싸우러 온 게 아니라고 하면서 결국 염장을 지르고 있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이 거칠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같이 살길을 찾아야지요. 알라딘 그룹의 모토가 상생과 공존입니다.”
“차량 공유와 택시는 그런 관계가 될 수 없는 사이입니다.”
“공유 차량이 자가용이라면 그렇지만, 택시가 대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
가장 먼저 눈이 커진 것은 젊은 최진성이었다. 그 다음이 한상국이었고 마지막으로 김일용이었다.
최진성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
“택시를 대상으로 공유 서비스를 하자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어차피 GPS를 이용해 차량 제공 가능한 사람과 차량이 필요한 사람을 매칭시켜 주는 서비스잖습니까?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요.”
“……문제없습니다.”
최진성의 확답을 받은 진혁이 이번에는 김일용 회장에게 물었다.
“쓸데없이 손님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기름만 없애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게다가 어느 택시가 콜을 받았는지 데이터가 있으니 여성 고객들이 안심하고 이용할 수도 있고, 서로 괜히 목적지를 물어보고 승차 거부 할 일도 없고요. 서로 손을 잡으면 윈윈 할 수 있으니 최상의 조합이라고 생각합니다.”
진혁의 결론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을 바꾸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결국 점심까지 얻어먹으며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를 해 합의까지 이뤘다.
“조만간 임시 이사회를 소집해 확정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좋은 제안을 해 줘서 감사합니다.”
흡족한 표정으로 인사하는 김일용에 반해 최진성의 얼굴은 좋지 못했다. 한상국이 같이 있지 않았다면 진혁의 결정에 반대했을 것이다.
그런 기분은 알라딘 사무실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잔뜩 얼굴만 찌푸리고 있는 최진성에게 진혁이 웃으며 말했다.
“최 사장님은 제 결정이 불만이신가 봅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성진아!”
“그냥 말씀하시게 하세요.”
나서려는 한상국을 진혁이 막자 최진성이 참았던 불만을 터트렸다.
“회장님은 제삼자라 상관없으시겠지만 전 회사를 운영해야 하는 입장입니다. 수수료 하나 없이 서비스만 제공하면 전 뭘로 직원들 월급을 주고 운영비를 충당합니까? 그런 조건이라면 저쪽 이사회에서 승인해도 제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럼 반대로 묻겠습니다. 지금도 어려운 게 택시 업계의 현실입니다. 정부에 요금 인상을 요구했지만 물가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별도의 수수료가 들어간다면 저쪽에서 승낙하겠습니까?”
“……회장님의 말씀은 인정합니다만, 그렇다고 제가 무상 서비스를 할 만큼 자금 사정이 여유롭지 못합니다.”
“작은 수익에 연연하지 마시고 투자를 유치하세요. 대한민국 모든 택시에 서비스가 제공되는 일입니다. 당장 저라도 받아 주신다면 투자하겠습니다.”
“……!”
“우리와 협력하는 방안도 있습니다. 알라딘 페이로 결제하게 하면 카드 수수료보다 훨씬 적게 드니 그건 세이브가 될 겁니다. 그 외의 다양한 협력방안이 있을 겁니다. 그건 두 분이서 천천히 상의해 보십시오.”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제안임에도 최진성이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자본금이 바닥이 난 상태였다.
서비스 대상을 바꾸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존 프로그램을 변경해야 하고 서버도 증설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력과 돈의 투자가 또 필요했다.
최진성이 진혁에게 물었다.
“정말 회장님이 투자해 주시겠습니까?”
“그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얼마든지 투자하지요.”
진혁의 화끈한 답변에 최진성의 얼굴에 비로소 미소가 퍼졌다.
하지만 진혁은 아직 할 말이 남았다.
“이왕 시작할 거, 한 가지 서비스를 더 추가하십시오.”
“필요하신 게 있으십니까?”
“제가 아니라 사장님 회사에 필요한 겁니다. 대리 기사 매칭 서비스도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원리는 같으니까요. 신뢰성도 있고요.”
“정말 기가 막힌 아이디어입니다.”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진성은 한상국이 왜 그렇게 진혁을 칭찬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고의 한계가 없는 사람 같았다.
이후의 일은 두 사람이 논의하라고 내보내고 혼자가 된 진혁이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구필준에게 걸었다.
“한국의 스타트업 업체에 대해서도 알아봐 주십시오. 의외로 능력 있는 업체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4차 산업이 발달하지 않았다고 생각해 미국과 중국만 뒤졌는데 아니었다.
최진성과 같이 척박한 환경에서도 도전하는 이들이 있었다.
며칠 후 한국 택시업연합회와 최진성이 업무 협약서를 체결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마무리되었지만 진혁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한국 사회 곳곳에 규제와 집단 이기주의라는 암초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리저리 우회로를 뚫어 겨우 사업만 진행시킨 수준이었다.
언제까지 이런 식의 임기응변으로 대응할 수만은 없었다.
알라딘 그룹의 주력 사업인 알쇼핑의 인터넷 은행 설립은 해답도 찾지 못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진혁은 마침내 방글라데시로 건너갔다.
* * *
그날 저녁 김상균은 영등포 시장 골목 곰탕집으로 들어섰다.
예약된 방으로 들어가자 김세동이 먼저 와서 수육을 시켜 놓고 자작하고 있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아니야. 내가 좀 일찍 왔어.”
“선배님이 먼저 연락을 주시고. 어쩐 일입니까?”
김세동은 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일절 사적인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 괜히 이런저런 구설수에 오를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김세동이 김상균의 잔을 채우며 물었다.
“여기 기억나냐?”
“그럼요. 예전에 밤샘 잠복하고 나면 항상 선배님이 여기로 데려와서 밥 사주셨잖습니까. 그때는 애국심 하나로도 행복했는데 말입니다.”
“그랬지……. 오늘 원장이 청와대에 왔다 갔다.”
“……!”
정기인사철이었다.
국가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국정원이라 중요 보직에 대한 인사는 청와대에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 네 자리는 유임시키기로 했더구나. 그런데…….”
“전 괜찮습니다. 국가를 위해 일하게 해 주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지요.”
김세동은 일부러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김상균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3차장 자리는 유지됐지만 2차장 자리는 후배가 차지했다.
권성일이 대통령이 되면서 예전같이 노골적으로 자신의 사람을 앉히는 일은 없어졌지만, 오랜 관행이 하루아침에 없어질 수는 없었다.
원장이 자신의 사람들부터 챙겼다.
입에 쓴 술을 털어 넣고 김세동이 말했다.
“너 나와라.”
“선배님!”
“네 충성심이 얼마나 깊은지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아시는 분이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습니까?”
“알기에 하는 말이다. 꼭 국정원에 있어야 나라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